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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우리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공예 앞에 선 스데반 집사 그에게 질문을 하죠. 이것이 사실이냐 거기에 대한 답변을 시작하기 되었습니다. 답변은 가장 먼저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서 지금 공예원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복음의 역사를 지금까지의 자리로 인도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죽을 때 부활하신 그 놀라운 사건은 단순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통하여서 시작해 하신 놀라운 사역이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죠.
여러분 그러면 아브라함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떠오르는 단어가 뭐가 있죠?
믿음이죠. 믿음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브라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의 사람이었을까?
오늘 스테반이 본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했는지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살피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핵심 요소 첫 번째는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따라 합시다.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여러분 성경에서 순종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요구하셨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내가 임의로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열매에 대해서 먹지 말아라. 내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이죠.
그러면 이 말씀을 듣고 한번 가정을 해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그 말씀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겠죠. 그리고 그때까지 아무도 옷을 입지 않았을 거예요. 다 벌거벗어 있으면서도 서로 대면하는데 아무 부끄러움 없이 행복하게 자랐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이라든지 염려, 불안, 걱정 이런 것이 없는 에덴 동산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아주 행복한 동산 그곳에서 모여서 우리가 지금 아마 예배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거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것이었겠죠. 물론 그렇게 불순종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불순종의 열매는요. 죽음이었고 저주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불순종이 가져다준 결과는 처참했다라는 거예요.
이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어요. 여러분 또 한번 가정해 보시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십자가를 지셔야 되는데, 게세마의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하나님 도저히 십자가를 못 지겠습니다고 했다면 여러분 어떻게 됐을까요?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죠. 모두가 죽음에서 건증받지 못한 불쌍한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마만큼 순종과 불순종은 매우 큰 차이를 가져다주는 것이죠. 그래서 로마서 5장 19절에는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우리 로마서 5장 19절 말씀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어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도다.
여러분 예수님의 순종의 결과는요. 모든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되는 완전한 구원의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순종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은 신의산에 머물게 되었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율법과 계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시고 그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율법주의자로 자라라 그것을 위해서 주셨을까요? 아니죠.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러면 불순종하는 자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의 목적이 있습니까?
아니죠. 그걸 기억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서 복받는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 순종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따라서 참 순종의 삶을 살아서 참 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에 보면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이 기록되어져 있고 이어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저주에 대해서 뚜렷하게 대비해서 말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순종하는 자는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할 것이다. 그렇게 선언하면서 모든 복을 내가 너희에게 주시겠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거기에 나온 말씀들을 간단하게 보시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내 몸의 자녀가 복을 받을 것이고, 내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 또한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에 복이 임할 것이다. 들어와도 복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 이 복들에 대해서 열거해 주는 데 얼마나 기분 좋아요 그러한 삶을 산다면 또 말씀합니다. 대적하는 자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셔서 때를 따라 피를 주시고 소원으로 하는 모든 일 복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꾸어줄지라도 꾸는 인생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 여러분 다 누리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가 좋아하는 복들이 거기에 다 열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인데 그러한 복에 반대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인데요.
여러분 신명기 28장을 쭉 보시면 복에 대한 내용보다 저주에 대한 내용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져 있는 것.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록했을까요?
안주 그다음 인생 살 하나님의 백성 됐으니 복받는 인생을 걸어가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은요 믿음의 생생한 증거이며 열매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즉 순종하는 삶, 믿는 자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라는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말씀을 하면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어렵습니까?
쉽죠.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한 이야기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재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
야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라 하실 때 갖고 하나님이 아들을 재물로 바치라 하실 때 믿음으로 바치는 그때에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다.
이 행함은 무슨 행함입니까?
여러분 믿음의 행함, 믿음의 순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지는 것을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말씀하죠. 우리 같이 한번 또박또박 읽어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그때에 믿음으로 순종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을 지키고 어떻게 하면 지켜볼까 애쓰는 율법주의자들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말씀을 알아봐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열심히 사는 거 하고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복하여서 순종하고 사는 것은 확연하게 나는 거예요. 그러나 진짜 바라는 것은 우리 믿음이 있어서 그냥 말씀 앞에 이거 해야 되네. 따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구나 할렐루야 그 고백이 있어서 믿음으로 내 마음 몸이 행해지는 그러한 순종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그렇게 막 당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떠나라는 거예요. 떠나라. 여러분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익숙하고 안전했던 고향을 떠나라고 부르신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부르심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불확실한 미래를 간다는 것이에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 여정을 생각해 볼 때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순종할 수 없는 부르심이었다는 거예요.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그러한 걸음 여러분 이러한 의미에서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노아에게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방주를 지으래요?
방주를 갑자기 무슨 방주입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그 노아가 마른 하늘에 그리고 그 규모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큽니까? 그 규모를 볼 때 과연 이것을 내가 지을 수 있을까 이걸 어떻게 하라고 하시나 고민되지 않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방주를 지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분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유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기본 받침이 되었고 그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믿음으로 했다.
보이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비가 안 올 수도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는 감당할 수 있었다. 그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믿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처럼 여러분 믿음은요 주신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에게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면 그냥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인생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명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 방주를 만드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여러분 만 4천 톤 정도 되는 그리고 지금 주격 축구장의 1.5배 3배 정도 된다라고 하는데 그 정도의 방주를 짓는다는 게 그게 할 수 있는 일이겠어요?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아마 시작하려다가 지를 포기했을 수도 있어요. 하나님 도대체 이걸 어떻게 지으라는 겁니까?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한 달이면 지어집니까? 그게 자기 인생을 다 걸고 그것을 지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말씀 앞에 하나님을 경유했기 때문에 순종하며 그 일을 했다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어요. 그 부르심 다음에는 순종이 있어야 되는데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인 순종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자신의 안정된 자리를 포기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 따라서 이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믿음은 행동을 드러내는 놀라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번 해봐야겠죠. 나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여러분 믿음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순종하는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게 막 염려스러워서 하나님 말씀하지 마세요. 그러면 안 되고 하나님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걸어야 두 번째 아브라함의 믿음 해신 뉴스 두 번째입니다. 약속을 붙잡는 믿음이 따라 합시다.
약속을 붙잡는 믿음
우리 5절과 6절 말씀을 읽어보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할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은 해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400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미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현재 꽂혀서 사는 사람은 이 믿음의 약속을 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약속된 땅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 약속을 신뢰하고 붙잡은 것이죠. 그래서 말씀을 붙잡고 그 걸음을 내딛는 거예요. 지금 안정적이고 평안한 이 삶을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그 말씀 그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 땅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죠.
같은 의미에서 여러분 요셉의 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요셉의 인생 아버지 품에서 그냥 편안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그 꿈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참 답답하게도 그의 인생 가운데 노예로 팔려갑니다.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보여준 꿈,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않았다는 거 그것을 붙잡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형통한 길을 걸어갔던 것이죠.
결국 요셉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의 꿈을 붙잡고 끝까지 걸어간 결과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과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에서 가난으로 인도하겠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모세와 아론을 따라서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순종하며 나아갔을 때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겠죠. 그런 과정 가운데 그들 앞에 가로막고 있던 홍해도 건넜지만 요단강도 건너고 건너자마자 여리고성이 있는데 그것을 한 바퀴, 다음 날 한 바퀴 돌고 돌으로 무너뜨리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요단을 건너라. 여리고를 돌아라.
매우 비현실적인 명령 아닙니까?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라고 할 수 있는 충분히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들은 성취되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요?
순종함으로 순종함으로 그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뭘 기대합니까? 당장에 씨를 뿌리자마자 열매 이런 사람 없잖아요. 씨를 뿌리고 때가 찬 시각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그러한 시대에 그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수고를 감내하면서 씨를 뿌리고 열심히 열심히 그것들을 돌보는 것 아니겠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열매가 맺혀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환자들이 병원에 가서 의사들이 하라는 대로 다 잘해요.
왜 그렇습니까?
적어도 의사의 말을 들으면 치료해서 회복될 것이라는 그런 내 안에 드러내지 않는 믿음이 있잖아요. 그래 의사 말을 잘 들어야지 그러니까 내가 아기 낳지 그럼 신뢰 학생들이 공부합니다.
왜 공부합니까?
지금 당장 어떤 공부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기 아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때가 찬 시각 장래의 열매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또한 우리의 삶의 결실로 어떠한 결과 성취의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약속을 붙잡는 믿음 현재 어떤 어려움 속에 있을지라도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것 그것이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약속을 붙잡는 믿음이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붙잡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붙잡으셔야 돼요. 됐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한번 가보시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데 꼭 붙잡아야 할 말씀은 도대체 무엇인가 66건을 그냥 다 통째로 외우고 우리가 다 붙잡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좀 몇 가지 추려서 우리가 꼭 붙잡아야 될 말씀들이 있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설어갈 수 있는 그런 말씀 몇 가지를 좀 안내해 드리려고 합니다. 잘 기억하시고 기억이 안 나면 영상을 돌려서 다시 보시면서 말씀을 찾아보시고 그 말씀을 꼭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는 구원에 대한 약속을 잘 그렇죠. 우리가 구원과 관련이 없으면 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참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약속을 잡아야 된다.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 우리가 잘 알고 있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말씀이죠.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는 왜 암송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가르쳐준 거 왜 암송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붙잡기 위해서 에베소서 2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은혜,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말씀 이것은요. 바로 구원의 확신, 구원의 약속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을 붙잡을 때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구원이 흔들리지 않아요.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구원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은총이 내게 임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인도하심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을 그냥 니 마음대로 살아라 두지 않는 것이고 인도하셨다는 거예요. 우리 자문 3장 5절에서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누구를 의지하라고요? 그를 의지하라. 그리하면 어떻게 한다고요?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이죠. 시편 32편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큰 소리로 읽습니다.
내가 내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 주겠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왔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 야 이제 갈 길 알아서 가봐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해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인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해요. 시편 77편 20절 읽습니다.
주의 백성을 양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은요 구원받은 그 백성들을 그냥 두시지 않고 가난이라는 약속의 자리까지 인도하셨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셨는데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그 자리까지 이르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억울한 자가 되겠어요. 저와 여러분들을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품으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붙잡고 나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겠다 우리에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에서 하나님 나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서 진리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나도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여러분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인도하심의 확신 세 번째는요. 따라 합시다.
기도 응답의 확신,
기도 응답의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 14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시작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 숱하게 들었을 거예요. 한번 읽어보실까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하신 것은 그냥 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주실 것을 준비해 놓고 아무것도 없이 구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것이 있다고요. 그것을 주시기 위해서 구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구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인데 구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신 것은 응답하기 위해서 즉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선한 것으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위해서 구하라 말씀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구하지 못할까요?
물론 구하시는 분들은 열심히 구하는 줄 압니다. 그런데 구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내가 믿음 생활하면서 왜 못할까요? 생각해 보니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구할 것이 없어서 그래요. 구할 것이 없어서 그렇죠. 내가 지금 구할 곳이 없네. 여러분 이것은 부활하는 하나님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교만함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구한다고 될까라는 불확실성 이것 때문에 구하지 않는 거예요. 즉 믿음이 없어서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응답의 약속이 있음을 기억하고 여러분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하고 찾으고 두드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구하는 이마다 받는 축복, 찾는 이가 찾는 축복,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네 번째는요. 위로와 평안의 약속이 있습니다. 위로와 평안 이 세상이 얼마나 급박합니까? 위로받지 못하고 평안하지 못한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 믿음의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위로와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을 읽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내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읽을 때 이런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1장인데 왜 안 읽어요? 같이 좀 읽지.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시작.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는 내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요한복음에서도 말씀하죠.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선포하신 말씀 담대하라. 그리고요. 여러분 또 우리에게 주신 요한복음 14장 27절의 말씀 있죠. 띄우지 않겠지만 여러분 기억해 보십시오.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라.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세상에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겠다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뭐예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위로와 평안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임을 알아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두려운 일이 왜 없겠어요? 어려운 일이 왜 없겠어요? 그러나 그 두려움을 이겨내시고 담대함으로 평안을 누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섯 번째는요. 공급의 약속이에요. 공급의 약속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거예요. 빌립보서 4장 19절 함께 읽습니다.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께서 채우시겠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말씀하죠.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겠다.
더하시겠다는 은혜의 말씀이죠. 여러분 태어날 때 뭐 가지고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없어요. 물론 이제 부모님이 가지고 계시겠죠. 그럼 그 부모님은 뭘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지금 내 자리가 내 노력으로 되었다고 살아가는 사람은 사실 신앙인으로 볼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신앙인은 지금 내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장 하나님께서 공급 중단을 선언하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권 목사 이렇게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이제 그만해야겠다. 니 앞에 숨을 이제 좀 내가 막아야겠다 그러면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서요. 하나님이 모든 걸 다 하신다면서요. 그 하나님이 갑자기 중단을 선언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 즉 우리의 생명 이것을 비롯해서 내가 있는 것 먹는 것을 모든 것들은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은혜다. 생명 주셔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 주셔서 능력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게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신앙인들의 고백이 되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거 여러분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마땅히 해야 할 십일조도 하기 어려운 거예요.
성도는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습니다는 것을 믿음의 고백으로 십일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할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 11조를 많이 하는 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저는 한 십일조 천만 원 하고 싶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아서 못하는데 제가 십일조 천만하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만큼 하나님께서 부어주셨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 고백이 우리의 신앙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로 산다라는 것을 놓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서 저와 여러분들이 날마다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다. 따라 합시다.
영원한 생명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26절 말씀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일서 2장 25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잖아요.
사실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여기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진짜 이 땅에서 열심히 먹고 살아야 돼 이 땅에서 누릴 거 다 누려야 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 있다라면 그렇죠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을 붙잡는 순간 내 삶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이 영원한 생명 앞에 나의 삶을 맡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이어간다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순간순간 위기가 찾아온 위기 그래서 시험에 들기도 하고,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 있으면 지금 나의 과정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국에는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을 믿기 따라서 신앙생활 저와 여러분들이 기쁘고 즐겁 게 하기 위해서 이 확신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십자가의 길 걸어가시기 전에 미리 선언해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 죽어도 살겠고, 우리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 믿음 영원한 생명을 꽉 붙잡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6가지 큰 주제에 관련된 말씀을 많이 암송하고 붙잡고 사는 게 참 유익합니다. 구원, 인도, 기도 응답, 위로와 평안 공급, 영생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필요한 그러면 여러분 이 약속의 말씀을 왜 붙잡아야 할까요?
왜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라고 지금 권면을 드릴까요? 그것은 여러분 민숙이 23장 19절에 이런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같이 읽어보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하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어찌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인생은 사실 그래요. 저도 그렇고 여기 계신 분들 다 동감할 거예요. 내가 약속한 거 못 지킬 때도 있잖아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하면서 외면할 때도 있잖아요. 우리의 연약함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요. 절대적입니다.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것이 있기 때문에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을 때 우리의 인생은 반드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십니다. 그러한 은혜가 있다라는 사실을 여러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마지막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렇게 성취하신다 선포하잖아요.
8절 같이 읽어봅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12 조상을 낳으리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말씀 그래서 믿음으로 따라갔던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렇게 성취되었다.
사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때 진짜 이삭이 죽어서 생명이 끊어졌다면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뭐였습니까? 이 아들을 죽여도 하나님은 살리실 것이다. 이 아들에게 하나님이 손을 대셔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아들을 잡으려는 결심까지 했던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잠시 잠깐의 것이 아니라 영원히 신실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그것을 오늘 본문 8절을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초림의 주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부활하셨어요.
그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올라가신 분 그대로 다시 오 주님 심판의 구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지금 현재의 삶이 우리가 녹록지 않아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품에 앉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오늘의 삶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현재의 삶을 넘어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여러분 믿음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보시고 그 길을 묵묵히 순종하며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입니다. 스테반 설교 가운데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첫 번째 순종하는 믿음 따라 합시다. 순종하는 믿음 즉각적으로 하나님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말고 순종하기 싫어가지고 그러지 말고 하나님 내게도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마음 시원하게 기쁘게 하는 삶 살겠습니다.
두 번째 약속을 붙잡는 게 믿음 따라 합시다. 약속을 붙잡는 믿음 약속을 붙잡으세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약속하신 바 반드시 이루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의 여정을 복되게 멋지게 걸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