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 구기순의 서예 작품론
*신 웅 순
1. 프로로그
삼랑 구기순은 차라리 시인이다. 글제를 고르는 안목이나 글제에 대한 감상이 예사롭지 않다. 글씨는 그 사람이며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자신을 숨겨본들 자신의 마음가짐, 영혼까지 숨길 수 있겠는가. 천박하면 천박한대로 고상하면 고상한대로 숨김없이 드러나는 것이 글씨이다. 그래서 서예를 법(法)이라 했고 예(藝)하 했고 도(道)라 했다.
새천년 가을 속에서 자꾸만 사그락거리는 생각들을 건지다
-2000년3인 서예전「소경되어지이다」에서
저 어두운 곳에서 저리도 화사한 웃음 그것을 배우리라
- 2004년 5인 서예전「흙물에 연꽃이」에서
위 짧은 글들은 삼랑이 쓴 협서들이다. 예로부터 한국화의 화제처럼 서예도 협서로 자신의 심경이나 당시의 상황, 느낌들을 써왔다. 요즘 한글 서예에 이런 협서들이 쓰여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글씨도 중요하지만 글씨를 쓰게 된 동기, 이유, 상황, 생각 등 자신의 마음가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서예인은 글씨만 잘 쓰는 기능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씨나 생각에도 작가의 인생이 무게있게 실려있어야 한다. 문인들의 글씨가 격이 있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2. 삼랑체, 「펄펄 날고 싶어요」
삼랑은 차령산맥 맨 마지막 동네 충남 서천 문산에서 태어났다. 서천은 한산 세모시의 고향이다. 5, 60년대만 해도 서천 한산은 모시를 생업으로 삼아왔다. 아낙네들은 낮에는 들일을 하고 밤에는 베를 짰다. 곡식과 모시를 팔아 그것으로 생활하고 그것으로 자녀들의 학비를 도왔다.
이 노랫말에 나오는 세모시는 내 고향 서천의 특산물로 여름철에 시원하고 우아한 멋을 낼 수 있 는 최고의 옷감이다. 이 종이 또한 모시풀로만 만들어낸 종이이다. 특히 내가 세모시에 애착을 갖는 것은 우리 친정 어머니 칠십평생을 베틀과 쩐지 바탱이와 함께 눈물로 자식들을 키우셨기 때문이 다.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간혹 베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2008 삼랑 구기순 한글 서예전「그네」에서
학처럼 앙상한 다리가 휘어져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제야 눈물을 흘립니다. 그냥 불러만 보아도 좋은 우리 엄마
-2010년 한국서예여류정예작가전「펄펄 날고 싶어요」에서
어머니는 늘 그런 줄 알았다던 삼랑. 그래서 평생을 들일, 베틀과 함께 살아오신 친정 어머니에 대한 삼랑의 그리움은 더욱 절절하다. 무릎 관절 수술을 하신 엄마의 침상 끝에 매달린 환자의 명찰. 퇴원 후의 소원 란에 ‘펄펄 날고 싶어요’라는 글을 보는 순간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던 삼랑. 이제와 침상에서 학처럼 여윈 어머니의 휘어진 다리를 보며 오열했다던 삼랑의 글 「펄펄 날고 싶어요」는 그의 글씨체와 함께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서예는 이래야한다. 남의 글만을 평생 쓰는 서예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가 있다. 선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해왔다. 달랑 남의 글만을 옮겨다 쓰고 거기에 작가의 생각조차 쓰지 못하는 요즈음 서예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움과 글씨의 절묘한 결합. 세모시 같은 삼랑의 글씨체가 돋보이는 것도 삼랑에게는 이러한 격이 있기 때문이다. 삼랑체라 칭해도 좋을 듯싶다. 이 삼랑체는 그의 스승 석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조금은 각지었어도 딱딱하지 않고 궁체와 결합된 삼랑만의 부드럽고 우아한 개성있는 글씨체이다.
서예는 공간 예술이다. 공간을 얼마나 편안하게 창출하느냐가 관건이다. 같은 글자라도 공간의 배치에 따라 예술미가 달라진다. 거기에 먹빛과 글씨와 내용이 공간 사이에서 기막히게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 세모시에 바람이 스치듯 그렇게 먹빛과 향기가 스치고 인격이 스쳐야 독자를 기절시킬 수 있다. 삼랑 서예술이 이에 적격이 아닌가 싶다.
3. 서력, 한글 서체
2000년 첫 3인 서예전에서 2010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체는 매우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전개된다. 2000년 첫 삽을 뜬 삼랑의 서예전은 한문 2체, 한글 4체였다. 이러한 서체는 삼랑이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에 대한 애정이 두드러짐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이 한글 서체들은 이후 삼랑의 한글서체의 저변 확대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고 있다.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한다. 기초가 튼튼해야 깊게 팔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004년 5인전에는 한글 ․ 한문 혼용체가 보이고, 한글은 삼랑체, 판서체, 궁체 흘림 ․ 정자 그리고 또 다른 체(우부편중, 유산녹중)등 5체로 확대된다. 또 다른 이 체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부녀자가 안부 편지 하듯 하나는 정자와 흘림으로 편안하게 쓴 한글 서체이다. 여기에서 그의 서예는 한문 ․ 한글 혼용에서 한글 전용으로 옮겨가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한글체 시도는 삼랑의 한글 서체가 한층 더 넓어지고 풍부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2008년 한글 서예 개인전에서는 한글 전용을 해야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여기에서 삼랑의 또 하나의 동자체(짝사랑)를 실험하고 있다. 이 동자체는 어린이가 크레용으로 글씨 쓰듯 아무 구김살이 없이 천진난만하게 쓴 바보체 같은 것이다. 삼랑이 왼손으로 쓴 글씨체도 있다. 동자체는 어린 아이처럼 사심이 없어야 글씨를 쓸 수 있다. 이 체가 2010년 개인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삼랑체, 판서체, 궁체 흘림, 궁체 정자에, 또 다른체, 동자체(왼손체)등 6체로 그의 서예 지평은 넓어져가고 글씨 자체도 매우 세련되어 갔다.
삼랑은 한국미술대전이나 한국서예대전의 제도권의 작가는 아니다. 오히려 방외인으로서 자기 성찰에 철저한, 자신을 채찍질해가는 자신만의 독법의 길을 가고 있는 유망한 여류 작가이다.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2006년 강암 선생의 휘호 대회에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 대회는 어떤 사심도 없는 오로지 실력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누가 뭐라해도 이 하나만으로도 그의 실력은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충남 서예 전람회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 전람회 특선을 비롯, 추사선생기념 휘호대회 초대작가, 세계 서법 문화 예술대전 우수상 등 그리고 4회에 걸친 개인전 8회에 걸친 단체전 및 회원전을 비롯 그리 길지만도 않은 그의 20년 서력에도 그의 활동은 매우 화려하다.
현재 고향 서천에서 향토의 서예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이제 향토 작가로 서천을 대표하는 재능있는 한글 서예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서예 여류정예 작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4. 대표작, 2010한국서예여류 정예작가전
그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신석초의 「바라춤」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번 정예 작가전에도 출품하고 있는 서천의 시인 신석초의 대표작「바라춤」은 여성 화자가 저녁에 청산에 올라 산사에 머물면서 자기 각성을 하고 새벽에 하산한다는 내용으로 무려 45연 427행에 달하는 장시이다. 향토 시인 신석초의 대표작을 향토 서예가가 삼랑의 글씨체로 표현해냈다. 세로 50센치에 가로가 무려 15미터에 달한다. 서천의 문화 유산이라 할 만한 기적 같은 대작이 다.
그의 이번 2010년 한국서예 여류정예 작가전에는 동자체인 「양단 몇마름」, 「짝사랑」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주로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는 삼랑체로 쓰여져 있다. 이 개인전에서는 과거의 체와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글씨가 매우 우아하고 부드럽고 단아해졌다. 그만큼 기초가 단단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왔으며 한글 서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한글 서예 정수에 그의 글씨체가 가까이 접근해 있다는 확증이기도 하다.
여기에 그의 스케치와(당신 생각)과 전각(내 사랑은, 궂은 날에도 화사한 꽃처럼)이 준 텃치는 필자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글씨만이 아닌 이런 태점 같은 그림이나 전각들은 글씨를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적절한 감각적 여백 처리는 독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갖고 있다. 그녀의 서예술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이자 재능이기도 하다.
이번 2010년 한국서예 여류정예 작가전에서 그의 작품 전부를 조망할 수 없어 아쉽다. 필자의 서평으로 대신할 밖에 없다.
5. 에필로그
'가다보면 어느 곳엔가 닿아지겠지' 그의 인삿말처럼 서법의 길은 여유이자 무욕이다.
어느 누구도 글씨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글씨는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글 서예가 특별한 이유없이 폄하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한글의 우수성이 증명되었음에도 아직도 한문에 밀려 변방에 서있다. 서법은 한문에서 비롯되었지만 선인들은 이를 받아들여 한글 궁체를 우리만의 우아한 우리의 서체로 발전시켜왔다.
이제는 한글이다. 청출어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글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서체를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애국하는 길이기도 하다. 첨단 디자이너들이 한류 한글을 세계에다 디자인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한글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삼랑 서예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 중부대 교수 신웅순
구 기순(丘 冀 順 ) 삼랑, 효문당 (三㫰,曉文堂) 약력
개인전
-삼랑구기순한글서예전 서천문화원(2008)
-한국서예정예작가 초대개인전 월간서예문화 이형아트센타(2010)
경력-대전충남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특선 및 입선
-강암 서예대전 우수상,최우수상 同 초대작가
-추사선생기념 휘호대회 차상수상 同 초대작가
-해동서예문인화대전 우수상 同 초대작가
-세계 서법 문화 예술대전 우수상 2회
심사 및 운영
-계룡서예문인화대전 운영위원
-대한민국 고불서예대전 심사위원
-충청서도대전 심사위원
단체전 및 회원전
-동행전(3인전,5인전)
-충청서단전
-묵향회전
-석정서회전
-강암서예초대작가회전
-대전충남 서예전람회 초대작가회전
-한국서도 100인 특별전
-서천연서회전
현재-서천서예학원운영
-묵향회원
-석정서회원
-충청서단회원
-강암서예초대작가회 부회장
주소-충남 서천군 .읍 군사리 587-1(서천서예학원)
전화;041-953-2773 핸드폰;010-9926-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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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