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목사 간증... “기도 중 방언 터지고… 골수암 세포 한곳으로 몰려”
‘예수님의 마을’ 발간
프랑스 파리의 ‘김치 엄마’ 최현숙 목사님은 20년간 프랑스에서 유학생들과 프랑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왔다.
예수님의 마을에서 일어난 은혜로운 이야기다.
구한말 1900년 초 내 할머니가 우물을 긷고 계실 때 파란 눈의 미국 여자가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하룻밤 머물 곳이 없겠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딱해 보여 집으로 모셨다.
그녀는 우리나라에 파송된 미국 선교사였다.
할머니는 그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다.
우리 가정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됐다.
할머니는 매일 저녁 어린 우리를 앉혀 놓고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 믿음의 유산으로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다.
시간 나는 대로 오산리 기도원을 다니며 기도생활에도 힘썼다.
기도원에서 최자실 목사님을 만나 뵙고 기도를 받은 후로 최 목사님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그 때 깻잎 반찬을 무척 좋아하셨던 최 목사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회도 같이 다니며 은혜 충만하던 어느 날 최 목사님이 내게 강하게 말씀하셨다.
“너는 주의 종이야. 내 후계자가 될 거야. 그런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질투하고 방해하니 비밀을 지키며 신학을 하라.”
그러나 당시 내 생각에는 주의 종이 되는 것 보다 사업을 해 돈 많이 벌어서 교회도 많이 짓고 주의 종들을 잘 섬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1970년 나는 큰 식당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안국동 조계사 입구에 2층 건물을 얻어 ‘징기스칸 로스구이’를 했다.
고급식당으로 소문이 나자 중앙청, 청와대, 신문사 등 정재계 손님들이 많이 찾았다. 예약하지 않고는 올 수 없는 곳이 됐다.
새벽 4시면 나는 시장을 보러 갔고 밤 12시까지 돈 버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의 모든 재물을 불어 날려버리셨다.
한 번은 스님들이 나를 불렀다.
“고기를 먹고 싶은데 조용히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뒷문 쪽으로 방을 하나 만들어 스님들만 다닐 수 있게 했더니 매일 그 방은 차고 넘쳤다.
그 때 나는 영적으로 최악 상태였으며, 방황했다.
음식점은 가을에 고사떡을 하고 귀신에게 빌어야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첫 고사 날을 받았다. 떡을 큰 시루에 안쳐 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새벽 누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문을 열자 주방에서 일하는 청년 둘이 온 몸에 피를 흘리며 문 앞에 쓰러지면서 말했다.
“식당에 불이 났어요.”
식당으로 달려가 보니 현장상황이 기가 막혀 주저앉고 말았다.
40여명 종업원이 흘린 피가 질퍽했다.
전기누전으로 일어난 큰 화재는 그날 아침방송 뉴스 시간에 전해졌다.
다행히 화재보험을 들어놓아 피해액의 반 정도는 보상을 받았지만, 워낙 큰 사고라 수습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랐다.
집 두 채를 팔아서 보상금을 지급하고 손해배상까지 해주니 빈 털털이가 됐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귀신들에게 고사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나는 하나님의 채찍인 것을 깨닫고 눈물로 돌아와 신학공부를 했다.
독일 청년 요르겐에 한국어 방언 임해
1990년대 내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유럽선교회 부장으로 섬기던 때 하루는 낮선 청년이 앉아 있었다.
청년은 21세 독일 사람 요르겐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주관으로 열린 선교대회에 참석했다가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비행기 티켓 편도만 구입해서 왔어요.”
청년은 말을 이어갔다.
“선교대회 기간에는 한국 선교사님과 함께 호텔에서 머물렀지만, 대회가 끝나니 갈 곳이 없어요.”
“요르겐 우리 집에 작은 기도실이 있는데,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는 게 어때요.”
“정말 감사합니다.”요르겐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매일 기도와 말씀 속에 사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그는 이왕 한국에 왔으니 유명한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3일간 금식기도를 하겠다며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무릅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의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 골수암에 걸려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말했다.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으시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해 보겠습니다.”
“무조건 예수를 믿겠으니 딸을 꼭 살려주세요.”
“그럼 오늘부터 나와 함께 3일간 철야기도를 합시다.”
학생과 부모가 밤마다 우리집 기도실에서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학생의 무릎에 퍼져 있던 암 덩어리가 한쪽으로 몰려야 수술을 하는데 아무리 약물 치료를 해도 암 덩어리가 한데로 모이지 않아 의사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신기하게도 무릎이 쭈글쭈글해지더니 암 덩어리가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금식기도를 하러 갔던 요르겐이 돌아왔다.
그와 함께 매일 밤 12시 30분부터 새벽 4시까지 쉬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요르겐이 학생의 무릎에 손을 얹고 유창한 우리말로 “병 마귀야 떠나가라. 병 마귀야 떠나가라.”를 외쳤다.
한국어 방언이었다. 그에게 방언이 임했다.
그렇게 3일간의 철야기도가 끝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학생의 무릎 부위 암 덩어리가 한곳으로 모였다. 잘라내야 한다던 다리를 잘라내지 않아도 됐다. 암 덩어리만 간단히 떼 내고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
수술을 해도 6개월 밖에 못산다고 하던 학생은 6개월이 지나도 학교 잘 다니며 점차 회복됐다.
그런데 2년쯤 지난 어느 날 다시 연락이 왔다.
이제 다 나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도 학생도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지냈는데, 얼마 전부터 암이 재발해 병원에 또 입원했다는 것이다.
그 부모와 학생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왔지만 학생은 얼마 후 새벽에 평안이 숨을 거뒀다. 학생은 숨지기 전에 어머니에게 계속 기도문을 읽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학생이 죽던 날 불교신자인 고모가 꿈을 꿨다.
하늘로 훨훨 날아 올라가던 학생은 “고모, 나처럼 예수님 잘 믿어야 하늘나라로 갈 수 있어”라고 했단다.
이로 인해 그 식구들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