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거의 여왕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의 여왕"으로서 면모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 입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들로부터 탄핵 당해서,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권한 정지를 당했습니다. 이때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당인 열린우리당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탄핵역풍인데, 이때의 열기는 워낙 강해서 열린우리당 이외의 모든 정당이 거의 소멸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 였습니다. 자세히 말해보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아닌게 아니라 이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조차도 그때 사실상 소멸 당하듯이 쪼그라들어 버렸습니다.
한나라당이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한 축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적수였으니 말할 것도 없이 "다 망하겠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가 해먹은 돈이 한나라당이 해먹은 돈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 그만두겠다"는 괴이한 작전을 펼치는 와중에, 한나라당이 "차떼기"를 해먹은 전적이 모조리 드러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돈 바치는 사람이 돈을 가득 실은 자동차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나라당쪽에 넘기면, 돈도 받고 자동차도 넘겨 받아서 그대로 그 차 타고 간다는 검은 돈 받는 수법인데, 무슨 영화 속의 악당들 같은 모양이라서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크게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습니다.
이때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당선인, 바로 당시 박근혜 대표였습니다. 그때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의 후보로 나와서 한나라당 당원들 앞에서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제게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여러분과 대한민국이 있을 뿐입니다."
10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써먹게 되는 그 말을 하고, 박근혜는 당시 홍사덕 등에 비해 비교적 열세가 아닌가 싶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망해가는 것 같았던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게 됩니다.
이때만해도,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박근혜 후보를 어줍잖은 잔챙이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름 팔아서 어찌저찌 유명한 척 하고 다닐 뿐이지, 머리도 나쁘고 말도 못하고 세상 물정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안영근 의원 같은 사람은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마지막 황제를 보는 것 같다" 면서 망해가는 제국의 현실도피적인 마지막 헛잔치 내지는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행동 아닌가 하는 평까지 내어 놓았습니다.
(1979년 청와대 자리를 떠나기 전 무렵, 현재의 현충원에서 부친의 장례식에 참여한 28세의 박근혜)
(2012년 33년만에 청와대로 들어가기를 앞두고, 현충원에 참배하러 온 61세의 박근혜)
나중의 이야기입니다만, 이러한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사그라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경쟁자인 민주당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얼마나 놀라운 위력을 갖고 있는지, 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합니다. 일부에서 그저 "세상 모르는 공주님, 험한 세상일에는 조무래기인 머리도 나쁜 사람이 뭘 알겠냐"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랬다면 너무 안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해 총선때 정동영 의장 같은 사람은 "박근혜는 너무 물정을 모르기 때문에 나와 토론하면 가볍게 누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지, 대뜸 박근혜 대표와 여당 야당 대표간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측은 박근혜 대표의 한계와 당시 상황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토론회는 피했습니다. 우습게도 오히려 그때 먼저 주저 앉은 쪽은 "노인 폄훼 발언" 논란에 휩싸이며 자진 사퇴해야 했던 정동영 의장 본인이었습니다.
2004년 박근혜 후보는 정권을 심판한다거나, 정의를 위해 우리가 이기게 해달라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상황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열린우리당이 국회를 모두 장악하지 않도록 불쌍한 우리를 도와 달라"면서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도와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라는 식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박근혜 후보는 조계사, 절에 가서 사죄의 108배를 불상 앞에서 올리거나, 천막 당사에 들어가서 생활한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행동을 했습니다.
(108배하는 2004년의 박근혜)
이런 것들은 사실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당사를 팔았다고해도, 왜 천막에 들어 가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사회 유력자나 갑부들이 많은 한나라당의 특성상, 한나라당 의원들 용돈만 모아도 서울 시내 번듯한 사무실 얻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는데, 왜 천막 당사에서 생활한다고 유난을 떠느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박근혜 후보 특유의 "하여간 대놓고 사람들을 죽어라고 많이 만나서 쓰러질때까지 악수 하기"라는 선거운동 방식이 엮이면서 묘한 분위기가 흐르게 됩니다. 천막 당사가 쇼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쇼를 하는 당사자들인 한나라당 당원들 내부에서 "어떻게든 똘똘뭉쳐서 한 번 돌파해나가보자"라고 결심하는 기류에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는 것입니다.
2004년 박근혜 대표는 핵심 지지층인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골목 구석구석 시장 각지를 돌아 다니면서 열심히 손을 잡고 얼굴을 보고 웃는 일을 하는데 온힘을 다했습니다. 청중을 사로잡는 대단한 연설 솜씨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TV 토론회에 나와서 달변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정교하게 발라내는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첩 공주"라는 별명대로 미리 준비해 온 원고가 아니라면 정치인 치고는 과하게 말을 더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지지자들부터 찾아가서 얼굴을 하여간 많이 들이댄다는 작전으로, 본인이 중앙에서 주로 활동하는 최상위층 인사이면서도 묘하게도 지방 지지자들에게 알던 사람 같은 친근감 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솜씨는 일종의 천재적인 것이었습니다.
수첩이 없으면 말을 못한다지만, 수첩이야 문구점에서 천원 주고 사오면 되고, 거기에 내용을 채워줄 사람을 항상 모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망해도 너하나 실업자로 만들어 굶기기야 하겠느냐"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선거 한 판 지면 실업자가 되는 정치판에서 사람을 모으고 똘똘한 사람을 주변에 둘 수 있는 중요한 재산 아닌가 싶습니다.
박근혜 대표의 위력은 한나라당 정치인들부터 바로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탄핵 역풍의 막강한 위기에서 당시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사방이 적군에게 휩쌓인 채 포위 당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때 박근혜 대표가 지지율을 끌어 올리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빛나는 의석으로 구출해 데려가 주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해도 그때 몇몇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느낀 심정은 피 웅덩이에 빠져 죽기 직전에 갑자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손을 내밀어 끌어 올려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후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을 가장 위험한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은 현행 헌법에서 역대 가장 많은 표 차이를 내며 당선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시장 재임 당시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해서 본격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언급된 후로는 그 어떤 경쟁자에게도 위협 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당시 같은 당의 박근혜 대표였습니다. 너무나 가뿐하게 대통령직을 얻은 듯한 이명박 대통령 마저도 박근혜 대표에게는 심각하게 위협 당했고, 심지어 당원내 경선에서는 패배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후에도 박근해 대표는 "친박연대"라는 어처구니 없는 개념의 팬클럽형 정당이 생겨나게 하는등 그 위세를 과시 했습니다. "친박연대"는 박근혜 후보편의 한나라당 사람들 중에서 공천 못받고 밀려난 사람들이 만든 당인데, 본인들은 한나라당을 나온 상태이면서 한나라당에 소속된 박근혜 후보의 팬을 자처하면서 동시에 한나라당의 다른 후보와는 다투어야 하는 당이라는 극히 괴상한 형식의 정당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비판하여, "북에서도 김일성을 유일한 수령으로 열렬히 드높이지만 그래도 당 이름에 대놓고 김일성이라는 말은 안쓰는데, '친박연대'는 그보다도 더하다"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연대는 대체로 승리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은 금년 봄의 총선에서 8년만에 다시 선거를 지휘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갖가지 비리가 들통 나면서 다시 최악의 위기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때에는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들이 룸싸롱에서 만나 술마시면서 야당을 지게하려고 투표 방해 공작을 펼치기로 결심한다"는 무슨 디스토피아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저지르는 악명 높은 "선관위 DDoS 공격" 사건이 있었던 후이기도 했습니다. 선관위 DDoS 공격 사건은 사악하고 잔인하기보다는, 비열하고 추잡하고 치사하고 유치하고 황당하고 무엇보다도 극히 졸렬했습니다.
쪽팔려서 망하기에도 딱 좋은 상황이었고, 당시 민주당에서 가벼운 승리를 자신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위원장은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조시킨 후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충청과 강원 지역에서는 어느새 야금야금 지지율을 높여서 새누리당의 지역으로 만들어버렸고, 수도권에서도 대강 멀쩡히 건사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2004년부터 쌓아 온 박근혜 당선인의 무서운 위력이었습니다. 그 위력의 본바탕이 잘 정리된 원고를 주면 잘 받아서 똑똑한 발음으로 정확하게 읽는 능력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어지간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서 중간은 가는 능력의 기막힌 활용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은근히 책략가, 재주꾼들을 잘 모으는 경향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누구나 이야기하던대로 핏줄 자체부터 재산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박근혜 당선인은 심지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되기도 전부터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고, 바로 얼마 전까지도 거기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 꾸준히 유지된 강력한 지지는 화려하게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 때보다도 강한 기세였습니다. 당선에 필요한 유권자에게 호소해서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할 수 있는 박근혜 당선인의 기가막힌 능력은, 한 두 마디로 잘라서 쉽게 폄훼하기 전에 여러가지로 살펴 보고 주위 상황을 곰곰히 들여다 봐야할 이야기 거리들이 매우 많은 내용이라고 생각 합니다.
곁가지 이야기 입니다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하고, 박근혜 대표가 선거의 여왕으로 태어나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 문재인 후보는 정치판과 공직을 떠나서 멀리 네팔에서 산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소식이 끊겨 있던 상황에서 한 영자 신문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 길로 귀국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한 변호사로 나서게 됩니다.
2. 네거티브사실 피로 얼룩져 있는 역대 선거에 비하면, 이번 선거가 네거티브 공세, 즉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상대적으로 심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상대방에 대한 비난에 민주당이 기울어져 있는 느낌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비난 작전을 펴는 것은, 상대방 골수 지지자들을 더욱 단결하게 만들고, 게다가 잘못 먹힐때에는 중도층에는 반감을 가져 올 수가 있기 때문에 역효과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민주당 입장에서는 달리 선거 운동을 할 건수가 없어서 "박근혜 후보는 안된다", "박근혜, 이명박은 나쁜 짓들을 이렇게 많이 했다"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이 이런 분위기로 틀어진 첫번째 원인으로는 새누리당에서 대뜸 먼저 "경제 민주화"라는 걸 내세우면서 복지 정책을 과감하게 펼쳐낸 구도에 그대로 말려들어간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때 유행하던 "닉슨이 중국에 가는 효과"가 생겨 나면서,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제시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이 꽤 그럴싸하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닉슨이 중국에 가는 효과"는 골수 반공보수주의자로 유명했던 닉슨 미국대통령이 도리어 당시의 적국이었던 중국에 과감하게 방문했던 일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렇게하면, 닉슨이 워낙에 반공보수주의자였기 때문에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할 때 지지자들이 "그래도 닉슨이 하는 일이니 공산당들에게 나라 팔아먹는 일은 아니겠지"라고 받아들이게 되어, 중국과 친하게 지내자는 "중국 외교"를 추진할 때에도 동조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 정책을 원래부터 내세우던 민주당보다도 반대파인 닉슨이 더 부드럽게 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원래 생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막말로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말하는 수법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에 민주당이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먼저 나섰다면, 예로부터 대기업과 부유층의 지지를 좀 더 많이 받는 새누리당은 "이건 무슨 대책 없는 퍼주기냐"면서 맹렬하게 반격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새누리당에서 먼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나서는데야, 민주당에서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할 지 매우 난감한 구도가 잡혔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생각 합니다. 반대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맞춰 주기만 하면 싸움이 안되니 말입니다.
반면에 민주당에서는 그 정도로 정책에서 과감하게 유연한 모습을 보일 부분들이 없었고 그렇게 가기에도 어려운 위치로 나아 갔던 듯 합니다. 앞선 대통령 때의 정책들에 집착을 하는듯한 모습들이나, 냉정한 현실 판단과 그 해결 방안에서 나오는 정책이 아니라, "굳은 신념", "뜨거운 열정", "변치않는 진정성" 같은 자칫 고루한 지난 시절의 생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막연한 믿음에 갇혀 있는 인상을 줄 때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이래저래 돌고 돌다 보니, 민주당은 하는 수 없이 마지막 화력을 동원한 것이 "상대방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나 봅니다. 그 이유가, 민주당이 끌어다 댈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비판과 싸움에 더 재능이 있는 학생운동, 시민운동쪽 사람들이 주류가 되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번에 결집한 것이 "박근혜를 너무 싫어한 사람들"이었다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기 때문인지, 혹은 애초에 선거 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야권의 최종 단일 후보가 선출된 후로부터 진짜 선거전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보람찬 작전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준비할 시간이 적어서 이런 작전 밖에 쓸 수가 없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기야, 새누리당의 비난 작전도 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새누리당은 유권자의 시선을 사로 잡고 특히 지지층을 반갑게 만드는 공약과 정책들을 와닿게 내세우는 재주를 꽤 성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정책 홍보물에서 직접 전세난에 대한 해결책이나, 노인 문제를 언급해 찌르는 것은 착실하게 연마된 실력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민주당이 차이점으로 내세운 "재벌 순환 출자 폐지" 같은 정책은 뜬구름 잡는 느낌이 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진지한 주제고 심각한 문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유권자가 지금 보기에 그래서 대기업에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몰려와서 이렇게 저렇게 쪼아 대면 뭐가 어떻게 좋아진다는 것인지 얼른 실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당장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달라고 하는데, "지금 인공 강우 설비를 갖춘 비행기를 태백산으로 보내서 비를 내리게 할 테니, 그러면 한강물이 넘쳐서 물을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느낌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전단형 홍보물을 보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홍보물에는 단 한마디도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행복하게 웃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만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홍보물에는 내용 첫페이지에 가장 먼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의 모습이 나옵니다. 문재인 후보의 홍보물인데,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인 것입니다. 그 사진은 5년전 이명박 후보가 자신의 홍보물 맨 마지막 페이지에 게재하던 것입니다. 첫페이지에 가장 먼저 들어 오는 것은 큰 글자로 쓴 "고통5년"이라는 말입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은 "이명박"이고, 그 다음으로 나오는 이름은 "박근혜"입니다. 그 다음에야 문재인 후보의 이름이 나옵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수천만장을 찍어내는 홍보물에 상대 후보의 이름을 이렇게 많이 거론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인지는 누가봐도 선뜻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특히나 문재인 후보가 등장 초부터 "적까지도 배려하는 신사"라는 느낌이 잘 먹혀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비판에 기울어진 전술이 아귀가 맞지 않아서 더 효과가 나빠지는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2007년 이명박 후보 홍보물 마지막 페이지)
(2012년 문재인 후보 홍보물 본문 첫페이지)
이런 것은 유세 현장에서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유세 마지막날, 박근혜 후보는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민주당"이나 "문재인"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미래"라든가, "시대"와 같은 단어를 중심으로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문재인 후보는 이번에도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 실정을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고 새누리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이야기를 채웠습니다. 물론 앞서나가고 있는 후보와 따라가고 있는 후보의 입장이 다른 면도 있겠습니다만, 마지막 선거전을 그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겨루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럴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콘크리트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은 멍청해서 정책이나 공약은 보지도 않고 찍는다고 자포자기하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심 끄는 공약과 신선한 정책은 언제나 판을 뒤흔드는 한방이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노무현 대통령은 충청권 천도 공약을 내걸면서, 상대인 이회창 후보 본인이 충청 출신인 충청권 거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청 지역에서 대거 득표하는 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손쉽게 승리한 편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를 들고 나와서 선거기간 내내 이명박과 이명박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두고, 수도권에서의 미진한 결과가 모자랐다거나, 부산 경남 지역에서 벽을 넘지 못했다거나 하는 일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일들은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건, 좋은 공약과 매력적인 정책으로 앞길을 틀 수 있는 건수 아닌가 싶습니다.
경기도에 광역시를 하나 더 만들겠다거나, 부산에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거나 하는 좀 막나가는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정책에 관해서는 좀 더 보람찬 이야기거리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했다고는 해도 10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거대 정당인만큼, 박근혜 후보와 공약이 비슷해진 마당이라면 아예 국회에서 그 공약을 당장 끌고 나가보자고 대뜸 먼저 제안해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값등록금" 공약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새누리당은 이미 할 수 있는데 왜 안하느냐?"고 지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민주당이 나서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반값등록금에 대해 합의하는 선까지는 해보자"고 미리 의원들을 모아서 의제를 던지고 합의하고 법안을 만들자고 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판세를 흔들고 자연스러운 선전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야 영수회담이라도 하자고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끌여 들여 보지는 못했겠습니까. 민주당은 이런 방향 보다는 그저 갈수록 "적은 사악한데, 우리가 정의의 편이니 따라오너라"고 비장하고 장렬하게 외치는 쪽으로 너무 많이 나간 것 아닌가 합니다. 다른 면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이런 작전만 강조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전면적인 혐오감을 가진 층을 끌어들이기 어렵고, 상대방 후보에 대해 그냥 감정적으로 소극 지지하기만 하던 층을 반감 때문에 투표장으로 보내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알게 모르게 내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실력있는 사람들을 모으지 못해서 좋은 정책이나 공약이 더 부족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품질 좋은 선전 방법을 떠올릴 인재를 못 찾은 상황에서, 비판하고 싶은 마음과 정의감만 길모르고 타오른 결과로 나온 것들 중에 바닥을 쳤던 것이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생활백서" 홍보자료들 아닌가 합니다.
(인관관계... 인관관계...)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TV 광고에 나와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말미에서 "정말 많이 준비했습니다. 꼭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말만 했습니다. "정의의 승리를 위해서 양식이 있다면 나를 찍어라"라고 말하는 태도와는 또 방향이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때와 비교해 본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작전, 다채로운 수단을 갖고 있었던 쪽도 역시 박근혜 당선인 편이었다는 느낌입니다.
3. 유세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종필 총재와 김대중 후보가 번갈아 나와서 D.J. DOC 노래와 맞춰 춤추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는 TV 광고가 나왔습니다. 패러디 코미디물에서도 너무 현실감 없을만큼 황당해서 나오기 어려울 법한 장면인데, 웃기고 가벼운 내용으로 일단 눈길을 끈다는 작전이 그때부터 대통령 선거에서 유행해서 쏟아졌습니다. "주제곡"이 중요하게 기억에 남은 선거도 그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사모"로 대표되는 정치인의 팬클럽이 톡톡히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남습니다 이 이후로, 왠갖 정치인들이 "뭔뭔 사모"라는 이름을 달고 잡다한 팬클럽들을 끌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고, 요즘은 좀 잠잠했지만 한창때는 그 팬클럽 인사들끼리 "정통"자리를 놓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당시 선거 운동 때에 생겨서 한참 동안 이어진 유행이라고 돌아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누가 뭐래도 시장 돌아다니면서 후보가 뭔가를 먹고 다니는 것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당시에, 어묵, 사과, 오징어, 호떡, 가래떡, 감 그리고 전설의 산낙지까지 전국의 거리 곳곳을 다니며 온갖 음식들을 씹어 먹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별 내용도 없고, 무슨 고민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부담없이 그냥 먹기만 하면 되는데, 사진을 찍어 놓으면 눈이 한 번 가고 TV에서 틀어주기에 좋아서 이후로 많은 정치인들이 따라하는 유행이 된 듯 싶습니다. 이번 선거 운동 때에도 초기에는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모두 열심히 먹고 다녔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기가 막힌 먹는 얼굴에 비하면, 박근혜 후보는 먹는 모습이 영 좋아 보이지 않아서 서서히 사라져간 듯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역대 선거들에 비하면 딱히 특별히 새로운 것이 뭐가 있었다고 떠오르는 것은 없는 편이었습니다. 2002년까지만 해도, 미디어에는 민주당이 강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 뒤집어진 이후 이번에도 특별히 인상적인 광고도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당에서는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했고 마지막에는 국정원 직원 사건에 힘을 쏟기도 했는데, 유세가 이런 부분에 엮여 들어 간 것도 효과가 좋지는 않았다고 생각 합니다. 여론 조사와 통계를 정확히 읽지 못한 오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주로 요즘에는 주식 시장의 주가를 따질 때에 그래프에서 대세를 뒤집는 추세가 나타나는 시점을 일컬어 "골든크로스"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바닥에서 골든크로스라는 것이 지옥으로 흐르는 강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배를 타야될 때에 강 건너편에서 신기루처럼 유혹하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고 생각 합니다. 여기에 매달린 것이 좋은 유세법이 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가득 길거리를 채우고 후보 곁에 모여드는 풍경이 간만에 선거판에 화제가 많이 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이렇게나 화제가 된 것은 1992년의 현대 창립자 정주영 선생의 선거 유세가 마지막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문재인의 광화문 유세가 화제를 끈 면은 있었습니다만, 예전에도 보던 것이라서 특징적인 면이 있다는 느낌은 적었습니다. 오히려 "후보 얼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역시 박근혜 후보가 원조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역시 착실하게 밑천을 모아온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간에 저력의 차이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총선 패배 후에 내분이라면 내분 상황이었던 민주당에서 선출된 대통령 후보로서, 정치 경험이 부족한 후보였으면서도 성실히 맡은 역할을 잘 해냈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 지지자들 역시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심정으로 전력으로 문재인을 지지했다고 생각 합니다. 다만 박근혜 당선인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서는 오늘 문재인 후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농담 던졌듯이 2% 부족할 때였나, 돌아 봅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
첫댓글 네,,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엄청 긴글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어느 블러거가 쓴 글인데 공감이 가서 올렸습니다 민주통합당도 반성을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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