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수박, 그리고 사랑의 배려
어렸을 적에 겪은 일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시골의 한 가난한 집의 딸이 멀리 시집갔다가 오랜만에 친정에 왔습니다. 며칠을 친정에서 쉬었다 시댁으로 되돌아갈 때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간장을 대(大)자 소주병에 담고 된장을 바가지에 담아 넓은 호박잎으로 덮어 보자기에 싸서 줍니다.
이를 받아든 딸은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새끼로 묶은 간장병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버스를 타려면 10리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게 뭐라고 가져가느냐 말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 모습이 지난주 토요일에 한 여자 청년이 보여준 행동에서 수수께끼 풀리듯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청년 하나가 자기가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를 제게 소개하여 준다고 하여 토요일 저녁에 일산의 한 고급 일식집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여자 친구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음이 예쁜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정겨운 대화가 이어졌고, 덕담과 더불어 그들의 앞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고급진 식사에 잘 어울리는 유쾌한 자리를 나누고 작별하려고 하는데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커다란 수박이 담긴 상자였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풋하고 터졌습니다.
처음 보는 목사에게 곱게 정장을 차려입은 멋스러운 처녀가 이렇게 무거운 수박을 사 들고 오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수박을 잘라서 먹으니 참 달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의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여름에 목사님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눈에 띈 것이 수박이었을 것입니다.
고당도에 탐스러운 수박을 기분 좋게 먹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수박을 골라 차에 싣고 온 것입니다.
상대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내가 수고하고 번거로운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 참 배포(?)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상대를 위하여 나의 희생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짝의 역할을 할 것이라 교회 청년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였습니다.
달고 시원한 수박은 딸에게도 나눠 주었지만, 여전히 냉장고에 남아 있어 두고두고 먹으며 자매님의 사랑의 마음을 마음껏 누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