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누워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소 섬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우도 올레길을 걷는 것을 목적으로 정하고 출발지에서 스템프를 찍고 첫 발걸음을 떼었다. 막 해변 길로 들어섰을 때다. 이른 아침부터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물밑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을 어촌계에 넘겨주고 있었다. 전과 다르다면 승용차나 오토바이에 테왁과 망사리를 싣고 쌩한 속도로 집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그녀들의 모습은 활기차고 당당하게 보인다.
광활한 바다 밑은 해녀들이 암소처럼 충실하게 일하는 삶의 현장이다. 그녀들은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하고, 추위와 차오르는 물 숨을 참아낸다. 숨을 모아 잠수를 반복하며 전복과 소라, 해삼과 성게, 문어 등을 망사리를 채워 자식을 교육시키고 가정을 지켜낸다. 해녀들의 물속 삶이란 잠깐만이라도 긴장을 놓을 수도 느긋할 수도 없다. 오로지 암소처럼 억척스럽게 물질을 해야 한다. 바다 풍경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해서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지 싶다.
올레 리본을 확인하며 걷던 길을 멈추었다. 검은 소가 가는 길을 막고 섰다. 이곳에서 특별히 보호받는 귀한 소란다. 처음 보는 검은 소가 신기하다. 큰 눈만 껌벅이며 비켜줄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까맣고 도도하며 큰 덩치에 잔뜩 주눅이 든다. 겁먹은 내가 소를 피해 둘러서 갈 수밖에 없다.
우도의 주인인 황소를 만났다. 여기저기 방목 중인 누런 소들이 초록 풀이 무성한 초원에서 한가롭다. 둘러친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황소 가까이 다가선다. 사람들이 소를 볼 때는 맨 먼저 뿔을 보리라 짐작된다. 황소는 뭐니 해도 뿔이 잘 생겨야 한다. 강하게 보이는 소뿔은 우직하고 힘이 센 남성미가 느껴진다. 마주 본 소 역시 그랬다. 늠름하고 기골이 장대하고 윤기마저 자르르하다. 그런데 모습과 달리 맑고 선한 눈빛이다.
얼마 전 대기업 회장이 생전에 소장했던 유명 작품 일부를 국가에 기증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면에서 잠깐 나의 눈길을 끄는 그림은 굵고 기운찬 붓질로 그려진 이중섭의 걸작 황소였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흰 소도 그림으로만 볼 수 있었다. 이중섭이 제주도에 살았을 때 아마도 우도의 소를 모델로 그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옛 농부는 논밭을 일굴 때 소가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는 농촌도 여러 종류의 농기구가 개발되어 사용되지만, 옛날 시골에서 소는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다. 우리 집에는 소를 키우며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농사철만 되면 엄마는 애를 태웠다. 소가 없고 논밭을 갈 장골도 없어 다른 집 농사일이 끝나고서야 소도 일손도 구할 수 있었다. 그때 엄마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있고 소 있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남편은 소 그림을 그렸다. 소 떼들이 드넓은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별 어려움 없이 두 남매는 석사과정까지 무난히 마치게 되었다. 송아지가 엄마 소 젖을 먹는 모습과 자유롭게 노는 어린 송아지를 지켜보고 있는 어미 소도 그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식 사랑은 매한가지다. 그때 겉으로 별 표현이 없었던 그는 무뚝뚝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가 붓질을 하며 나에게 들려주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칠 남매의 막내로 자란 그가 선명하게 떠올린 것은 세 명의 형님들이 아니었다. 몸집이 가냘픈 작은 누나였다. 누구보다 오빠가 많았지만, 누나에게는 세 마리 소를 몰아 풀을 뜯어 먹이는 책임을 지웠다. 더구나 천방지축인 송아지까지 챙겨야 했다. 여리디여린 몸으로 힘들었을 누나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형제 중에서도 유독 작은누나와의 정이 돈독했다. 만덕터널이 뚫리고 내가 결혼했을 때까지만 해도 시댁 마구간에는 소가 여물을 먹고 있었다.
그는 소를 부려 농사를 지었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때 가까이했던 소의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소들이 농번기가 끝난 뒤 비탈진 초지에서 방목으로 여유롭게 풀을 뜯는 풍경을 열 구도를 잡아 그렸다. 사람들은 찌든 도시 생활에서 서정적인 그림을 보며 옛 고향이 그리워서인지 작품을 구매해 갔다.
봄바람에 떠밀려 걷잡을 수 없는 마음에 떠나온 곳이다. 일찍 듬직한 남편을 잃어 일손이 없고 논밭을 갈 소가 없어 애태우던 너무 젊고 고왔던 내 엄마의 모습도, 자식들 등록금 마련으로 캔버스에 끝없이 붓질을 해대던 그도 떠났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은 컸다. 막막하고 허탈했던 지난 시간 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언제 어디서라도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기에 영원히 함께하듯 추억할 수 있다.
우도에서 소를 보는 순간 옛 생각에 잠시 빠졌다. 우도봉 경사진 ‘쇠머리오름’을 한 계단씩 오른다. 이미 먼 길을 걸어 낸 터라 발길이 무겁고 몸이 슬슬 지쳐가지만, 고개를 들어 정상까지 올라가야 할 높이를 가늠해본다. 올려다본 정상에는 생각과 달리 하나의 등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뜻밖에 하얀 등대와 빨간 모자를 쓴 등대가 마치 황소의 뿔처럼 나란히 서있다.
궁금한 마음에 무겁던 발길이 가벼워진다. 마지막 오름의 계단을 올라 정상 초입에서 먼저 하얀 등대와 마주한다. 제주 최초의 등대다. 오랫동안의 소임은 곁에 선 현 등대에게 넘겨주고 이제는 등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치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꼿꼿한 선비처럼 당당함이 느껴진다.
몇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 서 있는 현 등대는 IT 기술을 접목하여 광력을 증강시켜 모든 기능이 최신 시설로 갖추었다 한다. 요즘 한 젊음이 정치에서 대세가 되듯 등대 모습까지도 현대에 걸맞게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이제는 멈춰버린 구 등대를 대신하는 젊은 등대가 밤마다 강렬한 빛을 먼바다까지 쏘아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뱃길을 밝혀주는 임무를 수행한다. 구 등대와 현 등대가 우도의 상징처럼 우뚝 서서 바다를 지킨다.
소의 뿔 사이에 또 하나의 뿔로 서 본다. 사방으로 탁 트인 파란 하늘과 바다가 눈부시다. 깎아지른 벼랑 위로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어우러지니 수려한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언젠가 다시 와서 마주 서고 싶은 우도 등대다. 정상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선다.
출발하는 여객선에 올라가기 전 고개를 돌려 우도봉을 바라본다. 오늘 밤도 제주 우도봉에는 변함없이 두 개의 뿔 우도 등대가 강렬하고 힘찬 섬광을 쏘아댈 것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