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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무동 원문보기 글쓴이: solo
정윤희는 여배우로서 짧지만 화려했던 시절을 누린 스타입니다. 그는 1975년 '욕망'이라는 영화로 데뷔해 총 36편의 영화를 찍고 84년 '사랑의 찬가'를 끝으로 스크린을 떠났습니다. 80년과 81년에는 2회 연속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연기파 배우로도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첫 영화 '욕망'에서 탤런트 노주현을 상대역으로 시작,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충무로 캐스팅 영순위의 여배우였지요 정윤희의 뛰어난 미모는 일본과 대만에도 알려져 외국 감독들에게까지 러브콜을 받을 정도였답니다. 또한 세계적인 톱스타들만 참석한다는 동경가요제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청 받아 영화 '러브스토리'의 스타 알리 맥그로우와 시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만에서도 영화가 개봉됐었는데 정윤희가 대만을 방문했을 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나와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답니다. 당시 홍콩 최고의 무술스타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인 성룡과 정윤희의 스캔들 또한 정말 유명했습니다. 첫눈에 반한 정윤희 때문에 성룡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너무 사랑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지요. 이렇듯 정윤희가 한류 최초의 스타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정윤희 (1954-/ 경남 통영출생) 정윤희 그녀는 1954년 충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용모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어릴적 부산으로 이사와 당감국민학교를 거쳐 혜화여중.고를 졸업하였다. 소녀시절 무용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대학진학에 실패하자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신인모집에 응모하였고,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영화출연은 실패하였으며, 그녀는 좌절하였다. 그 이듬해 1975년 신필름에서 제작한 영화 <욕망>(이경태 감독)에 다시한번 출연교섭을 받았으며,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 <노주현>, <정소녀>와 함께 주연으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출연한 영화 <욕망>은 흥행에 실패하고, 그녀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첫작품의 흥행실패로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TV쪽에서 연락이 오는데, 영화 <욕망>을 눈여겨본 당시 동양방송 TV국장으로 있던 <황정태>씨가 그녀를 <쇼쇼쇼>프로에 사회를 맡긴다. 가수 위키리와 공동사회자로 4개월정도 활동을 하였는데, 그즈음 해태제과에서 CF모델 요청이 들어왔으며, 그녀의 얼굴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 <청춘극장> 출연요청이 들어왔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지미>나 <윤정희>가 모두 <청춘극장>의 <오유경>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터라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해내었고, 상대역으로는 <신영일>, <김창숙>, <김희라>등이 열연하였다. 이 영화는 그해 추석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정윤희>의 이름만은 확실하게 알렸다고 한다. <청춘극장>이후 그녀는 TBC-TV 드라마 <맏며느리>, <청실홍실>등에 출연 높은 인기를 얻었고, 그녀는 영화나 TV에서 동시에 발판을 구축하며 일약 인기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녀가 짧은시간에 그토록 쉽게 부상한 것은 우선 시기가 좋았던 것이다. 60년대 후반 <윤정희>, <문희>, <남정임>의 트로이카시대가 형성되었고, 이때가 한국영화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영화가 생산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TV가 영화관객을 흡수하고 여배우들은 결혼과 유학등으로 영화계를 떠난다. 이후 약 3년간 스타공백기간이 계속되다가 다시 트로이카가 형성되었으니 즉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세사람 인 것이다. 1976년 그녀는 <목마와 숙녀>(이원세 감독), <고교 얄개>(석래명 감독)등의 작품에 출연했고, TV드라마에 고정출연하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활동한 그녀는 1980년과 1981년 연거푸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돌한 말 같지만 이제야 연기가 어떤 것인지 알것같다”고 수상소감을 밝힌 그녀는 여배우로서 최고의 정상자리에 올랐으며, 출연작 <사랑하는 사람아>(장일호 감독)가 대만에서 흥행에서 대성공하고, 일본에서 초콜렛 광고와 달력의 모델로 활동하는 등 아시아의 연인으로 부상한다. “동양의 꽃”이라 불리운 여배우 <정윤희>. 뛰어난 미모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그녀는 1985년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은퇴, 현재 평범한 가정주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정윤희 출연작목록(★표는 VHS ◆표는 DVD 출시작) 01. 1975. 욕망. 02. 1975. 청춘극장. ★ 03. 1976. 목마와 숙녀. ★ 04. 1976. 고교 얄개. ★ 05. 1976. 핏줄. ★ 06. 1977. 고교 우량아. ★ 07. 1977. 얄개행진곡. ★ 08. 1977. 임진왜란과 계월향. ★ 09. 1978. 나는 77번아가씨. ★ 10. 1979. 가을비 우산속에. ★ 11. 1979. 꽃순이를 아시나요. ★ 12. 1979. 도시의 사냥꾼. ★ 13. 1979. 사랑이 깊어질때. 14. 1979. 우요일. ★ 15. 1979. 죽음보다 깊은잠. ★ 16. 1980. 강변부인. ★ 17. 1980. 내가버린여자 2부. ★ 18. 1980.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 19. 1980. 최후의 증인. ★ 20. 1981. 사랑하는 사람아. ★ 21. 1981. 아가씨 참으세요. ★ 22. 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 23. 1982.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24. 1982. 아벤고 공수군단. ★ 25. 1982. 여자와 비. ★ 26. 1982. 여자의 함정. ★ 27. 1982. 정부. ★ 28. 1982. 벌레먹은 장미. ★ 29. 1982. 춘희. ★ 30. 1983. 땜장이 아내. ★ 31. 1983. 안개마을. ★ 32. 1983. 약속한 여자. ★ 33. 1983. 질투. ★ 34. 1984. 동반자. ★ 35. 1984. 사랑의 찬가. ★ 36. 1984. 속.사랑하는 사람아. ★ 37. 1985. 제3편 사랑하는 사람아. ★ - 정윤희의 영화계 수상경력 - 제18회(1982)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 - 앵무새의 몸으로 울었다 제20회(1981)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제17회(1981)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 - 사랑하는 사람아 제19회(1980)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꽃순이를 아시나요(1978) 가을비 우산 속에 (1979) 사랑하는 사람아 (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안개마을 (1982) 목마와 숙녀 (1976) 진아의 벌레먹은 장미 (1982) 사랑하는 사람아 2 (1983) 사랑하는 사람아 3 (1984) 동반자 (1984) 추억의 한국영화들을 수놓았던 수많은 여배우들 중에 70년대말 등장한 제 2기 트로이카라 불리었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를 기억하십니까. 유지인이 서구적인 마스크를 자랑했던 배우이고 장미희는 동양적인 미모를 자랑했던 배우라면 이 정윤희라는 배우는 두 배우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왠지 슬픈듯한 큰 눈과 도톰한 입술. 그리고 유지인이나 장미희의 출연경력등과는 사뭇 다른 이채로운 경력으로 인해 더욱 기억에 남고 아쉬운 배우입니다. [욕망]이라는 영화로 영화계에 데뷰한 정윤희의 초기작품들은 쉽게 말하면 요즘 흔히들 말하는 18금 영화에 주로 출연을 해오게 됩니다. 물론 그중엔 청춘물이었던 [고교얄개]나 [고교 우량아]같은 영화에도 출연경력이 있지만 [욕망]이나 [꽃순이를 아시나요], [나는 77번 아가씨], [사랑이 깊어질 때], [도시의 사낭꾼], [죽음보다 깊은 잠] 등 제목만 들어봐도 왠지 내용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영화에 주로 출연을 해옵니다. 그렇다고 이 정윤희라는 배우가 뇌쇄적이거나 퇴폐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왠지 연약해 보이고 청순함이 돋보이는 배우였는데, 필연인지 우연인지 이상하게 그런 영화에만 출연해 온것이 지금 생각해 봐도 꽤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던 그녀의 연기생활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영화가 바로 1980년에 출연했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라는 영화였는데요. 훗날 [애마부인]시리즈를 탄생시켰던 정진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이대근씨와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로 정윤희는 당시만 해도 최고의 영화제였던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단순히 벗을 줄 아는 배우가 아닌 진정한 배우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아]라는 영화로 멜로배우로서도 인정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는데요. 이 영화는 다들 아시겠지만 똑순이로 너무나 유명한 김민희와 함께 출연해 온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유명한 영화였습니다. 그 뒤로 3탄까지 제작이 되었으며 그 큰 눈망울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많은 남성팬들의 감정을 자극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녀는 정진우 감독과 함께 또다시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라는 영화로 대종상 및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후 안성기와 출연했던 [안개마을], 이영하와 출연했던 [진아의 벌레먹은 장미], 이덕화와 출연했던 [동반자] 등을 통해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역시 능력이다 ㅎㅎ) 1984년 여름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른바, 정윤희 간통사건. 절정의 인기여배우였던 정윤희(30)씨가 유부남인 건설사 사장(38)과 그녀의 아파트에서 함께 있다가 남자의 아내와 그 처가식구들에게 발각되어 남자와 동반 전격 구속된 사건. 당시 남자는 2살된 딸과 4개월된 아들까지 있어, 정윤희씨는 그야말로 남의가정 파탄낸 죽일 X"으로 낙인찍히고, 양 TV에서 퇴출을 당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예계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곧 위자료 1억에 여자와 합의이혼, 정윤희씨와 그해 12월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연예계와 매스컴에서 사라져 그녀를 흠모하던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영영 아쉬움만 남기게 된다. 당시, 완고한 사회분위기로 속사정은 상관없이 엄청나게 세간의 질타와 미움을 받았었다. 남자가 정윤희를 만난 당시에,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에 위자료 다툼을 하고 있었던 사이였다고 한다. 전 부인은 거액의 위자료를 받고, 깨끗이 이혼해 주었으며.. 어린 두 아이도 정윤희씨가 맡아 기르게 된다. 그 뒤 정윤희씨가 낳은 아들까지 세 자녀를 정윤희씨는 정성스레 뒷바라지 하고, 살림살이도 열심히 해서 이웃에도 평판이 아주 좋았다 한다. 아무튼, 당시에는 가장 파렴치하고 금기시되는 범죄의 하나로 여겨지던 간통이었지만...지금 생각해보면, 정윤희씨가 여자로서 정말 한 남자를 사랑했던듯 싶다. 그리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만 몰입하고 살아온 몇 십년을 보면... 참 연예인이지만 현모양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요즘 연예인들 결혼하였다가, 뻑하면 이혼하고...옥ㅇ리처럼, 참 원초적인 이유로 남편을 엿먹여버리는 현실을 보면, 참... 정윤희씨가 무던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하고 그리워진다. 한 번 TV에 얼굴 한 번 꼭 비춰줬슴 좋겠다... 여전히 아름다우신( 54세 때) 정윤희씨의 최근 모습 |
첫댓글 이쁘죠 여전한 미모를 자랑하는군요 아름다운 그녀
진짜 인형같았는데.
목소리는 성우목소리지만 얼굴에 너무 잘어울리는 목소리가 연상됩니다.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는 세명중에 나는 유지인이 젤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면 정윤희가 젤로 이쁜것 같아요8년전에쯤에 압구정쪽에서 들려왔었는데.....
정윤희씨 아들이 수재라는 소문이 7
너무 완벽하게 예쁜 여자지요. 압구정동에서 직접 시장도 보고 했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만든 건물에서 저는 아직 살고 있습니다. ㅎㅎ
정말 인형같은 분이었죠.. 전 외국인은 마릴린 몬로, 한국은 정윤희씨가 제일 저한테 가슴이 두근 거렸어요.
자연산 미인이죠.얼굴이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