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교단 뿌리 찾기’
경남노회 기독교 문화연구위원장 허창수 목사
‘고신교단 뿌리찾기’를 경남(법통)노회가 청원하여 총회 안건으로 접수된 것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보를 비롯한 언론계에 ‘고신총회 회수’에 대한 의견들을 보았다. 필자는 경남노회로부터 ‘기독교 문화 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 소명을 받고 경남노회록이 제1회에서 100회까지 찾는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기독교 문화 연구 위원장으로 책임을 맡고부터 경남노회록의 중요성과 그 역사성을 깨닫게 되었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노력하여 일부(제1회-42회록) 사본이지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찾지 못한 노회록이 한국 교회사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찾은 노회록을 살펴보고 한국 장로교단의 역사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고신교단의 역사성을 살펴보면서 고신교단은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그 전통을 계승하는 교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신교단 뿌리 찾기’를 청원하게 된 동기는 단순한 본인 개인의 소견에서가 아니라 고려신학교 일부 교수들의 의견과 몇몇 선후배의 제안에 ‘경남노회 기독교 문화연구 위원회’의 안건으로 노회에 청원한 것이다.
경남노회가 1916년 9월 20일에 총회로부터 허락받아 조직되었다. 금년 가을노회가 173회가 된다. 고신총회는 제60회가 된다. 문제는 경남노회가 고신총회보다 36년전에 조직되었다는 것이다. 총회가 먼저 설립되고 노회가 설립되는 것이 순리적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부모없는 아들이 먼저 존재하는 격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순을 생각할 때 고신교단은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그 정통성을 이어 받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대를 이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져 가듯이 정통적인 고신교단이 역사적 정통성을 이어가지 않고 비순리적인 이스마엘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교단처럼 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신교단은 1952년 9월 11일에 경남 진주 성남교회당에서 총노회를 조직하여 제1회 총회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총노회를 조직하는 취지는 “현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본 장로회 정신을 떠나서 이교파적으로 흐르므로 이를 바로 잡아 참된 예수교장로회 총회를 계승하기위하여 총노회를 조직한다”. 목적은 “전통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정신을 지지하는 전국교회를 규합하여 개혁주의 신앙운동을 하며 법통총회를 장차 계승한다”라는 취지와 목적으로 고신총노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1956년 9월 20일에 총노회가 총회로 개편키로 하고, 회수는 총노회 회수를 계속키로 하므로 제6회 총회가 되어 고신 총회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금년 총회가 60회가 된 것이다.
고 한상동 목사의 1990년 3월 21일 고신대학 신학과 수양회시 ‘고려파 뿌리’란 제목으로 강의한 강의록에 의하면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밖 교회당에서 모인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하기로 가결’한 것과 1939년 신의주 제2교회당에서 제 28회 총회에서 ‘장로교 헌법과 교리와 신조를 버리고 소위 순정 일본적 기독교로서 한국 장로교회를 혁신하기로 가결한 것’을 반박하여 ‘고려파는 순결한 기독교 수립을 목표로 하고 출발하였다. 신앙의 정통과 생활과 순결한 한국 교회의 건설를 위하여 진리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하였다.
1949년 4월 19일-23일 제35회 총회에서 자유주의 신신학자들은 용납하고 고려파에 대해서는 경남노회는 한부선 선교사 일파의 선교사와 관계하지 말고 고려신학교에도 삼가함이 가하다고 결의하고 또 1952년 4월19일 -5월2일 대구 제일교회당에서 모인 제37회 총회에서는 경남노회로 하여금 고려신학교 일파를 제명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로 인하여 신학과 정통과 생활의 경건을 배격하는 자유주의 신신학자들과 과거 일제 시대 때 신사참배에 적극 가담했던 교권주의자들이 합세하여 고려파를 제명하였다. 고려파에 속한 자도자들은 총회내에서 이탈하여 나온 것이 아니고 축출한 것이다. 고려파는 절대 분리주의자가 아닌 것을 자부한다
그래서 1952년 9월 11일-12일에 경남 진주 성남교회당에서 목사 50명, 장로 37명 합87명이 모여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1회 고려파 총노회가 조직되었다(고신 교회 역사 자료집 제 2권 46-52p).
분명히 한상동 목사는 ‘고려파에 속한 지도자들은 총회내에서 아탈하여 나온 것이 아니고 축출한 것이다. 고려파는 절대 분리주의자가 아닌 것을 자부한다’고 하였다. 해방후 신앙의 정통성과 생활이 순결하고 한국 교회 재건을 위하여 지하에서 신앙의 절개를 사수한 지도자들과 출옥 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교회의 재건과 진리운동을 일으켰다. 이것이 오늘 날 고신 교회의 진리운동이며 신앙운동이며 고신 교회의 신앙노선이며 고신의 신앙의 뿌리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고신교단은 대한예수교 장로회를 이탈하여 분리된 총회가 아니다. 신신학과 신사참배에 가담했던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축출된 교단이다. 조선예수교 장로회의 정통과 생활 순결을 계승하고자 그 전통을 이어가는 역사성을 가진 교단이다. 그렇다면 고신총회가 60회가 아닌 96회가 되어야 대한예수교장로회 정신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며 개혁주의 신앙과 법통총회를 계승하는 교단이 될 것이다.
고신교단 신문 [기독교보]에 올린 기사
세계를 재폐한 여자축구선수들
16번 선수가 동성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던 김수빈 선수이다. 지금은 울산 현대정보고등학교에 다님.
외할머니는 지금도 동성교회에 출석하며 가끔 수빈이도 외가집에 오면 동성교회에 출석한다.
.
우성컵을 번쩍 들어 올리며 좋아하고있다.
애양원을 방문함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 내외분의 묘와 두 아들 동신이 동인이 묘
첫댓글 고려신학 교단의 뿌리찾기를 위해 경남 노회의 허 목사님이 청원하여 경남노회 기독교 문화 연구회 위원장으로 훌륭한 일을 하시는 모습과 세계를 제패한 월드컵 축구선수 "김수빈"이 동성교회 출신이고 지금도 그 외할머니가 동성교회 출석하니 더욱 감동합니다. 사랑의 원자탄, 고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의 묘지와 애양원 예배당을 보니.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의 대표적인 표상이신 순교자 손양원 목사와 주기철 목사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귀한 자료를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