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30일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2006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제시한 키워드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법.
패션의 본고장 밀라노에서 열린 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 앤 가바나, 구찌 등 이탈리아 톱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통해 내년 남성복 유행 경향을 짚어봤다.
#화이트 수트의 전성시대
역시 남성복의 정수는 정장이다. 밀라노의 톱 브랜드들은 일제히 상.하의가 모두 흰색인 정장을 선보였다. 화이트가 내년 시즌 남성 정장의 메인 컬러로 부상한 것이다. 셔츠와 넥타이, 구두까지 흰색으로 통일시켜 깨끗한 멋쟁이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화이트를 항상 따라다니는 컬러가 바로 블랙이다. 구찌는 블랙과 화이트를 주로 대비시켰다. 검은색 바지에 클래식한 분위기의 하얀색 더블 버튼 재킷을 걸치는 식이다. 바지는 전체 38벌 중에 검은색.흰색.회색을 제외하곤 다른색은 단 한벌도 소개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아르마니는 좀 더 자유로운 수트를 선보였다. 아르마니의 대표적인 스타일인 통넓은 바지를 기본으로 아주 가벼운 소재로 만든 재킷을 입고, 안에는 셔츠 대신 니트를 받쳐 입는 식이다.
사실 남성 정장은'메트로 섹슈얼'같이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패션이 호응을 얻으면서 한동안 홀대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내년 시즌엔 수트가 부활할 조짐이 보인다.
아르마니나 구찌 같은 전통적인 브랜드는 물론 캐주얼한 디자인을 주로 선보였던 돌체 앤 가바나마저 컬렉션에서 예년에 비해 수트의 비중을 높인 것이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비즈니스 정장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부분 허리선이 더욱 잘록해지고 재킷도 길이가 짧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은 신체적 단점을 가려주기보다는 몸매를 확연히 드러낸다. 일할 때 입는 수트가 아닌 사교 모임용이나 레저용 정장인 것이다.
#'반짝이'의 유행은 계속된다
광택 소재의 강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듯하다. 돌체 앤 가바나의 알베르토 까발리 홍보 담당 매니저는 "면이나 울.혼방 등의 소재에 코팅을 한 원단이 많다. 광택도 은은하기보다는 눈에 띌 정도로 강조해 시원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톱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주요 컬러인 블랙과 화이트에도 코팅을 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로베르토 까발리의 정장도 실크 느낌이 나는 아이보리 원단을 사용했고, 엠포리오 아르마니에서도 골드 계열의 색이 많았다. 또 보라색이나 남색의 바지에도 허리 부분엔 금색의 실로 수를 놓은 디테일로 반짝임을 강조했다.
돌체 앤 가바나가 선보인 청바지는 금속의 테두리를 덧댄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멀리서 보면 바지 자체가 반짝거리는 스타일이었다.
#스니커즈와 오버사이즈 백
이젠 남성복에서도 액세서리는 필수품이다. 그중에서도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발과 가방. 정장 의상이 많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구두보다는 스니커즈가 강세였다. 돌체 앤 가바나는 모두 49개의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땀이 잘 통하는 매시(올이 성겨 속이 비치는 그물망) 소재에 다양한 컬러를 띠고 있는데, 블랙과 화이트의 정장을 제외하고는 모델들이 대부분 스니커즈를 착용했다.
가방은 더욱 커졌다. 일명 '오버사이즈 백'이라 불리는 큰 가방은 더욱 두꺼워져 전체적으로 둥그런 모양이었다. 특히 구찌의 가방은 정장은 물론 니트나 수영복 같은 복장에도 잘 어울려 다기능(멀티 유즈)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니커즈와 함께 많이 나온 신발은 샌들이다. 청바지나 정장에도 발가락이 훤히 보이는 샌들을 착용했다. 특히 엠포리오 아르마니 쇼에서는 모델이 발가락 10개 모두에 발찌를 끼고 나와 신선하다는 평을 얻었다.
#내려입기와 짧은 바지
내년 여름 멋쟁이 소리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바지를 내려 입어야 할 것 같다. D&G의 쇼에선 청바지를 의도적으로 내려입어 꽃무늬 속옷이 보일 정도였다. 또한 밑위(바지의 가랑이에서 벨트까지의 길이)가 현저하게 짧은 로라이즈(lowrise)스타일의 청바지가 많았다. 로라이즈는 엉덩이가 올라가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어, 여성 청바지에선 수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디자인이다.
끝단이 복사뼈 위까지 올라온 정장 바지도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7~9부 길이의'크롭트 팬츠'열풍이 정장 바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원래 양복 바지의 길이는 복사뼈가 살짝 보일 정도가 기본이지만 한국 남성들의 경우엔 이보다 길게 입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찌나 아르마니의 경우엔 아예 복사뼈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의 길이를 보여줬다. 자칫 깡총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샌들 같은 경쾌한 신발로 마무리하는 재치를 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