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섭 목사
사람의 몸은 병균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세 가지 조건이 잘 맞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온도가 가장 적당하며, 다음은 먹을 음식이 많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입구가 다양하여 들어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균이 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일이 건강을 지키는 첩경이라 생각하고 지나치게 주의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인 신앙인을 꾸짖는 말씀이긴 하셨지만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18-20)"고 하시면서 내면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몸에 들어온 병균보다도 마음이 이미 스스로를 죽입니다.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삶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하게 보이는데도 온갖 슬픔과 짜증을 다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곧 마음의 병균이 속에서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정신적인 요인이 건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미 상식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 곧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마음속에 새겨놓고 그 저항력을 내 속에서 기르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은 중요한 신학적이자 철학적인 문제로 구약시대에는 그런 일을 지혜자들이 담당했습니다. 이들 지혜자들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못지 않게 파란 많은 인생사에서 신앙인의 지혜를 말하였습니다. 욥기, 시편, 잠언 같은 성경들이 바로 지혜자들의 글입니다. 오늘 전도서도 삶에 대한 지혜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전도서는 먼저 우리 삶의 허무함을 말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는 선포로 시작합니다. 해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헛되다고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도 약하게 살아도 다 죽습니다. 분명 세상은 헛됩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결코 세상이 헛되다는 것으로 끝나도록 하지 않습니다. 헛된 것으로 끝난다면 전도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책이 되지만, 이 헛된 세상을 극복하는 역설적인 지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에 구약성서의 위대한 한 부분을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헛된 세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혜자는 이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또 스스로 그 대답을 줍니다.
1. 즐겁게 살라
헛된 세상을 헛되지 않게 사는 자세는 먼저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슬프게 살 수도 있고 즐겁게 살 수도 있습니다. 즐겁게 살면 세상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한때 스마일 운동이 유행했습니다. 지금도 웃음요법이 나와서 실컷 웃으면 건강해진다는 과학적인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살기보다는 짜증과 불안 속에서 지낼 때가 많습니다. 일하는 자세도 즐거움에서가 아니라 그저 돈벌이하는 수단으로서만 하게 됩니다. 부양가족에 대한 책임감만으로 일한다면 이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전도서의 지혜자는 즐겁게 하라고 증언합니다.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3:22)"고 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겁게 하십시오. 마지못해, 또는 죽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그 일은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교우들을 보면 정말 즐겁게 청소합니다. 콧노래를 부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8:15)"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9:7)"
먹는 것도 즐겁게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즐겁지 않으면 이미 속에서부터 불편합니다. 벌써 먹는 모습에서 뒤의 소화까지 해답이 다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일부분을 즐겁게 먹는 것도 인생의 본분으로 알아야 합니다.
"해 아래서 네게 주신 헛된 날에 네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9:9)"
부부생활도 가정 생활도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즐거움 속에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로 인하여 삶의 기쁨이 충만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즐겁게 살도록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웃으며 즐겁게 삽시다.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씩 웃고 지나갑시다. 좀 섭섭하게 대했어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도록 힘쓰십시다. 주방 위에 길게 붙여놓은 배너가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시편 말씀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 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일!(시 133:1)" 허무한 세상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야 할 세상입니다.
2. 즐겁게 선을 행하라
즐겁게 살되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삶은 즐거운 삶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이란 받는데서가 아니라 주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3:12)"고 했습니다. 허무한 세상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방법은 그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일하고, 사랑하며, 그리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마땅히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일평생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자기 것만 찾다가 그대로 숨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남 한 번 도와주지 못하고 위로 한 마디 던지는 삶을 살지 못하고,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하신 말씀이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 인생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 어떤 교인이 450불이나 되는 돈을 주면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에게 자기를 알리지 말고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단돈 10불이 필요한 교우였습니다. 의아해서 알아보니 어떤 교인으로부터 500불을 받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보다 더 어려운 교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00불 중에 왜 450불을 내어놓았을까 궁금했는데 바로 답을 주었습니다. 자기가 번 것은 아니지만 일단 자기의 수입이 된 것이니 십일조를 떼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선행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사랑을 받았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소중한 본분입니다. 그 본분을 다하는 삶은 우리 생을 보람있게 하고 또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가 세상을 잘 살자면 공부를 잘하고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인생의 본분이기도 할 정도로 지식을 찬양했습니다. 어린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공부하라'입니다. 우리 유교문화권에서 지식이 가장 귀중한 가치관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 많은 민족이라 하는데 그 한 중에서도 배우지 못한 한이 있습니다. "못 배운 것들이"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이 무식한 녀석이!" 이런 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심한 욕인지 압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굶어도 가르치려 했습니다. 동생의 학비를 위하여 어려운 공장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누나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지식을 많이 쌓고 수준 높은 대학을 나오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어느 대학 나왔다는 것 하나로 평생을 우려먹고 삽니다. 마치 그것이 인생의 소중한 성공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런데 이 전도서는 그것도 헛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내 아들아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 12:13)."
그렇습니다. 많이 배운들 그게 허무한 인생을 이기는 무슨 힘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허무한 세상을 잔뜩 이야기한 전도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허무한 세상을 극복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며 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찌니라(전 5:7)"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분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신앙 없는 즐거움은 자칫 쾌락주의에 빠지기 쉬우며, 하나님 없는 선행은 자기 만족에 그칠 뿐입니다.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이런 인생을 책임 있게 살라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선포하면서 그 하나님을 믿으며, 즐겁게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