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상 12장 (구약 534P)
2016. 5.19(목) / 제목 : 비극의 시작(1)
한 개인이나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잠깐의 실수가 돌이키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르호보암 왕의 말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솔로몬이 죽고 난 다음에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이 때 솔로몬 치하에서 힘들게 살았다고 여긴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가 르호보암을 찾아 온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로호보암 왕 사이의 대화내용이 4절과 5절에 나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여로보암의 대답의 당위성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이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가를 먼저 살펴봅시다.
솔로몬 시기에 나라의 경제는 번창했고 모든 백성들은 자신의 장막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제노역에서 제외가 되고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과 노예로 삼은 사람들이 국가적 작업에 동원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들을 주관하고, 감독하는 자들로서 지냈습니다.
오늘날 우리시대의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살아놓고 이제 와서 자기들이 솔로몬 왕 때에 무척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타당해 보입니까?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가끔씩 귀족노조니 갑질노조니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표적으로 비행기 조종사들의 파업 같은 경우입니다. 연봉이 최하 1억부터 오래된 베테랑 조종사들은 몇 억씩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회사를 상대로 파업을 하면 메스컴에서 앞에서 언급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할 때도 몇 몇 언론이나 방송에서 동일한 말들을 내밷었습니다.
성도여러분! 고용자와 피고용인 사이에는 언제나 나름의 불평등과 불만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회사나 정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때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지만 그래도 불만인 사람은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상황을 잘 모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사람은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불편한 것들이 존재하고, 무엇인가 불만족스러운 행정이나 일처리로 회사나 국가가 직원을 우습게 여기거나 만만하게 본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 치하에서 번영을 누렸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작업을 감독 하는 일과 끝없어 보이는 국가의 차출 앞에서 불만이 누적되어 온 것입니다.
지파의 지도자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요구한 사항을 살펴보십시오. 무리한 요구를 한 것입니까? 자신들에게 주어진 세금과 짐을 가볍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가볍게.
세금 안낸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서 일이 있고 군대를 소집하면 간다는 겁니다. 열 번 차출했으면 다섯 번만, 세 번 공사하면 한 번으로 끝내달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것이 왜 힘든 일입니까? 여러분도 직장일을 하고 세금을 내니까 잘 아실 겁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언제까지 군대를 강제로 가야되는 겁니까? 자녀들도 잘 낳지 않고, 좋은 무기들도 자꾸 생겨나는데 사람만 잔뜩 있다고 군대가 강해집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달라고 하기 전에 국방비나 빼돌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군에서 벌어지는 방산비리는 말로 할 수 없고, 군에서 의문사를 당하는 장병들이 왜 자꾸 생겨나는 것입니까? 이렇게 군대를 운용하고도 국민들에게 계속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라고 하는 그 뻔뻔함을 왜 수십년간 참고 지내는 것입니까?
성도여러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려는 정치가들에게 표를 주어야 됩니다. 남북관계를 이용해서 항구적인 분단국가로 만들려는 술책은 하나님 나라에 반하는 악한 정권의 악한 정책입니다. 세금문제와 사용처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파 지도자들의 이 말에 르호보암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삼 일 후에 오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정치가의 판단력은 3초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축구선수 펠레는 공격을 하기 위해 공을 잡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가 괜히 축구황제라는 감투를 쓴 것이 아닙니다. 운동선수도 이렇게 빠른 판단력을 요구하는데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사흘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정도의 판단력을 가졌다면 이미 이런 나라는 싹이 노란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여기에다가 한 가지 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노련한 신하들의 말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자란 철없는 신하들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자문을 구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도자의 철없고, 독단적인 판단력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르호보암의 신중함은 나쁘게 볼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그래도 왕이 하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여론을 수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르호보암의 또 다른 실수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뜻을 물었다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지혜의 왕 솔로몬의 아들답게 인간이 가진 합리성과 보편성, 그리고 이성을 중요시하는 왕은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에게 요구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따라 나라를 다스리라는 더 높은 상위의 권세는 몰랐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르호보암의 비극의 시작입니다.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의 잠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잠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비록 솔로몬 자신은 이렇게 못 살았어도 이 말씀 자체에 모순은 없습니다.
천년을 가는 견고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지혜로운 지도자와 강력한 군사력과 엄격한 법률, 그리고 탁월한 행정력이지만 천년 이상의 영원한 나라를 대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그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영원히 끊이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와 지식을 내려놓고 날마다 전능하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