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주는 두 번째 기회]
젊은 시절, 나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벽'이라는 시간의 비밀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그 짧은 몇 시간 안에, 세상은 혼돈에서 질서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조용히 반복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되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들이 창밖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흔들리는 발걸음 속에는 단순한 취기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텨낸 고단함이 녹아 있었다.
새벽 3시에는 더 애처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들어선 이들이 컵라면 하나로 조용히 허기를 채웠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그 뒷모습에서,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누군가의 자식이었을 그 사람들의 침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런데 새벽 5시가 되면, 세상의 색깔이 바뀐다. 빗자루 소리와 함께 거리를 쓸기 시작하는 이들, 우유와 신문을 들고 골목을 누비는 이들, 그리고 새벽 기도를 위해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힘차고, 드러나지 않지만 세상을 떠받치고 있었다. 아침 6시, 퇴근을 앞두고 창밖을 내다볼 때면 어김없이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간밤의 소란과 어지러움은 말끔히 정리되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단정하고 정갈한 얼굴로 새 하루를 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을.
어떤 밤을 보냈든, 얼마나 깊이 흔들렸든, 새벽은 그 모든 것을 묻지 않고 다시 한 번 시작의 문을 열어준다. 그 사실이 너무나 소중하고 벅차게 느껴져서, 나는 훗날 아이들의 이름에 모두 '새벽 서(曙)' 자를 담았다. 어떤 어둠 속에 있더라도, 어떤 긴 밤을 지나고 있더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였다.
새벽은 말이 없다. 그러나 날마다, 아무 조건 없이, 세상 모든 이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