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6(일) 선배님이 보내주신 아침편지
근심은 알고나면 허수아비다.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 이외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중에서 -
이외수(李外秀)
번득이는 재치와 타고난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연금술을 펼치는, 기행과 파격의 작가이다. 특유의 괴벽으로 바보 같은 천재, 광인 같은 기인으로 명명되며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인제중학교와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에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했으나 1972년 중퇴했다.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했고 학원강사로 일했으나 1979년부터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전념하였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었고,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 勳章〉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꽃과 사냥꾼〉(1976), 〈꿈꾸는 식물〉(1979), 〈고수〉·〈개미귀신〉(1979), 〈겨울나기〉·〈박제〉·〈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붙잡혀온 남자〉(1980), 〈장수하늘소〉·〈틈〉·〈자객열전〉·〈들개〉(1981), 〈칼〉(1982),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1997), 〈괴물〉(2002), 〈장외인간〉(2005) 등의 소설을 썼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작품에는 구도에의 집념과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 존재의 시원을 묻는 그리움과 아픔이 일관되게 배어 있다. 그의 탁월한 상상력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내용, 신비 체험과 초현실세계를 다루는 묘사적 문체 등은 신비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소설은 40만~5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 〈외뿔〉(2001),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1994),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1998),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2002), 〈뼈〉(2003),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2007), 〈하악하악〉(2008), 시집 〈풀꽃 술잔 나비〉(1987),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2000),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 때까지〉(2006), 문장비법서 〈글쓰기의 공중부양〉(2006) 등이 있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1994년과 2008년에 선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2008년부터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7월 26일(일) 우리 성당의 주임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사목위원분들을 집에 초대했기에, 어제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 그 시각 마나님과 함께 멀리 일산 코스트코를 찾았습니다. 과일과 샤브샤브용 고기, 채소 등을 바리 바리 사갖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왔지만, 정작 내일 위원회에서 발표할 자료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장거리를 다 본 후에 집에 짐을 풀어놓고, 다시 회사로 달려가 성당묘원 재정비사업에 따른 중장기 발전 기본계획(안)을 작성 작업을 하고, 늦은 밤 저녁을 먹고 귀가를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 시각에도 마나님은 요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릉에 전화를 걸어 문어회도 택배하는 등 정성을 다하는 마나님께 다시금 고마움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