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갈등 배후는 ?
신28:63-64 렘16:13-15 눅21:20-24
지금 전세계 뉴스는 지난 10월7일 유대인 명절 초막절 축제일을 맞이하여 대부분 군인들이 휴가 갔던 상황에서 하마스가 기습 공격을 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이미 양쪽 사상자도 15000명을 넘었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 사망자만도 3500명라고 하니 실제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역에 직접 들어간다면 더 많은 사상자들이 나올 것 만 같아 불안한 마음이다. 이번 하마스는 민간인에 대한 총격과 납치도 자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란과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지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 이번 사태가 국제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2차 대전 이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국가를 수립하면서 아랍인과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데 이것이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전쟁의 근본적 배경이다. 지금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며 팔레스타인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쫓겨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의 씨앗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부터 지속된 이 갈등은.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종교와 문화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비롯되었으며 서로 간의 불신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화되어갔다.
2010년대부터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간의 사소한 충돌은 있었지만 이번에 하마스의 공습은 그전과는 다른 스케일로 거의 전면전에 맞먹는 수준의 포격공격을 통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 하면서 민간인들까지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지상군이 이스라엘 마을을 점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가고 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 점령을 앞두고 하마스를 제거하기에 이르렀는데 왜 하마스가 이런 기습 공격을 하였느냐인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가자지구 내에서의 자치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과 또 한편으로는 지금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를 막고자 하마스가 이번 무력투쟁을 벌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사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이슬람교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간의 종교 갈등인데 동예루살렘에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중 하나인 이슬람교 황금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슬람의 대표적인 종주국으로는 수니파(85%)의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15%)의 이란 등이며 이슬람신도를 가리키는 무슬림은 전 세계의 약 20억 정도로 지구촌 1/4에 해당되는 세계최대 종교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면서 보통 종교축제일 하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예수탄생일 인데 실은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탄생한 날이 아니다. 초대교회 시절 지하에 있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로마가 믿었던 태양신 탄생일에 예수가 탄생했다는 기상천외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 거의 2천년 동안이나 내려오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크리스마스 날보다 더 경이로운 종교행사는 전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무슬림들이 벌이는 라마단이 행사이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메카에 도착한 2백만명 정도의 무슬림들은 흰천을 두르고서 메카사원의 중앙에 있는 카바 신전 주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행렬이야말로 지구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한달 내내 동이 틀 무렵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음식·술·성관계를 금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무슬림들이라면 평생 한 번 메카 성지순례 즉 라마단 하지에 참가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라고 하는 이슬람에 대해 먼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이슬람교의 등장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 주변 국제사회는 유럽을 군림해오던 최강 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서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로 분리된 이후 476년 서로마는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고서 서로마는 로마 카톨릭이 종교 정치 등 모든 권한을 장악했으며 동로마를 가리키는 비잔틴제국은 천년동안 비잔틴제국의 영광을 지켜나간다. 비잔틴제국의 황제들은 멸망당한 서로마의 옛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왕조간의 수백년에 걸친 전쟁으로 오랫동안 동서양의 실크로드의 교역이 어려워져 대체 교역로인 지중해 홍해 해양루트가 각광을 받게 되면서 그 해상루트의 중심에 이슬람의 메카가 있었다. 아라비아반도는 땅덩어리는 넓지만 쓸모 있는 땅이 별로 없었고 인구도 적은 탓에 주변 강대국들이 정복할 메리트도 없었던 이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은 세계3대 종교 중 하나인데 코란에 의하면 모세에 이어 예수그리스도 이후 마지막 메시야로서 선택받은 인물이 무함마드라고 한다. 무함마드는 마호메드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아랍어식 무함마드가 일반적 표현이다.
(1) 이슬람교의 탄생 배경
바울순교 후 64년부터 311년까지 박해 중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으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공인이 선포되자 지하교회는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교리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에서 세운 에베소교회가 431년 에베소 3차 공의회를 통해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머니로 결정하면서 교리적인 변질을 가져와 오늘날 로마 카톨릭이란 초대형 이단이 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타락하고 변질된 카톨릭 교회가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교황청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세계 모든 종교의 통합을 이루어 로마 교황으로 하여금 모든 이방종교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승원장 즉 법황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아프리카 지방에 수도원들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수도원하면 장차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수도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로마카톨릭교가 전 세계 지배를 위하여 만든 로마교회의 정보 수집을 하는 지부였다. 당시에 로마교회에서는 큰 도시에서 동떨어진 작은 부족들의 마을에 수도사들을 침투시켜 이상한 예언들을 하고 다니게 했는데 그 예언이란 장차 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아랍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서로 싸우지 않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다니게 했다. 이러한 예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고 그러한 예언이 퍼져 나간 후로는 부족들 간에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언제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인지 기다리게 되었다.
(2) 무함마드(마호메드) 등장
마침내 570년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는데 그가 후일에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바로 무함마드(마호메드)였다.
이슬람교가 출발한 아라비아 땅은 그 옛날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의 핍박을 피하여 아브라함의 집에서 추방된 후에 목이 말라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우묵한 것을 터치시니 거기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고 소생했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빗대어 그 우물 곁에 신의 집을 지었다는 그곳에 오늘날에는 카바 신전이 세워져 해마다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찾는 이슬람교의 최대 성지가 되어졌다. 전설에 의하면 그 우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부족간의 암투가 벌어졌는데 마침내 그 우물을 차지한 부족이 이스마엘 직계자손 중에 꾸라이시 부족인데 그 부족의 한 인물이 바로 마호메드의 할아버지 되는 압둘 무타리부라는 사람이다. 마침내 압둘 무타리부는 메카의 영웅이 되었으며 열 명의 아들을 얻었고 그 중에 막내아들을 특별히 사랑했는데 그 막대 아들 압둘라는 569년에 아미나라는 여성과 결혼한 후 대상들과 함께 길을 떠난 후 돌아오지 못했으나 아미나는 유복자를 임신하였는데 그가 바로 무함마드(마호메드)이었다. 불행은 겹쳐서 오는 법인지 마호메드의 7살 되던 해에 어머니 아미나가 죽고 2년 뒤 마호메드 9살 되던 해에는 할아버지인 압둘 무타리부도 죽으면서 마호메드는 9살 때 부터 삼촌을 따라 낙타상인들과 동행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느 날 카톨릭 수도사가 나타나 마호메드의 등을 보여 달라고 해서 등을 보여 주었더니 그 수도사가 하는 말이 "이 표시는 예언자의 인이니 당신들은 이 아이를 잘 보호하시오 특별히 유대인들이 이 아이의 생명을 빼앗으려 할 터이니 신의 일을 하게 될 이 아이의 생명을 잘 지키도록 하시오. 이 아이는 장차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오."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교황청의 한결같은 소원은 예루살렘에 교황청을 세우는 것인데 로마 카톨릭은 이것을 반대하는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일들을 대신해 줄 그런 아랍인들의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마호메트가 25세이었을 때 교황청에는 이 모든 일을 추진할 한 여인을 택하였는데 바로 수도원에 있던 40세인 카디자와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 바라카였다. 그녀는 수녀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던 어느 날 특수 임무를 받아서 세상으로 나와 마호메드와 결혼을 하게 된다. 사탄은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이스마엘 자손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게 공작하였고 카톨릭은 정통파 유대인들을 제거하는 일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꿈을 꾸었고 마호메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었다. 무함마드가 25세 되던 해 15살 연상인 카디자는 무함마드에 이끌려 청혼하게 되었고 슬하에 두 아들이 병으로 잃어버리면서 상실의 아픔을 통해 삶과 죽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점점 혼란스러운 인생을 걱정하던 40세 되던 어느 날 메카 외곽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 들어가 명상 하던 중 성스러운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든 환상은 언제나 바라카가 해석해주는 대로만 기록된 것들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 코란이란 책이 만들어졌다. 610년 어느날 밤 동굴에서 명상을 하는 무함마드 앞에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 글을 읽어보라고 명령하는데 문맹이었던 무함마드는 읽을 수 없다고 대답하였지만 너무나도 신비스러운 체험에 두려움을 느낀 무함마드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전하였으며 카디자는 자신의 사촌 바라카에게 달려가 남편에게 일어난 불가사의한 사건을 설명하는데 그가 만난 것이 천사 가브리엘이었고 무함마드가 예언자로 선택받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카디자의 말을 들은 무함마드는 그제서야 자신이 메시야임을 자각하고 알라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하는데 자신이 받은 계시를 바탕으로 알라는 유일신이고 또 인간은 사후의 내세가 있어 현실의 행함에 따라 알라가 천국과 지옥을 심판한다는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카디자는 이슬람의 첫 번째 무슬림이 되고 사촌 알리는 두 번째 무슬림이 되었으며 이어서 무함마드가 친구, 친척들에게 자신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처음에는 자신이 태어난 메카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지만 당시는 쿠라이식 부족같은 지배층들이 있는 메카 카바 신전에 수많은 우상들을 모셔두었기 때문에 무함마드가 설파하는 일신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 버팀목인 두 사람인 아내 카디자와 삼촌을 잃는 위기가 왔을 때 무함마드는 70명의 무슬림들과 함께 메디나로 이주하는데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옮긴 622년 7월 그 해를 헤지라(성년)이라 하며 이슬람력 원년으로 기록한다. 이후 최초의 모스크가 건설되고 이슬람에 기반한 생활이 운영되면서 이 공동체는 이슬람교의 원형이 되고 이슬람제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메카사람들은 메디나의 무함마드를 위협하기 위해 군대들을 보냈지만 무함마드 세력이 승리하게 되면서 630년 마침내 무함마드는 1만의 대군을 이끌고 메카에 무혈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카바 신전의 우상들을 파괴시키고 이슬람성지로 정한다. 그리고 메카의 지배층들과 반대세력들도 모조리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데 이러한 메카의 소식은 순식간에 아라비아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7살 고아였던 무함마드가 50여년 만에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무함마드는 메디나에 살면서 이슬람 공동체 확립에 힘쓰다가 메카탈환 2년 후 원인모를 극심한 고혈로 632년 세 번째 아내 아이샤의 품에 안겨 62년간의 생애를 마친다.
무함마드는 13명의 아내를 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나이 51세 때 세 번째 부인 아이샤는 무함마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훗날 초대 칼리파가 된 아부바크르의 딸인데 그녀 나이 6살 때 무함마드의 아내가 되지만 실제 부부생활에 들어간 것은 9살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무함마드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고 또 후계자가 될 아들도 없었기 때문에 무함마드가 병사하자 후계자 문제로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는데 무함마드의 절친이며 장인이었던 아부바크르와 무함마드의 혈족이자 사위이며 사촌인 알리 사이에서 최고 지도자가 될 칼리파를 다수결로 정하기로 하면서 초대 칼리파로 아부바크르가 선정되었다. 칼리파 선정에서 분열과 대립이 깊어지면서 아부바크르의 지지파와 알리의 지지파들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품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니파와 이란의 시아파라는 대립이 시작 되었다.
무함마드가 죽고 나자 이슬람교는 오히려 더 번창하게 되면서 교황청의 목적대로 아랍의 모든 유목민 부족들이 알라 신과 그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이름 아래 통일되어 갔다. 그 때까지 아랍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한 교황청은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일시키는 일까지 승인하여 주었고 이러한 일이 진행될 때 교황청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약속받고 재정을 지원했다고 한다.
1.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할 것
2. 어거스틴 수도사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항상 보호할 것
3. 교황청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카톨릭에게 돌려줄 것 이었다.
이러한 조약이 체결되고 자금이 지원되자 로마 카톨릭과 이슬람은 불가침 조약으로 화평하게 잘 지내면서 그들 공동의 적은 여전히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슬람 군대는 마침내 로마 카톨릭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도래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승리를 맛 본 이슬람들은 교황청 군사력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교황청 역시 이슬람들이 더 이상 교황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슬람지도자들은 교황청이 그렇게 손에 넣고 싶었던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예루살렘 성전 산을 자신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2. 이슬람교의 축제
(1) 메카성지순례 (하지)
무슬림들은 그들 달력으로 해마다 라마단이 되면 한 달 동안 라마단 절기를 지키는데 그들 중 일부는 메카에 가서 성지순례 즉 하지를 한다. 닷새 동안 진행되는 메카성지순례 하지는 메카에 도착하면 순례객들은 흰 천을 두르고 메카 대사원 중앙에 있는 육면체 카바 신전을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돌고나면 카바 신전 벽에 붙어 있는 검은 돌에 입 맞춘다. 석전 참배를 마친 순례객들은 이스마일 생모인 하갈이 물을 구하러 다녔다는 고행을 경험하고자 인근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번 오가는 '왕복 의식'을 치른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창21장14절에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추방당한 후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였다가 부대에 물이 떨어지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울었을 때 천사가 하갈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 아이가 있는 곳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매 우물을 보고 부대에 물을 채워 이스마엘에게 마시게 했다고 창21장19절에 기록했다. 이것을 재현하기 위해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번 오가는 '왕복 의식'을 치른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갈이 방황했던 브엘세바 광야부터 메카까지는 직선거리로 1000km인데 순례객들이 하지 때 메카에 와서 하갈이 우물을 발견한 곳이 메카라고 하면서 여기서 하갈이 부대에 물을 떠서 이스마엘에게 주었던 이런 고난의 행사를 재연한다는 것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메카 외곽에 있는 성지들인 라흐마 산과 무즈달리파산, 메카에서 동쪽으로 8㎞ 떨어진 미나를 방문하고. 이후 미나계곡에서 숙영하고 무함마드의 마지막 설교장소였다는 아라파트 산에서 해질녘까지 기도한다. 다음날은 아브라함의 희생제를 바치고 또 순례객들은 무즈달리파 산에서 작은 돌멩이를 몇 개 주운 뒤 3일 동안 미나계곡 근처 자마라트에서 악마를 상징하는 돌기둥 벽에 돌을 던지는데 이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압사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영적인 악마를 향해 돌 던진다고 악마가 굴복한다는 것일까? 그들 행사를 보면 모두가 비현실적인 상황속에서도 생애 한번이라도 이 하지에 참여하는 것을 생의 소원으로 여기는데 불행하게도 2015년9월24일에도 성지순례(하지) 기간 밀집한 순례객들이 미나 계곡에서 악마를 추방하고자 돌기둥 벽에 돌을 던지는 과정에서 1500명 이상이 숨지는 압사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런 하지기간 중에 압사사고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라마단 기간 중 압사사고는 신을 위한 순교로 믿기 때문에 전혀 두려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3. 유대교 등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구약성경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갈대아우르에서 살았다(창11:28).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갈대아우르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앞으로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아브라함이 복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창12:1-2) 1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게 복이 되리라.
아브라함이 75세 때 갈대아우르를 출발해서 가나안땅으로 이주해왔었을 때 거기에 살던 가나안 족속들이 오늘날 팔레스타인들이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년 동안 그들을 섬기겠다고 하시면서 그런 후 가나안 지역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창15:13,18)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년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18 바로 그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의 강에서부터 저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었노니.
아브라함은 이런 언약을 받은 후 적어도 200년 후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로 갔을 때는 총리의 가족으로 갔었지만 후에는 애굽의 종이 되어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사십년이 걸렸습니다. 이 광야생활 중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십계명과 율법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 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는 선민이 됩니다.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 이외는 어떤 신도 어떤 우상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으면 그들의 나라가 영원히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멸망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사백년동안 종노릇을 한 후 모세를 통해 출애굽하였고 광야 사십년을 마친 후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왕국을 세웠었는데 다윗왕 솔로몬왕 때에는 전성기를 누리다가 솔로몬왕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었다가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였고 유다 왕국은 BC 587년에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합니다. 바빌론 포로는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BC 538년에 끝났는데,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고레스 왕)은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했는데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속국으로 지내다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로마의 지배를 받던 때이다. 특히 로마는 다신교를 믿는 나라인데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들을 강요하는 것은 반감을 살 수 밖에 없으므로 이스라엘은 로마를 대항하다 궤멸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나라가 망한 다음 사람들이 흩어지면 처음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민족성도 문화도 종교도 소멸되고 그 지역문화에 흡수되기 마련이지만 유대인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예배처소인 회당을 짓고 거기서 율법이라는 구약성경을 근본으로 생활하였다. 가장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 멸망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세를 비롯하여 에레미야도 에스겔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했다.
(신28:63-64) 63 주께서 너희로 인해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 것 같이 주께서 너희로 인해 너희를 멸하시며 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네가 들어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가 끊어져 뿌리가 뽑히리라. 64 주께서 너를 땅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백성들 가운데로 흩으시리니 네가 거기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나무와 돌을 섬기리라
(렘16:13)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가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하리라. 너희가 거기서 밤낮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요. 내가 거기서 너희에게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리라, 하라.
(겔36:19) 이교도들 가운데로 그들을 흩으며 그 나라들도 흩어지게 하고 그들의 길과 그들의 행위들대로 그들을 심판하였느니라.
(눅21:24)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
이상은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을 버리면 그들은 그 땅에서 쫓아내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시장하신지라 무화과나무에 가보니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다음날 아침 제자들이 그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갈 때에 뿌리로부터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듯이 멸망한다는 예언이었다. 예수님의 이 예언 이후 40년이 지나 AD 70년 4월 로마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면서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멸망을 똑똑히 지켜봤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37-100)가 쓴 유대전쟁사를 보면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 단절되고 기근이 더욱 심해지면서 희망은 끊어졌고 집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사람을 먹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실내와 성의 소로에는 온통 어린이와 노인의 시체와 죽어가는 여자들로 가득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은 이미 이같은 상황을 미리 내다 보셨던 예수님의 예언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디아스포라로 살면서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되었다.
(2) 팔레스타인 유래
사울왕이나 다윗왕 때에도 그 지역에 블레셋이란 족속과 전쟁을 하였는데 다윗과 골리앗과의 대결에서도 골리앗은 블레셋의 장군인데 다윗왕은 가나안지역에 살았던 블레셋을 축출하면서 유대통일왕국을 세웠다. 통일왕국은 솔로몬 사후에는 북은 이스라엘로 남은 유다왕국으로 분리되었다가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되었다. 이후 유대인의 역사는 이방민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BC 63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유다인들의 왕조는 완전히 소멸하였고 지역명만 마지막 유다왕국의 이름을 따서 줄곧 유다라고 불렀다. 그 후 유대인들은 로마가 이교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대항하여 AD 70년(1차 독립전쟁)과 AD 132-135년(2차 독립전쟁) 두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는데 로마는 철저한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1차 독립전쟁 때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였고 2차 독립전쟁 때에는 유대인의 다수는 죽임을 당하였다. 특히 132년에 발생한 시므온 바로코크바의 반란(2차 독립전쟁)을 진압한 로마는 더 이상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1. 예루살렘을 로마 직속지로 다스리며 유대인 출입을 금하였으며
2. 이 지역 이름을 유다에서 팔레스타인(블레셋사람의 땅)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유대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세계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AD 7세기 마호메트가 전파한 이슬람교의 세력하에 중동전역에 사라센제국(633-1258년)을 건설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하고 메카 메디나에 이어 예루살렘을 제3성지로 삼아 예루살렘 성전에는 7세기경 알 악사사원과 황금동 사원을 세우면서 예루살렘은 아랍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3) 이스라엘의 건국과정
이스라엘의 멸망이 성경에서 예언되었듯이 이스라엘의 재건도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한 구절을 찾아보자.
(렘16:14-15) 14 주가 말하노라. 그런즉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다시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께서 살아계신다 하지 아니하고 15 오히려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북쪽 땅과 모든 땅 곧 친히 그들을 쫓아내어 머물게 한 모든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께서 살아계신다 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가리라.
(겔36:24) 내가 너희를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고 모든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 너희 땅으로 데려가리라.
(마24:32-34) 32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33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볼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 34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
로마에 멸망당한 후 1900년 동안 고난과 핍박 속에 유랑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시대별로 분류하면
70년에서 395년까지 로마가 지배하였고
395년부터 638년까지는 동 로마 제국 즉 비잔틴제국
638년부터 1072년까지는 이슬람의 사라센 제국
1072년서 1099년까지는 터키
1099년에서 1291년까지는 십자군
1291년에서 1517년까지는 이집트
1517년에서 1917년까지는 오스만 터키
1917년에서 1948년 건국할 때까지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마지막 영국(1920-1948)이 지배할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터키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1차 대전 중의 영국 외상 벨포어 선언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이 격증하였으며 사실 1882년부터 이미 시오니즘운동으로 귀환자들이 증가하였고 19세기 말 부터 러시아, 폴란드 등 동구권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자 시온주의 운동에 공감한 일부 청년들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민족국가 재건의 꿈을 키워간다.
벤구리온을 정점으로 한 유대민족 지도자들은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한편 준 국가적인 기구들을 조직하고, 지하 군사 조직을 창립하면서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주춧돌을 놓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유엔에서 결정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제 2차 셰계대전 후 독일 나치 히틀러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 약 600만명(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을 집단 학살한 것이 알려지면서 유대인들을 혐오하던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유엔에서 이스라엘 독립을 지지하므로써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나치 독일에 의해 유럽전체 유대인의 80%정도가 학살당하는 민족적 재앙이 역설적으로 유대민족의 대대적인 귀환과 이스라엘의 건국이 가능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할 때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했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유엔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라는 것이 가결되면서 1948년 5월14일에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를 선포하였고 독립이 선언되고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집트 6개국은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8개월간 계속된 독립전쟁에서 유대인 인구의 1%에 가까운 6천명이 전사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아랍 연합군 부대를 물리쳤지만 유대 민족의 최대 성지인 통곡의 벽 등 구 예루살렘 성안 유대인 지역을 요르단에게 넘겨주어야 했지만 이 독립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1950년대 들어 이집트에서 나세르 대통령에 의해 범아랍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군비를 증강시킨 끝에 1956년 이집트가 수웨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위기가 조성되자 이스라엘은 '시나이 작전'이라는 이름하에 순식간에 시나이 반도를 점령과 동시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이집트군을 무력화시킨 후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종결시킨다. 독립 전쟁을 포함 6차의 중동전중 [독립전쟁 (1948), 시나이작전(1956), 6일전쟁(1967) 이집트와의소모전 (1968-1970), 10월(욤 키푸르)전쟁(1973), 레바논전쟁(1982)]중에서 현대 이스라엘 역사의 분수령이 된 것은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로부터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 등 자기 영토의 3배나 넘는 넓은 지역을 점령한다. 통곡의 벽을 다시 탈환하는 감격을 맛보며 순식간에 감람산, 구 예루살렘성, 베들레헴, 헤브론, 세겜, 여리고 등 민족의 성지들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렸다.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시작으로 1993년 오슬로 합의를 시작으로 두 민족간 평화조약을 맺게 되었다. 한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관계도 요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43%지역에서 철수했고,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가 실시되고 있다. 이제 두민족간 평화과정의 마지막단계에 와 있는데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외교, 국방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독립국가를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했던 요단강 서안과 가자 전지역에 창립하겠다며 이스라엘은 점령지역 거의 전역(98%)에서 철수하라며 수도는 동 예루살렘이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점령지역 중 43% 정도 철수했는데, 더 이상은 불가하며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유대교 성지로서 조금도 내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역사는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유랑한지 1900년 만인 1948년 독립국가를 세웠는데 세상은 이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기적이라고 했다.
4. 기독교 탄생
구약은 메시야가 올 것을 약속했는데 그 약속에 따라 예수님이 오셨다.
(갈4:4-5) 4 그러나 충만한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있게 하셨나니 5 이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여자의 몸을 빌어서 이 땅에 탄생하셨으며 30세에 공생애 생활을 시작한 이후 마지막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예수를 믿는 기독교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박해도 그만큼 심해졌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졌다. 이때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이란 사람은 예수가 다윗이 예언한 구세주이며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한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전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격분했다. 그리스도인들 이야말로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잡아넣기 위해 산헤드린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기 위해 구원의 의미를 은혜중심으로 설명함으로써, 율법의 완성이 믿음이며 모든 인간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구원의 도를 전했다. 바울은 3차례 선교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신약성경 복음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말씀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모체로 나왔지만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것에 한정된 반면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계기로 전 인류의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율법을 지키면 구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인간은 그 계명이나 율법을 지킬 수 없어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약속 곧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약은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였다면 신약은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낸 그리스도 곧 구세주임을 알고 그를 왜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안내서이다.
5. 이슬람교와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
무함마드가 메카를 본격적으로 이슬람 성지로 인정한 것은 624년 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무함마드는 어려서부터 메카의 꾸라이시 족에서 성장했기에 자연스럽게 카바 신전 순례를 하면서 자랐다. 그 당시 메카의 카바 신전 안팎에는 360여개의 우상들이 있었고 카바 신전도 처음부터 알라만의 신전이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의 각 종족들이 섬기던 360개 우상들의 집합소였다.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알라(Allah)도 메카에 모셨던 360개 신들 중의 하나였으나 그것은 이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어디까지나 이교도들의 풍습이었다. 또. 메카의 성지순례를 이교도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그대로 유지한 것은 이교도들이 이슬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무슬림의 가장 큰 행사인 성지순례는 이슬람교에서 만든 제도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만들기 전부터 이교도들이 행해왔던 풍습이었지만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사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평생 한 번은 메카를 방문해야 한다는 율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성지 순례와 메카의 카바 신전 자체를 신성시하는 이슬람의 문화가 시대에 따라서 점점 발전,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비천한 신분의 무슬림일지라도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만 하면 호칭이 바뀐다.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지(Haji) 아무개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직자가 아닌 무슬림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경칭이다. 실제로 최근에 메카의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사는 집인데 성지순례는 그 동네의 경사라서 주민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다. 이란 뿐 아니라 중동에는 “하지아바드”라는 마을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성지순례 다녀온 사람(하지)이 사는 마을(아바드)’이라는 의미다. 그 동네 원래 이름이 있음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그 동네에 있으면 그 때부터 “하지아바드”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개인과 가문 뿐 아니라 마을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는 행사이므로 무슬림이라면 모두가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방금 위에서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본의든 아니든 많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슬람의 제2 경전으로 잘 알려진 부카리의 하디스에 의하면 무슬림이 성지순례를 하게 되면 방금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 2 Book 26 Number 256) 그러므로 특히 죽음을 앞 둔 노약자들이 성지순례를 선호하는 것은 평생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해마다 압사 사고가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원인들 중 하나는 순례자들 중에 병약한 노약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무슬림들은 하루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는가?
메디나에 간 무함마드는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만나면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무함마드는 자신도 같은 창조주를 믿는 선지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 증표로 그들과 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으나 무함마드가 말하는 알라의 계시가 유대인들의 성경 말씀과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그가 선지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배척했다(꾸란15:6). 성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무함마드)의 계시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악담과 저주가 꾸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약18개월 동안 유대인들과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던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통치권을 장악한 이후 처음 맞는 해인 624년 초부터 기도의 방향을 메카로 바꿔 버렸다. 이는 자신을 배척하는 유대인들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적으로 여기겠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기록들은 지금의 이슬람 성지순례가 유일신 종교를 자칭하는 이슬람 고유의 종교 의식도 아니고 무함마드가 새롭게 만든 의식도 아니며 오히려 이슬람이 배척하고 있는 이교도들과 우상숭배자들의 풍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1) 알라와 하나님은 같은 창조주 하나님이신가?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같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은 이슬람교의 조상 아브라함과 유대교의 조상 아브라함이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을 연구하고 쿠란을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슬람교야 말로 거짓의 종교임을 곧 알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슬람교 조상인 아브라함과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전혀 다르다.
사실 메카 성지순례의 모든 행위들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기에 신앙생활을 오래 한 기독교인들조차 이슬람을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칭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로서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는데(창17:5) 꾸란의 아브라함은 아자르의 아들(꾸란6:74)로서 어려서부터 아브라함으로 불렸다(꾸란21:60).
성경의 아브라함은 예루살렘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렸으나, 꾸란의 아브라함은 메카 부근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렸던 사람이었다(꾸란37:102-106).
성경의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부근을 방문한 일도 없었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서 카바 신전을 건축했다고 한다(꾸란2:127).
성경의 아브라함은 경전을 받은 일이 없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모세처럼 경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꾸란87:18).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교도들이 죽이려고 불속에 던졌는데 알라가 건졌다고 한다(꾸란21:68-69). 심지어는 양을 잡는 풍습도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던 일과 관련시켜 놓았고, 사탄에게 돌을 던지는 풍습도 아브라함과 관련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는 꾸라이시 종족이 섬기던 알라(Allah)신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믿게 하려고 예루살렘의 아브라함을 메카에 적용시킨 것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는 왕복의식은 성지순례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로서, 그곳은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마엘과 그의 모친 하갈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방황했던 언덕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해바다 남서쪽에 있는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창21:14).
이슬람의 역사에는 젖먹이 이스마엘이 사막에서 목말라 하자 하갈이 물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면서 헤매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발꿈치 혹은 날개로 땅을 파니 샘이 솟아 나왔다는 우물을 잠잠(Zam zam)우물이라고 부르는데, 카바 신전 동쪽 20m 지점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이를 거룩한 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창16:16), 그를 내쫓은 것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젖을 뗀 후이니(창21:8), 당시 이스마엘은 15세쯤 되었을 큰 아이를 젖먹이라고 부를 리가 없다. 성경에는 천사가 ‘없던’ 우물을 새로 팠다는 기록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매 ‘이미 있었던’ 샘이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창21:19). 성경의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살았으며 이집트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는데(창21:21), 이슬람의 이스마엘은 메카 부근에 살았으며 주르훔 족의 아랍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성경의 아브라함은 메카 쪽으로 간 일이 없고 가나안 땅에서 이스마엘을 추방한 후 죽을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으나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최소한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첫째 방문: 하갈 모자를 추방할 때 메카까지 데리고 와서 버리고 갔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두번째 방문: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릴 때 메카 부근에 와서 번제로 드렸다고 한다(꾸란37:102-106).
세번째 방문: 카바 신전을 지을 때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같이 지었다고 한다(꾸란2:127).
네번째 방문: 이스마엘이 처음 결혼한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브라함이 이혼을 명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다섯째 방문: 아브라함의 명령에 따라 이스마엘이 첫 번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랍 여인과 결혼을 했더니 아브라함이 다시 와서 그녀를 보고 만족해하면서 축복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아브라함이 성경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살았다면 직선거리로 1,000Km도 넘는 거리를 10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다섯 번이나 왕래하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가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그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속아왔던 피해자들이다.
오랜 세월 속아왔던 무슬림들에게, 죄 사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방문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루에 다섯 번이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일년중 라마단 한달 동안은 해가 떠있는 중에는 금식하며 메카에 성지순례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종교적이고 너무나 경건하고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는 무슬림들이야말로 정말 거짓 종교를 진리처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알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먼저 알아야 하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