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 보현보살에게 받은 수기
정안(正安)스님, 대둔산 태고사
내가 이곳,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에 있는 대둔산 태고사에 온 때는 1968년도 저물어 가는 11월 5일이었다.
나는 1962년에 전주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한동안 놀고 지냈다. 그때 홀연히 무상(無常)을 느껴 훌쩍 절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넷, 전북 임실군 임실읍에 있는 죽림사에 입산해서 3년 동안 어산(魚山)과 염불을 배웠다. 도량석, 종송, 예불, 불공, 권공, 신중불공까지 배우고 다시 담양군 금성면에 있는 보광사로 가서 약 한 달 정도 머물다가 태고사로 왔던 것이다.
나의 출가 목적은 세 가지 원 때문이었다.
첫째, 불교의 어산염불, 영산재까지 다 배워 마치리라.
둘째, 불교강원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다 배워 마치리라.
셋째, 참선을 해서 견성성불의 대도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리라.
태고사에 왔을 때 내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계를 받지 않고 행자로 지냈다. 그렇지만 그동안 배운 염불공덕으로 말미암아 태고사에서 바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감히 행자로서 태고사 중창기도를 맡게 된 것이다. 무척 과분한 일이지만 영광스러운 소임이었다. 처음에는 백일기도를 모셨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바로 이어서 천일 관음기도를 입재했다. 나는 그 사이 1969년 음력 4월 15일, 당시 도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전강큰스님께 수원 용주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나의 삶은 오직 기도였다. 사미계를 받은 이후 더욱 발심하여 천일 관음기도를 네 번 마쳤다. 햇수로 따지면 그 사이 12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다음부터는 천일 지장기도를 입재하기로 했다. 그때 광덕큰스님께서 태고사에 오셔서 입재 설법을 해주셨다. 평소 광덕큰스님은 은사이신 도천스님을 꼭 ‘사형님’이라고 부르셨고, 대하는 마음이 참으로 각별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화엄사 도광스님을 광덕스님이 사형님이라고 부르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스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받드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우리 스님과 도광스님과의 관계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하여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다. 각박한 세상에 청풍 같은 미담이기에 말이다.
아무튼 나의 천일 지장기도 입재 날 광덕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을 통해 나는 큰 가피를 입었다. 큰스님께서 먼저 ‘지장보살예찬문’을 읽으시고 법문을 하셨는데 나는 어찌나 좋던지 지장보살님에 대한 믿음이 딱 섰다. 그 뒤 지장기도를 충실하게 할 수 있었던 힘이 온전히 큰스님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이후로 줄곧 은사스님과 광덕큰스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고 있다. 그때 이후로 광덕큰스님에 대해서, 보현행을 하시며 보현행을 가르치시고 평생 보현행으로 살다 가신 이 시대의 보현보살이라고 확신하고 공경하고 있다.
나는 1986년도에 광덕큰스님께서 번역하신 ‘한글 금강경’을 태고사에서 만들기로 생각했다. 앞부문에는 한문 금강경을 싣고, 뒤쪽에는 한글 금강경을 실어서 글자를 좀 크게 하여 누구나 읽기 좋게 독송용 책으로 묶었으면 하는 서원을 세웠다. 이 계획을 큰스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얻기 위해 큰스님의 충실한 신도인 호은보살님과 함께 잠실 불광사로 큰스님을 친견하러 갔다. 절하고 끓어앉아서 사유를 말씀드리고 금강경 독송용 책을 내놓으니 큰스님께서 펼쳐서 살펴보신 뒤 “경을 너무 크게 만들지 않았나? 휴대하여 지송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지만 태고사에는 연세 든 신도들이 많이 계실 터이니 괜찮겠구나!” 하시면서 오히려 잘했다는 흐뭇한 표정으로 웃어주셨다. 또 나에게 “우리 기도스님, 지장기도 열심히 하여 큰 서원을 세워요. 지장보살이시니 지장기도 잘 하셔!”라고 당부해주셨다.
그 날 친견 이후 나는 더 큰 용기와 희망으로 지장보살님의 원력바다에 뛰어들었다. 우주법계의 영가님들에 대한 자비심과 그들을 천도하겠다는 서원으로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히 기도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기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밥 먹고 나면 오직 기도였다. 아니 밥 먹는 중에도 기도가 계속되었다. 이 모두 큰스님의 은혜였다.
1993년 봄에 큰스님을 뵙기 위해 호은보살님과 경기도 안성시 죽산에 있는 도피안사를 참배했다. 큰스님은 법체가 불편하셨다. 그러나 나는 모처럼 뵙는 귀한 자리여서 절을 올린 뒤, 바로 공부이야기를 꺼냈다. 누워 계신 스님께 평소 궁금하던 것을 이것저것 여쭈어 본 뒤, 말미에 “큰스님, 저는 이제부터 보현행원만 하겠습니다”라고 다짐을 두었다. 그때까지도 가만히 누워 계시던 큰스님께서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셔서 나에게 다가와 나의 두 어깨를 꽉 움켜잡고 우렁한 목소리로 “그래, 그래! 네가 앞으로 할 일은 오직 보현행이야! 보현행이야! 보현행이야!” 하시면서 마치 벼락치듯이 고함을 지르며 사정없이 어깨를 흔들었다. 세 번이나 큰소리로 보현행을 외치시면서 ‘오직 보현행원만 해라!고 하시었다.
도대체 큰스님의 어디에서 그런 준엄하고 우렁찬 음성이 나오고 힘이 나왔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정말 보현보살님께서 오셔서 직접 수기를 주신다는 느낌이 단박에 들었다. 나는 얼떨결에 “예, 큰스님! 저는 보현행원만 하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어른 앞이라는 생각도 없었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의 가슴에는 큰 믿음이 자리했다. 내 마음자리, 본 자성에는 보현행원이 요지부동으로 꽉 박혀버렸다. 사십구재 법문을 하든지, 어디 가서 설법을 하든지, 아니면 태고사에서 법문을 하든지 보현행원 10가지를 마지막 결론으로 말한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나는 처음 출가할 때 세운 세 가지 원을 다 이루지 못했으나 태고사에서 중창기도를 맡아서 기도하던 중에 은사스님과 광덕큰스님을 뵙고 다시 세 가지 큰 원이 세워졌다. 이 원은 나의 세세생생의 원이 되었다.
첫째, 세세생생 무상대도를 이루어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
둘째, 세세생생 영가천도를 하면서 지장보살행을 하겠습니다.
셋째, 세세생생 보현행원을 하겠습니다.
나는 은사스님에 대해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다. 큰스님은 나를 볼 때마다 “사형님 잘 계시냐?”고 깍듯이 은사스님의 안부를 물으셨다. 어찌나 은근하신지 그 말씀을 듣는 내 가슴이 먹먹해 올 때가 많았다.
올해 음력 4월 25일, 나는 호은보살을 앞세워서 큰스님의 상좌인 송암스님을 도피안사에서 만났다. 지난 번 양평에 있는 용화사 점안의식 때 만난 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스승님의 뜻을 이으려는 그의 효심 어린 노력이 참으로 장하게 여겨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광덕큰스님과의 인연담을 써달라고 했다. 윗대의 도심(道心)을 본받아서인지 송암스님도 나에게 사형이라고 부르면서 각별한 도우지정(道友之情)을 보여주었다.
점심공양 후 한동안 이어진 송암스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우리 광덕큰스님께서 상좌인 송암스님에게 당신의 법을 다 주고 가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한 구절 노래가 뱃속에서 솟아올랐다.
만리에 보현행원의 바람이 불어오누나
창공에 보현행원의 햇빛은 빛나누나
아, 광덕큰스님이시여!
아, 보현보살의 화신이시여!
가르침은 영원히- 다시 영원히 이어지고
행은 세세생생 빛나고- 또 빛나며
법의 종 울리고- 다시 울려
시방세계 끝까지 퍼져나가리-
불기 2549(2005)년 6월 27일
대둔사 태고사에서
수법제자 정안 분향하고 삼가 씀
광덕스님 시봉일기 5권- 임의 물결, 글-송암지원
첫댓글 큰스님께서 보현행원을 하겠다는 정안스님의 말씀이 얼마나 반가우셨으면 불편하신 몸인데도 일으키며 큰 소리로 세번이나 말씀 하셨다는 대목이 따뜻하게 전해옵니다.
보현행원으로 꽉 찼다는 정안스님!
온 세상 보현행원 울려 퍼지는 날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보현행원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보현행원!!- 내생명부처님무량공덕생명.._()()()_
보현행원...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갑자기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는 글에 글 읽다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 ( ) ( ) ( ) _
훌륭한 스님들이 계셔 참말로 감사합니다. 정안스님도 어떤 분이신지 궁금합니다. 찬탄올립니다. 마히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