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1]
정수원(鄭壽源) - 소명하신 뜻길 따라
3. 목회의 일선으로 나가다
1 1960년도부터 공식적인 40일 전도가 시작됐다. 나는 진천군(鎭川郡)으로 명을 받고 출발하였다. 그날 밤은 갈 곳이 없어서 개천 둑에서 가마니를 덮고 잤다. 다음날 거처할 방을 정한 후 전도에 나섰다.
2 이집 저집을 매일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먹을 것도 없어서 국수와 보리밥으로 아침 저녁의 끼니를 때웠고, 점심은 미싯가루를 먹었다. 40일 동안을 별다른 실적도 없이 보냈다.
3 1960년 10월에 전북 이리(裡里) 지역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해 동기계몽기간에 20여 명을 동원하여 20여 개소에 배치하여 놓고 도보로써 순회하면서 대원들을 지도하였다. 대원들은 대부분이 학생들과 청년들이어서 가는 곳마다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았다.
4 나는 이리교회에 있을 때 36가정 축복을 받았다. 1차 면담 때 선생님께서 한 여성을 가리키며 “너에게 맞는데 어떠냐”고 물으시기에 “좋습니다”하고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 쌍 한 쌍이 결정되는데도 나에게는 소식이 없으니 입술이 바싹바싹 탈 지경이었다.
5 주일 아침이 되자 선생님께서 급히 불러 주셔서 갔더니 상대는 다른 사람이었다. 부모님 앞에서 정해 주신 상대와 처음으로 악수를 교환하였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오직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6 얼마 후 결혼식이 결정되었으므로 반대하는 처가에 가서 인사를 드리니 “물 한 그릇을 떠다 놓고라도 내집에서 해야 한다”고 장인께서 노하셨다. 1961년 5월 15일 새벽부터 33쌍 축복을 준비하여 10시에 결혼식이 거행되었는데 밖에서는 야단들이었다. 그러나 무사히 결혼식을 끝내고 만리동(萬里洞)의 셋집 마루방에서 첫날밤을 밝혔다.
7 수일 후에 집 사람은 전국순회사로 일하게 되었고 나는 이리교회에서 활동해야 하므로 나의 신혼생활은 떨어져 사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생활들이 모두 즐겁고 감사하기만 했다.
証言 - [31]
鄭壽源 - 召されたみ旨の道に付き従って
3. 牧会の一線に出る
1 1960年度から公式的な40日前が始まった。私は鎮川郡に命じられて出発した。その夜は行くところがなくて、小川の堤防でかますを覆って寝た。翌日、居住する部屋を決めた後、伝道に乗り出した。
2 毎日あちこち家を訪問してみ言葉を伝えたが、これといった実績が上がらなかった。食べ物もなく、そばと麦飯で朝夕の食事を済ませ、お昼はミスカルを食べた。40日間をこれといった実績もなく過ごした。
3 1960年10月に全羅北道·裡里地域長として出向くことになった。その年の冬期啓蒙期間に20人余りを動員して20ヶ所余りに配置し、徒歩で巡回しながら隊員たちを指導した。隊員たちはほとんどが学生と青年たちなので、行く先々で涙ぐましい話が沢山あった。
4 私は裡里教会にいた時、36家庭の祝福を受けた。1次面談の時、先生がある女性を指差して「あなたに合うがどうか」と尋ねられ「いいです」と言って出てきたが、他の人たちは一組一組決まっていくのに私には便りがないので唇がかさかさに焼けそうだった。
5 聖日の朝、先生が急に呼んで下さって、行ってみると相手は違う人だった。御父母様の前で決めて下さった相手と初めて握手を交わした。実に歴史的な瞬間だった。ただ感謝するだけだった。
6 数日後、結婚式が決まったので、反対する妻の実家に行って挨拶すると「水一杯を汲んでおいても私の家で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義父が怒った。1961年5月15日未明から33双の祝福を準備し、10時に結婚式が行われたが、外では大騒ぎだった。しかし無事に結婚式を終え、萬里洞の借家の板の間で初夜を明かした。
7 数日後に家内は全国巡回士として働くようになり、私は 裡里教会で活動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私の新婚生活は離れて暮らすところから始まったが、このような生活が全て楽しくて感謝するばかりだ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