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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백)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1506년 에스파냐 바스크 지방의 하비에르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다가 만난 이냐시오 성인의 영향으로 수도 서원을 하였다. 1537년에 베네치아에서 사제가 된 그는 예수회 첫 번째 회원으로 자선 사업에 헌신하였고, 인도와 일본에서 열정적으로 선교하여 많은 이를 교회로 이끌었다. 선교를 위하여 중국으로 향하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2년 12월 중국 땅이 바라보이는 샹추안섬에서 선종하였다.
1662년에 시성된 성인은 바오로 사도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먼 거리를 여행하며 선교에 힘썼기 때문이다. 1927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성인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셨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9,16-19.22-23)와 복음(마르 16,15-20ㄴ)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주일 학교 첫영성체 교리를 하다 보면 예비 신자 어른 교리 반과 사뭇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성호경과 기도 손 하는 법, 기도문을 가르쳐 주면서 외워야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기도 손을 하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서로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걸 어떻게 다 외운대요? 부담돼서 세례 못 받겠네요.”라는 말부터 꺼냅니다.
첫영성체가 끝나면 아이들은 복사단이나 전례 봉사를 하고 싶어 하고, 대부분 제단에서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세례 받고 난 뒤 봉사를 권유하면 바빠서 못한다고 하거나 오히려 냉담을 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교리와 기도문과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과 어른들이 받아들이는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에서 “철부지”(루카 10,21)로 옮긴 그리스 말은 ‘매우 어린 아이’나 ‘유아’를 뜻합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지혜’와 ‘슬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생명처럼 여깁니다. 부모의 말을 계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우리도 철부지처럼 단순하게 하느님을 따르면 어떨까요? 세상살이에서 얻는 지혜와 슬기가 하느님께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때마다,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먼저 선택할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하루의 일과에서 기도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될 때, 감추어 있던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에게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10,21).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주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탄 전까지는 보통 저희 피정 센터가 살짝 비수기여서 조금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림 시기가 시작되다 보니, 특강 성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태안에서 남도 이쪽으로, 서울로, 서울에서 반대쪽 남도 쪽으로...
폐차장으로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저를 아직도 불러주시니 크게 감사하며 다니고 있지만, 몸이 옛날같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이도 다녔으니 이제 하산이나 은거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갈등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의 복음 선포자로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셨던 바오로 사도, 주치의로부터 몸 상태가 더 이상 기워입을 수 없는 낡은 코트 같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도 죽기살기로 뛰어다니셨던 돈보스코를 생각하면, 가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도 큰 격려와 자극이 됩니다. “후손들에게 신앙을 전수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은퇴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도도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당신이 만나고 체험한 그 좋으신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 교통편이라고는 목선밖에 없던 그 옛날 인도는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파푸아 뉴기니아 근처 몰루카 제도, 필리핀 근처 모로타이, 그리고 일본까지 건너오셨습니다.
그의 전도 여행길은 바오로 사도의 전도여행길 못지않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먼 거리를 여행하셨습니다.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가 개종시킨 사람들의 숫자는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동행한 페르난데스 수사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일본 선교여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혹독한 추위, 눈보라, 예측할 수 없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아무리 극심해도 하비에르 신부님의 굳은 결심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배를 타고 이동할 때면 해적들이 우글거렸습니다. 산길을 걷다가 거친 눈보라와 살을 에는 칼바람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발은 퉁퉁 부어올랐고, 더 이상 걷지 못해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르고 만나지 못한 채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그리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일분일초도 아끼지 않고 복음 선포에 매진했습니다.
인도에서 일본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은총을 선물로 주고 난 그는 그것도 모자라 또 다른 미지의 땅인 중국으로 건너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중국 코앞 산첸섬에서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의 원인은 과도한 복음 선포로 인한 열병이요 과로사였습니다.
“만일 제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저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
“여러분들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이 광대한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저와 함께 복음을 전할 뜻이 있는 분이 있다면, 결단코 저는 그분들의 노예가 되어 섬길 것을 약속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저는 본당에 있을 때 도종환 시인을 초청해서 ‘대림 특강’을 부탁했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이 그의 시를 통해서 신앙을 전하였습니다. 담쟁이는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며,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목표를 이뤄냅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도 큰 시련과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는 끈기와 희망을 상징합니다. 접시꽃 당신은 암 투병 중인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시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도종환 시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인간의 의지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복권이 당첨되는 기쁨처럼 드러나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세상의 구원과 상관없는 개인의 구원만을 드러내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복권이 당첨되는 것도 아니었고, 개인의 구원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칼로 가슴을 찔리듯 한 아픔을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날이 오면 사막에 샘이 넘쳐흐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어린아이가 사자와 늑대를 몰고 다닐 거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중풍 병자가 걷고, 눈먼 이는 눈을 뜨고, 듣지 못하는 이는 듣게 될 거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사라질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날은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시간과 공간과 상관없는 새로운 세상이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피는 접시꽃이 없듯이, 타는 듯한 목마름을 견디지 않고 담을 올라가는 담쟁이가 없듯이 그날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은 주님의 영,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날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 속에서 다가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희생 속에서 다가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오셨다는 겸손 속에서 다가온다고 하셨습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안회는 가난하였지만 언제나 깨달음의 경지에 있었다고 합니다. 공자는 그런 안회를 두고서 ‘가난하지만, 도를 즐길 줄 안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재물이 많아도,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능력이 출중하여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욕심 때문에 더 많이 채우려고 합니다. 사람들 속에서 ‘안빈낙도, 하느님의 나라, 희망의 나라’를 찾은 시인이 있습니다.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랑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돌아보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제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길을 찾는 지혜를 주셨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주셨습니다. 외로울 때면 친구가 되어 주셨고, 기쁨을 함께 나눌 이웃을 주셨습니다. 생각하니 정말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저에게 희망이 되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그 길이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합니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여러분이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 우주에서 지구는 먼지보다 작습니다. 먼지보다 작은 지구에서 사람은 또 먼지보다 작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들을 모으려고 하듯이 나도 이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해 주소서.’ 이사야 예언자도 바로 그 사람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바로 구원자시고,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철부지의 기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주님
저는
열렸으니
제게
오소서
주님
저는
모르오니
저를
깨우치소서
주님
저는
해맑으니
제게
스미소서
주님
저는
새하야니
저를
물들이소서
주님
저는
없사오니
제가
되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제가
당신이
되도록
오늘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 Xavier)
신분 : 신부, 선교사
활동연도 : 1506-1552년
같은이름 : 방지거, 사베리오, 사베리우스, 사비에르,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 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 또는 프란체스코 사베리오)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파리(Paris) 북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첫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 다음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으며,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1540년에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왜냐하면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성 프란치스코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하였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 번째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산첸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대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
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19년 시복되고 바로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 비리노 (Birinus)
활동년도 : +650년
신분 : 주교, 선교사
지역 : 도체스터(Dorchester)
같은 이름 : 비리누스
'웨식스의 사도'로 불리는 성 비리누스(또는 비리노)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Honorius I)의 명에 따라 잉글랜드(England) 내륙지방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로마(Roma)에 온 제노바(Genova)의 주교였는데, 뜻밖에도 웨식스(Wessex) 사람들을 발견하고부터는 이들을 위하여 일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634년에 영국으로 가서 선교하던 중 웨식스 왕에게 세례를 주었고, 왕이 하사한 템스(Thames)의 도체스터에 주교좌를 세웠다. 성 베다(Beda)에 의하면 그는 독일계 주교이다.
도체스터 교구는 나중에 둘로 나누어서, 윈체스터(Winchester) 지역은 성 헤다(Hedda, 7월 7일)가 맡았다. 성 헤다는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의무를 수행할 때에는 사랑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고 성 베다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