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명철
언젠가 우리 가족 행사에 멀리 사는 딸들이 고창의 한 식당을 전화예약한 일이 있었다.
우리가 식당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까 종업원인 듯한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대기실이 어딘지 찾아보았으나 대기실은 없었다. 손님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식당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손님도 별로 없었다. 몇 분인가를 기다렸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나빴다. 행여 우리 식구 중 누가 “왜 대기하라고 했냐.”며 시비할까봐 얼른 들어가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식사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니 그날 음식 맛은 정말 ‘꽝’이었다. 그 뒤 그 집은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지금까지 한 번도 간 일이 없다. 그 집을 가자는 사람이 서너 번 있었는데도 단호히 거절하였다. 불친절로 맛이 달아난 사례다.
나는 사실 맛에 대하여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식당에 갈 때 내가 먼저 어느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것은 어느 집 음식이 더 맛있는지 잘 모르기도 하지만, 난 아무 음식이나 잘 먹기도 하고, 내가 선택한 식당의 음식이 타인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답지 않는 우려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는 오래전 배고픈 시절의 인간 먹고 사는 음식의 화두(話頭)였다. 그러나 현대는 다르다. 모든 것이 풍부한 현재의 우리는 양보다 질을, 특히 맛을 추구한다. 따라서 음식의 맛은 환경 등 여러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기분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기본 맛의 정서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맛 집에 관하여 나는 고정관념을 가져본 적이 있다. 고창에서 맛 집하면 세 식당을 말하곤 했는데, 그 세 집의 특징이 공통적으로 꼭 주인이 나타나 챙겨주는 친절과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음식점에 주인 보고 가는 때도 있는 만큼 주인이 관심을 보이면 자연히 기분이 좋아 없는 맛도 난다는 것이 나의 고정관념이다.
지금도 세 곳 중 두 곳은 여전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맛있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손님도 많다. 그리고 그 집을 자주 간다.
최근에는 지인 따라 고창을 벗어나 ‘복탕’으로 유명한 집에 갔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일행들도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또 한 맛집은 전주 중화산동의 갈비탕 집이었다. 한 동안 전주만 가면 그곳에 가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딸의 입맛에 맡는 맛 집으로 끌려 다니게 되어 안 간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나는 지금도 우리 집밖에 단골 맛 집이 없다. 또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밥과 반찬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내도 집에서 먹기를 좋아하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는 눈치다. 자식들도 오면 집에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손주들까지 훌쩍 커버린 지금, 집안행사가 있어서 다 모이면 집에서 먹고 싶어도 좁아서 못 먹는다.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해야 한다. 자식 손주들 앞세우고 식당으로 들어갈 때는 뿌듯한 마음도 있지만 자식들에게 부담 주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된다.
집 밥만 먹으려 하는 나를 아내는 속으로 귀찮게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집에서 밥을 먹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아내가 건강해야 한다. 그래도 진짜 맛 집은 아내가 챙겨주는 우리 집에서 먹는 집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