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껍데기는 가라
가장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일까? 모두가 다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세상 아닐까? 누구는 그걸 평화라고 하고 자유라고도 할 것이다. 그런데 평화는 너와 내가 좋아야 하니까 평등이 기반이다. 있는 만큼 서로 사이좋게 나누면 된다. 그래서 평화는 함께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너와 내가 충돌한다. 서로 먼저, 많이 차지하려고 다툰다. ‘누가 힘이 약하라 했어? 돈이 없으라 했어?’라며 눈 부라린다. 그렇게 자유는 제 눈에 안경이니 방임, 방기이다.
올해는 5·18 43주년이다. 그날 세상을 떠난 분과 유가족의 통렬한 회한, 계엄군에 짓밟히고, 옥고에 고문을 당한 부상자의 고초와 고통을 그 무엇으로 보상하랴.
이제 광주의 5·18은 대법원 확정판결, 국가기념일 제정, 국립묘지 승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으로 세계사의 기념비로 우뚝 섰다. 하지만 아직도 헌법 전문수록 과제가 있고, 유공자의 처우 문제는 그저 이름뿐이다. 북한군의 소행이고, 유공자들이 대단한 혜택이나 받는 것처럼 호도하는 수구세력의 망언, 망동도 심심하면 고개를 내민다.
그럼에도 역사는 과거보다 좋은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기록이고, 그래야 바람직하다. 눈앞의 것만을 전부라고 주장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를 붙들고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또한 억지이자, 역사발전의 훼방이다.
미국에 머무르던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가 광주를 찾아 5·18 유가족을 만났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어 사죄했고 유가족들은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또 전 씨는 5·18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에도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소중한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추모탑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 일을 두고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최근 전우원 씨의 사죄를 비롯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우리 사회가 계엄군에 대해 너무 강하게 비판하다 보니, 그들은 사실상 죄책감에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또 ‘계엄군 중에 광주 출신들은 전부 살인마라는 낙인이 찍혀 숨어 산다’, ‘계엄령에서 상관의 지시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계엄군도 가해자면서 피해자이다.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진상규명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일제강점기의 위안부와 강제노역에 대한 문제로 국론이 요동치고 있다. 이는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대통령 윤석열의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일본이 용서를 빌려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그릇된 의식 때문이다.
그 일본의 ‘사죄’ 없이 이루어진 회담과 방자한 언행은 아무리 자유로 포장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잘못에 대해 진솔한 사죄가 앞선다면 화해와 용서, 화합과 포용의 길이 맞고, 또 그 길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를 잊고 저버릴 수 없지만, 과거에 갇혀 살 수도 없다. 세상 만물은 생성하고 소멸하니 그 누구도 이 세상의 영원한 주인이 아니다.
이순신은 ‘왜적은 간사하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교활하고 흉악하여, 그 악랄함을 감추질 않는다.’, ‘왜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라고 했다. 하지만 그 왜란의 추석절에 항왜 부하들이 축제를 하고 싶다 조르자 흔쾌히 허락하고 광대로 분장한 항왜들의 놀음을 구경하였다. 더욱 돋보이는 이순신의 인품이고 위대함이다.
5·18 43주년을 경건히 맞이하며 이제 분노보다는 잊지 않아야지 한다. 그날 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는 시민을 지켜봤기에, 그 앞서간 자들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인다. 숱한 고초를 꿋꿋이 견디는 산 자들과 함께 뒤를 따른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만이 자유라는 것은 오만이고 호도이며 탐욕이다. 이제 허울뿐인 궤변의 자유가 아닌 진정한 5·18의 민주, 인권, 평화의 정신으로 용서와 화합의 길을 걸어갔으면 한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시구가 호령이 되어 하늘을 울린다. (호남일보 칼럼 2023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