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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얼굴을 가리고
사건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순하게만 느껴지던 것이 시아버지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급진전 하게 된다. 다말이 소박을 맞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셀라가 장성했다는 표현으로 보아 3,4년은 경과 했으리라고 본다.
1]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고대에는 과부가 사회적인 문제였으며 구제와 보호의 대상이었다.
* 출 22:21,22 -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 신 14:29 -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따라서 일반 여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아마 과부의 의복은 색깔이나 모양이 특이했던 것 같다. 다말은 그동안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본문은 과부의 옷을 벗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녀는 그동안 수절하라는 시부의 말씀대로 과부의 옷을 입고 살았다. 과부의 옷은 어떤 옷인가? 상복은 입은 자를 괴롭게 한다. 올이 거칠고 크기 때문에 이 옷을 입고 있으면 살갗을 에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다말이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옷을 입고 살아왔다. 과부의 옷은 남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디서 보아도, 언제 보아도 일반 옷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말은 많은 주위 사람으로부터 눈총을 받고 살았을 것이다. 부모마저도 소박맞은 딸아이를 마음 편하게 살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행동 하나만 보아도 다말은 현숙한 여자로 자신의 고통을 말없이 수용한 여자다.
2]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당시는 외출을 할 때 여자들은 면박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지 않고 부녀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다.
3] 몸을 휩싸고
몸을 감쌌다는 것은 햇볕이나 바람, 모래나 먼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일사량이 많고 바람이 심하면 바람에 날리는 모래로 곤혹을 치르게 된다. 해가 지면 낮은 기온으로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이곳 기후의 특징이다.
4]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 길은 교통의 요지다. 어느 지역으로 가던지 이곳을 거쳐 가야 한다. 따라서 이 길목에 앉아 시아버지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길가에 앉았다는 것은 일반 아낙네의 모습은 아니다. 당시로는 행음하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여야 했나? 다말은 과부의 의복 대신 사치스러운 창녀의 옷으로 차려입은 후 시부(媤父) 유다를 유혹하기 위해 광장에 나가 앉았다. 다말의 이런 행위는 물론 단순한 정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는
1) 남편의 '씨'를 남겨 한 가문의 여자로서 떳떳이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려는 무서운 집념의 결과였다.
2) 계대 결혼 규약을 준수하지 않은데 대한 자구책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은 후에 유다에 의해 '옳은 일'(26절)로 간주되었다. 당시의 관습법이 그러한 행위를 정당한 일로 간주하였다.
5]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다말의 특별한 행동의 원인에 대한 이유가 제시 되었다. 본가로 쫓겨날 때 유다는 셀라가 장성하면 결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갖은 설움을 받으면서도 이때까지 참아온 것은 셀라와의 결혼 약속 때문이다. 다말은 왜 이토록 결혼할 것을 확수 고대하고, 아들을 낳기 위해서 몸부림 쳤는가? 영안의 눈을 뜨지 않으면 음란한 이야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 또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법에 비춰볼 때 위법인가? 아니면 합법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이 상충될 때 어떤 법을 따라야 하는가?
15. 창녀
1]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다말은 상대가 자신을 알아 볼 수 없도록 위장하였다. 지금도 아랍계 여인들의 외출 복장은 눈만 보이도록 얼굴을 감추기 때문에 눈만 보고서는 그 사람의 자태를 확인 할 수 없다. 따라서 유다가 다말을 알아보지 못한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2]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창녀(히, 조나) - '간음하다'란 뜻의 '자나'에서 유래된 말로 일반적인 '매춘부' 혹은 '공창'(公娼)을 의미한다. 이들은 창녀임을 드러내는 표시를 지니고 있었으며(잠 7:10. 렘 3:3) 자신의 집을 갖고 있었다.
* 렘 5:7 -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여호수아에 의해 파견된 정탐꾼들을 숨겨준 라합도 이 용어로 불렸다(수 2:1).
* 잠 7:6-27 - 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6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7 어리석은 자 중에, 소년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11 이 계집은 떠들며 완패하며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14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16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17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22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23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24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치 말지어다. 26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27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창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창 38 장과 비교하여 정독해 보고 다말에게서 창녀의 모습을 찾아보라. 물론 유다가 유곽에 빈번히 출입했던 자가 아니므로 여러 가지 모습을 조목조목 비교한 후 창녀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16. 무엇을 주겠느냐?
1]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유다는 길 곁으로 비켜섰다.(다른 행인들의 시선을 피하는 동작으로 보인다.) 다말 곁으로 접근하여 말수작을 걸었을 것이다.
2]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너의 몸을 내게 허락하라'는 뜻의 완곡한 표현이다. 아마 이때 유다는 큰 잔치로 인하여 술에 취해 이성과 도덕 양심이 흐려 있었던 것 같다.
3]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유다가 다말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부가 사는 마을을 방문하고서도 안부를 묻지 않은 처사는 부당하다. 지금까지의 언행으로는 상대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창녀는 몸을 제공한 대가로 얼마간의 화대를 받는다.
* 신 23:19 -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찌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 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고대에는 일반적인 화대가 염소 한 마리 값에 준한 듯하다(17절).
* 삿 15:1 -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가로되 내가 침실에 들어가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러나 다말의 이 요구는 훗날을 대비하여 뚜렷한 증거물을 남겨 두려는 치밀한 계획에서 나온 말이다.
17. 약조물
1]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유다는 화대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주겠다고 흥정했다. '내 떼에서'라는 말을 사용하므로 많은 양 떼를 거느린 부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염소가 아니라 새끼를 주겠다는 것으로 봐서 후하게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말이 재물만을 귀하게 여기는 창녀였다면 몸값을 더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몸값이 목적이 아니므로 더 이상 흥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2]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울 주겠느냐?
약조물(히, 에라본) - '저당 잡히다', '보증하다'란 뜻을 지닌 '아라브'에서 파생된 명사로 '저당물' 혹은 '담보'란 의미이다. 바울은 이 말을 '아라본'(헬)이라고 음역하여 성령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
* 고후 5:5 -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엡 1:14 -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말은 염소 한 마리로 화대를 결정했다. 단지 유다가 염소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약속한 염소 새끼를 받게 될 때까지 보증하는 약조물을 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그러나 근본 목적은 유다의 씨를 받는 것이다.
18. 잉태하다.
1]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유다는 염소 새끼를 당장 줄 수는 없지만 약조물을 달라는 요구에는 쉽게 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창녀가 요구하는 약조물이 무엇인지 묻게 되었다.
2]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다말은 유다가 소지하고 있는 것 중에서 3가지를 요구하였다. 여기서 다말의 현명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유다가 항상 소지했던 것이기 때문에 훗날 다시 보아도 진품 여부를 확인하기 쉬웠을 것이다. 한 가지만 요구 한 것이 아니라 셋을 요구하였다. 만약 분실했을 경우를 대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세 가지는 믿음과 관련된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유다가 사용한 세 가지 약조물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상징물 이였다.
1) 당신의 도장
도장은 소유자의 신분과 권리를 나타내는 개인의 기본 휴대품이었다.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은 반지형 도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손가락에 끼거나(41:42) 혹은 원통형으로서 목에 걸고 다녔다(아 8:6).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의 표징으로 이 제도를 세우시고 사람의 몸에 새기도록 하셨다.
* 창 17:10-14 -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2) 그 끈
그 끈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모세를 통하여 거룩한 자들이 입어야 할 옷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셨다. 그 중에 겉옷이 있다. 이 옷은 길이가 길 뿐 아니라 모든 옷을 감싸는 맨 마지막으로 입는 옷으로 활동에 편리하도록 허리 부분에 기다란 끈으로 묶고 다녔다. 바로 그 끈이다. 기생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이 준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둠으로써 가족을 살릴 수 있었다.
* 수 3:18-21 -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21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바울 사도는 이 끈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 엡 5:13,14 -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3)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
지팡이는 개인 장신구(獎身具)로서 꽃이나 짐승들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부족을 상징하는 일종의 신물(信物)처럼 항상 지니고 다녔다. 목축업을 할 때 양을 보살피거나 사나운 짐승이 공격할 때 방어의 수단이며, 수렁이나 골짜기에 양이 빠졌을 때 건져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 삼상 17:34,35 -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 시 23:4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3]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1)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다말은 가장 확실한 증거물로서 이것들을 요구했다. 유다는 후에 염소 새끼와 교환할 생각으로 선뜻 내주었다.
2)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여기서는 단순하게 '그에게로 들어갔더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에나임 문에 있을 때에는 눈 만 내어놓고 온 몸을 옷으로 감추었으니 창녀를 분별하기 어려웠다 해도 이해 할 수 있다. 그에게로 들어갈 때에는 전신을 드러냈을 것 아닌가? 여기까지 일이 진척될 때 유다와 다말은 침묵으로만 진행하지 않았다. 분명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대화 가운데 상대를 확인 할 수 없단 말인가? 다말은 자신을 가장했으니 제처 두고라도 유다는 눈치를 차렸어야 옳다. 또 유다가 방문한 지역에 자부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부모로써 당연히 방문 했어야 한다. 길모퉁이에서 흥정 했을지라도 방으로 들어갔을 터인데 그럼 누구의 집이란 말인가?
4]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 하였더라.
1) 유다로 말미암아
유다와 다말의 단회적 사건이 큰 역사적 사건으로 비화하였다.
2) 잉태 하였더라.
결혼하고 몇 년이 흘러도 무자한 아브라함과 사라, 그런대 유다와 다말은 한 번의 만남이 잉태로 연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창녀들은 잉태하기 위해 몸을 팔지 않는다.
19. 과부 옷을 다시 입다.
1]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본 절에서 의문 하나가 풀린다. 다말이 시부를 유혹하여 들인 곳은 자기의 집이 아니다. 그럼 왜 남의 집을 빌려서까지 씨를 얻으려 했을까? 그를 흠모하고 사모했다면 어찌 먼저 일어나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말인가? '떠나가서'라는 의미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할 때 사용되어지는 의지, 결단의 표현이다. 다말이 음녀라서,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권세를 얻기 위해 ......
2] 그 면박을 벗고
집으로 돌아온 다말은 그 면박을 벗어버렸다. 단 한 번의 씨를 얻기 위해 자신을 감싼 면박을 미련 없이 버린 여자다. 그녀는 왜 면박을 사용했으며, 누구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변장했단 말인가? 다말은 두 얼굴의 여자인가?
3]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여기에서 다말을 평가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다말은 제일 먼저 면박을 벗어 버리고 14절에서 벗었던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었다. 그러므로 다말은 항상 '과부의 의복'을 입고 살아온 여자이다. 과부는 어떤 사람인가? 첫 남편만을 생각하고, 의지하고, 사모하며, 사랑하며 일생을 사는 여자, 육적 욕망을 이겨내기 위해 과부의 옷을 입고 육신의 아픔을 견디어 내는 여자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과부는 성도를 상징한다.
* 레 22:13 -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친정에 돌아와서 어릴 때와 같으면 그는 그 아비의 응식을 먹을 것이나 외국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 신 10:18 -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 신 16:11,14 -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찌니라.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 신 26:12 -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 왕상 17:9 -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 시 68:5 -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20. 찾지 못한 여인
1]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유다는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저지른 자신의 행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질까 부끄러워하여, 이런 일에 별로 무감각한 가나안 친구를 통해 화대를 갚고 약조물을 찾게 했을 것이다. 친구를 보낼 때에는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대 창녀에 대한 일언반구의 설명이 없다. 유다는 창녀에 대하여 지금까지 아는 것이 없다. 무관심일까? 그것보다도 이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에 모를 수밖에 없다.
2] 염소 새끼를 보내고
유다는 창녀와 약조한 염소 새끼를 보냄으로 자기의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3]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유다는 어제 밤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신비의 여자에 대하여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단지 그동안 사용하였던 개인의 사물이라 세 가지 약조물을 찾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약조물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23절의 내용으로 볼 때 별로 재산적 가치가 없어 보인다.
4]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아둘람 사람은 유다가 알려준 대로 여인을 찾으려 했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말은 동틀 무렵 그 집에서 나와 버렸기 때문에 빈 집이였으므로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21. 창녀가 없다.
창녀(히, 케데솨) - '거룩한' 혹은 '봉헌하다'란 뜻을 가진 '카다쉬'에서 파생된 말로 15절에 나타난 창녀(조나)라는 말과는 그 개념이 다르다. 즉 당시 가나안 땅에는 '조나'와 '케데솨'라고 불리는 두 종류의 창녀들이 있었다. '조나'는 통상적인 일반 창녀들을 가리키는 반면, '케데솨'는 우상 숭배를 위하여 '거룩히 구별된 여자'란 뜻이다. 생식력(生殖力)을 주관한다고 생각한 당시 가나안 땅의 여신 아스다롯(Astaroth)을 섬기기 위해 헌신된 자를 가리켰다. 이들은 음란 행위를 통하여 여신을 섬기는 성창녀(聖娼女)로서 당시 가나안 땅의 음란한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Pulpit).
* 신 23:18 - 창녀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1]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아둘람 사람은 유다로부터 들은 대로 창녀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2]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더욱 답답한 일은 여기는 창녀가 없다는 사실이다.
22. 친구의 보고
1]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아둘람 친구는 유다를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창녀를 찾지 못하고, 약조물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유다에게로 돌아왔다.
2]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당사자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변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3]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참으로 답답한 말은 그곳 사람들이 여기는 창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들은 유다는 충격을 받았어야 옳다. 본인은 분명히 동침하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창녀는 없어져 버렸다. 그녀가 누구이기에 오리무중이 되었단 말인가?
23. 가지게 두라.
1]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유다는 약조물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염소를 돌보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몸값에 대한 보수로 생각하고 그로 가지도록 찾지 말도록 하였다.
2]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유다의 이 말은 죄를 범한 사실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소문으로 인해 훼손될지도 모를 자신의 위신과 명예를 더 두려워한 위선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진실한 성도는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 마 10:28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3]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약속한 바를 내가 이행한 것에 대해 그대가 증인이다'는 의미이다. 즉 이는 자기의 할 바를 다했다는 뜻으로 창녀와의 상거래만을 생각하는 유다의 도덕적 차원을 보여 준다.
24. 그를 불사르라.
1] 석 달쯤 후에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음이 확실하여진 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때가 되면 임신 여부가 확실히 드러난다.
2]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 하였느니라.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유다로부터 상급(댓가)을 바라고 다말에 대한 소식을 알려 주었다. '고하여 가로되'란 표현은 사실 유무를 확인 하여 확실한 증거를 보이며 고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다말이 면박하고 유다를 유혹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 사실을 먼저 확인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 동안의 행적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자의 소행이다.
2) 그로 인하여 잉태하였다.
그 날 이후로는 다시 과부의 옷을 입고 평상시와 동일하게 살았으므로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다와 관계를 맺은 날의 사건으로 잉태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3]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유다는 사실을 지적당했다. 그렇다면 다말을 통하여 사실 유무를 확인 하여야 한다. 그런대 이런 확인 절차 없이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지시한다. 속된 말로 제 발이 저린 것이다. 사실 유무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면 자신의 범법 행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힘없는 다말을 정죄해 버린다.
* 레 20:10 -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유다는 다말만 불사를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불살라야 한다. 그런대 다말만 불살라버리면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입막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 약 4:4 -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유다는 왜 다말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을까? 왜 모든 책임을 다말에게 전가 시키는가?
25. 항변
1]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1) 끌려 나갈 때
다말은 완전 범죄인 취급을 받았다.
2) 보내어
유다는 자신의 선고가 집행되는 그 처절한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 없었음이 분명하다.
2]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다말은 몸값으로 받은 약조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 여자가 임신한 것은 남자를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3]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1) 청컨대
다말이 요청한 것은 살려달라는 말이 아니다. 약조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라는 요구이다.
2) 보소서
식별할 목적으로 '세밀히 조사하다' 혹은' 훑어보다'란 뜻을 가진 동사 '나카르'(히)의 사역형 명령법으로 '잘 살펴보시오'란 말이다.
3) 뉘 것이나이까?
약조물의 장본인을 확인하는 일이다. 유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질서를 세우신 분이 약속한 언약을 두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오늘과 같으시다. 그러한 하나님을 신봉하여왔던 다말이다. 약조물을 붙잡고 자비와 은혜를 간구했던 다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