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4(금) 민12:1,2,8,9
→ Leadership의 잘못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모세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미리암과 아론이었습니다. 그래서 흉을 봤습니다. '나 같으면 저런 짓은 안 한다. 저건 선을 넘은 짓이다'라는 말을 한 셈인가 봅니다. '나도 그 정도 판단할 자격은 있다'라는 말도 한 모양입니다. 'Leader가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함부로 한, 벌을 미리암이 받았습니다. 두렵습니다. Leader일지라도 사람이니 잘못 할 때도 있습니다. 또는 생각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름'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봅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를 자신들의 권위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도 모세 정도의 leader로 인정해 주시는 증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근거로 삼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최선으로 처리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싸움을 걸었지만, 모세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모세는 가만히 있었는데 하나님은 모세 편을 드셨습니다. 이 부분은 어렵습니다. 나 자신도 무언가를 안다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나도 분별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미리암과 아론이 이 문제를 자신들끼리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으면 달라졌을까요? leader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감히 나서서 비난하고 흉보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인정하고, 혹 궁금하고 불편한 일은 하나님께 들고 가서 여쭈어야겠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아마 별 문제가 없었겠지요? 미리암과 아론은 이미 마음에 불편함이 컸던 데에다가, 두 사람이나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듯합니다. 한 번쯤은 leader를 꺾어보고 싶은 생각, 그것이 문제입니다. 때로는 제 속에서도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주님, 감히 그런 죄를 범하지 않도록 나를 다스려 주소서~!
2025.1.24(금) 민14:42~44
→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들의 힘으로 싸우려 드는 이스라엘입니다. 자신들의 힘과 비교하니 아낙 자손들의 존재 자체가 두렵습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 이번에는 잘못했다고 하면서 용감하게(무모하게) 싸우러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한 행동에 초점을 둔 반응이라고 생각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나는 무력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싸우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데려오셨으니 그 하나님과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지휘를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에 서과장에게 두 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저께 함께 순찰근무를 하면서 google Gemini를 사용해서 성경구절들을 들려주며 bridge 예화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꽤나 신박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장대리까지 함께 스타벅스에서 인간과 하나님 1과의 반을 얘기하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무모하게 한 것인지, 혹은 하나님과 함께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AI까지 동원해서 새로운 방법으로 잘 전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힘으로 한 것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경건의 시간 때 적용을 했고 서과장이 2주째 배가 아픈 상태여서 그에게 선택권을 주었는데, 그가 스타벅스에 가기로 해서 갔고, 적용대로 시행했으니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한 것이겠습니다. 내 생각,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이끄심,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 전투에 나서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내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두려워 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가서 일하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일하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2025.1.25(토) 민16:40,41
→ 이제 막,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일당들이 땅 속으로 빠져 죽었습니다. 제사장이 되겠다고 반역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250명의 leader들도 그들에게 동조하다가 불타 죽었습니다. 두렵습니다. 떨립니다. 그런데 또 많은 무리들이 몰려와서 항의합니다. 그러다 또 죽은 사람들 숫자가 14,700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래쪽에서 보면 늘 윗쪽이 불만스럽습니다. 잘못하는 것 같습니다. 과도하게 자기 이익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만이 쌓이고, 그래서 항의하고 대적하기까지도 합니다. 회사에서도 노동조합에서 회사측에 항의하고 시위하고 단체 행동까지 해서 자기들의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합니다. 누가 제사장이 되고, 누가 지도자가 되고, 누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가지고 싶은 마음, 높은 자리에 올라서 권세를 휘둘러 보고 싶은 마음이 문제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그런 마음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동조자들의 숫자가 좀 되면 자기 정당화가 되어버리는 듯합니다. 숫자가 곧 정의가 되는 듯합니다. 슬픕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슬프고 두렵습니다. 주님, 제게 경외를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주셔서 감히 분수를 넘지 않도록 저를 다스려 주소서! 주님께 꼭 붙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25.1.29(수) 민36:6-8
→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큰 일입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남자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들이 유산을 물려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배우자를 선택할 자유를 잃었습니다.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고 자기 지파 안으로 제한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물려받은 유산이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것이었지만, 크게 보아서는 지파의 재산이었기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고 그 제한 안에서 잘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같은 경우에 있어서 모본이 되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결혼은 자기 감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결정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 연애가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자유 연애를 통해 만난 부부들이 문제를 겪게 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부모나 다른 사람이 배우자를 정해 주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도 어느 정도의 제한 안에서 자신들의 감정(마음에 드는)을 따라서 결혼을 했고, 그것이 정답인 것을 봅니다. 지금 시대에도 그것이 정답일 듯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그래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