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자본주의와 신(新)자유주의를 혼동해선 안 된다. 신자유주의는 여러 경제 사상 중 하나로 상당기간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화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노출됐다.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가 경고했듯이 '위기 관리가 없이는 시장 작동이 안 된다'는 교훈을 재확인해준 계기가 됐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항상 국가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런 현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Privatisation de gain, socialisation de perte)'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현상(국가의 공적자금 투입, 은행 국유화 등)도 이런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의'라는 요소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등장하나?
"새로운 모델이라기 보다 자본주의가 계속 진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어제까지 부(富)와 성장의 창조자로 칭송받던 금융시장이 위기 후 모든 악(惡)의 근원으로 지탄받고 있다. 금융시장이 자본공급자로서의 기능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금융시장에 대한 감시기능은 대폭 강화돼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더 많은 규제를 받는 자본주의로 이행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이란 점이다. 현재의 위기는 과도한 부채 경제와 개인 간 엄청난 소득 격차 등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깊어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제는 보호주의를 낳고 시장 자율성을 침해해 결국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데.
"그 문제야말로 반드시 피해야 할 위험이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각국의 우발적 행동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자동차 구제금융 조치를 비롯한 각국의 자동차 산업 구제 움직임이 그 한 예다. 무조건적 지원은 공정거래 규칙을 위반하는 정책이다. 이러한 보호주의를 배제하기 위해선 각국 간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하다.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선진국+개발도상국) 정상회담에서 '보호주의 배격 원칙'에 합의한 점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앞으로 달러 중심의 미국 금융패권이 쇠퇴할 것으로 보나?
"복잡한 질문이다. 미국이 반세기 이상 달러를 기반으로 세계 금융을 지배해 왔는데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금융감독체제가 필요하고 거기에 더 많은 국가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앞으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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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현재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어떤 변화를 예상하나?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인종(多人種)사회이고 인종차별에 따른 불평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그런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 또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공약에서 강조했듯이 사회적 약자(弱者)를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한 사회보호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구축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미국에도 유럽식 사회보장 모델이 점차 이식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신(新)뉴딜정책을 표방하며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섰다. 결국 경제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커질 것으로 보나?
"그렇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미국인들도 실업(失業) 상태를 못 견딘다. 미국은 유럽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훨씬 심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멈출 경우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유럽보다)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유럽이 얻은 교훈은?
"유럽연합(EU)처럼 '만장일치' 제도에 바탕을 둔 통제시스템은 이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한 세기에 한 번 오는 꼴의 막대한 위기에 처해서 회원국들 간의 이견(異見)을 조율해 합의하는 것은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유럽 차원의 연방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이와 관련,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유럽 단위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유럽 경제 정부' 창설을 제안했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유럽에선 국제통화기금(IMF)의 기능 확대, 금융산업의 규제 강화 등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1944년 창설된 브레턴우즈 체제(미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 구축 및 IMF 창설)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신흥 개발도상국도 더 이상 IMF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국제 기구와 새로운 규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새 자본주의 질서 모색 과정은 국가 간 이기주의 때문에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유럽의 희망사항이 관철되려면 무엇보다 미국과의 컨센서스(합의)가 필요한데 미국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유럽 주요국 중에서 영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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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가장 큰 실수는 금융산업에만 집중해서 경제발전을 도모한 것이다. 한 나라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선 다양한 산업 분야를 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모노 인더스트리(Mono-industrie) 체제'는 위험 관리 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석유·에너지 산업에 기반한 아랍국들과 러시아의 경제가 이번 위기를 맞아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유럽은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 등 환경정책 분야를 선도해 왔다. 세계적으로 '녹색 성장' 개념이 확산되면 유럽에 유리한가?
"최근 들어 세계 모든 국가들이 환경산업에 관심을 갖고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흐름은 단연 앞선 기술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 유럽 입장에선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금융위기는 중국의 위상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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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국, 유럽과 견줄 만한 초강국으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빈곤 문제와 계층 간 갈등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은 내수(內需)시장 발전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미국이 유럽 쪽에서 택한 '전략적 파트너'는 영국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유럽 주요국 중 어느 나라를 파트너로 삼을 것으로 보나?
"오바마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다. 부시 대통령처럼 유럽의 어느 특정국가를 편애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고 유럽 전체를 파트너로 삼으려 할 것이다."
―아시아 경제는 미국 편향이 심한 편이다. 앞으로 유럽이 아시아권과의 경제 협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계획이 있나?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선 EU 차원에서 그런 대외 경제 정책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현재 유럽연합이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와의 경제 협력 분야에서) 진일보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EU-한국 간 FTA 협정이 체결되면 EU는 이를 토대로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도 비슷한 내용의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장폴 피투시
거시경제 정책운용 전문가
튀니지 출생의 좌파 경제학자로, 프랑스 경제학계에서 케인스학파의 대표주자로 분류된다. 프랑수아 미테랑(Mit terrand) 대통령이 집권했던 1989년부터 프랑스 정부 산하 경제전망기관인 경제분석원(OFCE) 원장 직을 맡아, 프랑스 정부의 경제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해 왔다.
그는 인플레이션·실업·개방 경제 체제의 거시경제 정책 운용 분야의 전문가로,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 정책을 옹호해 왔다. 최근엔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의 상관 관계에 관한 연구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그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경제위원장(1990~1993년)을 역임했고,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유럽연합 차원의 정책 개발 과정에도 참여해 왔다. 이탈리아텔레콤 이사(2004년~현재)로 재임하며 실물경제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