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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종주 산행 중 처음으로 '사기막골 입구 → 구멍바위(숨은벽) → 백운봉암문 → 용암문 → 동장대 → 시단봉 → 대동문 → 칼바위능선 입구 → 보국문 → 대성문 → 대남문 → 문수봉 → 승가봉 → 사모바위 → 비봉 → 족두리봉 → 불광동' 13.4km, 7시간 코스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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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北漢山]
높이: 837m
위치: 서울특별시 도봉구
북한산국립공원은 15번째 국립공원으로 1983년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8.5㎢,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 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 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 정상에 서면 맞은편의 깎아 지른 듯 인수봉이 서 있다. 국망봉, 노적봉 등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있음은 물론 도봉, 북악, 남산, 남한산, 관악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모두 눈앞에 들어온다. 시계가 넓은 날에는 서쪽으로 강화도, 영종도 등 서해상의 섬들도 볼 수 있다.
백운봉 서쪽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은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다. 주 능선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대성능선 및 형제봉능선이, 북쪽으로는 숨은벽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능선 등이 뻗어 내린다.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하여 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진흥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비봉에는 복사본이 설치되어 있다. - 한국의 산하
2022년 설 황금 연휴를 집에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연휴 마지막인 수요일에 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라, 원거리 산행은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거 같아, 오랜만에 북한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해서 북한산을 언제 갔었는지. 확인해 보니, 작년(2021년) 초파일 기념 의상능선에 올랐던 게 마지막 산행이었다[산행기]. 특히 2021년은 초파일 기념 의상봉 산행이 유일한 북한산행이었다. 2012년 이후 해마다 최소 5번 이상 올랐었는데…. 해서 그나마 다른 산을 다녀올까 했던 일말의 미련을 버리고 북한산으로 굳히고, 가까운 북한산이라 가능한 친구와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1월 17일 산행계획을 세우고 이를 등산방에 공지로 올렸다.
수없이 북한산에 올랐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사기막골에서 올라 불광동으로 내려가는, 즉 '숨은벽'에서 시작해 '족두리봉'에서 끝내는 종주 산행을 하기로 했다. 물론 누가 동행하느냐에 따라 하산 지점은 유동적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이 종주를 완수할 수 있기를 강하게 바라지만. 공지가 나가고, 손을 든 친구는 경옥, 지리 조, 기영, 영빈, 영한, 인형의 여섯 명으로 총 일곱 명이 같이 출발하나, 나를 포함 여섯 명이 종주에 도전하고, 몸이 좋지 않은 영한은 중간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애초 점심으로 컵라면을 준비하기로 했으나, 산악날씨로 확인한 수요일 북한산 날씨는 체감 온도가 영하 16도에 이르고 실제 기온도 영하 11도 내외라, 점심 먹을 분위기가 아니라, 비상식만 준비하고, 하산 후 점심을 먹기로 변경했다. 그래도 만약에 대비해 컵라면과 뜨거운 물 1ℓ는 준비하지만.
그런데 설 이브 저녁에 일기예보에는 없던 눈이 내려 새벽 한 시에 집 앞 골목 눈을 치웠는데, 설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사이에 눈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골목의 눈을 치우며 다음 날 북한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며, 산행에 대한 기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날짜 선택의 탁월함에 대해 대단히 만족했다. 예정에 없던 눈이 내려, 설 저녁에 배낭을 싸며 심설에 대비해 그동안 들고 다니던 미니 스패츠 대신 눈에 대비한 스패츠로 바꾸고, 스틱도 챙겼다. 물론 의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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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불광역 중앙버스정류장에서 친구를 만나, 버스를 타고 사기막골로 가기 위해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7시 40분경 집을 나서 불광동으로 향했다. 물론 직접 사기막골로 향하는 친구는 9시까지 들머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거리에 도달해 정류장을 바라보니, 의정부 방향의 정류장에는 인형으로 보이는 친구가 서성이고 있었고, 경옥으로 보이는 여성 등산객이 건널목을 건너 반대편인 서울역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그 여성을 경옥으로 착각했다고 결론 내리고 의정부 방향 정류장으로 가 인형과 인사 후 사기막골로 바로 가기로 한 영빈을 제외한 경옥, 지리조, 기영 등 세 친구를 기다렸다. 영한은 몸이 좋지 않아 따로 움직이기로.
둘이서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영이 10분 정도 늦을 거라는 문자를 보냈고, 저쪽에서 경옥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반대편 방향의 정류장으로 갔다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건너온 거다. 흔히 하는 실수다. 경옥을 통해 지리 조는 사기막골로 바로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추위에 떨며 기영을 기다리는데 감감무소식이라, 일단 8시 17분경 도착한 704번 버스를 탔다. 기영에게는 다음 버스인 34번 의정부 버스를 타고 오라고 문자를 남기고. 불광역을 떠난 버스가 구파발역에 도착하자, 영빈이 탔다. 지리 조도 같이 탈 거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설 연휴 마지막답게 승객도 거의 없고 차량도 거의 없어 평소보다 대단히 빠른 8시 45분에 사기막골에 도착했다. 9시에 만나자고 한 건 평소 버스 소요 시간이고, 설 연휴라는 걸 미처 고려하지 못한 실수다.
넷이서 산행 준비를 하며 사기막골 입구에서 34번 버스를 기다려 9시경 5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남, 여 두 명이 버스에서 내리는데 여성이 지리 조인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는데, 남성이 기영인지는 알 수 없었는데, 그 둘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해 기영이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더 기다릴 것인가 그냥 출발할 것인가 서로 얘기하며 다가오는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는 남성이 기영이었다. 둘이 안면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건 기영이 끽연하느라 뒤에서 따라왔기 때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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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분경 모든 친구가 도착해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사불종주’라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그런데, 국립공원 입구에 야영장 공사로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국립공원에 야영장 건설이라면 국립공원공단에서 진행하는 건 알겠는데, 원래 사기막골에는 백마부대의 유격장이 있어 일반인 출입금지다. 그런데, 거기에 야영장이라, 유격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얘긴데. 그럼, 말이 되는 게 과거 유격장 지역을 야영장으로 바꾸면 산을 따로 훼손하지 않고도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런 얘기를 나누며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유격장으로 향하던 도로를 따라, 숨은벽 갈림길이 찾아 위로 올라갔다.
9시 15분에 숨은벽 갈림길, 정확히는 북한산 둘레길에 도착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숨은벽 산행은 대부분 등산객이 밤골에서 시작하는 거로 알고 있으나, 능선을 제대로 타려면 사기막골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해서 둘레길 입구에 있는 지도로 사기막골과 밤골의 차이를 설명하고, 이번 산행 코스를 리뷰했다. 그리고 둘레길로 들어서고 나서 깜짝 놀랐다. 대개 북한산행을 9시에 시작하는 등산객이 드문데, 둘레길에는 수많은 등산객이 오가 눈이 치워져 있었다. 고로 오늘 오간 게 아니라 어제 즉 설날 둘레길을 방문한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설날도 산을 찾는 놀라운 등산객! 그렇게 둘레길을 따라 5분가량 가서 숨은벽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다.
역시 숨은벽능선 위의 등산로 또한 오간 등산객으로 눈이 치워져 있었다. 해서 아이젠이나, 스패츠가 필요 없었다. 물론 두 여성 산꾼은 아이젠을 착용했다. 저 앞에 보이는 세 개의 암봉과 좌로 보이는 상장능선을 감상하며 올라 9시 56분에 밤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갈림길을 지나 계속 가자, 못 보던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해서, 뒤를 돌아보면 언제 설치했나? 하고 물었다. 하긴 숨은벽에 오른 지 꽤 되긴 했다. 해서 마지막으로 오른 게 언제인지 찾아보니, 2019년 설날 연휴 수요일에 올랐다[산행기]. 묘하게 2022년과 똑같다. 다른 게 있다면 당시는 단독산행이었다는 거. 고로 3년 만에 찾은 거라 그동안 변한 등산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결과적인 얘기나, 대남문에서 구기동 계곡으로 하산할 때까지 거의 모든 등산로를 정비했고, 곳곳이 데크다. 산행하기는 쉬워졌을지 모르나, 산행하는 재미는 반감됐다.
그 계단으로 위로 오르자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고 그동안 숲 사이로 보이던 상장능선을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었다. 과거의 등산로는 데크 계단으로 옆으로 나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산꾼이 있었는지 과거의 등산로에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해서 나도 그리로 갈까 하고 시도해봤으나, 아이젠 없이는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는 건 귀찮아 그냥 새로 난 등산로로 올라갔다. 그러다 이상한 모습을 한 바위를 보고 잠깐 놀랐다. 바위 양쪽에 서너 개의 못을 박고 그 못을 철근으로 연결해 다른 바위에 고정해 놓았다. 즉 낙석 방지다. 나라면, 그 정성으로 그 바위를 밑으로 굴렸을 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올라 앞에 있는 노고산 정상이 발 아래 있는 위치에 도착하자 상장 너머로 오봉과 신선대, 자운봉의 바위 군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많이 본 모습이나. 이렇게 선명하게 본 건 처음이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숨은벽 전망대 직전 해골 바위에 오르려고 보니, 길을 막아놨다. 뭐 이래, 이제 해골 바위도 못 간다. 산을 무슨 재미로 다니나? 아주 당연히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전부 데크 계단으로 바뀌었다. 10시 30분에 숨은벽 전망대로 오르려고 보니, 도저히 아이젠 없이 갔다가는 낭떠러지로 추락할 거 같은 분위기라 지금까지 버텨왔던 걸 버리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에는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거나, 인증을 찍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가장 먼저 세 암봉 위에 떠 있는 해와 같이 암봉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전망대 끝으로 가 해골바위도 찍고. 그리고 더욱더 가깝게 보이는 도봉산 암봉군을 사진으로 남겼다. 역시 전망대다!
전망대 도착 기념으로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고, 전망대를 떠나, 숨은벽 대슬랩을 향해 갔다. 그런데 전망대 이후의 능선 등산로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무슨 의미냐면, 전망대까지의 등산로는 많은 등산객이 오가 아이젠 없이도 다닐 수 있을 정도였으나, 전망대 이후는 인적이 드물어 아이젠 없이는 한발도 떼기 힘들었다. 그걸 봐서는 많은 등산객이 전망대까지만 왔다가 돌아갔다는 거다. 즉 정말 위험한 구간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돌아가는 등산객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설경은 못 보고 갔다는 얘기고. 대슬랩 직전 칼바위 능선에 도착해 여느 때와 같이 칼바위로 대슬랩 쪽으로 가려고 시도했지만, 아이젠이 있음에도 미끄러워 포기하고 바로 아래에 있는 등산로로 전진했다. 대슬랩이 가까워질수록 오른쪽 눈 쌓인 백운대 능선이 더욱더 잘 보여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런 절경을 못 보고 돌아간 등산객이 불쌍할 정도.
11시 11분에 구멍바위 즉 대슬랩 앞에 도착했다. 사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아 여기까지 오며 초행자도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안 다닌 사이에 정비된 등산로를 보며 분명히 이 구간도 뭔가를 설치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는 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잡고 내려갈 수 있도록 철봉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머지 밤골에 이르는 리지 구간은 변함이 없었다. 이 구간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철봉이 끝나는 지점에서 밖으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 해서 모든 친구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며, 앞서간 친구에게 밤골로 내려가지 말고 중간에서 기다리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친구가 위험 구간을 지나고 나서 밤골로 내려가려고 보니, 기영이 밤골에 도착해 있었다. 물론 그 동무는 나름 목적이 있어 내려간 거지만. 가지 못하게 막은 이유는 철봉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서 밤골로 뻗은 길로 가면 그만큼 수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먼저 내려간 기영은 올라와야 했다. 기영이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깨달은 건 밤골 쪽에서 올라온 인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긴 숨은벽을 두고 누가 밤골로 올라오겠나!
숨은벽을 초행으로 혼자 왔다가 위로 올라가는 게 힘들어 보여 밤골로 하산했다는 경옥의 말을 듣고, 그 말에 동의하며 '내가 생각하는 북한산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이 길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참조하기 위해 국립공원공단에서 만든 북한산 안내도를 보니, 북한산에는 1. 구멍바위에서 밤골로 내려와 숨은벽 정상과 백운대 사이까지 오르는 구간, 2. '백운봉암문'에서 '백운대'까지, 3. 주 등산로에서 의상봉을 거쳐 용출봉까지, 마지막으로 3과 같은 의상능선으로 '부왕동암문'에서 '청수동암문'까지의 네 구간이 매우 어려움(Expert)의 '검은색'으로 길을 표시하고 있었다. 와중에 가장 어려운 1번은 연결된 선이 아니라, 중간중간 단절된 검은색이다(사실 그보다 더 힘든 구간은 비법정이지만, 구멍바위에서 사기막골로 내려가 인수봉과 숨은벽 정상 사이로 올라가는 길이다). 내가 그냥 힘들어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은 그 힘든 걸 상쇄하고 남을 정도의 설국이다. 두 여성 산꾼의 입에서 이쁘다가 연발되고 중간중간 서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나도 상고대를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밤골로 올라, 11시 48분에 정상까지 이어지는 데크 계단에 도착했다. 한 번이라도 올라온 적이 있는 사람은 그 계단이 보이는 순간 "다 왔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정상인 데크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관이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위로 올려다보니, 상고대와 눈꽃으로 마치 흰산호초 같은 나무가 보였다. 당연히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또한 그 산호초를 배경으로 친구의 인증을 찍었다. 이후 숨은벽 정상과 백운대 암봉 사이의 비좁은 틈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나가자 세상이 변했다. 음지에서 양지로의 변화고, 고양시에서 서울특별시로의 이동이다. 잠깐 쉬면서 간식을 먹고 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따라 양지바른 곳에 앉아 과일과 초콜릿으로 허기를 채웠다. 하긴 그때가 12시경이라 점심시간이다.
이후 백운봉 암문을 통과해 용암문 갈림길에 도착해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두 여성 산꾼은 앞서가고 있어 문제가 없었으나, 뒤에 처진 3명의 남성 등산객이 문제다. 와중에 두 친구는 초행이나, 다름없어 길을 안내해 주지 않으면 산성 입구로 하산하는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자 인형이 도착해 두 친구의 행방을 물으니 뒤에서 따라온다고 해, 주저 없이 노적봉 방향으로 좌회전했다. 그리고 데크 전망대에서 보이는 염초봉을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 수없이 본 모습이나 이렇게 깨끗한 모습은 처음이다. 물론 국녕사의 대불도. 눈 쌓인 노적봉 정상도 놓칠 수 없다. 와중에 노적봉 동봉에 오른 등산객도 보였다. 사진을 다 찍고 노적봉을 향해 가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인형이 기영이 보이지 않는다고 소리친다. 우려했던 사태다. 해서 큰소리로 북한산에서는 조난할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자고 외치고 갈 길을 가는데, 지나가던 등산객이 북한산에서도 조난이 많이 난다고 참견이다. 그와 동행하는 사람은 북한산에서 조난이 제일 많다고 한마디 거든다. 해서, 시키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조난하는 거라고 다시 큰 소리로 외치고 노적봉으로 갔다.
노적봉 아래에 도착해 기영과 영빈 두 친구를 기다리며 인형이 가져온 따뜻한 생강차를 한잔하며 행방불명된 기영에게 전화했으나, 핸드폰이 꺼져 있다. 그리고 도착한 영빈도 몇 번 전화를 시도했으나 핸드폰이 꺼져 있어 통화를 못 했다고. 탁월한 산꾼이라 걱정할 건 없고, 일단 갈림길에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직진해 산성 입구로 하산했을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 노적봉을 떠라 용암문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서 저 멀리 보현봉과 문수봉 사이로 보이는 대남문을 사진을 남기며 지리 조에게 일단 저기까지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봉우리 위에 서 있는 정자가 동장대라는 것도. 물론 우리는 동장대로 가지는 않을 예정이다. 동행하는 친구들이 힘들어해서, 기복이 심한 성벽 길이 아닌 거의 산책로 수준인 우회로로 대남문까지 가기로 했다. 1시 8분에 용암문에 도착해 인증을 남겨야 한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따라 옆에 있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기영이 빠진 다섯만으로 사진을 찍었다.
용암문을 지나 북한산 대피소도 지나, 북한산 대피소 아래 임시 휴식처에 비닐 쉘터를 보고 친구들이 점심을 먹고 가자고 성화다. 내 생각은 하산 후 점심을 먹자는 거였는데, 친구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했다. 해서 임시 대피소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가져온 과일과 이슬이, 고구마, 빵 등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런데, 우연히 지리 조의 디팩을 보니, 컵라면이 있었다. 난 아무도 안 가져올 거로 생각했는데, 해서 컵라면 가져온 친구가 또 있는지 물었다. 경옥도 가져왔다. 그럼 내 거까지 세 개다. 뜨거운 물이야 내 보온병에 1ℓ가 있고, 해서 컵라면 3개도 마저 먹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고, 지리 조가 김치를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사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추워서 컵라면 먹고 있을 환경이 아닌데, 이렇게 날이 좋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도 기상청을 믿어야지.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기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재 도선사에 있다고. 아예 백운봉 암문도 통과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해서 일단 그 근처 동생집에서 노닥거리다가 내가 전화하면 능금산장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빵, 고구마, 과일, 컵라면 등으로 배를 채우고 임시 대피소를 떠나 하산처인 대남문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종주할 상태가 아니라, 대남문에서 하산해 능금산장에서 닭도리 안주로 하산주를 거하게 마시기로 했다. 산책로나 다름없는 등산로를 따라 대남문으로 향하는데, 마치 12 성문 종주와 다름없었다. 일단 우리가 지나지 않는 문은 원효봉능선의 서암문(시구문), 북문과 의상봉능선의 대서문,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의 총 6개고 나머지 6개 문은 다 통과한다. 먼저 동장대 아래를 지나 저 아래로 보이는 행궁터를 구경하며, "설마, 복원하겠다고 설치지는 않겠지?"라고 한마디 했는데, 지리 조가 복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거 같다고 해서 열띤 토론을 하며 전진해, 2시 16분에 대동문에 도착했다. 바로 다음 문인 보국문으로 향하는데, 앞의 봉우리 위에 흰 건물 같은 게 보였다. 위치는 남장대 부근. 남장대를 복원하는 게 아닌가 하고 열띤 토론도 하며 욕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정말 복원하는지 구글링해 봤는데, 전혀 관련 내용이 없다. 그리고 1월 24일 남장대지를 다녀온 등산객의 사진에는 어떠한 건물도 없고 내가 아는 남장대지 그 모습 그대로다. 해서 뭘 잘못 봤나 하고 찍은 사진을 확대해 보니 애매하기는 한데, 실제 문수봉 정상에 눈이 쌓여 마치 흰 건물처럼 보였던 거다.
대동문을 떠나며 시간을 확인해본바 적어도 4시까지는 능금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 등산방에 가능한 친구는 4시까지 능금산장으로 오라고 글을 남겼다. 그리고 기영에게는 대남문에서 전화하기로 했다. 2시 31분에 보국문을 통과해 대성문으로 향하는데, 약간의 오르막을 만나자, 뒤에서 따라오던 지리 조가 등산로가 맞냐고 묻는다. 해서 사실 나도 이 길은 처음인데, 서암문을 기점으로 12 성문 종주를 하다 보면 가장 힘든 구간이 성벽 길로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가는 구간이라, 그것만 피해도 양호한 산행이라는 걸 일깨워줬다. 이런 얘기를 나누며 가고 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두 친구가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기본안은 아이 한 명당 월 100만 원씩 지급하자는 거다. 이 얘기에 같이 껴서 얘기를 전개하다 보니, 어느새 베트남 보트 피플까지 나왔다. 자세한 얘기는 한잔하면서 해야…. 호화 요트에 관한 얘기를 하며 가는데, 저 위로 대성문이 보인다. 성벽 길이 아닌 우회로도 각 상문 앞을 통과하는데 대성문만 유일하게 그 밑으로 지나고 있었다. 12 성문 종주가 목표라면, 당연히 위로 올라가 성문을 찍고 왔겠지만, 그와는 무관한 산행이라 아래서 잠깐 휴식 후 이번 산행 하산 처인 대남문으로 향했다.
대성문 아래에서 약간의 휴식 후 우회로를 따라 대남문으로 향하는데 성문이 가까워질수록 등산객의 대화 소리가 소음에 가깝게 들리고, 등산객도 많아졌다. 특히 대남문에 도착하는 순간 한 무리의 등산객이 문수봉에서 내려와 대남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역시 산성 입구 방향이든 구기동 방향이든 북한산행 후 하산 처로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대남문이다. 그 시각이 3시 8분으로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문을 통과한 이후 하산 전 성문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자는 제안에 따라 카메라를 목책 위에 올려놓고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인증을 찍은 후 구기동을 향해 내려가는데, 등산로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등산로가 이렇게 좋아져도 되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제 이 길을 지났는지 기억이 없다. 해서 이 글을 쓰며 찾아봤다. 2019년 2월 23일 2019년 첫 토요 정기산행으로 우이동에서 시작해 불광동에서 끝내는 북한산 영족종주 산행 때였다. 즉 이번 산행과는 삼각산을 기준으로 반대편인 영봉에서 족두리봉까지 달릴 예정이었으나, 그때도 대남문까지 가서, 구기동으로 하산했었다[산행기]. 고로 거의 3년 만의 방문이다. 그 사이에 등산로가 엄청나게 좋아졌다. 산행 재미는 없어졌다는 얘기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비봉과 사모바위, 승가사, 머리 부분만 보이는 마애불에 관해 두 여성 산꾼에게 설명하며 내려가는데, 기영에게서 지금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 전화를 받은 지점이 내가 전화하려고 했던 고개였다. 구기동에서 대남문으로 올라올 때 한 번씩 쉬어가는. 그리고 승가사 계곡으로 달리는 능선 갈림길이다.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3개가 있는데, 그중 정규등산로는 구기계곡을 따라가는 게 유일하고, 문수사에서 내려오면 있는 계곡을 따라가는 길과 그 두 계곡 사이에 있는 능선 길은 비법정 탐방로다. 3년 전에만 해도 그 능선길을 막는 시설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새롭게 목책을 설치해 막고 있었다. 어쨌든 휴식처에 도착했으니 좀 쉬어가도 되나, 우리가 대남문에 도착했을 때 대남문을 통과해 구기동으로 내려갔던 한 무리 대략 20여 명의 등산객을 앞지르기 위해 서둘렀다. 이유는 분명 그들도 능금산장으로 갈 거라, 그들보다 늦으면 우리 하산주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식당으로 전화해 6명이 4시경 도착 예정이니, 닭도리와 백숙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저 아래로 처음 등장한 목재 다리는 이어지는 데크의 시작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길이 데크화됐다. 아니면 돌을 깔아 만든 산책로. 고속도로와 다름없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3시 51분에 승가사 갈림길 쉼터에 도착했다. 그 쉼터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쉬고 있던 노년의 등산객이 '북한산에서 설산의 모든 걸 본 산행이었다'라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맞다. 상고대, 눈꽃, 탁월한 조망! 그런데 그 등산객이 숨은벽과 밤골의 설경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그런데 계획보다 늦었다. 이 시간이라면 식당 도착이 4시 6~7분으로 예정보다 조금 늦는다. 우이동에서 출발한 기영이 이미 도착했을 거니 좀 늦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구기계곡 들입의 폭포는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
그런데 가물어 폭포가 사라졌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2월 15일부터 산불 예방을 위해 입산 금지를 시작하는 거지만. 하긴 영남알프스 문복산은 우리가 1월 14일 고헌산에 갔을 때[산행기]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고로 출입금지가 해제되는 4월 말까지 가야 할 산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 말라붙은 폭포에 실망하고 나와 버들치교에서 계곡에서 노니는 버들치를 구경하고 내려가다가, 설마 저기까지 하는 곳까지 데크가 깔려있어 놀라 사진으로 남겼다. 사실 그 위치는 고개만 돌아가면 탐방지원센터로 산행을 끝나기 직전이다. 바닥에 깔린 데크를 따라 고개를 돌아가자 저 앞에 능금산장이 보인다. 바로 식당으로 들어가자 두세 팀의 등산객이 하산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 주인장에게 전화했던 사람이라고 하자, 미리 준비해둔 자리로 안내해, 배낭을 벗어 옆자리에 두고 핸드폰의 등산 앱을 종료하는 거로 이번 숨은벽, 족두리봉 종주 대신 숨은벽 대남문 종주 산행을 마감했다. 그 시각이 4시 10분으로 약속보다 10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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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산장에 도착해 주인장에게 도리와 백숙을 주문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한 명이 도착해 기다리지 않냐?’고 물었다. 당연히 기영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해 던진 질문인데, 없다는 의외의 답이 왔다. 그럼 우이동에서 구기동까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멀다는 얘기다. 일단 준비된 자리에 앉자 도리와 백숙이 바로 나왔다. 안주를 가져온 주인장에게 빨갱이가 있는지 물었는데, ‘찾아봐야겠지만, 없으면 이슬이?'하고 묻는다. 당연히 '네!'다. 이슬이가 나왔을 때 두 여성 산꾼은 볼일을 보러 갔고, 두 남성 등산객은 언제 도착할지 몰라, 먼저 이미 다 끓은 도리와 백숙이라, 고기 한 조각 건져 안주 삼아 하산주를 마셨다. 이어 두 여성 산꾼이 합류해 두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영빈이 도착했고, 이어서 인형과 기영이 나타났다.
산행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출발을 같이한 여섯이 다시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이슬이와 테라로 하산주를 부어라 마셔라고 하고 있는데, 역시 예상대로 우리가 추월한 한 무리의 등산객이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치가 빨라야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 그렇게 마시다가 기영이 일이 있다며 먼저 가고, 이어 이슬이를 계속 마셨는데, 몇 병인지 기억도 없다. 당연히 집에 어떻게 갔는지도.
쌓인 눈으로 ‘숨은벽’에서 우회해야 하는 구간이 많아, 시간을 많이 끌어 예정과는 달리 '사기막골 입구 → 구멍바위(숨은벽) → 백운봉암문 → 용암문 → 대동문 → → 보국문 → 대성문 → 대남문 → 구기동 계곡 → 능금산장'의 12.25km, 7시간 11분의 설산 산행이었다. 이동 6시간 13분, 휴식 57분!
구기동 계곡에서 만난 노년의 등산객 말대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북한산에서 겨울 산의 모든 걸 본 산행이었다. 상고대, 눈꽃 등!
외국인이 수도에 북한산과 같은 산이 있는 걸 부러워한다는 얘기가 많이 들었는데, 부러워할 만한 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산행이다.
목적한 숨은벽~족두리봉 북한산 종주는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오랜만에 많은 친구와 즐긴 산행이었다. 애초 예상했던 결과로 친구와 같이했다는 게 중요한 산행이었다.
첫댓글 설산에서 고양이는 뭘 먹고 사나?
웬만한 동네 길냥이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이유가 뭘까?
다른 괭이와 먹이를 두고 싸울 필요가 없고,
더 귀여움을 받아 온갖 걸 얻어 먹고 있으니, 포동포동!
빠른 놈들은 가끔 새도 잡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