구중궁궐 깊은 밤
달빛을 머금고
담장위에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는
화사한 꽃
능소화
며칠 동안 답답했다.
아는 데 입에서만 맴돌고
안 떠오르는 꽃 이름이
어제는 대상포진백신 예방접종을 했다.
아내와 상의한 결과
죽은 백신 옛날 것 아내가 맞은 것
한 방으로 끝내는 백신
18만원짜리로
이게 현재 내 몸값이다.
24만원짜리 생 백신
두 차례씩 맞을 가치가 없는 위치에 와있다.
컴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좀 전에 뭐 컴으로 작업할려고 했는데
몇 초 사이에 지워졌다.
내 기억장치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다.
중요한 사안은 손전화기에 녹음해 놓으면 되지만
이런 작은 일
순간 순간 깜박하니
세월을 탓해야 하나
아니면 내 몸 관리 잘못한 나를 탓해야 하나....
아차
좀 전에 봤던 능소화 사진 용량 줄이는 작업을 할려고 했었지~~~
포토스케이프 작업을 마치고
오랫동안 사용했던 dslr은 폐기했고
이 나이에 굳이 카메라 작만할 필요도 없고
그동안 서랍에서 천대받았던 PowerShot_D30을 꺼냈다.
수중 25m까지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다시 매뉴얼을 살피고 작동법도 다시 익혔다.
오늘은 폰카와 디카의 사진빨을 보려고
산책하는 길에 능소화에 필이 꽂쳐서
상현동 성당 주변을
늘 찾는 코스로 발길을 놓았다.
능소화 보이면
번갈아 눌러댔다.
결과는 폰카보다는 역시 디카로다.
촬영 작업 자체가 우선 안정되고
구도 잡기도 편하고
화질도 더 부드럽다.
....
이렇게 7학년에 올라선 후론
내 몸 보호를 위해서는 저렴한 것으로
취미로 눌러대는 카메라도 궁색한 대로
있는 폰카와 디카로
하나 하나 비우고 줄이면서 살아간다.
게다가
요즈음 들어
선택받은 벗들
성공한 지기들
빌딩부자 동기들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씩 사라져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많은 돈 놔두고
얼마전
요양원에서 넘의 손길에 맡기는 신세가 된 동기가 안쓰럽다.
치매만 아니라면 오만 잡생각에 묻혀 살 것이다.
나?
그런 맴돌이 속에 함께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아내가 일갈했다.
아파 못 움직이면
우리 집은 돌봐줄 사람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내 옆에 근무하는 65세 동료는 얼마 전에 요양(간병인)보험도 들었다고 한다.
아 ~ 차~~
몇 년 전에 큰애가 실손보험만큼은 들어두라고 했는데
허지만 그 당시도 늦었다.
65세 넘으면 우리가 아는 그 실손보험은 받아주지 않는다.
보험 하나 들어놓은 것 없으니
몸관리 더 신경써서 잘해야 하지만
갈수록 생활습관부터 엉망이 되어만 간다.
담배 끊은 지 일 년이 넘은 대신
그 자리를 술로 채우고 있다.
저녁에 막걸리는 기본이 되고 말았다.
그래
작은 것 하나 들어두자
보장은 덜 받고
보험료는 더 내고
약제처방 보장은 아예 없는
유병자 실손보험을 우여곡절 끝에 가입했지만
이 보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요양병원 걱정 보다
치매 걸리면 안 된다는 염려가 더 크고
임플란트 비용에 신경이 쓰인다.
늘처럼 오늘도
6시 좀 넘겨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근래 들어 처음으로 아내가 배웅해준다.
잠에서 막 깬 얼굴을 보니
내 아내도 할머니가 다 되었구나!
버스에 올라 아내 얘기를 되집어 보았다.
친한 친구의 남편이 아주 건강했고
건강검진도 별도로 받아왔다는데
그동안 아무 이상 없었다는데
갑자기 직장암 말기라고
희망이 아예 없다면서 아내한테 어제 하소연을 길게 한 모양이다.
이제 겨우 68세라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아내의 부스스한 얼굴이 선하다.
나보다 아내 건강이 더 염려된다.
지병으로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복용하는 약도 수북하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데....
한 시간여 일찍 출근해서
권선동 장다리천을 따라 권선2동 성당까지 걷는다.
평생 기도 같은 것 안 하고 살아왔는데
작년에는 세례도 받았고
믿음은 얕지만 매주 미사에도 나간다.
요즈음 아내가 간간히 채근댄다.
부모는 자식들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성당 울타리 옆
의자에 잠시 앉아 쉬면서 자식들 하나 하나 떠 올려보고
다시 되돌아 사무실로 발길을 놓는다.
터벅 터벅 걸으면서
인생 뭐 별것 있냐?
놀러 갈 궁리만 열심히 해댄다.
이번 추석 연휴는
모두들 쉬는 연휴라 붐비니
가까운 곳으로 산책이나 즐기고
주변 찾아뵐 분들 만나고
먼 거리 여행은
평일 연차 모아서
성수기 아닌 다소 한산한 시기로
제주도 서귀포로 스쿠버다이빙과 성지순례를 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사무실에 들어와
우선 항공편부터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확보하고
숙소도 아고다에서 구했다.
어차피 서귀포에서 다이빙할 것이고
성지순례도 서귀포 일대에서
올 가을 제주도행은 서귀포 쪽에서 주로 머물다 올 것이다.
그 다음으로 올해 넘기기 전에
보홀이나 세부로 다이빙 여행을 한번은 더 가야겠다.
열심히 인터넷 둘러 봐야겠네
다이브샵과 세부 밀림 지역을 찾아서....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근처의 장다리천을 따라 걷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연다.
오늘은 기이하게 움직이는 백로를 만났다.
포은 정몽주선생 묘소 앞에도 게시되어 있는 선생님의 모친께서 지으셨다는 시
까마귀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흰 빛을 샘낼까 염려스럽구나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첫댓글 가을향기가 바람으로부터 들어옵니다
글을쓰면서 자신을 바로직관하고 글을읽으며 읽는사람도 앞일과현재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아내에대한사랑과 연민 그리고 주변이 변하는상황을 찬찬히 써내려간글에서 확신이 듭니다 분명 늙는것에대한 고뇌는 인생에큰뜻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겸손과 감사로 겸허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듭니다
정몽주선생의 어머니는 큰아들을 만드신 흙이었다는것 .....
오죽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일상의 나의 일상인듯
나이 드니
문제도 고민도 비슷한가 봅니다.
논리정연하게 글을 써주시는 오죽님의 글을 읽노라면
제 삶도 뒤돌아보게 되고 반성도 하게 됩니다.
저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게 많은 공감을 하게 되네요.
하지만 멋진 삶을 사시니 늘 건행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