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동교회 부목사님께 드리는 공개서한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아, 우리 화곡동교회의 회복과 개혁을 위하여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목사님께[제3신]
우리 김 목사는, 잘 아시겠지만, 입으로만 개혁과 치유를 외시는 분입니다.
김 목사가 개혁을 마치 올해의 화두로 삼기 위해 창세기부터 게시록까지 개혁 관련 본문을 톺아가시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참으로 거창하신 목회/설교 계획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러나 저는 목사님 여러분과 함께 그의 속내와 ‘그분의 개혁’이라는 실상을 다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언사인가는 물론이고요.
개혁은 행동하는 것이지 그 개념을 설명하거나 정의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따위 짓은 학자가 강의실에서 강의할 때 하는 것이지 목회 현장에서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면 행동으로 개혁 해야지 그 뜻을 풀어 설명하는 것이겠습니까?
교회 설교가 신학교 강의인가요?
그가 그러는 것은 물론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아 한국 교계에 개혁에 대한 열망이 도도한 물결이 되고, 화두가 되고 있다는 것을 귀 딱지 앉도록 들었을 테니 당연히 아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자신도 그것을 이야깃거리로 삼지 않으면 자기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개혁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두려웠다는 것이 첫째 이유겠지요.
모두 개혁의 깃발을 들고 흔들어대는 물결에 휩쓸려 들어가서 그 깃발 하나 만들어 들고 끼어듦으로써 ‘나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다!’ 하고 손사래를 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자신 개혁의 대상임을 가리는 카무플라주를 넘어서 마치 적극적인 개혁 운동가연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허세를 부리지 않을 수 없고, 남달리 과장하지 않을 도리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설교 내용은 알맹이도 없는 것이지만 제목만은 눈에 두드러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는 주일 설교 제목도 별 수 없이 ‘개혁---’가 될 공산이 십중팔구(十中八九)입니다. 제가 왜 십중일이(十中一二)의 유보를 두었는가 하면 이번 주 들어서 이 제목에 대해서 계속 되풀이해서 씹어댔으므로 필경 그의 귀에나 눈에도 들어갔을 터이기 때문에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스타일이 바뀌면 제가 짖어댄 효과의 일말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틀림없습니다.)
그분의 치유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까지 상처 주는 행위라는 것은 그와 오래 접촉하지 않아도, 몇 차례의 설교만 들어도 금방 들어납니다.
지난 해 봄 총선에서 강서갑구 출마자가 다섯 분이었습니다. 그중 네 분이 우리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적어도 선거 운동 기간만은 열심히 출석들 하셨지요. 그중에는 오랜 교우(라고 하기도 뭣하지만)도 있었고, 방금 등록한 이도 있었습니다. (한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거 기간에만 낯반대기를 내미는 그런 인간들이니까 사실 교인이라고 할 것도 당연히 없습니다!) 그런 인간들 중에 방금 등록한 인간이 당선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거 결과 발표가 난 그 주 설교가 가관이었습니다.
바로 당선한 이에 대하여 용비어천가를 읊어대신 것이지요. 당연히 듣는 이들이 모두 욕지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일차적 상처 입히기 아닙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왕 선거 타령을 하셨다면 ‘치유 목사답게(!)’ 낙선한 세 사람을 위하여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선자를 위한 용비어천가가 그 낙선한 입후보자(교우? 신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는가는 일러무삼하리요-가 아니겠습니까?
그게 치유한다는 설교이겠습니까?
설교하는 강대상에서 정치적 발언 자체가 웃기는 노릇이지만 이왕 했다면 제대로 치유를 했어야 할 텐데 전혀 반대로 나아갔으므로 제가 이를 카톡으로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지요. 그랬더니 그 반응이 또한 가관이었습니다.(카톡 캡션 이미지 참조)
그가 입만 벙긋하면 온 세상에 돌아다니며 우리 장로님들이 ‘C-Bauma라는 세상방언’(그의 표현)을 한다고 흉보고 다니지만(그야말로 없는 말을 지어내어 하는 거짓말의 반복) 실제로 욕장이는 바로 그 자신이다 그 말입니다.
그는 권사님들 앞에서 거품을 물면서 쌍소리를 했고, 교회 창립에 공헌하신 원로장로님에게 노회 선배 목사님을 곁에 세워두고 우리 시무 장로님들 몇 분이 계시는 그런 자리-바로 목양실에서 삿대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던 사건은 참으로 우리 교회사에 기록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곁에 계시던 그 목사님이 혼겁을 하시고 이를 무마하고 사건을 잠재우기 위해서 노회 지도부에 속하는 분들을 비상소집까지 하셨던 일은 아마 두고두고 기억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치유를 한다고요! 개가 웃을 일이지 않습니까, 목사님들?
그런 인간을 ‘담임목사님’으로, 선배 목사로, 목회 멘토로 모신 여러 목사님은 참으로 딱하고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 분에게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될 터이니 그 점을 명심하시고 지난 해 선교사로 날려 가버린 젊은 목사님 같은 변은 당하시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송신인 :은퇴집사 최지훈
2017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