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학교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버스정류장은 교복 입은 학생들로 붐빈 다. 요 근래 매일 개인
승용차만 타고 다녀서 그런지 이런 기분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예전에는 이 많은 사람들에게 욕도 하고 투덜거렸었는데, 지금은 마냥 좋을 뿐이다.
매일 같이 집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있는 기사아저씨를 오늘 하루만은 쉬게 만들었다. 아니, 잘하
면 매일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45번. 버스 한 대가 그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정류장 앞에 선다. 질서 하면 역시 한국이다. 조
금 전까지 무질서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딱딱 줄을 맞춰 한 명씩 버스 안으로 들어간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 별 거부가 없을 것 같았는데, 내 순번이 맨 뒷자리라 짜증이 난다. 생각 같아서는 다
패버리고 일빠로 탑승하고 싶다.
드디어 내 차례, 동전을 땡그랑 집어넣고 올라탄다.
'이야, 이거 미치겠군.'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들어차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어 보인다. 만원버스도 이런 만원버스가
없을 것이다. 이건 완전 사람을 숨막혀 죽으라고 하는 건지, 그냥 죽어버리라고 하는 건지, 나 참
나 알 수가 없다.
'저기 있다!'
내가 왜 괜히 버스를 탔겠는가.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다. 사서고생하며 그 편한 승용차를 버리고
버스를 탄 이유는 바로바로 저기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한 가녀린 여인 때문이다.
들어갈 구멍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꽉 막힌 틈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내리는
문 바로 옆 기둥을 붙잡고 있는 여인.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사랑이다.
'크크. 들레야, 이 오빠가 간다!'
눈이 빛난다. 짜증이 솟구친다.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었는데, 지금은 왕창 더러워져버렸다.
저 새끼들이 진짜 뒤질라고 어디서 개 헛지랄이야! 이 씨발름들, 싹 다 조져버릴라.
들레 뒤에 서서 킥킥 웃어대는 꼴이, 아니, 그것뿐이었으면 이토록 화까지 나진 않을 것이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새끼들이 들레의 엉덩이에 지네 몸을 딱 밀착시키고 서로 좋다고 킥킥
웃어대는 꼴이다.
주먹이 꽉 쥐어진다. 보아하니, 1학년 어린 새끼들 같은데, 어디서 저런 막대 먹을 짓을 하는지.
들레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충분히 그 표정을 예상할 수 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주먹으로 냅다
저 새끼들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지만, 지금 이 공간은 그 행동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더욱 밀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좋냐, 이 씨발 놈들아."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할, 들레 뒤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새끼들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뭐에 놀란 쥐새끼 마냥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진다. 주먹은 휘두를 수 없어도 이것만은 할 수 있
다. 얼굴이 붉어지는 게 곧 죽을 것만 같은 표정이다. 그래도 자기 딴에는 쪽팔린다고 소리내지는
않는다.
그냥 두 손을 펴 그 두 새끼의 가운데 달린 거시기를 움켜잡았다. 그냥 터져 버리라고, 내시나 되
어버리라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착하다. 몇 초 그렇게 꽉 잡았다가 놓아준다. 그 둘은
아픈 것도 잊은 채 내가 안 보이는 뒤쪽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학교에서 한 번만 걸려라. 그때는
이렇게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 아주 싹 죽여버리겠어.
몸이 얼어있는 들레의 곁으로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버텨 선다.
"어이, 예쁜 각시. 진짜 죽이게 예쁜데!"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을 하니, 그녀의 가녀린 몸에 금세 소름이 쫙 돋는다. 이제는 안심 시켜 줘
야할 때.
얼굴을 뒤에서 앞으로 들이밀어 들레가 날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나야, 나. 상재!"
그제야 얼어있던 들레의 얼굴이 스르르 녹아 내리며 꽃이 피어오른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가서면 들레도 이제 나의 본 모습을 알 수 있겠지.
들레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입을 쫙 찢어 웃는다.
'나 예쁘지?'
공부, 또 공부다. 수능이 바로 코앞이라서 그런지 다들 공부에 미쳐 있다. 그 와중에 나 혼자 이렇
게 천하태평이다. 아니, 저기 창문 옆에 앉아있는 새끼들도 그렇지.
책상에 턱을 괴고 또 들레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줄래?'
'시간? 나한테 시간이라는 관념은 없어. 그냥 너 편한 대로, 마음 닿는 데까지 생각하다가, 그러다
가 내가 생각나면 내게 와. 그때가 되면 나 네 옆에 영원히 있을 게.'
아직도 그때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아니, 영원히 내 기억 속에 존재할 행복이다. 이
제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 곁에 들레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도, 영원히 이렇게 한 자리에
서 있어야만 하는 생각도, 다시는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들레가 예전 나, 박
종탁을 잊어도 좋다. 아니, 꼭 잊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내가 살고, 들레도 행복해질 수 있
으니 말이다.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꼭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언젠가는 들레도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라는 것
을 느낄 수 있을 테지. 아마 그럴 거야.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나 보다. 뭔가 차갑다고 느낀 순간 눈이 떠진다.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팔을 타고 책상에 불시착한다.
벌써 수업이 끝났는지, 주위가 꽤나 시끄럽다. 그 시선 그대로 들레의 자리를 바라본다.
'음? 어디 갔지?'
내 입을 쓱 닦는 손수건 하나. 옆을 쳐다보니, 그곳엔 들레가 방긋 웃으며 서 있다.
"이제 쉬는 시간이니까, 침 좀 그만 흘리고 일어나세요. 천.상.제!"
너무 놀란 나머지 또 한번 침이 흐른다. 그런 내게 들레는 미소를 날린다. 정말 예쁘기도 하지. 어
디서 이런 천사 같은 애가 태어났는지. 들레 아버님, 어머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그, 또 흘리는 거 봐라!"
"헤헤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전교 수업을 모두 끝마쳤다. 그게 다 들레 때문이리라. 잘하면 내 통학을
담당한 기사아저씨가 평생 놀고먹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보다 얼굴이 더 밝아진, 이제는 그때 나, 박종탁이 살아있을 때와 같은 미소로 돌아온 것만 같
은 들레가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친구들을 다 보내고 내 앞에 서준 들레가 너무 고맙다.
"아직 학원 가려면 1시간은 더 있어야 돼. 그 동안 나 즐겁게 해줄 거지?"
"내가 무슨 장난감인가. (궁시렁, 궁시렁)"
"뭐야∼ 그래서 지금 나랑 안 논다는 거야? 치, 나빴다! 그럼 그냥 혼자 갈 거야."
"누가 안 데리고 논다고 했습니까요, 마님. 어서 탑승 하시옵소서, 마마."
들레의 저런 말투, 행동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뜬다. 양 허리에 두 팔을 대고 입술을 지긋이 깨
물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꼭 안아주고 싶다. 진짜 주위에 사람만 없었으면 벌써 안았을 것이다.
그 한편으로 왠지 모를 쓸쓸함이 흘러간다. 내가 박종탁으로 보이나? 왜 내게 늘 써먹던 투정을
부리는지.
자전거 페달에 한쪽 발을 걸치고, 어느새 밝은 미소로 돌아와 있는 들레를 지긋이 째려본다.
"빨리 타! 이 놈이 지금 달리고 싶어 미칠 것 같다고 말한다."
저번 그 자전거다. 뒷좌석에 푹신한 방석을 크기에 맞춰 깔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안에 스펀지까지
집어넣었다.
내 허리를 꽉 감싸안는 두 손, 등에 닿는 들레의 체온. 난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자전
거 페달을 밟는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들레 말대로 재미있게, 아주 재미있어
서 돌아가실 정도로 만들어줘야만 한다. 그런데, 그러고 싶은데 왠지 마음이 축 내려앉는다. 갑자
기 내게 이러는 들레의 행동이 미심쩍은 것을 어떻게 감출 수가 없다. 정말 왜 이렇지?
"1시간밖에 여유가 없는데, 어디서 놀까?"
1시간이 아닌, 평생 동안 같이 부대끼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렇게 들레의 두 손이 나를
꼭 감싸안고 있는데, 그래서 엄청 행복한데, 그녀가 뒤에 앉아있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
로, 들레, 민들레의 얼굴이 무척 보고 싶다. 그 동안 어떻게 참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들레의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
차가운 바람이 온 얼굴을 쓸어간다. 그 덕에 들레는 추위를 조금 밖에 못 느끼겠지.
"음… 음… 노래방 갈래! 상재야, 우리 노래방 가자."
"노래방? 노래도 못 부르면서 무슨 노래방을……. 아, 아니다. 그래! 노래방으로 고고고!"
"1시간이요."
"5000원입니다."
붉은 조명이 아늑하게 내리 깔린 노래방 안. 조그마한 TV가, 그래도 꼴에 TV라고 크게 소리내고
있다. 곳곳에서 갖가지의 노래 소리가 귓구멍으로 파고든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갈 걸 그랬
나.
"8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양쪽 광대뼈가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괴물 알바가 손짓을 하며 8번 방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마치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듯, 마음을 굳게 먹고, 들레의 손을 꼭 붙들어 8번 방으로 들어간다.
신나는 노래만 불러야 된다. 절대 사랑을 그리는 슬픈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러면 마음 약
한 들레는 또 우니까, 민들레의 눈에서 또 한 번 눈물을 보게 되니까.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레의 손에 노래방 책이 들려진다.
들레 손이 빠르게 무슨 곡을 찾아간다. 그러더니 곧 리모콘을 잡아 번호를 누른다. 설마 발라드는
아니겠지? 나부터 부를 걸 그랬나?
"들레야, 좋아! 바로 이런 스타일로 나가는 거야."
곡명 '오리 날다'. 신나는 음악이 울리는 동시에 붉은 조명이 꺼지며 천장 위에 여러 색깔이 비치
는 구가 빙빙 돌아간다. 들레의 얼굴엔 함박만한 웃음꽃이 피어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레는 그 곡에 파묻혀 정신없이 노래를 불러댄다. 솔직히 말하면, 들레의 노래
솜씨는 영 아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킥킥 웃으며 비웃을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누가 부르는 노래보다, 들레가 부르는 노래가 좋다. 마치 천사의 노래처럼. 아니, 그보다
더…….
"날아올라! 저 하늘 달과 별이 될래요. 늦은 밤, 하늘에 빛이 되어 날아갈 거야."
노래의 흥이 무르익을수록 나도 그 안에 파묻히고 만다. 어느새 내 두 손에는 탬버린 두 개가 잡
혀있다. 정신없이 뒤흔들며 춤을 춘다.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노래를 중간중간에 끊으며
웃어대는 들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뭔가 통한 걸까. 들레도 나도 슬픈 음률의 노래는 부르지 않
았다. 이제 10분 정도 남았다.
막 선녀와 나무꾼을 끝마치고 들레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뭐해? 이제 시간도 조금밖에 안 남았다."
"벌써 이렇게 됐네? 음, 이번에는 이거 불러야지."
숨이 탁 막혀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입에 대는 들레의 모습에서 난 느꼈다. 눈동자 속에
자리잡아있는 슬픈 무언가를.
의자에 앉아 가만히 들레의 얼굴을 바라본다. 처음부터 슬픈 음률이 흘러간다. 난 본다. 들레의 두
눈망울에 가득히 맺혀있는 물방울을, 들레의 속마음을.
그대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처음엔 그대로 좋았죠. 그저 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끝없는 기다림에 이젠 난 지쳐 가나봐.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면 내게 손짓하면 언제나 사랑할텐데.
난 매일 꿈을 꾸죠. 함께 얘기 나누는 꿈.
하지만 그 후에 아픔을 그대 알 수 없죠.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면 내게 손짓하면 언제나 사랑할텐데.
사람들은 내게 말했었죠.
왜 그토록 한 곳만 보는지.
난 알 수 없었죠 내 마음을,
작은 인형처럼 그대 맘을 향해 있는 나…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면 내게 손짓하면 언제나 사랑할텐데.
영원히 널 지킬텐데…….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만화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현실 속에 서 있는 나. 깨버리면 어
쩌지?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들레의 모습이 한 순간의 허상에 불과했다면, 여태껏 내가 행한 모
든 행동이 그저 꿈에 불과했다면, 아니겠지? 그렇겠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들레가 그 민들레
맞는 거지?
한 손에 마이크를 붙잡고, 바보 같이 울고 있는 민들레. 이젠 다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
게 아니었나 보다.
다가가 눈물 흘리는 들레의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쓱 닦아낸다.
"왜 바보 같이 울어. 예쁘게 웃지는 못할 망정, 울면 어떡해. 나 네 마음속에 있는 깊은 슬픔 모두
다 지워줄 수 있어. 이제는 울지마. 울음이 나와도 꾹 참아. 그래야만 너 살 수 있어. 그 속박 속
에서 풀려날 수 있어. 내 얼굴 보이지? 웃고 있잖아. 너 보면서 웃고 있잖아. 난 매일 이렇게 웃을
거야. 네가 웃어도 울어도, 네 앞에서만은 웃을 거야. 울진 않아. 절대 울진 않아."
"흑… 상재야. 상재야, 미안해. 나 널 보면 자꾸만 종탁이가 떠올라. 네 얼굴을 보면 자꾸만 종탁
이가 생각나고, 네가 나한테 잘해주면……. 모든 게 종탁이 같아.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종탁이로
보인다. 나 어떡하면 좋지? 어떡하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해. 내가 박종탁이라고 생각해. 난 괜찮아. 너만 이렇게 곁에 있어주면 되는 걸? 너를
위해서라면 박종탁이 되어줄게. 미안해하지마. 미안해하면 안돼."
'내가 박종탁이니까…….'
남자는 태어나 딱 세 번만 울어야한다. 어렸을 적 내가 몇 번을 울었느냐는 상관하지 않는다. 내
의식이 깨어난 순간부터 난 울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늘 옆에 붙어있었던 단짝친구가 죽어도 난
울지 않았다.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난 울지 않았다. 세상엔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세상 앞에 무릎 꿇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꿋꿋
이 다 견뎌 낼 거라고.
어느 날부터, 내 마음속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날 웃길 수도, 울릴 수도 있는 신비한 마법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때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또 어떤 때는 슬프게 만들어주고,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는 커다란 행복이었었다.
지금도 행복한데, 그런 것 같은데, 마음 속 어딘 가는 그렇지 않나 보다.
내게서 눈물을 보이게 만드는 여인,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여인. 이제는 내 전부가 되어
버린 여인.
'우리 결혼할까?'
'치, 이 나이에 결혼은 무슨…….'
'그럼 나중에 크면 나랑 결혼해 줄래?'
'음, 그때 가봐서 네가 내 옆에 있으면, 뭐 생각해 볼게. 그러니까 어디 가면 안돼.'
친 가족처럼 따뜻한 보살핌으로 날 대해줬었던 할머니도 이젠 내 곁에 없다. 내게 남은 건 이제
단 하나뿐이다. 그 하나를 위해서라면 난 어떤 것이든 할 자신이 있다.
부정하진 않는다.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거, 부정하지 않는다. 들레니까, 내 사랑
이니까.
노란빛을, 어떻게 보면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것 같기도 한 둥근 보름달이 땅으로부터 정 수직으로
높게 떠 있었다. 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듬성듬성 자리잡은 몇 개의 별들이 약한 빛을 냈다.
그 아래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 그곳에서도 수도 서울에 위치해 있는 행당동 길거리에 작은
포장마차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밝은 빛만 비추고 있을 뿐 안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오늘도 어제와 같군. 남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거지.'
거무튀튀한 외모에 각진 얼굴, 밑으로 축 쳐진 두 눈. 그 동안의 고생과 험난한 여정이 그의 눈빛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잘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그의 전체 모습을 보아, 꽤나 지저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음식들은 먹음직스럽게 잘 정돈되어 놓여져 있었다.
김만 모락모락 날 뿐, 그 음식을 먹을 사람이 지금 이 포장마차 안에는 한 명도 있지 않았다. 이
시간대면 꼭 이러했다. 하루 손님이 3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앞치마를 탁탁 털어 뒤 의자에 걸어놓는 민계이. 그의 나이 이제 40이었다. 10년 전 아내를 여의
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자식 하나와 여태껏 살아왔다. 그는 딸 이름을 누구 못지 않게 아
름다운 삶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민들레라 지었다.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딸의 모습을 떠올리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 일을 끝내고 막 정리를 하려던 찰나였다.
붉은 색 장막이 옆으로 쳐지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이제 막 끝내려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딱 오셨네요. 뭘 드릴까요?"
"좀 작군. 여기 사람들 더 올 테니까, 준비 좀 해주슈. 얘들아, 들어와라!"
"예, 형님!"
우렁찬 소리와 함께 곧 사내가 들어왔던 붉은 천막 사이로 같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
려들어왔다. 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민계이였다.
"뭐하십니까. 오늘 여기 음식 다 우리가 쳐 먹고 갈 테니까 다른 손님은 일절 사양이오. 여기 술
도 다 내와요."
"예? 예,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일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던 그는 앞에서 들리는 사내의 말에 바삐 손을 놀렸다.
"아저씨, 어제 제가 말씀드린 일은 잘 됐어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됐습니다, 도련님. 애들보고 앞으로 그 포장마차만 가라고
일렀습니다. 또, 먼지만 남을 때까지 다 먹으라는 지시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감사합니다, 아저씨. 제가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아, 늦었다! 아저씨, 앞으로 그 차 안 타고 다
닐 지도 모르니까 아침 일찍 나오셔서 저 기다리지 마세요!"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30분이다. 앞으로 달리는 와중에 뒤를 쳐다보며 멍해 있는 아저씨에게 소리
지른다.
숨을 헐떡대며 막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운 좋게도 145번 버스가 도착해 사람들을 태
우고 있었다. 그 창문 안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진다. 또 만원인 것이다.
주머니 속 동전을 꺼내며 버스에 올라탄다.
'아, 씨발 진짜. 사람 존나 많네. 짜증나, 짜증나!'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꽉 막힌 버스 안.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버스에는 들레가 타고 있을 것이다. 이 똑같은 버스를 매일 똑같은 시간에 타고 다닌 지 벌써 4일
째였다. 들레는 늘 저기 나가는 문, 기둥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입이 옆으로 찢어지는 것을 억지로 다물며 사람들 틈 사이를 파고든다.
역시나 오늘도 그곳에 서 있는 여인이 보인다. 난 냅다 그 여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조
용히 귓가에 대고 말한다.
"신랑 왔다, 각시야."
들레의 맑은 미소를 기다린다. 음, 좀 이상한 걸? 들레 머리카락이 이렇게 짧았나? 이 냄새도 아
닌데…….
'헉!'
내게 고개를 돌리는 여인. 난 정말 이 여자가 들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주근깨
가득, 커다란 얼굴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그 모습에 난 뒤로 나자빠지지만, 바로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몸이 나를 지탱해 준다.
첫댓글 이글을 보자 마자 끄면 아버지가 죽습니다.. 이글을 싸이트 5곳에 안올리면 반쪽 얼굴이 잇는 애가 나타나고 안나타나면 혼령이 자신을 따라 다닐 겁니다... 이글을 복사 해도 좋습니다... 명심 하십시요 시간은 77분 입니다(죄송)ㅠ.ㅠ
위에 초딩이시죠?그딴거나 믿다니...쯧
존나 그런거 믿으십니까? 불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