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에 모교 기악과 입학한 변현덕 동문
“100세 때 베토벤 피아노 연주 목표로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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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요즘 최고의 유행가 ‘백세인생’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랫말에 맞게 100세 인생을 힘차게 준비하고 있는 동문이 있다. 81세 나이에 모교 기악과에 입학해 화제를 모은 변현덕(식물 53-61) 동문이 그 주인공.
지난 1월 15일 서울 북가좌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변 동문은 “15년간 원인도 알 수 없는 극한 통증에 시달리다 2014년 가을 한순간 낫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때 번뜩 떠오른 기억이 미국 줄리아드 음악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100세까지 살아있으면 초청연주회를 열어주겠다’는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약속이었다”며 “가입 당시는 장난처럼 했던 건데 그 연주회를 꼭 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겨 모교 기악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연주회를 여는 데 관련 학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서다.
80세 나이에 입학은 쉬웠을까. “피아노는 어린 시절부터 쳐 와서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편곡한 교회음악 CD도 있었고요. 면접 때 교수님이 귀는 잘 들리냐고 묻더군요. 전혀 문제없다고 했지요.” 첫 학기 모든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피아노 실기는 A를 받았다.
변 동문은 피아노 전공 학위가 없었을 뿐 사실 자타 공인 피아니스트다. 피아노가 귀한 1939년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6세에 피아노 독주를 했으며 환도 직후 고3 때부터 대학시절에는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그에게 배운 학생들 중 서울대, 숙명여대, 이화여대에 입학해 교수가 된 연주자도 많다.
정작 본인은 대학 입학 때 부모님의 만류로 음대를 가지 못하고 문리대에 입학했지만 대학 시절에도 피아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졸업 후에는 ‘음악세계’란 잡지를 창간했다. 창간 기념 음악회로 당시 (1964년 4월)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한동일 군을 초청해 ‘한동일 피아노 독주회’와 ‘한동일 피아노 협주곡의 밤’ 등 2회를 시민회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 구니다찌 음대(日本國立音大)로 유학을 떠났다. 안익태, 김성태, 김원복 선생 등이 나온 곳이다.
“한일협정으로 일본과의 교류가 시작되며 처음 유학 간 5명의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서울대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서울대 음대에 구니다찌 음악학교 출신이 여러 분 계셨지요. 일종의 코스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신세계였죠. 사고 싶은 물건도 많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습니다.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그랜드피아노도 쉽게 구입할 정도였으니 돈도 많이 벌었죠. 그러다 구니다찌 음대와 결연을 하고 있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종합예술 학교로 3학년 때 다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거기서도 졸업을 못 하고 뉴욕 줄리어드에서 유학생 비자를 얻고, 피아노 수리, 교회 피아노 연주자, 야채가게 사장 등을 하다 50대 중반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교회에서 음악 선교사로 재직하면서 음악교육, 성가대 지휘자, 반주자로 활동하던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가 찾아왔다. 허리부터 발끝까지 통증이 24시간 계속됐다. 서울대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받을 정도로 진통이 극심했다. 65세 때 시작된 병은 15년간 그를 괴롭히다 2014년 9월 80세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해요.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15년간 피아노를 못 친 게 전화위복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손의 관절은 소모품인데 저축한 것’이라며 ‘지난 15년간 피아노를 못 친 게 지금 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하더라고요.”
변 동문은 요즘 하루 8시간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주 레퍼토리는 베토벤 소나타. 100세까지 남은 20년간 베토벤 전곡을 1천 번 치는 게 목표다. 또 다른 목표는 젊은 시절 만든 교본 ‘꼬마 피아니스트의 독주 곡집’ 을 재정리하는 일. 이 악보집은 엘리제를 위하여 등 명곡을 쉽게 칠 수 있도록 편곡한 것으로 출판 당시 인기가 높았다.
변 동문은 모교의 교육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시간 강사들의 수업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에요. 서울 음대에 들어와서 암기를 해야 되는 수업이 많은데, 달달 외운 것을 시험문제로 푸는 것이 아니고 리포트나 숙제를 많이 해오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해요. 음대라면 뭔가 창의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고등학교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이런 토양에서는 ‘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가 나오는 건 어렵겠죠.”
변 동문은 현재 휴학 중이다. 4년을 서둘러 나와 부족한 연주자가 되기보다 중간 중간 쉬면서 졸업을 할 계획이다. 그동안 피아노에 손도 못 댄 세월이 15년이나 됐는데 자기완성을 위해선 넉넉하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그는 “100세가 돼야 연주를 한다는 ‘100세 연주가 클럽’에 가입돼 있으니 한번 연주하고 죽는 것이 아니므로 좀 더 오래 살아서 연주를 많이 하다가 죽어야겠다”며 “120세까지!”를 힘차게 외쳤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