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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의 진짜 원인은 ‘제주도 反日정서’였다고? [유석재의 돌발史전]
심지연 교수가 말하는 ‘4·3 원인의 지정학적 분석’
유석재 기자
입력 2023.04.07. 00:00
업데이트 2023.04.0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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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국군이 '무장공비와 함께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주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국군이 '무장공비와 함께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주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해마다 4월 초만 되면 늘 돌아오는 기념일을 계기로 정쟁이 벌어집니다. 제주 4·3 사건을 둘러싼 공방입니다. 4·3은 수많은 무고한 국민이 국가의 폭동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불행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020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4·3 추념식에서 했던 말처럼 4·3을 ‘통일정부 수립 운동’이라고 평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통일정부 수립’이란 말은 4·3 무장폭동을 일으켰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명이 내건 슬로건이었고, 그들의 목적은 5·10 총선거 방해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수립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무고하게 희생된 줄 알았던 제주도민 2만여 명(2003년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이 사실은 남로당에 포섭된 사람들이었다’는 엄청난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해석입니다. 그런 말을 5·10 총선거에 의해 수립된 나라인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이 했다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문재인 전 대통령이 3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령광장 추모제단에서 4·3 영령을 위해 참배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2018년과 2020년, 2021년 세 차례 4·3 추념식에 참석한 바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3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령광장 추모제단에서 4·3 영령을 위해 참배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2018년과 2020년, 2021년 세 차례 4·3 추념식에 참석한 바 있다. /뉴시스
그런데 4·3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분석할 때만 가능하다는 의견이 학계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정치학회장, 정당학회장과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낸 정치학계의 중진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입니다. 그의 의견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4·3 사건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왜 문제라고 보는가.
“최근 들어 이념적인 관점에서 제주 4·3사건을 분석함으로써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이념에 몰입될 경우, ‘단독정부’ 또는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포용을 불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비극을 오로지 민족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축소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4·3의 ‘지정학적 상황’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 즉 일본의 종전(終戰) 대책과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공 및 상륙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이태경 기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이태경 기자
-일본의 종전 대책과 제주도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은 대미전(對美戰)과 대소전(對蘇戰)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재편성 및 재배치에 착수했다. 대미전에 대비해 대본영 직할부대로 제17방면군을 신설해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중부 이남을 작전 지역으로 맡도록 하고, 중부 이북 지역은 대소전을 대비하는 관동군이 맡도록 함으로써 이미 한반도 분할의 단초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 군사적 구도 속에서 제주도는 어떤 위치에 놓였던 것인가?
“1945년 3월 12일 대본영 작전회의에서 제17방면군에 보낸 ‘7호 작전’에 따르면, 일본은 미군이 북규슈(北九州) 상륙을 위해 8월 이후 제주도를 점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초해 3월에 제96사단을, 4월에는 제58군사령부를 제주도에 배치했다. 4월 이후에는 제111사단을 만주에서 제주도로, 제121사단을 하얼빈에서 제주도로, 독립혼성 제108여단을 일본 본토에서 제주도로 이동 배치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만든 제주도 가마오름 동굴진지.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만든 제주도 가마오름 동굴진지.
-그렇다면 대단히 많은 숫자의 일본군 병력이 제주도에 배치됐던 것일 텐데. 전략적으로 동서로는 중국과 일본 사이, 남북으로는 오키나와와 한반도 사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 제주도가 전쟁 말기에 아주 중요한 지점으로 떠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1945년 7월에 나온 일본군 제17방면군의 정세 판단에 따르면 역시 미군이 규슈에 상륙하기 전에 먼저 제주도를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파악했다. 1945년 2월 제주도 주둔 일본군은 약 1000명에 불과했으나, 8월에는 제58군사령부 산하에 6만여 명이 주둔할 정도로 병력이 폭증했다. 이는 당시 제주도민 22만 명의 28%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후에도 대본영은 미군이 제주도를 대일 공격기지로 삼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 제주도에 병력을 증파할 계획까지 수립했을 정도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전경.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군의 군사용 비행장이었다. /뉴스1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전경.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군의 군사용 비행장이었다. /뉴스1
-지금도 제주도 곳곳에서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군사기지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에 일본군은 한라산 중턱에 자동차 도로를 건설하고 제주도 각지에 토치카를 비롯한 방어기지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과 노력 동원이 강요되고 재산상으로도 막심한 피해를 주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 때문에 제주도민의 반일(反日) 감정은 육지의 그 어느 곳보다도 높았을 것이며, 이러한 분위기가 8·15 해방 이후에 분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8·15 이후의 상황은 어떘는가?
“일본의 항복 직전에 소련군이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소련군은 8월 8일 밤 11시 50분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로 진공한 후 일본군과 전투하며 남진했다.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은 제25군으로 병력은 약 12만 5000 명 정도였다. 8월 25일 조선민족함경남도집행위원회(8월 30일 함경남도인민위원회로 개칭)가 결성됐고, 치스차코프 대장의 명령으로 함경남도의 치안권과 행정권을 이양받았다. 이후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등 소련군이 주둔한 순서대로 각 지방에 인민위원회가 결성돼 그 지역의 행정권과 치안권을 접수했다.”
-미군이 점령했던 남한 지역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
“그냥 점령만 한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북한 정부’를 세웠다는 것이다. 1945년 10월 8일 소련군의 지휘 아래 평양에서 ‘북조선5도인민위원회대표대회’가 개최돼 각 도 간에 당면 문제에 관한 유기적 연락을 위한 대책을 강구했다. 1945년 11월 19일 북한 5도의 연락기관으로 ‘북조선행정국’을 평양에 설치했고 그 산하에 산업·교통·체신·농림·상업·재정·교육·보건·사법·보안의 10개국을 설치했다. 급기야 1946년 2월 8일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설치했다. 1949년판 ‘조선중앙년감’ 68쪽은 이를 ‘행정적 주권기관이 조직’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실상 단독정부가 수립됐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한 뒤 북한 주민들이 스탈린과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이선근 국방부 정훈국장이 평양에서 수집한 사진 자료이다.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한 뒤 북한 주민들이 스탈린과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이선근 국방부 정훈국장이 평양에서 수집한 사진 자료이다.
-같은 시기 38선 이남에서 미군은 뭘 하고 있었나?
“1945년 9월 6일 미군의 선발대가 김포 공항에 도착해 총독부 관계자와 제반 문제를 협의했다. 9월 8일 오후 1시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24군이 인천 월미도에 상륙했다. 9월 9일 오전 8시 서울에 도착한 미군은 오후 3시 조선총독 및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접수하고 태평양 미 육군사령관 명의의 포고에 따라 군정 실시를 선포했다. 군정을 실시한 점에서 인민위원회를 통해 간접통치를 한 소련군과 차별성을 나타낸다.”
-미군 상륙 이전에 남한엔 건국준비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았었나?
“서울에서는 여운형 주도로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돼 일정 부분 치안 유지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고, 미군 본진이 상륙하기 전인 9월 6일 건준은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그 하부조직으로 인민위원회를 설치했다.”
-미군과 마찰이 있었을텐데.
“미군은 서울에 본부를 두고 지방에도 미군을 보내 지방인민위원회의 해산에 착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인민위원회와 미군의 마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제주도의 경우 미군의 도착이 늦어져 1945년 9월 28일에서야 일본군의 항복조인식이 거행됐다. 미군의 진주가 늦어진 만큼 인민위원회의 조직이 강화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됐던 셈이다.”
-1946년 2월 사실상의 북한 정부가 수립된 뒤의 상황은?
“북한에 단독정부 성격의 기관이 수립되자, 지방을 순회하던 이승만 박사는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남한에도 이와 유사한 기구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발언했다(정읍 발언).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미군정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설립을 추진했다.”
이승만 박사의 정읍 발언을 보도한 1946년 6월 4일자 서울신문 1면 기사.
이승만 박사의 정읍 발언을 보도한 1946년 6월 4일자 서울신문 1면 기사.
-순조롭게 설립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파업을 주도했고, 각 지역에서 박헌영의 노선에 동조하는 세력이 파업에 동참함으로써 파업은 전국적인 규모의 항쟁으로 변질됐다. 경찰과 미군이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의 대부분을 체포·구금했다. 이로써 항쟁에 나섰던 세력은 크게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기록상으로 볼 때 제주도는 육지와 달리 ‘파업투쟁’이나 ‘군중투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제주도는 왜 그랬던 것일까?
“기본적으로 제주도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일제의 강압과 착취가 다른 지역보다 심했기 때문에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요구가 더 강했던 것이다. 해방 후 이러한 정서를 반영해 조직된 단체가 인민위원회다. 상대적으로 미군의 진주가 늦어짐에 따라 인민위원회 조직이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10월 항쟁’의 여파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도 내 인민위원회 조직이 온존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셈이었다. 이러한 제반 지정학적 요인이 중첩돼 5·10선거에 즈음하여 폭발한 것이 바로 4·3사건이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지정학적 요인이 촉발했던 강한 반일 정서가 4·3 사건의 큰 원인이 됐다는 말인가?
“다른 지역보다 반일 정서가 강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의 정서에 반해 미 군정이 친일 세력을 잔존시키는 정책을 고수한 게 사건의 일차적인 원인이었다. 제주도의 특성이 반일 정서를 반영한 조직에 비교적 우호적인 지역임을 고려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진주 이후 이러한 정서에 반하는 질서를 강요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당시 남로당 세력이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반일 정서를 강하게 반영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온존해 있었기에, 미 군정이 추진하는 5·10선거를 반대하는 세력의 선전과 활동이 비교적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지역이 됐다. 그래서 제주도에선 남로당이 주도하는 선거 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제75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뉴스1
제75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뉴스1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참혹한 희생이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선거 반대 투쟁을 진압하는 과정이 제주도민의 정서에 어긋나는 비이성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이었다. 결국 막대한 희생자가 억울하게 발생하는 민족사적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4·3 사건을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단독정부 수립 세력’과 ‘통일정부 수립 세력’의 대결에만 초점을 두고 상대 진영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다시는 외적인 요인에 의해 민족적 비극이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민족적 비극을 민족적 자산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혜를 모을 때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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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進韓國
2023.04.07 00:49:48
요컨대 제주도에 좌파 인민위원회가 세력이 강했는데, 육지에서 미군과 경찰이 들어와서 우파 정부를 세우려고 하니, 좌파가 폭동을 일으켰다는 거죠. 결국 태영호 의원 말이 맞는 거죠. 폭동을 을이킨 건 김일성 지령을 받은 좌파였죠. 그러나 미군과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의 피해도 컸던 거죠. 이런 양면성이 있죠. 그런데 우파는 좌파 폭동을 강조하고, 좌파는 양민의 피해를 강조하죠. 그러니 서로 상대가 틀렸다고 하죠. 이런 상태에서는 대통령이 4.3 기념식에 참석해서는 안 되죠. 지금 중요한 거는 우파나 좌파나 공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4.3 진상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거지요. 그래서 누구나 인정하는 4.3 보고서를 만들어 놓고 나서 4.3의 성격을 올바르게 규정해야죠. 그걸 국민과 제주도민에게 교육해야죠. 그게 중요한 일이지 대통령이 4.3 기념식에 참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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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네우라
2023.04.08 11:28:04
좌익들은 4.3이 통일정부 수립운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파를 배제하고 남북의 좌파들이 연방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흑심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심지연은 지정학적 요인을 거론하며 제주는 원래 반일정서가 강한 곳이라면서 외적 요인에 의해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을 맺는데,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남북 사회주의자들이 대동단결해 외세를 배격해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반일을 자연스레 반미로 연결시키는 수작이다. 이런 자들이 4.3에 대한 역사 해석을 장악하고 있으니 우리가 압도적인 경제력을 갖고도 밀리는 것이다.
메가네우라
2023.04.08 11:20:47
제주라는 섬의 민심은, 반일정서가 아니라 본토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곳이다. 조선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희박하니 외세인 일본제국에 대해선 오히려 친화적이었다. 김정은의 외가가 제주 출신 재일교포라는 게 뭘 시사하는가. 반일감정 드센 사람들이 일본에 이주할 생각이나 했겠는가. 본토에 대한 거부감을 이용해 남로당이 반미투쟁을 선동한 것이 4.3 사건의 정체고 이를 단선정부 반대 통일운동이라고 미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체제로 통일을 했어야 한다는 건데?
사실과자유
2023.04.07 07:56:49
4.3해결은 매우 간단하다. '반란주동자'와 '적극가담자'들을 '무고한 희생자'들과 분리해서 보면 된다. 문재인을 비롯한 종북좌파들은 그 기간에 죽은 자들을 이것저것 따지지도 묻지도 멀고 무조건 모두 '희생자'로 보자는 것. 실제 위패가 구분없이 평화공원 한 곳에 있고, 보상금도 구분 없이 다 주고 있다 . 마치, 현충원에 국군과 인민군 다 모아서 추모하자는 말과 같다...
최용수
2023.04.07 05:14:14
보고서는 다시 만들 필요없음.
木子
2023.04.07 01:32:02
5 10 선거 반대를 위한 남로당의 폭동으로 43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패륜 무뇌아 問題人, 단군 이래 최대 거짓말쟁이 철면피 사기꾼 다중인격 인간말종 찢災命, 더불어공산당 놈연들과 좌아빨 개돼지들 중 43사태를 유발한 공산주의자에 대한 비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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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나게임
2023.04.07 00:39:36
기본적으로 이 나라의 사학꽈 자체가 비정상인들의 집합임 이거아말로 지정학적으로 당연한 일인데..다른 전공들은 지정학적으로 직장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사학꽈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소련혁명사나 배우고 졸업하니 저런 개 어쩌구 소리나 양산하지.그래서 반일투쟁으로 정부수립 반대하였다?이게 무슨 개 애수작인가?저 놈부터 사상 검열이 필요한 기OOO놈도...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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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매허
2023.04.07 02:18:54
아니 4.3을 통일 운동이라 보면 한국전쟁도 통일전쟁이냐? 단순하게 봐라.. 좌익 폭동에 과잉진압이다. 이걸 통일 운동이라고 가르치는 교사들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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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2023.04.07 04:32:25
어쨌거나 시작은 남로당의 폭동이었다. 그폭동이 일어나지않았다면 무고한 양민들의 죽음은 없었을거다. 원인을 제공한자들이 욕을먹어야지 원인제공한자들은 감추고 희생당한것만 부각시키는건 역사가아니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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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unny
2023.04.07 02:36:20
해괴망칙한 논지로 가스라이팅하고 있구만.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어 이미 일본군들이 다 빠져나간 시점인 1947년 4월3일에 터진사건인데 웬 반일?통일정부가 아니라 공산주의 적화통일정부가 적확한 표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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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담만설
2023.04.07 05:36:40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요. 폭동 주동자 김달삼은 지리산 빨찌산 이현상에 필적하는 공산주의자임을 제주도민은 잘 알고 있습니다. 태영호의원의 발언을 적극 지지합니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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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용수
2023.04.07 05:08:26
이사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나. 반일정서가 강했다고? 남로당의 만행에 구실을 주는구나. 제주도는 반역 기질이 다른곳보다 많아 남로당의 주장에 따르는 사람이 애초에 많았고, 지역특성상 산악지역에서 남로당 무장대가 주민을 통제하기가 쉬었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역짓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이 먹도록 연구한게 폭동의 원인이 반일 정서라고?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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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1
굵은비
2023.04.07 00:11:31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주도 4.3 사건에 영향을 준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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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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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2023.04.07 05:17:45
이자가 뜬금없이 반일정서가 강했다고? 지정학상 오히려 친일정서에 찌든 상태였습니다
메가네우라
2023.04.07 04:53:45
못살고 가난한 시절에는 찍소리 못하던 좌익들이 나라가 이제 좀 살만 해지니 혈세에 빨대 꽂고 빨아먹겠다는 게 제주 4.3을 신성불가침 기지화 공작의 본질이다. 표가 아쉬운 원희룡이 그 짓에 앞장섰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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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통치
2023.04.07 07:05:24
심지연이라는 롬은 도대체 사상이 어떤 자인가?!! 반일의식으로 물타기 하면 4.3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된다!! 조선일보가 너무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싶다!! 4.3 사태의 본질은 일제시대에 만연하기 시작한 조선공산당 역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심지연 이 롬은 조선공산당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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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심가득
2023.04.07 07:17:30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부산이나 마산에도 대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한 군경의 형태는 비슷했다. 그래도 부산 마산에서는 광주에서와 같은 폭동이 일어나지는 않았었다. 왜 제주도에 남로당이 그렇게 기승을 부렸는지 이제야 알거 같기도 하다.
답글작성
18
1
사실과자유
2023.04.07 07:45:03
제주도민이 반일사상 때문에 4.3사건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재일교포 중에 제주출신 비율이 가장 많다. 섬이라는 지리적인 요인과 한라산이라는 울창한 숲이 있어서 남로당 빨치산들이 진지를 구축하기에 안성맞춤 이었기 때문이다. 4.3 주동자인 김달삼이 일본에서 대학 공부하고, 육군장교로 임관했는데..반일? 정말 먹물의 식자우환,곡학아세.
답글작성
17
1
올드피터팬
2023.04.07 09:31:24
4.3사건은 정부가 수립되기 전 3.1절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가 발단이 되었지만 당시는 몇명이 희생되는 것으로 수습이 되었다. 문제는 남로당이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그 불씨를 살려 1달뒤 무장폭동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찰과 주민들이 희생 되었다는게 요지다. 당연히 무고한 사람도 있었을거다. 왜냐하면 경찰서가 습격을 당하자 경찰도 겁에 질려있었고 피아구분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곧 정부가 수립되고 토벌중 6.25가 일어나고 남로당은 남쪽에서 동조한다는 구실로 극렬하게 저항하다 토벌된거다.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마치 가만히 있는 주민들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으로 몰고 가는 게 맞는 얘기인가? 더구나 4.3정신은 또 뭔가? 정부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킨게 4.3정신인가? 운동권들의 정신 깊숙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정서가 있다는건 다 아는 사실이다. 즉 통일조선의 정통성은 김일성에게 있다는 얘기다. 이를 에둘러 강조하고 싶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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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탕집 주인장
2023.04.07 09:40:41
4.3사건을 항쟁으로 이야기 하는 놈들은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놈들이다. 한마디로 정치권에 머물러서도, 정권을 잡아서도 안되는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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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kang
2023.04.07 04:59:54
관리자가 (비속어/비하) 사유로 100자평을 삭제하였습니다
성천
2023.04.07 07:37:20
당신 말대로면 남노당을 정당화 하는 친북세력인 문재인 세력들과 똑같은 말을하네.단독정부 수립 통일정부 수립대 싸움. 당신같은 사람 때문에 북한 김정은 이에게 잡아 먹힐거야. 바로 우리민족 끼리 아닌가. 이런 사이비 학자들괴 판사.OO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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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애니멀
2023.04.07 07:29:32
무의식중에 나오는 문재인 발언 보면 북한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을 부르는 말들이 많다 문재인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말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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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2023.04.07 10:59:15
인터넷 정보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라. 4.3사건은 공산당이 회책한 사건이 명백하다. 모든 사건의 속에는 희생이 따른다. 그렇다고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만들려는 사회는 폭력을 쓸 수 밖에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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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네우라
2023.04.07 08:58:22
심지연의 이론에는 미군이 친일파를 두호했기 때문에 제주도민의 반일성향이 반미투쟁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공산당의 선동에 넘어간 제주도 사람들의 우둔함은 간과한다. 허면 미국도 제국주의 국가란 얘기? 천황제 일본제국을 꺾은 게 미국이잖아! 결국 대한민국은 미제의 꼭두각시 이승만이 친일파의 협력으로 만든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는, 스탈린-마오-김일성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망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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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부스
2023.04.07 11:28:42
제주도의 반일정서보다 미군정이 제주도에 늦게 진입했고 인민위원회가 도민에게 공산주의의식화 시간적여유를 벌어주었다는 결론. 상당수제주도민이 이미 공산주의에 동조내지 호의적인 상황이니 군경의 비협조적이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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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칠갑
2023.04.07 09:16:32
역사는 되풀이 된다 국민들은 문재인이 말 들어면 안된다 듣다가 이런 일이 발생하면 몰살 당한다/ 문재인은 이북에서 온 x이고 향수때문에 남한 국민을 불모로 선동하고 있다/ 절대로 이 자식 말들어면 이제는 전부 몰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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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부스
2023.04.07 11:24:49
결국 근본원인은 여운형 박헌영주도의 인민위원회 설치로 남한의 공산화추구로 미군정과의 충돌 이 발생했는데....제주도의 반일정서는 인민위원회가 제주도에 뿌리내리기 쉬운 토양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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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nut
2023.04.07 09:52:04
43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도 모르며 43이 마치 무슨 민주화 투쟁인 줄 알고 있는 아해들이 대부분이다. 12곳의 지서 습격과 우익단체습격을 민중봉기라는 단어로 미화하고 화해와 상생이란 구호로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 화해는 분열조장으로 바뀌고상생은 좌생으로 변질되 43이 좌좀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제라도 좀 제대로 알리고 폭동인지 민중봉기인지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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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르자브종
2023.04.07 17:24:51
북한이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북에 단독 공산정권을 세웠는데, 남한 자유진영이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려 하니 그것을 막으려고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하고 남파된 김달삼(후에 북한 인민영웅이 됨) 같은 간첩들이 주동하여 여기저기서 폭동과 습격을 일으켰다.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민관군 진압대가 만들어지고 토벌하는 과정에서 억을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 한것. 아군 적군 피아식별이 어두운 아차!하면 죽을수 있는 극도의 혼란속에서 의심가면 서로가 무차별 살육이 일어난것. 안타깝고 슬픈 역사이며 억울한 희생자들은 추모하고 국가가 보상해줘야 하지만, 그 원인과 역사의 기록은 분명히 확실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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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팔
2023.04.07 17:04:29
좌파는 항상 왜곡하고 조작한다. 자기들의 적화전술을 위해서라면 부모와 자식도 부인할 인간들이다. 그들의 주장 하나도 믿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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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즈
2023.04.07 14:29:03
좌파의 시각은 항상 자기들은 아무 짓도 안했는데 우파들이 못살게 굴었다, 억울하게 학살당했다, 자기들은 정당하고 하등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개뿔. 너희들이 말도안되는 주장과 선동, 습격, 공격을 하니 과잉대응하다 발생한 사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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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구렁이
2023.04.09 14:42:25
무슨 말도 안되는 걸 분석이라고 하냐? 북한 지령에 의한 제주도 남로당의 반란이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대량으로 희생되었다는 게 엄연한 사실인데..무슨놈의 통일정부수립이 왜나오고 지정학적인 반일정서가 왜 나오냐? 문재인이는 4.3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써주는대로 읽었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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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도사
2023.04.09 13:26:37
세계사적 흐름을 못읽고 무조건 미국에 반기를 들었으니 철저하게 패퇴한 곳이 제주(40년대), 광주(80년대)라는 거지. 그리고 2022년 대선의 더불어더럽당 세력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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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고선나
2023.04.09 16:15:41
문재인 좌좀 일당들은 제주 4.3 사건을 군경에 의한 학살 사건으로 낙인 찍고 정당한 폭동(?)이었다라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제주 4.3사건의 원인이 반일감정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른 지역보다 반일 정서가 강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의 정서에 반해 미 군정이 친일 세력을 잔존시키는 정책을 고수한 게 사건의 일차적인 원인이었다. 제주도의 특성이 반일 정서를 반영한 조직에 비교적 우호적인 지역임을 고려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진주 이후 이러한 정서에 반하는 질서를 강요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반일 정서를 강하게 반영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온존해 있었기에, 미 군정이 추진하는 5·10선거를 반대하는 세력의 선전과 활동이 비교적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지역이 됐다. 그래서 제주도에선 남로당이 주도하는 선거 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심지현 경남大 명에교수, 前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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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고선나
2023.04.09 16:16:40
(2) 따라서 제주 4.3사건은 누가 뭐래도 한반도 이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남로당 일당이 북한 김일성의 지령에 의해 일으킨 무장 폭동(태영호 의원)인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북만주
2023.04.09 15:56:06
비교적 객관적인 분석이로군요...조선일보 읽는 과정에서 이렇게 중립적이고 통사적이며, 객관적인 논지는처음 봅니다. 저 나름대로 제주4.3사건이라고 해야 하나...일단 이렇게 부르고 있으니 이를 따르기로 하고...조사해본바에 따르면 위 논지와 거의 일치합니다, 여기에 이승만 정권이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진압을 허용한 것과 공산당치하를 피해 남으로 내려온 서북청년단 소속의 반공주의 진압조직이 저지른 감정적 패악질, 당시 제주도 주둔 국군이 취한 일방적인 살상명령 등이 발생원인을 증폭시켜 커다란 피해로 드러난 결과를 만들었다고 결론내리고 싶네요.....어쨌든 민족적 비극입니다. 월남전 때 월남주민들이 낮에는 정부군편 밤에는 베트콩편..그러면서 서로에게 증오와 적대를 부추기도록 잔혹한 살인과 보복행위등이 난무한 땅이 되었지요... 무조건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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