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하게 발달한 불법 시장과 소수 기업의 독과점, 부족한 정부 예산으로 허덕이는 업계와 공정하지 못한 배분 구조, 거기에 강렬한 동기를 지녔지만 그 수가 넘쳐나는 지망생의 경쟁 구도가 오늘날 한국의 '문화예술 산업'이 처해 있는 현주소다.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 이 피라미드의 마지막을 차지한 '무명'이나 '지망생'은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는 겁박 앞에 힘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제학자 우석훈 2.1 연구소소장은 지난 8월 말 <문화로 먹고 살기>(반비 펴냄)라는 책을 펴내 이러한 고민을 담아냈다. 방송, 출판, 영화,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벌어지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짚고 해결점을 모색해 보려는 시도다.
▲ <문화로 먹고 살기>(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반비 펴냄).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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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반비는 논의된 문제들 위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얹기 위해, 10월 한 달 동안 각 분야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이들을 초대해 세 번의 좌담회를 열었다. 출판 분야·방송 분야 좌담회에 이어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영화 분야 좌담회. 1998년 <쉬리>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로 '1000만 관객 시대'를 맛보았지만, 2006년 정점을 찍은 뒤로 이제는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휘청거리고 있는 바로 그 분야다.
지난 11일 서울시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 시청각실에서 반비와 '프레시안 books'가 공동 주최한 '문화로 먹고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독하고 리얼하지만 유쾌하고 낙관적인 좌담회(영화 분야)'가 열렸다. 저자와 함께 초대된 손님은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발>의 이해영 감독, <낮은 목소리> <발레 교습소>에 이어 일본 작가 미야베 미야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차>(가제) 촬영을 마친 변영주 감독이다. 절친한 사이인 두 사람은 얼마 전 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맞춰 진행된 '영화인 희망 버스'에 참가하는 등 현실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이날 우석훈 소장은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 쿼터 제도가 무너진 사건을 한국 영화계의 위기가 초래된 가장 큰 원인으로 꼽으면서도, 한참 돈이 들어올 때 "배급사 문제, 리스크 분산 장치, 영화 스태프 처우 같은 문제에 대응하지 못한"데 대한 잘못을 지적했다.
이해영 감독은 한국 영화가 상승세를 타던 1999년 데뷔해 정점을 찍은 2006년 첫 영화를 만들고, 이후 하락세 속에서 여러 문제들을 목격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한편, 변영주 감독은 지망생들에게 영화 직종이 고된 노동의 현장임을 강조했으며, "영화 노동자들이 깃발을 들 때 비로소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며 현 종사자들에게도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프레시안 books'는 지난 20년 동안 상승과 하락을 차례로 맛본 한국 영화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던 이날 좌담회를 지상 중계한다. 2시간의 좌담으로 한국에서 안정적인 '문화로 먹고 살기'가 가능한지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정부와 기업, 학교와 개인 차원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죽은 자국 영화가 다시 살아난 사례? 없다!"
우석훈 : 과거엔 대통령이 어떤 영화를 봤다고 하는 기사가 나가서 그 영화 상영관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일화도 종종 있었는데, 이번 정부는 그런 것도 없다. 청와대에서 영화 상영 한 번 안 하니까 '빗맞은 한 방'조차 안 나오는 거다. 소위 '여사님 관심 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필요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사업을 영부인 이름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정권 여사님 관심 사업은 도서관이었는데, 이번 정권은 어떤가? 여러분도 알다시피 '한식 세계화'다. (웃음)
그래서 우스개로 "우리 대통령이 훌륭하셔서 문화가 망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한국에서 문화에 대한 지출이 준 것은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가 아니라 2002~2003년쯤부터다. 100년 전부터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의 소득이 늘면 먹는 비용은 줄이고 문화에 쓰는 비용은 늘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2002~2003년쯤 되니 소득은 많이 늘었는데, 책 구입, CD 구입에 쓰는 돈은 줄었다. 그 가운데 CD 구입비 지출 감소가 가장 심했는데, 통계로 보면 한 달에 한 가구당 CD를 사는 데 겨우 300원을 쓴다는 결과가 나온다. 평균적으로 한 가구당 3년에 1장 CD를 산다는 뜻이다. 올해 CD 한 장이라도 산 분, 몇 명이나 되는가?
한국 영화는 그래도 오래 버텼다. 그런데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 쿼터가 반 토막 나는 일대 사건으로 그 이듬해부터 망하기 시작했다. 2007년 영화 관객은 늘었지만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퍼센트로 내려앉으면서 클라이맥스가 종료된다. 이런 추세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것인데, 영화계에 한참 돈이 들어올 때 배급사 문제와 리스크 분산 장치 그리고 영화 스태프 처우 같은 문제에 대응했다면 한국 영화의 생태계가 훨씬 더 건강해졌을 것이다.
<문화로 먹고 살기>를 쓰며 영화 산업이 활발했다가 망한 나라들로 멕시코와 브라질을 연구해봤는데, 멕시코는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하면서, 브라질은 미국 직배를 받아들이면서 망했다. 멕시코는 나중에 스크린 쿼터제를 다시 도입하긴 했지만 '규제' 제도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권고 사항'으로 지위를 낮추어 유명무실해졌다. 브라질 역시 한 번 미국 영화에 맛을 들린 관객들의 습관이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내가 알기론 한 번 죽은 자국 영화가 다시 살아난 사례는 없다.
한국 영화에도 더 큰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그걸 막을 규정이 사라지고 있는데, 나중에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반비
거품 빠진 영화 산업, 스태프들의 삶은?
변영주 : 한국 영화의 관객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결코 적은 편은 아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진짜 문제는 '부가 판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화로 벌어들이는 돈 가운데 극장 수익은 50퍼센트를 넘지 않는데, 한국은 거의 100퍼센트다. 영화의 DVD가 출시되는 바로 그 날은 초고화질의 불법 파일이 돌기 시작하는 날이다. 이 심각한 문제가 사실 산업 전체를 바꾸어버렸다.
가령 극장 외에 수익을 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극장의 권력이 너무나 세졌다. 이는 유통 업체인 이마트가 전자 산업 전체에서 권력을 갖는단 말과 같다. 게다가 극장을 소유한 회사가 곧 몇 안 되는 거대 투자사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나마 요즘엔 음원포털사이트에서 돈을 받고 음원을 제공하듯 합법적인 파일 다운로드시스템이 생겼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또한 이 시스템에서도 돈을 가져가는 것은 올레TV(KT)나, SK브로드밴드(SK)다.
사실 이 문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인터넷상 파일 거래에 대해 '저작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던 문화체육관광부 안과 '제약을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정보통신부 안 가운데 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비롯된 것이 크다고 본다. 이번 정부 들어서 법률은 '저작권 보호'보단 검열이 강화되는 쪽으로 흘러갔다.
또 하나는 전혀 개선되고 있지 못하는 스태프들의 삶의 질 문제다. 한국 영화가 한창 잘 나가던 때, 그들의 노동 조건을 낫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서 제작자협회와 영화산업노동조합 간 단체 협약 체결을 하고, 감독들도 "조감독한테 쉬는 날에 잠깐 와 보라고 하는 요구를 해선 안 된다"든지 하는 교육을 받았다. 흥분되고 신나는 순간이었다. 뭔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영화 제작 편수가 줄면서 이 움직임도 유야무야되어버렸다. 한층 약자가 된 스태프 입장에선 협약 안 지켜도 되니 나를 써 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한국 영화 상황이 현 정부 들어서 안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오로지 그들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분들이 코미디 영화나 개그콘서트의 최대 라이벌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웃음)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면 과연 우리가 행복할까? 과거 정권 때도 '쌍용차'와 '기륭'이 있었고, 대기업의 영화 시장 잠식 역시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어떤 흐름이다.
반 토막 난 제작비, 무엇을 줄일 수밖에 없을까?
이해영 : 나는 1997년부터 습작을 하다가 1999년 처음으로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는데, 1999년은 한국 영화계로선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타던 시기였기 때문에 처우는 이전 세대완 비교 못할 정도로 좋아진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방화'라 불리던 한국 영화는 1992년 <결혼 이야기> 때부터 프로듀서라는 직종이 생기고 모든 제작 과정을 아우르는 제작자 개념이 가시화되면서 좀 더 상업적인 체계가 잡혀갔다. 그래서 1999년 당시 불합리한 계약이나 시스템의 부조리로 겪는 문제는 없었다. 내가 쓰는 것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되는, 순도 높은 작업이었다.
그리고 감독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들던 2006년엔 공교롭게도 한국 영화 산업이 정점을 찍은 해였다. 충무로에 돌았던 이야기 중 하나가 "올해 못 만들면 진짜 바보다"였을 정도로 돈이 넘치고 제작 편수가 많았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제작사는 충무로 근처의 대학병원 건물 전체를 다 쓸 정도로 큰 회사였다. 그 제작사가 만든 두 편의 영화가 같은 주에 개봉한 적도 있었다. 상업성이 크지 않았던 <천하장사 마돈나>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해영 감독. ⓒ반비
<천하장사 마돈나>의 순제작비는 34억 원이다. 돌이켜 보면 엄청나게 큰돈이다. 그런데 영화에 빌딩 무너지는 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대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돈이 어디 들어갔나 생각해 보니, 그게 정상적인 촬영 회차를 준수하고 스태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경우의 예산이었던 거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라면 10억 정도를 받을 수 있는 영화였다.
1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규모 블록버스터들은 제외하고, 소위 '허리'를 차지하는 중소규모의 영화는 제작비가 다 줄었다. 일례로 2009년 <페스티발>을 찍었을 때 순제작비가 13억5000만 원이었다. 만일 이 영활 2006년에 찍었다면 30억 원 정도였을 텐데 그 반절도 제작비를 쓰며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절감한 결과인가 생각해봤다. 조명도 똑같이 써야 하고, 밥도 똑같이 먹는데 대체 무엇이 빠진 걸까? 결국 인건비다.
<페스티발>엔 심혜진, 류승범, 신하균, 엄지원, 성동일, 오달수, 백진희 등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일반적인 경우 이들 중 두세 명의 개런티만 합쳐도 10억에 가까울 거다. 결국 방법은 '회차'를 약속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번만 나오면 된다고 약속하고 빡빡하게 찍었다.
하루 낮 촬영 후 해가 약간 진 뒤에 끝날 것 같으면 다음날 촬영을 하루 쉬고, 그 다음날 촬영을 준비하는 게 정상적인 일정인데 <페스티발>은 하루 낮/밤, 다음날 낮/밤 이렇게 매일 낮/밤을 찍었다. 배우 류승범은 이 영화를 빨리 찍고 <부당거래>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연속 40시간을 찍은 적도 있다. 이는 배우에게도, 스태프들에게도 가혹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공부가 되었지만, 이런 악순환이 계속될 경우 작품성에도 심각한 훼손을 줄 수 있다.
좀 허탈한 사실은 영화 작업은 재능과의 싸움이라기보다 체력과의 싸움, 얼마나 빨리 포기하느냐와의 문제란 점이다. 앞으로도 비슷할 것 같다. 프로덕선 규모도 예산에 맞춰 줄이도록 강요받을 것이고, 어쨌든 찍어야 하는 감독들은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스태프들은 최대한 많은 영화를 찍기 위해 '릴레이' 식으로 계약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작품 한 작품에 공을 들이지 못하므로 질적 저하가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주제인 '문화로 먹고 살기'는 실제로 그러고 있는 사람인 나에게조차도 물음표로 남아 있는 질문이다. 나 역시 아직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이기에, 답을 드리기보다 물음표를 되돌려 드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영화판,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변영주 : 먼저 정부가 할 일은, 영화를 꿈꾸는 친구들이 감독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장치와 기본 조건을 깔아주는 것이다. 감독이 되려면 만들어 본 경험이 중요한데, 한국에서 영화과 졸업 작품 만드는 것은 빚잔치에 올라서는 첫 번째 관문일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몇 곳을 제외하면, 대학교에서 그토록 등록금을 받아먹으면서도 졸업 작품에 대한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는다. 지망생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교육의 마련은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연극, 문학 쪽도 시급하다고 본다.
비단 지망생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에 찍은 영화 현장에서 모든 배우·스태프 가운데 마흔여섯 살인 나와 동갑인 배우 조성하가 가장 연상이었고 전체적으로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으니 노동 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 부분을 안정화시킬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나 노동부에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법률적 지원이 나아진 건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검열이 없어졌고 영화진흥공사라는 '국가 기관'에서 영화진흥위원회라는 '민간 기관'으로 바뀌면서 시나리오 지원, 독립 영화 사전 제작 지원 등 엄청나게 좋은 일들을 많이 했다. 현 정부 와선 영화진흥위원회가 우파 이데올로그들을 '꽂아' 넣고 '영화계 좌익 척결'을 내거는 등 정말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제도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새로이 나온 건 제작비 20억 원 미만인 영화의 경우(이해영 감독이 지적했듯 인건비를 제대로 줄 수 없는 영화의 경우) 그 인건비를 평균 임금 수준으로 맞춰주는 제도다. 이건 정말 훌륭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정부 지원책 말고 또 하나, 다소 방어적인 바람이긴 하지만 지금 영화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공정한 산업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스태프들과 계약을 하는 건 제작사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자기들은 (제작에 관여하지 않는) '투자사', '배급사'란 이유로 바깥에 물러난 척을 하지만, 제작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게 누군가. 투자·배급 맡는 대기업들이다. 이들도 이제 계약이나 노동 관리에 있어 공정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서서 영화산업노조와 대화를 하길 바란다.
이해영 : 현장 책임을 맡는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아까 나온 이야기대로 스태프들에게 요구할 것을 정해 놓고 정확히 지키는 것이다. <페스티발>의 경우, 후반 작업까지 같이 일해야 하는 조감독에게 돈을 그만큼 줄 수 없으니 딱 프로덕션 작업까지만 함께 하자고 했다. 그리고 현장 상주하는 스태프의 수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이렇게 탄력적으로 시스템을 최소화하는 것이, 수세적이긴 해도 현재로선 최선의 노력이라고 본다.
감독을 꿈꾸는 지망생이나 현장 스태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감독 입봉에 앞서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세계관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단편영화들을 보면 대개 화법은 굉장히 좋아졌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작품이 90퍼센트 이상이다. 또 감독, 작가가 되고 싶다는 지향점은 보여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감독,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 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함께 했던 연출부 친구를 다 합치면 열다섯 명 정도 될 텐데, 그 중 감독 데뷔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여기엔 분명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작가로서 제시하고 싶은 세계관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입봉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로 연출부, 조감독을 한두 편 경험했다가 그만둬버리는 이들이 많아 스태프 구성도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낭만보다는 현실 감각을 키워라
▲ 변영주 감독. ⓒ반비
변영주 : 영화판을 비롯해 문화예술 창작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20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절대 이 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창작으로 먹고 사는 일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리얼한 노동의 세계라 생각한다. 특히 영화는 굉장한 고강도의 노동이 필요한 직종이다. 소위 '공동 작업'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동의 노동이 필요한 작업'이다.
현장에는 하루 종일 전선만 까는 일, 차량 통제하느라 시민들한테 욕만 먹는 일을 하는 분들도 허다하다. 감독에게 가장 빨리 사랑받는 방법은 엄청난 아이디어와 뜨거운 미학적 심장이 아니라 밥을 5분 만에 먹는 능력, 빨리 뛰어다니는 능력, 몰려오는 잠을 참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걸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는 친구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안 될 거다. 나는 영화 안 하는 동안엔 시간 강사, 글쓰기, 방송 출연으로 돈을 버는데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냐"고 물으면, "먹고는 살 수 있다"고 답한다. 딱 그 정도다.
결국 결심과 선택의 문제다. 가령 나는 축의금을 내고 싶지 않아서 친구 결혼식에 가 본적이 없다. 좀 쪽팔린 거지만 그렇다고 자괴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난 대한민국 결혼 제도에 반대해. 그래서 안 가는 거야"이렇게 결심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20대들과 같이 일했는데 그들에게 자기연민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이들을 이르는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투쟁의 깃발이 된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지만 자기연민의 근거가 되는 순간 불행해질 거라 생각한다. 비정규직 영화 노동자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적 조건을 비관하고 스스로를 연민한다면 계속 그렇게 살겠지만, 그 처지 위에서 깃발을 들게 된다면 세상은 변할 거다. 부당한 일에 대해 깃발을 드는 것은 예술 창작 노동자들의 권리이자 의무 아닐까.
몇 년 전 미국 드라마 작가들이 파업했다. 한동안 우리는 '미드'를 볼 수 없었지만,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들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파업하니까 드라마가 다 결방되지 않나. 우리 역시 미국처럼 방송 작가 전체가 다 들고 일어선다면 일주일 안에 거의 모든 문제 해결될 거라고 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있는 감독들은 그 조건에서 제외되어 있다. 감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작비가 절감되어도 스태프 인건비가 아닌 감독 몫을 깎는 것, 어떻게 해서든 '회차'를 약속해주고 지켜주는 것, 그들이 파업을 하면 응원해주고 "너희가 돌아 올 때까지 우리는 일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지켜봐주는 것뿐이다. 당연히 연대사를 써주고 지지발언을 하겠지만 파업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결국 깃발은 스스로 들어야 한다.
끝으로 '문화 직종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더 도와준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회사 바깥에 있지만 마찬가지로 '일 하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노동 지원책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노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방송 작가의 경우 자판을 두들기는 것만이 노동인가, 수첩을 들고 취재를 하는 것부터 노동인가,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부터가 노동인가? 우석훈 박사의 <문화로 먹고 살기>를 통해 이런 것에 대한 다양한 평가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시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