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회 대들보 기획부장 오복영
- 영암향우회 총무 1989년 - 1996년
부회장 1996년 - 2000년
-호남청년회 2대 사무국장 1990년(04년역임)
-제주시호남향우회기획부장 1996년(10년역임)
-남도민속보존회(풍물단) 총무 2001년(11년간)
-호남 오름동호회(조직)총무 2000년(12년역임)
향우회 기획부장을 맡아 활동을 역임한 오복영은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출신으로 해병대 장교로써 1980년 3월에 제주에 입도하여 해군 6해역사 경비대 소대장으로 부임하여 제주와 인연을 맺었으며 군생활을 하면서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3학년으로 편입하여 85년 졸업과 동시에 육군고군반 교육을 마치고 2사단에서 중대장직을 필하고 다시 제주에 입도하여 92대대에서 작전장교로 근무하던중 지금의 호남향우회장이신 최상(당시 청년회 부회장)씨를 만나 영암향우회와 청년회가 조직되어 운영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영암향우회와 청년회에 가입하여 89년 5월에 있었던 정기총회에 참석하여 영암향우회 줄다리기 시합에 동참하였다 이를 계기로 호남향우회에 영암향우회 총무 직책으로 참여를 시작하여 향우회 조직표상에 총무부장으로써 임무를 (당시 김두수 회장) 부여 받고 활동을 시작하여 ①-⑭의 업적을 남긴 향우회 대들보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금은 2012년 3월 고향 영암으로 이사하여 귀거래사 중이다. 주요 활동및 업적을 살펴보면
①(향우회 정관 수정을 기획) 향우회 정관 수정을 기획하여 그간 각 지역향우회 별로 각각 운영해오던 관행을 통합관리 할 수 있는 정관으로 새롭게 제정 정비하여 지금의 기틀을 마련했다.
②(총무단 조직 및 회칙 제정) 각 지역 총무들의 모임을 조직하여 총무회를 운영하여 본회와 지역향우회와의 유기적인 협조와 원활한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영암향우회 김봉일 회원의 역할이(발기모임 및 찬조금) 지대했다)
이런 과정과 사연이 담긴 총무단의 첫 번째 사업은
③(향우회 소식지 제정) 그동안 각 지역별로 전하던 소식을(엽서 또는 편지, 전화) 향우회 차원에서 통합하면 시간도 비용도 절약될 수 있을것 같아 소식지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총무단과 회장단회의를 걸쳐 월1회 소식지를 발간하기로 했다. 최초로 湖告紙(흑백4면)를 발간하고 월간 鄕友(칼라8면)로 발전했고 현재는 예향미디어(칼라12면)라는 제호로 1,500부를 발간하여 투명비닐봉지에 담아 각 회원 집으로 발송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효율적인 총무들의 업무 수행과 회원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었다.
④(추석 바둑/장기대회 추진) 두 번째 사업은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에 가지 않으신 회원을 위로하고 단합과 즐거움을 배가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바둑/장기 대회를 개최하여 성황리에 매년 실시하였다.
⑤(신년하례회 제정)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70세 이상된 회원을 모시고 신년하례회를 계획하여 제주사회 각 기관사회 단체장을 초청하여 향우회의 발전상과 상경하애 정신을 고양하는 풍습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여 현재의 신년하례회 전통을 수립했다.
⑥(호우회지 창간호 발간)향우회 창설 30주년을 계기로 향우회 역사와 향우회 회원 간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호우회지 발간을 계획하여 250p의 책을 500부 발간했다.
⑦(호우회지 2호 발간) 13대 정준호회장 취임을 계기로 호우회지 2호를 발간하여 향우회 연혁과 각지역향우회 소개와 회원 상가로 등이 포함된 300p의 책을 1,000부 발간하여 전국 각 지역 호남향우회와 서귀포 등 제주 각 지역 호남향우회에 배포하여 제주시호남향우회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⑧(손해보헙 애향대리점 대표) 향우회의 자립을 도모하고자 자체사업의 필요성을 강구하던 중 청년회장이던 최 상 회원의 건의로 손해보험대리점 사업의 장점이 많다는 조언에 보험대리점 자격시험 통과하여 당시 제일화재(현 한화손보)와 계약을 맺고 회장단회의의 승인르 받고 “애향보험대리점” 대표를 맡아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가입협조로 향우회 주 수입원으로 성장하였으며, 매달 발간되는 월간 향우지에 보험가입 현황과 수수료 수입을 공개함으로써 회원들의 신뢰을 쌓았으며 보험대리점 고문 변호사로 강진출신 최병모, 장흥출신 이창주 두 분을 위촉하여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각자가 가입한 개인별 보험이 우리 향우회 전체가 가입한 단체보험 성격으로 격상되어 회원보험 권익이 가일 층 강화되는 실례가 있었다 사업 시작 3년이 안되었는데도 년 3억이 넘는 보험수주 실적을 나타냈다. 지금 회상해도 참으로 보람있는 사업 중 하나가 보험 대리점 사업이었다
⑨(항공 매표 대리점 사업 개설) 보험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이룩하다 보니 회원들의 생각이 항공매표 대리점 사업도 추진하자는 건의가 이구동성으로 제안되어 우리 회원들의 삶의 특성상 육지 왕래가 잦은점과 항공표 예약이 힘든 점을 고려하여 항공매표 대리점을 개설하여 운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향우회 고문과 당시 회장과의 갈등으로 적극 추진했던 주체가 퇴진함으로써 이 사업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폐업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⑩(향우회 심볼 마크 도안 제정) 그동안 사용해 오던 제주시 향우회 심볼 마크와 깃발을 전도호남향우회 전체가 통일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당시 삼양동 예비군 중대에 근무 중이던 박기배 회원의 차남 박진영(홍익대 다자인학과 휴학)에게 3장의 샘플을 디자인하도록 하여 호남향우회 전도협의회 회의를 통하여 현재 사용 중인 디자인이 채택되어 사용하게 하였다(심볼 마크 사진 삽입요망)
⑪(오름탐험대 조직 육성)회원님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체력 보강을 위하여 등산 동호회을 조직하자는 당시 완도향우회 박00회원님 건의로 2000년 11월 5일부터 도내 산재해있는 386개의 오름 등반을 목표로 출발하여 고향 영암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총무직을 유지하면서 매주 일요일 애향운동장에서 집결하여 386개의 오름 대부분을 등반해보는 오늘의 오름 동호회로 성장 발전하였다.
⑫(남도 민속 보존회 총무) 제주시 19개 동사무소에 민속 보존회(풍물단)가 조성된 것을 계기로 당시 영암향우회 김안중회장꺼서 김태환시장에게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풍물단 조성 기금 확보됨에 따라 남도 민속보존회 조직에 총무직을 맡아 10년의 기간동안 김안중 단장을 중심으로 이영길님 지도로 성장하여 향우회의 주된 행사시 마다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⑬(부장단회의 조직과 업무일지 작성) 향우회 창설 시부터의 역사와 진행사항 기록이 없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향우회 사무국 업무일지를 작성하여 기록 유지함으로써 향우회 역사와 업적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부장단 회의를 월1회 정기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부장들과 회장단의 역할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⑭(설날 세배 전통 되살리기 실시) 영암향우회 총무 활동 시 우리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세배의 고유 전통을 되살리고 원로 회원님 공경의 마음으로 매년 설날 70세 이상 회원 및 부모님 대상으로 세배드리기 활동을 제안하여 실시하였으며, 회원님 유택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묘지 마련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영평에 1,680평을 구입하는 결과가 있었으며 이를 다시 큰 차익으로 매매하여 향우회 기금 확대에 지대한 공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