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에게는 이성과 세계의 질서를 신뢰하는 이성주의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이성 중심주의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중심은 인간의 이성이 아닌 신에게 귀속된다.
슐릭(Moritz Schlick)은
선(善)은 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하다는 견해와,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신이 선을 원한다는 견해를 논의하면서,
후자가 더 심오하다고 비트겐슈타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반대로 첫 번째가 더 심오하다고 고집했다.
"왜냐하면 첫 번째 개념은 '왜' 그것이 선한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게 만드는 반면에,
두번째 것은 천박한 이성주의적 견해로서, 이것은 '마치'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듯이 이론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선한 것은 또한 신성하다. ··· 그것이 나의 윤리의 요체이다."
이성적 이론에 의해 근거를 제시하는 이성중심주의는
이성의 진보를 신봉하는 과학문명의 토대를 이룬다.
신이 죽은 이 세속의 세계에서 과학을 등에 업고 주인을 자처하고 나선 인간은
한없이 교만하고 탐욕스러은 일차원적 존재로 타락한다.
그것은 진보가 아닌 퇴보와 몰락의 시작이다.
과학이라는 신앙의 일차원성은 다른 차원의 시각을 부정하는 독단주의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종국에는 우리의 삶에서 영혼과 신성의 영역을 말살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과학에 대한 신앙이 우리의 생활양식에 드리우는 이러한 어두운 숙명에 온몸으로 저항하려 했다.
그는 과학과는 다른 차원의 관나점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소중이 여겨 몰두했던 관점은 종교적인 것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타고르(Rabindrath Tagore)의 희곡 『어두운 방의 왕』에 심취하여
동료인 스마이티스(Yorick Smythies)와 함께 이 작품을 새로 번역하기도 했다.
희곡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 어두운 방의 왕을 그의 신하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혹은 그가 너무 추하게 생겨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녀와 같이 자신의 자부심을 와전히 버린 채 왕에 헌신하면서도
그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언제 왕이 나타났는지에 대한 감을 갖는다.
왕을 보려는 소망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왕비는
우여곡적 끝에 하녀와 같은 자기 비하와 겸손을 갖춘 뒤에야 비로서 왕과 화해하게 된다.
그 희곡은 귀중한 모든 것을 왕이 그녀에게 수여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끝난다.
"자, 이제 나에게 오라 밖에서 빛 안으로 오라!"
희곡속의 왕은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모든 그릇된 자부심과 교만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닦을 때에야 보여진다.
요컨대 보이지 않는 왕을 보기 위해서는 관점과 태도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주의의 위험성은 그것이 우리에게 이러한 관점 전환의 여지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추구한 논리적 명료성은 과학에 맞서는 종교적 경건성의 경지를 지향한다.
즉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양심이라는 신이 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죄와 오류를 제거하는 수행과도 같은 작업의 목표이다.
부유한가정에서 성장해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스스로 택해 걸었던 비트겐슈타인의 고행과 수난의 길은 이러한 수행을 위한 것이었다.
687-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