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똑바른 길을 갑시다.
우리가 서 있는 곳, 지금 밟고 서 있는 땅!
누구의 피와 누구의 희생으로 지켜진 땅과 하늘인가?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
우리가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
누가 선물한 것인가?
오해하지 말라!
독립이라고 함부로 자랑하지 말라!
4.19구 혁명이라 헛소리하지 말라!
6.25 전쟁으로 공산화가 되었다면, 오늘에 대한민국이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나오라!
누구에 의해, 대한민국, 이 땅의 젊은이가 3년간의 전쟁의 제물이 되어 붉은 피로 물들여지고, 삼천리 한반도가 반토막으로 잘리는 형국(形局)이 발생하였나!
북한 사회주의 공산당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으면 나오라!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듯이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일제와 싸우면 무조건 독립이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중요한 건, 그들의 사상이나 행위 깊은 곳에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공산이념이 물들어 북한 공산당을 조직하기 위한 독립군도 있었다.
진정한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독립을 위해 몸바쳐 전투나 전쟁을 한 독립군이 아니라면 공산당에 가입한 (물든) 자들이었다.
그들의 행적으로 보아야 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 을사 보호조약, 일명 늑약이라고 하는
민족적 원한을
반일 감정으로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군대를 모으고
일제를 침략자라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은 행위자 중에
친일 매국노도 있었다는 것을 방기(放棄)하고, 무슨 사상을 가져 던, 독립이라고만 하면 큰 잘못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한반도가, 민족 간 전쟁으로 토막나는, 한국전쟁의 원인이고
원흉이 된, 공산당 마르스크의 사상을, 레닌이 구체화한, 공산당에 의해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수조국을 되찾기위한 운동자들까지도
암살했다는 것은 일본 놈보다 더 악한 흉악범이다.
공산당에 입당하고 금화까지 받은 자들은
독립운동한 자들이 아니고, 일본을 편들어준 친일파이고, 이민족의 전범으로 처단해야 할 자들이다(홍범도).
예를 들자면 이런 자들이다.
자유시 참변을 일으키고, 공산당에 입당한자, 김일성, 김홍도 같는 역적
들이다.
또 김좌신 장군을 암살한 고려공산 청년회 회원 이었던 자들과 박상실 자객과 같은 자들이다.
이러한 역적들에 의해 해방 이후 탄생한
비운의 6.25 한국전쟁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착실하게 찾고
그에 합당한 법과 원칙!
공의와 정의에의해, 평가가 이루어지고
합당한 권리와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독립운동과 애국지사들을 존경하시는 분들이여!
제대로 명예의 전당에 올리겠다면, 새롭게 제대로 정립해라!
공산이념으로 독립운동을 한 자들과, 순수한 독립운동가를 암살한 자들을 색출하라!
공산당에 입당한 자들! 이들이 확실한 친일파라 지적한다.
독립운동을 저지 압박하고 암살한 사실 앞에 무엇이 진실인가?
친일이 이다, 독립이다, 광복이다, 휘저어 감싸서, 뭉뚱그려 광복회라 하지 마라.
이제라도 진정한 조국, 민족과, 자신의 가정과 후손에 평화와 자유를 위한, 독립이고 싸움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생각하며, 진정한 독립 정신적인 행동이고 사고(思考)이었나를 분리하여야 할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이땅에 자유와 평화를
후손에게 넘겨줄 수 있는 신중한 자세로 평가하고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을 주문하며, 여기 몇 가지 문헌을 참고하여 올린다.
우리가 잠시 격은 공산당의 사회주의, 그리고 현재 북한 동포가 격는 사회주의를 가볍게 보지 말라?
역대 독립운동가 중에는 이런 분도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1907년 조선 군대 해산명령에 따라 흐터진뒤
일본에 조선을 강제 병합하므로 불의에 굴복의 표시로
일본의괴수, 이토히로브미(이등방문)을 1909년 10월 26일 할빈역에서 저격한 안중근의사와 같은 분들이, 바로 독립지사 선열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홍범도는 아니다.
본인(홍범도)이 남긴글처럼
1922년 1월 소련에 입국을 신청하고, 소련으로 들어간 뒤, 공산당에 입당과 레닌을 만나고, 레닌으로부터 금화와 은으로 새겨진, 마우져C96 권총을 선물로 받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의 괴수, 6.25 의 전범.
김일성은, 마르크스의 사상 레닌의 체계화된, 프롤레타리아(재산의 공동소유)의 창시자를 신봉한 더러운 흉악범과 무엇이 다른가? 이다.
홍범도, 이런 자를 독립운동가라고, 한다면 북으로 가라!
북한이 아닌!
자유대한민국에서 있을수 없는 것이다.
이런자를 구분 못 한, 문재인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 사회주의 공산당과 맞서 싸워, 수호한 대한민국의 후세이다.
분명한 것은!
아버님(선친)의 적이고, 대한민국의 적이며!
한 많은 세상을 살게 한, 우리의 영원한 적이며 원흉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
독립운동과 공산당의 행위를, 바로 모든 국민께,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정확히 알려 한다.
진정한 독립운동가라면
안중근의사와 김좌진 장군, 이장녕(李章寧), 김규식(金奎植), 최해(崔海), 정훈(鄭勳), 이범석 등같은 분들이어야 한다.
혹시 이들중에도
공산당에 입당한 사실이 있다면 그는 조국을 배반한 것이다.
"김좌진 장군은
1918년 길림에서 무오 독립선언에 서명하였다. 1919년 북로군정서 사단장과 사관연성소 소장을 겸임했다.
1920년 10월 21일 청산리 전투를 지휘하여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김좌진은 1921년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했다.
1921년 우수리강을 넘어 이만까지 갔다가, 다시 북만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자유시참변은 겪지 않았다.
1925년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직 겸임한 신민부를 창건하였다.
또한 북간도 목릉현에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부교장으로서 정예사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무위원으로 임명했으나, 취임하지 않고 독립군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최후
1928년 한국 유일 독립당을 조직하였고 1929년 한족 총연합회 주석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었고,
공산주의 선동에 방해되는 이유로
1930년 1월 24일 북간도 중동선 해림현 산시역에서
김일성(金一星, 본명 김봉환)의 사주를 받은 고려공산청년회 회원
박상실(朴尙實, 일명 : 尙範, 金信俊)에게 피살되었다."
"김일성은 사건 직후 이붕해(李鵬海, 1899~1950)에게 살해되었으며,
박기봉(朴奇峰)에 의하면 만주공산주의 단체의 기관지인 「적기(赤旗)」지(誌) 1930년 3월호에 암살 교사범 김일성(金一星·김봉환)의 죽음을 추도하는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한편 중외일보
1930년 2월 24일자 기사 「배후(背後)에서 권총(拳銃)으로 김좌진(金佐鎭)에 하수(下手)한 김일성(金一星)」에 나오는 김일성은 단순한 성행 불량자로 김봉환과 다른 인물로 보이며, 그가 단독으로 암살을 실행한 것으로 나온다."
"또 암살범 박상실(朴尙實, 일명 崔永錫)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위해 봉천으로 이송 중이라는
1931년 9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가 있고,"
"『삼천리』 1932년 3월호 기사
《남편 김좌진의 초혼, 미망인 나혜국 여사의 방문기 (男便 金佐鎭의 招魂, 未亡人 羅惠國女史의 訪問記)》에도 "박상실을 잡아서 봉천(奉天)에 보내어 사형(死刑)에까지 처(處)하게 만들었다"고 했으므로, 그도 무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월간조선이 입수한
1931년 3월에 작성된 일본 하얼빈 총영사관의 문서
「공산주의 선인(조선인 : 鮮人)의 행동 개황」에는
「공산계통 불령선인단(不逞鮮人團) 조선인 주중국청년총맹원(駐中國靑年總盟員) 김신준(金信俊)은 24세로 (1930년) 1월24일 북간도 산시참(山市站) 남방 조선인 부락에서 민족계 불령단 한족(韓族)총연합회 수뇌 김좌진(金佐鎭)을 살해했다」고 적혀 있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김신준」과 「박상실」을 동일인물로 간주해왔지만 이에 대한 명백한 근거는 없으며 암살범 김신준은 전혀 다른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日本 외무성 외교사료관 문서 입수 / 최종확인 : 김좌진 암살범은 고려공산청년회 金信俊 월간조선 2007년 10월호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의 배후조종說」은 확인 안
근래에 중국 연변 학계에서는 김좌진 암살범은 『조선공산당 아성(阿城)총국에서 파견한 무장공작대원 공도진(公道珍)』이라고 말한다.
공도진은 이복림(李福林,1907 ~1937)의 본명이며,[20] 그는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산하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사령 자오상즈(趙尙志, 1908~1942)의 신임을 받던 최측근 인사였는데, 1937년 전사했다.[16] 박상실이 공도진(이복림)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또한 연변에서는 암살범이 김동식(가명·이성림)이라는 주장도 나와 있다."
"김좌진은 사망하기 직전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란
말을 남겼다.
사후 3년 뒤, 아내 오숙근이 유해를 수습하여 고향 홍성에 임시로 매장하였다가 해방 후 김두한에 의해 정식으로 안장되었다."
감사합니다.
추신 부탁합니다.
그냥 할 말이 없으면 가만히 있으세요
같은 공감에 글만을 부탁 합니다.
2023년 11월 20일 다솜이 이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