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같은 영혼을 가진 노가다 인생
소정 하선옥
여름 내내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무더위는 기세를 올리며 치솟는 7월 말. 윗쪽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탈이고, 아랫쪽은 장마라 해도 비 한 방울 오지 않아 작물과 사람들 모두 시들어 간다.
언덕배기 메마른 땅엔 가늘고 작은 백합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겨우 몸만 지탱하며 시들어 가면서도 꽃망울을 품은 그 자리.
그곳엔 맑고 선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
땀에 젖은 우리들의 옷자락엔 노동의 흔적이 묻어 있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들어 커다란 하트를 보내고, 손을 흔들어 준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답례한다.
그리고 묻는다.
“언제까지 일하시나요?”
“내일도 오시나요?”
“네, 오늘은 마쳤고요. 내일 또 올 거예요.”
방학이라 물이 새는 곳을 보수해야 할 일이 있어 우리 팀 세 사람이 들어온 곳.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거나, 생각과 모습은 조금 달라도 고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다.
마주치면 반가운 듯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 노가다 한탕 뛰러 가네.”
누군가 하루 일을 시작하는 우리를 보고 건넨 인사.
다른 날은 웃어넘겼지만, 그날은 심사가 뒤틀렸던가 보다.
“남편한테도 오늘 노가다 한탕 뛰고 오라고 하나?”
“아들은 무슨 일 하노?”
“조선소 다닌다.”
“아들이 하는 일, 현장에 가 본 적 있나?”
“없는데.”
“퇴근하면서 말끔히 씻고 오니 땀 냄새도 모르지?
하루 종일 철판 위에서 비 오듯 땀 흘리며 일하는 거 본 적도 없으면서, 아들은 회사원이고 우리는 노가다라?
우리도 국가가 인정한 전문 건설업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너희 눈엔 노가다로 보일지라도, 아들 생각해서라도 말 함부로 내뱉지 마라.”
그날 아침, 말 한마디에 꼭지가 돌아버렸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방수와 도장이다.
집에 물이 새 곰팡이가 피고, 도장을 제때 못해 엉망이 된 건물들이 의뢰로 들어온다.
화자는 작은 롤러와 붓, 삼각형 헤라를 손에 들고 세척과 정리, 청소를 먼저 한다.
군더더기를 도려내고 나면 건물은 원하는 색감으로 말끔히 변해간다.
물이 새 엉망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환한 환경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도 성취감을 느낀다.
건축학을 전공한 이도, 토목학을 전공한 이도 현장에 서면 ‘노가다’라 불린다.
그들 중엔 박사도 있고 교수도 있다.
남의 직업을 존중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 사는 세상은 각자의 소임을 다해야 어우러져 살아간다.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고치고, 누군가는 청소하며, 그렇게 세상은 굴러간다.
그럼에도 왜 남의 직업을 비하하며 ‘노가다’라 부르고 싶을까.
화자는 이 일을 시작하며 더 건강해지고 더 밝아졌다.
이 나이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비록 무거운 짐은 못 들고 사다리도 못 오르지만, 아랫자리에서 내 할 일을 찾아 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팀원들의 건강을 챙기며, 서류를 다루며 내 몫을 다한다.
말 한마디에도 선한 표현을 섞을 수는 없을까. 꼭 비하하고 싶을까. 언어의 희롱은 무섭다.
며칠 동안 일을 하며 느낀 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모습이든 그들의 눈엔 그냥 ‘사람’, 반가운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차별은 없다.
맑고 선한 그들의 미소는 언덕에서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꽃을 피워내려 애쓰는 백합의 향기를 닮아 있다.
화자는 오늘 기도한다.
가냘픈 백합 같은, 편견 없는 그들의 영혼과 육신에 안식과 평안이 깃들기를.
2026년 7월 27일
첫댓글 다음 글은 한하운문학관 파랑새 발행인 손흥섭 시인의 댓글을 옮겨왔습니다.
[평생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필자의 철학을 대변해 주셨네요.
<노가다>는 일본 말로서 <도가다>의 변형된 단어입니다.
<도가다>는 토공 즉 토목일을 뜻하는데 <노가다>로 변형된 단어입니다.
한국의 건설 기술은 일정시대를 거치면서 일본 기술자들로부터 전수받아 발전했지요.
그래서 필자가 건설업에 1980년 12월10일에 입사했는데, 건설용어들이 90%이상이 일본어였지요.
그 이후로 미국에서 공부한 기술자들이 참여하면서 영어로 많이 바뀌었는데, 일본어 안 쓰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었지요.
<노가다>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입니다.
주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저학력이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경제력 탓으로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는 직업이었지요.
자신을 비하하는 줄도 모르고 지금도 자신을 무식하게 노가다라고 떳떳하게 뇌까립니다.
<조센징>도 마찬가지 어원입니다.
<조센징>은 조선인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일본사람들이 조선인을 깔보는 의미로 써 먹는 단어이지요.
앞으로는 <노가다>라고 하지말고 <건설기술자>라고 부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