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교수님 법명에 관한 질문

[관리자]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교수님 법명 혹은 아호인 도남(圖南)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불교 관련 질문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궁금했던터라 질문 올립니다.
 
답변입니다. 
 
사적인 질문의 경우 답하기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보리심'님께서 올리신 질문은 제 법명에 대한 것으로 불교와 유관하기에 답해보겠습니다.
 
제 법명은 도남(圖南)인데, 부산 화엄사의 각성(覺性) 큰스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 입학하기 전까지, 삼일선원(三一禪院)이란 곳에서 각성 스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탄허 스님의 <신화엄경합론> 서문을 보면, 교열을 보아 준 후학, 제자 분들께 감사를 표하시면서 한 분 한 분 거명하시는데, 각성 스님을 가장 먼저 말씀하십니다. 
 
대학 졸업 후 치과의원 문을 열고서 주경야독과 같이, 혼자 불교 공부를 하던 중에 신동아 잡지를 읽다가, 삼일선원에서 <도서(都序)> 강의를 개설한다는 광고를 봤습니다. 그 당시 서울의 신행단체에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등의 강의는 많이 개설되어 있었는데, 저는 사찰 강원에서 스님 교육을 위한 교재로 사용하는 불전들을 너무나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강의를 개설한 곳은 전혀 없었는데, 규봉 종밀이 저술한 <도서> 강의가 개설된다는 <신동아> 광고를 보고서 너무나 기쁜 마음에 당장 삼일선원을 찾아가 등록을 했고, 매주 1회 열리는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강사 스님이 각성 스님이셨습니다. 1980년대 중반이니까 지금부터 약 40년 전 얘깁니다. 삼일선원은 탄허 스님의 유발 제자분들(손창대 교수님, 명호근 선생님, 전창열 선생님 등)께서 탄허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운영하는 불교단체였고 그 당시 삼일선원은 서울의 신사동 4거리에 있었습니다. 각성 스님은 강의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오셨다가 하루 주무신 후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셨는데, 삼일선원 신사동 시절에는 강의 끝난 후, 거의 매번 각성 스님께서 주무시는 곳 인근까지 제 차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얼마 후 삼일선원이 장충동, 방배동 등으로 이사를 했는데, 동국대 대학원 입학 전까지 계속 삼일선원을 따라다니면서 각성 스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삼일선원 장충동 시절에, 재가불자를 위한 수계식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각성 스님께서 계를 주시면서 모든 분들에게 법명을 지어주셨는데 그 때 제가 받은 법명이 바로 도남(圖南)입니다. 
 
수계식 전에 법명을 부탁드리니까, 수계식 때 함께 주겠다고 하시면서, 먼저 제 사주(四柱)를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법명을 주시면서 사주가 차갑기 때문에 법명에 따뜻한 기운을 넣어 보완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참고로, 저는 예나 지금이나 사주팔자 보는 추명학, 풍수지리 같은 것을 전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남(圖南)은 <장자>에 나오는 용어라고 언질만 주셨습니다. 
 
얼마 후 <장자>를 찾아보니까 '소요유편'에 [대붕(大鵬) 도남(圖南)]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더군요. "대붕(大鵬) 새가 남명(南冥)을 향해 날아간다."는 스토리였는데 도남은 "남명(南冥)을 도모(圖謨)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장자>, '소요유'에 실린 '대붕 도남'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북녘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이 곤(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된다. 그 새의 이름은 붕(鵬)이다. 붕의 등 넓이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힘차게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큰 바람이 일면 그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는 바로 천지(天地)이다. 재해(齋諧)는 괴이한 일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큰 새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 삼천리의 파도를 일으키고, 회오리 바람을 타고 구만리의 하늘을 오르고, 그 큰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날아간다. 
​아지랑이와 먼지, 이것은 천지간의 생물들이 서로 입김을 내뿜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새파란 빛은 과연 제 빛깔인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끝이 없기 때문인가? 붕 또한 아래 세계를 내려다 볼 때 역시 그와 같이 새파랗게 보일 것이다. 가령 물 괸 곳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만한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마루의 패인 곳에 엎지르면 작은 풀잎은 거기에 떠 배가 된다. 그러나 거기에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는다. 물은 얕은데 잔이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이 쌓인 것이 두껍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만한 힘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구만리나 올라가야 비로소 날개 밑에 바람이 쌓인다. 이런 후 붕은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 채, 아무런 장애도 없이 남쪽 바다로 향한다. 
매미와 비둘기가 그를 비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힘껏 날아올라야 느릅나무나 다목나무 가지에 머무른다. 거기에 이르지도 못해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런데 어째서 구만리나 올라가 남쪽 바다로 가려고 하는가? 
​들판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세끼의 식사만을 준비해도 충분하다. 백리를 가야 하는 사람은 하루를 걸려 곡식을 찧어야 한다.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 이 조그만 날짐승들이 어떻게 큰 새를 이해할 수 있는가?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이렇다는 것을 아는가? 조균(朝菌)은 밤과 새벽을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이것이 짧은 수명이다. 초나라 남쪽 명령(冥靈)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오백년 동안은 봄이고, 오백년 동안은 가을이다. 아득한 옛날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팔천년 동안은 봄이고 팔천년 동안은 가을이었다. 그런데 지금 칠백년 산 팽조(彭祖)는 장수한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이 그를 쫓아가려 한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은나라 탕왕이 하극에게 물은 것도 다른 아닌 이런 것이다. 불모의 북쪽 땅에 명해(冥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그것은 천지(天地)이다. 거기 물고기가 있는데 몸의 넓이는 수 천리이고, 그 길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 이름이 곤이다. 거기에 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이 붕이다.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날개 쳐서 돌며 구만리를 올라가 구름 위를 솟구쳐 푸른 하늘을 이고 남쪽 바다로 향한다. 메추리가 그것을 비웃는다. 저 놈은 도대체 어디를 간단 말인가? 난 힘껏 날아올라도 불과 몇 길을 못 올라가고 내려와 쑥풀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것도 대단한데, 저 새는 어디를 가려고 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것이 바로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 그 지식이 한 관직에 적절하고 그 행위는 한 고을에 알맞으며, 그 덕은 한 임금의 신임을 얻을 만하고, 그 재능이 한 나라를 빛낼 정도인 그런 인물은 스스로를 보는 눈이 메추라기처럼 좁다. 송영자는 이런 인물을 싱긋이 비웃는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칭찬한다고 더욱 애쓰는 일도 없고, 세상 모두가 헐뜯는다고 기가 죽지도 않는다. 다만 내심(內心)과 외물(外物)의 구분을 뚜렷이 하고 영예와 치욕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뿐이다. 그는 세상일을 쫓아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https://blog.naver.com/sellars/222705041930 에서 채취)
 
1987년에 동국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공부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에, 더 이상 각성 스님의 강의를 듣지 못했는데, 1997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0년 3월에 제가 경주 동국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각성 스님께서 제 법명을 도남으로 지어주셨기 때문에, 서울에 살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경주 동국대에 교편을 잡게 된 것 같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도남(圖南)'의 뜻이 저에게는 많이 과분하고, 법명으로는 좀 독특하긴 하지만 제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오래동안 직접 강의를 들었던 존경하는 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이기에 감사한 마음에서, 새책 머릿말 쓸 때마다 제 이름 석자 앞에 넣습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보리심]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지만 저 포함 수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자, "남"자에 담긴 깊고 웅대한 뜻이 평소 교수님의 지론-
"불교학자는 깨달음을 향한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다."-과도 부합하는 것 같다는 짧은 생각도 해봅니다.

[라라]

질문과 답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