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6.수.壬戌날
편인 관대지, 편재 묘지, 월살.
술 중 辛(9), 丁(3), 戊(18) 정재, 상관, 편재 스탠바이, 그러나 술에 병화, 무토, 을목 입고.
계절이 바뀌면서 마을 텃밭도 변화했다.
복숭아 조랑조랑 열렸던 농원엔 붉은 기 물들어가는 사과가 매달렸고
고추, 깨, 콩이 차지했던 밭도 비어지더니 어느새 배추 이파리가 쏙쏙 올라오기 시작했다.
몇 달 뒤 장성해서 김장배추가 될 모양이다.
농촌에선 굶어죽는 법이 없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절기에 맞춰 심고 뽑고 공들이면 뭔가를 밥상에 올릴 수 있다.
특히 영해처럼 반농 반어촌에선 바다에서 건져낼 먹을거리까지 있으니 산 입에 거미줄 칠 걱정은 없겠다.
생산한 것을 재화로 바꾸려면 기후와 판로를 걱정하며 골병이 들겠지만
그냥 애정으로 먹자하면 텃밭과 앞 바다는 소박한 밥상을 제공해준다.
독립생활을 위한 생존의 기본 조건은 그리 많은 재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지 않은 미래와 내일의 불안에 발목 잡히지 않으면 의식주를 의탁하지 않을 만큼 벌고
그만큼 쓰고 살면 그만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은 제자리로 돌아갈 삶을 상상해보았다.
써주지도 않겠지만 방송을 다시 할 생각도 없고 그립지도 않다.
트렌드를 앞서 치고나갈 순발력과 기획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날로그식 성실 하나.
그건 요즘 시대에 무기가 되지 못한다. 30년 먹고살게 해준 무기를 난 다 닳을 만큼 꺼내썼다.
원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았으니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지나온 운은 신물이 나서 꼴도 보기 싫다더니 정말 가위로 오려낸 듯 말끔히 사라졌다. 찌꺼기도 여운도 없다.
남은 건 나 하나를 운신할 먹고사니즘.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도, 청소를 해도 좋으리라.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니 남 보기 좋은 것도 필요 없고 돈에 복무할 이유도 없다.
학교 담장 아래 빈 땅도 놀리지 않고 흙바닥을 기어 다니며 뭔가를 심고 키우고 거두는 사람들.
머리를 수그리고 정직하게 노동하면 하늘 아래 수고한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한 계절은 거두어졌고 자연은 이미 다음 계절에게 대세를 넘겨주었다.
춘하추동의 흐름 속에 버티는 건 사람 뿐인가 보다.
첫댓글 먹고사니즘?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그나마 몸이라도 성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