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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舊約) ☆ (律法書)
모든 생명의 양식(복음)을 등한히하면,사탄의 표적되어 영생의 기쁨을 빼앗겨 침체됩니다.
창14:8절) 전쟁(戰爭)의 발생(發生)
우리나라 남자(男子)들은 누구든지 만 20세가 되면, 군(軍)에 입대(入隊)해서 2년 가까이 국방의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집을 한 번도 떠나보지 않고, 부모 밑에서 온실(溫室)처럼 자라왔던 젊은이들에게는 2년 가까이 하는 군대(軍隊)생활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이 기간이 하고 싶은 것은 전혀 하지 못하는 인생의 공백(空白)처럼 생각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軍隊)가지 않기 위해서 외국에 이민을 가든지, 부상을 이유로 해서라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평화(平和)의 때이니, 군(軍)에 가더라도 거의 온전한 몸으로 다시 집에 돌아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전쟁(戰爭)이라도 터지게 되면, 군인들은 살아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전쟁(戰爭)이 참 아름답고, 멋진 것 같지만, 전쟁(戰爭)은 결코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전쟁(戰爭)이 터지면, 결국 많은 사람들이 투입(投入)되어 수없이 죽어야하고, 민간인(民間人)들이 피난 가다가 죽임을 당하고, 나라 전체는 잿더미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전쟁(戰爭)이 터지면, 여자(女子)들은 남편을 잃거나, 자식을 잃고 먹을 것이 없어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60여 년 전에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무서운 전쟁(戰爭)을 치루고, 무려 60여 년 동안이나 평화(平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가 놀라는 일입니다. 6.25때 참전(參戰)했던 한 외국 병사는 그때 잠시 전쟁(戰爭)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에 평화(平和)가 지속되고, 또 *눈부시게 경제(經濟)가 발전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政府)가 아무리 계획(計劃)을 세우고, 아무리 머리를 잘 써서 세상(世上)에서 성공(成功)을 한다고 해도 전쟁(戰爭)이 한번 터지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하20:15절)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꼐 속한 것이니라"
그렇게 핵무기(核武器)로 무장(武裝)한 채. 호전적(好戰的)?이던 북한을 북쪽에 두고서도 우리나라에 전쟁(戰爭)이 터지지 않는 것은 신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전쟁(戰爭)이 터지지 않도록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信仰)이라는 것은 일이년의 짧은 기간을 통해서 보아서는 안 되고 긴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의외의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기름진 목초지(牧草地)인 소돔 들판을 차지해서 목축(牧畜)에 성공해서 소돔 안에서 인정받으면서 사는 것을 보면, 롯은 성공(成功)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헤브론 골짜기에 들어가서 목축(牧畜)에 크게 성공(成功)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거의 숨어서 살다시피 하는 것을 보면, 인생에 실패(失敗)한 사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戰爭)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소돔에 살던 사람들은 전쟁(戰爭)에 지는 바람에 모두 노예(奴隸)로 붙들려가고, 모든 재물(財物)들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쟁(戰爭)이 일어난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짧은 기간 동안에 사람의 잔 머리를 의지(依支)해서 처세(處世)에 성공(成功)하는 것이 잘 사는 것 같지만, 길게 내다보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지혜(智惠)이고, 능력(能力)인 것을 알게 됩니다.
Ⅰ.인간의 오만(傲慢)함의 결과(상)
우리가 사는 이 세상(世上)에서 별 다른 변수(變數)없이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生角)대로 신앙(信仰)없이도 자기 힘이나 머리를 믿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유리(有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世上)에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나 위기가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 인간의 모든 꾀나 성공(成功)은 완전히 실패(失敗)하게 됩니다.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시대에 요즘으로 치면, 중동전쟁(戰爭)에 해당하는 큰 전쟁(戰爭)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엘람과 그 주위에 있는 네 나라의 왕(王)과 소돔과 주위에 있는 다섯 나라가 함께 붙어서 전쟁(戰爭)을 한 것이었습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과 갈등이 생기면서 서로 헤어지기로 하면서 소돔 들판을 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13:13절)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나는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해서 소돔으로 같습니다.
롯은 소돔 사람이 아무리 동성애(同姓愛)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악(惡)한 죄인(罪人)이어도 자기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生角)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롯은 목축(牧畜)에 성공 (成功)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고, 그 돈으로 소돔 성(城)안에 들어가서 집도 사고, 높은 직책(職責)에도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전쟁(戰爭)이 터지면서 롯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전쟁(戰爭) 포로로 붙들리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戰爭)이 일어난 원인은 소돔과 그 다섯 도시가 엘람 왕(王) 그돌라오멜에게 바치던 조공(朝貢)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14:4절)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벨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소돔과 고모라는 십이 년 동안 엘람 왕(王) 그돌라오멜에게 조공(朝貢)을 바쳐왔습니다. 그동안 소돔과 고모라에 전쟁(戰爭)이 나지 않고, 평안(平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엘람 왕(王) 그돌라오멜에게 조공(朝貢)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바쳤던 조공(朝貢)은 그들의 평화(平和)의 비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平和)가 공짜인 줄로 생각(生角)하기 쉬운데, 결코 평화(平和)는 저절로 주어지거나,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왕(王)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오만(傲慢)해지면서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조공(朝貢)을 바친다고 해서 그돌라오멜이 잘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이제는 자기들도 힘이 강해져서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자신감(自信感)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드디어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고, 일 년 이상 평화(平和) 롭게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후, 그돌라오멜은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왕(王)과 군인(軍人)들을 모아가지고 군대(軍隊)를 몰고,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와서 재산(財産)과 사람들을 모두 다 빼앗고, 약탈(掠奪)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생각(生角)으로는 소돔이나 고모라 왕(王)이 차라리 조공(朝貢)을 계속 바치는 것이 전쟁(戰爭)을 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오만(傲慢)해지면, 절대로 고개를 숙이게 되지 않습니다. 즉 자존심(自尊心)을 조금 포기하고, 머리를 숙이면, 많은 것을 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결(對決)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망(亡)하려고 하면, 그렇게 자존심(自尊心)이 세어지고 고집을 부리고 끝까지 싸우다가 망(亡)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 가정(家庭)이 평화(平和)스러울 수 있는 것은 가정(家庭)안에서 누군가가 희생(犧牲)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은혜(恩惠)넘치는 것은 교회(공동체)안에서 누군가가 말없이 희생(犧牲)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절대로 저절로 은혜(恩惠)스러운 법이 없습니다. 교회(공동체)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어려움을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수고하기 때문에 은혜(恩惠)롭고 평화(平和)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敎人)들이나, 직분(職分)자들이 아무도 참으려고 하지 않고, 모두 다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떠들기 시작하면서 교회(공동체)는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나중에는 모두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깨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평화(平和)는 공짜가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인(罪人)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하여 꾹 참고 계시던 것을 어느 순간 거두게 되었을 때, 갑자기 소돔 사람들이 겁이 없어지면서 더욱 오만(傲慢)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에서는 엘람 왕(王)에게 조공(朝貢)을 바치는 것이 아깝다고 하면서 우리의 힘도 얼마든지 엘람 왕(王)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조공(朝貢)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강경파(强硬派)가 이기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강경(强硬)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자존심(自尊心)이 더 세어지게 되고, 자신들의 힘을 과대평가(過大評價)하면서 전쟁(戰爭)을 하자고 하는 쪽이 아주 강(强)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평화(平和)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 년 예산의 막대한 비용(費用)을 국방비(國防費)로 지출(支出)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모든 청년들이 나이가 되면, 군대(軍隊)에 들어가서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막대한 비용(費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용(費用)을 지불(支拂)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까워하면, 절대로 우리나라의 평화(平和)를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驕慢)해지면, 군대(軍隊)의 기강(紀綱)은 해이해져서 총기(銃器)사고나 성(性)(추행(醜行)사고가 생기고, 심지어는 군(軍) 물자(物資)에 대한 엄청난 부정(不淨)이 생기고, 사회적(社會的)으로는 전쟁(戰爭)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평화론(平和論)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이러면 정말 위험(危險)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죄악(罪惡)의 수위(水位)가 너무나 높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학교 폭력(暴力)으로 투신자살(投身自殺)을 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성(性)추행(醜行)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自殺)을 선택(選擇)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이 땅의 평화(平和)를 위험(危險)하게 만드는 교만(驕慢)이고, 죄(罪)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할(役割)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땅의 죄(罪)를 낮출 수 있는 유일(有一)한 방법은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영적(靈的) 부흥(復興)이 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계(敎界)지도자(指導者)들은 영적(靈的)부흥(復興)을 교회(공동체)가 커지는 것으로 착각(錯覺)하여 자신을 높이려고. 잔 머리를 써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데려다가 *잘난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4:24절)하나님은 영이시니.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영적(靈的)부흥(復興)이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世上)의 모든 자랑이나, 의지(依支)하는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매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한 손은 세상(世上)을 쥐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스스로 잘 믿는다'는 오만(傲慢)에 빠져 있으니까 죄(罪)와 부패(腐敗)는 점점 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世上)의 성공(成功)에 똥배가 부르게 되면, 예배(禮拜)드리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아까워하게 되고, 하나님께 헌금(獻金)하는 것을 아까워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무한(無限)정으로 시간(時間)을 쓰면서 예배(禮拜)는 건성(乾性)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민족주의(民族主義)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되고, 강경파(强硬派)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正常的)인 분별력(分別力)을 잃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평화(平和)를 위한 비용(費用)을 부담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나의 삶을 내 욕심(慾心)이 이끄는 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무한(無限)정으로 돈이나 시간(時間)을 쓰면서 막상 하나님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아까워합니다.(이기주의 망할 놀부 심보)
그들은 결국 작은 것에는 이익(利益)을 보겠지만, 큰 것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전쟁(戰爭)이나 지진(地震)이 터지면, 사람들은 가족이나 자신의 아까운 생명(生命)을 잃게 되고, 모든 것이 다 잿더미로 변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14:11-12절)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롯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 속에서 성공적(成功的)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한 파멸(破滅)이었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判斷)을 더 믿었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보다는 소돔이라는 현실(現實)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롯은 생각지도 못한 전쟁(戰爭)이 터지면서 그동안 쌓았던 모든 부(富)나 명성(名聲)을 한 순간에 다 빼앗겨 버리고, 노예(奴隸)의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겸손한 자의 진실과 정직한 아멘, 순종⟺교만한 자의 숨김과 불통은 (假裝)된 좀비.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