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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 생명도 잃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찾아가는 MD사역자 군산서부제일교회 노은자 집사입니다. 저는 명랑 쾌활한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만 직선적으로 지적하는 단점이 있으며 호기심이 매우 강한 여성입니다. 저희 집안은 부모님께서 신앙생활을 하셨기에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모태신앙' 은 기본이요, 목사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는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반강제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었으며 중고등부 시절을 지나 한 때는 "예수님"이란 단어에 눈물 흘리며 밤새도록 찬양을 들으며 아침을 맞이한 적도 있었으나 한두 차례 저보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께서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실랑이를 하며 악담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이후로 '참 그리스도인'이란 의문을 스스로에게 질의하며 점점 신앙과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 웃으면서 뒤에서는 욕하는 두 얼굴의 사람들~ 거짓된 사람들의 형상이 어찌 예수를 믿는 자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믿는 자들은 부족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반면 불신자들은 부요한 경제력을 누리는 것을 알게 된 때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닥치는 고통과 고난들... 한참을 혼란한 상태로 궁금증을 가슴에 남겨둔 채 상처 입은 마음으로 방황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교회와 멀어지고 사회적인 업무에 열중하게 되었고 회사의 중역의 자리까지 올라서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열심으로 주를 믿을 때 없었던 좋은 기회들이 주를 멀리할 때 찾아오자 제 마음에는 기쁨이 있는 반면 두려움도 함께 느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행복한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모든 것이 손에 쥔 모레처럼 다 빠져나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치료가 잘 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어머니의 건강도 악화되어 차라리 '나 좀 죽여줘'라는 말씀을 뱉으실 정도로 힘겨웠던 고통을 견뎌내셔야 했습니다. 갈수록 고난의 연속이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주께 간절하게 절실하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걷지 못하시고 병상에 누워계신 모친과 셋째를 낳고 몸조리가 필요했던 여동생, 여든이 가까우신 아버지의 쇠약해진 건강, 그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움에 처해진 우리의 가정~! 열악해진 환경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자 가족 간의 이해가 적어지고 배려심이 줄어들어 잦은 다툼으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했던 그 시기에 교회에서 MD전도교육을 실시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이끌리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첫 시간부터 참여하진 못하였으나 9월 21일 동생과 처음 참여한 날~ 조금은 어색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알 수 없는 설레임으로 두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고 확실한 다짐을 갖고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MD전도 교육시간 내내 주준석 목사님의 강의는 이제껏 고난의 연속을 겪은 우리가정의 이야기를 아시는 것처럼 말씀을 통하여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나약하여 지쳐 힘들어 하던 때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예수님이 손 내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30여년을 나의 노력으로 나의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왔던 자만심을 속죄하며 낮은 자의 마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께서 허락하신 과감한 마음가짐으로 옷 3벌을 싸들고 제부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동생네 집으로 무작정 들어가 숙식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제부와 결혼한 후 약 11년 동안 제대로 얘기해 본적 없었기에 친숙하지 않아서 제부와 함께 숙식을 하기엔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카인 유빈이와 함께 첫 날밤을 지내면서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생 집에서 잠을 자던 첫째 날 밤 잠들기 전 4살인 유빈이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모 손~ 엄마 손~ 두 손을 모두잡고....♬ 주님오늘도 도와주세요. 주님 뜻 안에 살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오늘 해질 때까지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이모! 안녕히 주무세요. 오빠 잘 자. 태빈이도 잘 자. 모두 잘 자요.” 하고 잠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어린아이 보다 못한 저의 연약한 신앙심에 제 자신이 너무나도 창피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인 은혜에게 물었습니다. 뭐라고 노래하는지~ 유빈이의 발음으로는 알아듣기 어려우니 알려달라고 하곤 기도드린 후 잠들었습니다. 식사 때도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아멘~♬ 엄마, 이모 먼저 드세요' 하는 것을 보니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단 한 번도 낮은 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던 제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하시고 또 배우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비온 뒤 땅이 더욱 견고한 땅이 되듯 고난을 경험한 후 더욱 굳센 믿음으로 자라게 하심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4살인 유빈이의 모든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갖고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유빈이의 입장을 이해하려하니 조카인 유빈이의 언행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럴 때마다 저 또한 함께 달라지고 낮아지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여일 영업업무를 중단한 채 오직 MD전도에 빠져있던 제게 드디어 제부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일은 좀 괜찮으세요~~' 하며 질문하기에 이때다 싶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제가 겪었던 고난과 역경들 그리고 달라진 삶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행복한 이유들을 하나씩 얘기하니 어느새 제부는 닫혀진 마음을 열고 10년 이상 같이 살던 부인인 동생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과 교회에 참석치 못하는 이유와 믿는 자들에게 받은 배신과 마음의 상처들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끔씩 제부가 방으로 들어갈 때 방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리듬이 있었는데 복음성가와 찬송가였습니다. 가요를 즐겨 듣는 줄로 착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제부는 늘 주를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니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 치유 받고 구원받게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예배드리자고 하거나 교회가자고하면 확실한 대답으로 '안 간다.'라고 했었는데... 아버지생신 때 기념으로 교회 성도들께 식사대접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많은 분량의 식사준비는 해보지 않아서 제부의 도움이 필요하니 아버지생신 주일 때는 함께 예배 참석해서 음식준비도 같이했으면 좋겠다며 꼭 제부가 필요하다고 얘기를 건네자 제부는 당일 아침 일찍 7시에 일어나 교회 갈 준비를 마친 후 저를 보며 하는 말이 '이러다 음식준비도 늦고 찬양연습도 늦겠습니다.' 하며 어색하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제부가 달라졌어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조금 나은가 봅니다. 처음 어색하게 아버지 생신상 식사준비 핑계로 예배에 참석한 후... 전도에는 눈물이 필요하고 정착에는 피눈물이 필요하다는 강사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더욱 정성을 드리기 위하여 저는 지금까지 드리지 않았던 수요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고 모여 있었고 저도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까닭은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사모님께서 ‘잠깐 모였다가 가자‘ 하시기에 즉각 순종을 실천하기 위해 남아 있었는데, 한참 후 교육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내적치유를 하시는 김목사님께 제 이름을 얘기해 주시며 제게도 김목사님 소개를 해주시더니 자리에 앉아서 잠깐 기도하자고 하셔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접해본 내적치유기도. 그러나 소름끼치도록 나의 비밀을 나의 모든 것을 간파하셨던 기도!!! 제 자신도 모르고 살았던 불치병에 가까운 설사병의 원인!!! 양귀비까지 음용해보라는 의사의 권유도 있었던 10여 년 동안 치유되지 않았던 설사병은 내재된 원인이 있었던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며, 한 번도 뵙지 못한 분께서 저에 대한 모든 사항들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고 기도해주셔서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순간 병석에 계셨던 부모님이나 척추 측만증이 있는 동생이나 고혈압과 당뇨와 축농증에 시달려 앉아서 잠을 청하는 작은 언니를 떠올리는 것보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제부였습니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우리 제부의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을 갖고 그날 저녁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하고 기도 받을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동생과 제부와 함께 김목사님을 찾아뵙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요. 저는 행동도 느리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슴이 답답하고 한 번도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어요.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날 안아 준적이 없어요. 어린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말예요. 한참을 한숨 내쉬더니, 어휴.... 아우....휴~~~~ (울먹이며 울부짖으며) 저는 도망가지 않았어요. 아픔을 견뎌내며 다 맞았어요.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았어요. ...생략... 이런 제 심정 아무도 몰라요."(생략) 기도는 30여분 계속 되었습니다. 기도해주시는 김목사님을 비롯하여 사모님과 여동생, 우리 제부 그리고 저는 하염없는 눈물로 위로를 건네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의 기도와 조카인 현빈이 유빈이 태빈이까지 모두 기도해 주신 후 “이 가정을 시작으로 심리치료 상담하셔서 가정회복 시작해 주시래요.” 하셨습니다. 기도를 받은 후 저희 세 사람과 함께 사모님께서 ‘상담치료 수업’을 해주시기로 하고 동생과 저는 집으로 돌아오고 제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인가 요동이 치고 있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찬양을 듣고서 저녁때를 기다렸습니다. 김목사님께 기도 받으러 가기 전날 밤 제부는 본인이 기도를 받아보고 판단하여 교회에 함께 나가는 것을 결정한다고 말했었기에 기도 받았던 소감이 궁금해졌습니다. 애가 타지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동생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장모님 댁에 다녀올 때 조금 늦게 오면 안돼? 나 잠들면 와줘” 동생은 상심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아. 은혜야 기다려 보자. 오늘은 몹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가 봐. 기도하고 기다려보자. 나도 처음엔 당황스러웠거든...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 결단이 서게 되더라, 도망치는 거 안할 거 같아~~~” 하며 건넸더니 동생도 이해하는 듯 “그래 언니~ 나도 내 기도 들었을 때 소름 돋았었어. 너무 정확히 말씀해 주셨기에 놀랐거든~~~ 나처럼 현빈 아빠도 그런 느낌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거겠지?!!!” 하며 우린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로의 말로 서로를 안심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 다가오는 주일 아침!!! 아이 셋을 준비 시키고 찬양 연습을 하러 교회가려면 분주해서 바쁜데, 일요일은 교회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의 측근들은 연락을 안 하는 데 아침부터 벨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주준석 목사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습니다. ‘제부 오늘 교회에 같이 가십니까?’ 라는 질문에 바로 옆에 제부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갈 것 같은데 아직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서 "힘내세요. 함께 가실 것 같습니다."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곤 저는 찬양연습 때문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한참 후 우리 제부가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보이지 않았던 우리 제부... 간절한 소망을 갖고 기도드렸던 짧은 시간 속에서 주님이 우리의 소망을 들어 주셨습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이 저를 구원하시는 순간에도 이런 기쁨이였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몰랐을까? 사랑은 작은 관심 이라는 것을... 인간의 욕심으로 전도하려 할 때는 안 되더니 나를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관심 갖고 기도하니 13여 년 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마음의 쇠사슬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수요일 예배에도 참석하는 즐거운 믿음생활을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가족 간의 대화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빈번하였는데 요즘은 성경적인 이야기로 은혜로운 음악 찾아 듣는 것으로 여가를 보내기도 합니다. 또한 2012년 12월 김장철에 부모님 댁과 작은언니네 김장을 하느라 심신이 지쳐서 수요예배를 참석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동생과 저는 ‘밖에 눈도 많이 오고 아이들도 감기에 걸렸으니 오늘은 집에서 QT하고 일찍 잠들자’ 며 수요예배를 QT로 대신하려고 자료를 찾으며 제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7시30분이 넘었는데 제부가 오는 기척이 없자 순간 주준석 목사님의 강의중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은혜롭게 한다. 새신자가 오히려 기존신자의 신앙생활을 더욱 새롭게 해준다.” 우리 제부가 그 성격으로는 도저히 혼자서 예배 참석 할 수 없을 텐데 하며, 혹시나 해서 문자를 해보았습니다. “어디야?” “7시 반인데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지 예배당에 아무도 안 계신다.” 허걱... 새신자가 기존신자를 전도해서 데려온다는 말이 맞겠습니다. 그제서야 동생과 저는 아이들 옷을 챙겨 입히고서 서둘러서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거칠게 눈보라가 쳤지만... “하나님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것을 구별하는 지혜도 주옵소서!” 눈보라나 몸이 아파 예배 할 수 없을 때도 할 수 있는 용기를 기도로 간구하며 우리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고 깨달으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부로 인해서 저희들의 얕은 신앙심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며 이제 다시는 아프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핑계로 세상의 유익을 쫓아 예배를 무시하는 일 없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동생이 결혼 후부터 2012년 11월 11(일) 전까지만 해도 동생이 예배 참석하는 주일은 지옥 같은 다툼과 논쟁으로 불평을 대신했었던 제부가 지금은 수요예배도 혼자서 잘 참석하게 될 정도로 바뀌었고 주일예배는 물론이며 교회 차량이나 예배순서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부분들까지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 등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더불어 제부를 통해서 동생인 은혜와 저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고 믿음이 더욱 깊어져 매우 감사합니다. 지금도 수요일 낮에는 사모님께서 심리치료 수업을 해주시면서 우리 가정에 치유회복을 위하여 혼신을 다해주셔서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고 제부와 동생 저 이렇게 셋이서 시작되었던 공부가 이제는 새신자를 포함한 예비신자까지 우리 작은언니까지 6명이 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상대방에게 따뜻한 말한 마디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방법 등,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이 되어 주는 방법 등 가정 회복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13번째 교회 나가는 것을 시도하였다가 13번째까지도 상처를 입었던 제부에게는 마음이 열리지 않는 자물쇠가 굳게 잠겨져 있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중보기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아직 100퍼센트 마음의 치유를 받진 못하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함께 생활하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 저도 우리 가족에게 십자가 사랑으로 섬기고 실천하는 MD의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MD전도교육을 통해 저의 모든 생활이 변화되었으니 저도 이 큰 기쁨과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이제는 모든 삶을 오직 예수님께 향하는 믿음 강한 자녀로 MD사역을 감당하겠습니다. MD전도 교육 후 나의 입술은 오직 주찬양이며 모든 행실에 나눔과 섬김이 태초부터 있었던 듯 자연스러워졌으며 더욱 강하고 확고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삶으로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근심과 걱정을 주께 아뢰고 구하니 주께서 주관하신대로 이루어주심도 경험하게 되어 주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MD전도교육 덕분으로 그동안 기울어졌던 신앙 되찾았으며 VIP를 향한 사랑과 관심은 상처까지도 치유하며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란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감사드리고 우리 모두 주께서 택하신 믿음의 백성임을 고백 드리며 땅 끝까지 오직 예수님을 따르며 증거 하는 증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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