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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 사제 은경축 기념일 >(6.29.일)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대축일이며 “교황주일”입니다. 교황님이 건강하시고 교황님의 지향이 잘 이뤄지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은 부족한 저를 사제로 불러주셨습니다. 25년간 사제로 살면서 받은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니다.
다들 바쁘신 중에도, 오늘 저의 사제 은경축을 축하하기 위해 와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0년 6월 29일, 사제서품을 받을 때 제 서품 성구는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리 1,21)이고, 오늘로써 만 25주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왜관에서 1남 3녀 중 맏이, 외아들, 장손으로 건강하게 태어나, 네 살 때 대구 이천동으로 이사했고, 부친이 Camp Henry에서 37년 근무하셨습니다.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에 목욕탕에서 바나나 우유 사 먹을 돈도 없었고, 기차 타고 고향 왜관에 갈 때 김밥, 계란 사 먹을 돈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사 먹는데, 그만한 생활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힘든 어린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살아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 구슬치기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 시절 한 달 용돈이 전혀 없었지만, 하루 150-200원 벌 때가 많았고, 구슬치기로 딴 돈을 저축해서 동생들에게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용돈도 매월 100원씩 챙겨줬습니다. 맏이인 제가 돈이 없었는데 여동생들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삶을 살펴보면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지 실감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3년 7월, 가족과 장사해수욕장 갔을 때 수영을 전혀 못 했습니다. 다들 해변에서 뭔가 먹고 있을 때, 저와 모친은 검은 튜브에 팔다리를 걸치고 눈 감고 있었는데, 뭔가 걸리적거려 만져보니 부표였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부표까지 갔던 겁니다. 깜짝 놀라, 해안을 향해 “사람 살려.”라며 소리쳤더니, 아버지와 구조요원들이 와서 살려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물 근처에 안 갔지만,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신학교 3학년이었던 1994년 여름, 수원신학교 학장 배문한 신부님이 물놀이 갔다가 3명을 구하고 임종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배 신부님이 60세에도 3명을 구했는데, 저도 사람들을 구할 만한 수영 실력을 길러야겠다며 수영을 배웠습니다. 청도본당 시절, 수영장에서 교우들을 만났을 때 서로 민망했던 이후, 수영복이 있어도 더 이상 동네 수영장에 안 갑니다.
11년 전에 모친이 담도암 투병하실 때, 온 정성을 다해 돌보며 가족애가 끈끈해졌습니다. 모친 임종 후 더 사랑하며 살기로 약속했고, 모친이 가입해둔 사망보험금으로, 2015년 10월 동인본당 교우들, 부친, 여동생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성지순례를, 2017년에 발칸반도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모친에 이어 부친이 돌아가신 지도 6월 28일부로 만 4년이 되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제가 가장(家長)이 되었습니다.
제 삶에 전환기가 몇 번 있었습니다.
6년간 교리교사 하면서 교사회장을 두 번 했고, 1988년 2월 8일부터 1989년 7월 15일까지 18개월 출퇴근 방위로 복무하며 사제성소를 느꼈지만, 신학교 입학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간다면 언제 가야 할지, 가족 권유대로 신학교를 포기하고 결혼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교사 생활이 사제성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1년 6월, 62일의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 성소를 확신하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2월 신학교 입학 이후 2주일간 매일 아침 코피가 나서 성소가 없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남들이 알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꿋꿋이 견뎠습니다.
1학년 때 라틴어 부장으로 동기들 학업을 도왔고, 개인 컴퓨터가 없던 2학년 때는 계시론 강의록 작성을 위해 선배들의 방을 매일 밤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습니다. 저의 대학 전공이 불어였기에, 선배들 10명 이상의 석사학위 논문 초록을 써주었습니다.
신학교에서 하루빨리 나오라고 기도하던 부친이 1994년 부활절에 드디어 세례받고, 5년째 신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데, 프랑스 리용으로 유학 가야 했습니다. 우울증과 기억상실증에 걸렸지만 2년 4개월 만에 석사학위 받고 귀국했습니다. 논문 내용은 ‘소화 데레사 성녀의 교회론적 경험’인데, 소화 데레사 성녀는 제 삶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1999년 11월 30일 부제품, 2000년 6월 29일 사제품, 4년 반 보좌신부로 살며 본당신부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유학을 가야 했고, 이태리 시에나, 프랑스 빠리로 가서 40세까지 유학했습니다. 박사학위 수료 후, 2006년 11월 귀국했고, 2007년 2월 포항 문덕본당에 발령받았는데, 말만 본당이지 교우가 별로 없어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7년 3월 첫 주일미사에 32명이 참석했습니다. 1년 살림을 위해 2,000만원이 필요해서 한 달간 간절히 기도했는데, 꼭 2,000만원이 생기자 ‘에이, 2,000만원이 아니라 3,000만원으로 기도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우수를 늘리기 위해 매주일 식사했고, 3년 악착같이 사목해서 30명을 250명으로 늘리며, 본당 예산 0원에서 6,000만 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첫 본당에서 고생을 아주 많이 했지만,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
그 후 1대리구 가정, 여성, 노인 담당을 맡았다가, 예수성심시녀회 포항 모원 지도신부로 다시 포항에 가서 모친과 함께 살았고, 청도본당에서 3년 살았습니다.
청도 사제관에 ‘Gold star’ 냉장고가 있었는데 너무 노후되어 탱크 소리가 나서 바꾸려 했더니 문을 5개 뜯어내야 했습니다. 새 냉장고 구입은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하고, 이곳저곳 꼭 필요한 곳을 수리하며, 3년간 3억 원을 모으고, 새 성당 설계도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후임 신부에게 ‘새 성전 건립’ 숙제를 남겼는데, 후임 신부가 성전을 짓고, 한동안 빚이 있었지만, 2년 전에 다 갚고, 청도본당 교우도 참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저축하지 않았으면 현재의 청도성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다음 발령받은 동인본당에서는 4년 반 살았습니다. 건물들이 너무 노후되어 이곳저곳 산뜻하게 리모델링하고, 알뜰하게 저축한 돈으로 성당 뒷편 건물을 사서 ‘하늘사랑’ 까페를 만들고, 김광석 거리 연장으로 성당 뒤편 주차장 바닥도 가다듬고, 45주년사 자료집도 발간했습니다. 정말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2019년 1월, 안식년이 되어, 그동안 가고 싶고, 하고 싶은 버켓리스트들을 많이 성취했습니다. 안식년에는 제가 맡은 교우들이 없으니,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제 교우라고 생각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그러면서 기적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때는 코로나 이전이었기 때문에, 필리핀 팔라완, 프랑스 투어, 일본 나가사끼, 베트남 다낭 호이안, 미국 LA, 스페인 산티아고 성지순례 완주, 스페인 라스팔마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아제르바이젠, 조지아, 아르메니아,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제주도 올레길 완주, 싱가폴 참 많이 다녔습니다. 거리상 지구 5바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식년을 마친 후, 본리본당에서 현재의 식복사 강의숙 막달레나 자매님을 만났고, 올해까지 6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막달레나 씨는 49년째 동정 식복사로 활동 중이고, 내년에 식복사 50주년 금경축입니다. 제가 사제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본리본당 시절,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고, 저는 자전거 사고로 왼쪽 팔을 심하게 다쳤고 부친은 식도암으로 고생하다 임종하셨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애먹으면서도, 30년 넘은 수녀원과 모기 천국 화장실을 허물고, 4층 교육관 겸 화장실(대건관)을 지었습니다.
성당 땅을 사려는 부동산 업자가 있어, 150억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다가 무산되었는데 돌아보면 다행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당을 계속 써야 해서, 노후된 건물 이곳저곳을 리모델링했는데, 2년 7개월 만에 갑자기 백천본당으로 발령 나서 옮겼습니다.
2022년 8월 5일 본리본당 9시 장례미사를, 또 백천본당에서 11시 장례미사를 드렸습니다. 초대 주임이 친한 동기라서 본당 설립 초기부터 많이 와본 곳이라 낯설지 않고, 안면 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본당 분위기를 따뜻하고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본당 설립 때의 건물 모두 수리, 보완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5월 1일 제주도 성지순례를 마지막으로, 전국 성지 167곳을 완주한 것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족하고 미흡한 저를 위해 오늘 은경축 행사를 차근차근 준비하시고 기도해주신 이재순 안젤라 총회장님 포함, 여러 교우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5년간 사제로 살아오면서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고, 알게 모르게 많은 기도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영육 간에 건강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주시고, 제가 어디에 있든지 기쁘게 지낼 수 있게 연락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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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