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5일 수요일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찬송 : 304장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 : 시편 139편 13-18절
요절 : 시편 139편 17절
오늘 묵상할 시편 139편 13-18절은 하나님의 만물을 창조하는 능력(omnificence)에 대한 부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창조를 통하여 아주 개인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의지 하려고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과 긍정적인 관계를 성취해 갑니다. 구약성서에서 창조에 관한 생각은 아주 분명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고, 그분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창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셔서 전 과정을 아시고, 통제하시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시고 모든 존재에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오직 관심을 그분의 행동에 집중한 이들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의문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 가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나타나는 실상과 관계된 것입니다. 시인에게 하나님의 전지(omniscience)와 무소부재(omnipresence)를 이해하는 열쇠는 하나님의 만물을 창조하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본성이 만물을 창조하는 능력으로 설명되거나, 만물을 창조하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신비와 놀라움이 계시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창조의 진리를 경험한 사림께게도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신비는 믿음의 눈으로도 드러나지 않는 신비로 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이 기막힌 이미지로 표현한 것처럼, 하나님의 신비에 포함된 자신을 보게 되므로(13절), 시인은 하나님과 자기 삶의 신비에 대해 새로운 내적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시인의 감사 찬양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신뢰의 감정을 표현합니다(14절). 시인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자신과 조물주 사이에 무한한 차이를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대항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다른 것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며 증거할 수는 있습니다. 시인은 그분의 놀라운 일을 찬양하고 장엄한 신비 가운데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손에 시인의 생명을 붙잡고 계셨고, 시인은 모태에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는 지금까지 시인의 영혼을 지배했던 두려움을 이기게 했습니다(7-12절).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숨어 계신 하나님께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은밀하게 그리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묘하게 지어질 때 계셨습니다(15절). 여기서 시인은 땅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어머니라는 고대 신화론적 사고를 시적 이미지로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눈이 자신의 출생을 지켜보고 계셨다는 신적 신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하나님의 분명한 빛에 노출된 시인의 삶의 시작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시인에게 살라고 허락된 모든 날이 주님의 책(생명책, 참조 시 56:8; 69:28; 출 32:32f.)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신비입니다(16절). 기록된 말은 더욱 힘이 있습니다. 이날들은 실제로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미리 정해졌습니다.
이러한 예정론적인 경향은 예레미야의 소명 기사(렘 1:5)와 같은 목적으로 시인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의 만물을 창조하는 능력에 의하면 시인의 삶은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신비는 시인의 삶의 실재와 근원과 보호가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인을 비롯하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신비를 뚫고 들어갈 수도 없고, 뚫고 들어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신뢰로 하나님의 신비에 복종하며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계심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은 시인은 한 번 더 그분의 위대하심과 헤아릴 수 없는 생각의 대단하심 앞에 놀라움으로 서 있습니다(17절). 시인이 가진 힘이 없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헤아리려 할지라도 끝내 미치지 못하고, 언제나 거래 중일 것입니다.
■■■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헤아릴 수 없는 생각의 대단함을 느껴본 일이 있습니까?
2. 당신은 하나님의 불가해한 신비에 복종하여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