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음악가는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주옥같은 많은 노래들을 선사한 미국의 민요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입니다.스와니 강,켄터키 옛집,올드 블랙 조,금발의 제니 등등...아득히 먼 옛날 어린 시절이 아스라히 떠오릅니다.
이제 우리는 포스터의 노래 켄터키 옛집을 들으며 그의 발자취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 미대륙을 가로질러 머나먼 여정을 떠납니다.
[ 미국 민요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 ]
* 스티븐 포스터
스와니 강은 먹물이다.시커멓게 흐른다.가까이 다가가 보면 물빛이 꼭 쌍화탕 같다.손바닥에 물을 떠보니 다갈색이다.손이 물들 것만 같다.포스터의 명가(名歌) <스와니 강>으로 우리에게 전설적 강이 된 스와니는 이렇게 물빛부터 신비스럽다.
여기는 화이트스프링.그리운 스와니 강을 찾아 어릴 때 떠난 고향을 처음 다시 와 보듯 여기까지 왔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잭슨빌에서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약 100km 달리다 US41번 도로로 접어들어 북쪽으로 10km 더 가면 화이트스프링이다.동네에 들어서기 전에 강을 건너게 되고 그 다리 앞에 ‘스와니 강(Suwannee River)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상류 쪽이라 아직 강폭은 좁고 유속이 아주 빠르다.
* 스와니 강
강 양쪽은 숲으로 우거졌다.기슭에서 흑인 여자들이 낚시질을 하고 있다.메기가 낚인다.물은 흑류(黑流)지만 마실 수도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다.물 속에는 악어가 많다고 한다.스와니 강은 조지아 주의 동남부인 오키페노키 늪에서 발원하여 플로리다 주의 서북부를 거쳐 멕시코 만(灣)에 유입하는 전장 410km의 흐름이다.유역에 큰 도시는 없이 작은 마을들 몇 개뿐이요 그 가운데 화이트스프링이 그나마 큰 마을인 셈이라 이 곳이 스와니 강의 센터처럼 되어 있다.
강안(江岸)의 나무들이 대부분 실편백이어서 여기서 나오는 타닌산(酸) 때문에 물빛이 다갈색이다.이 빛깔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내내 그렇다.
* 실편백
측백나무과로서 물가 주변에서 잘 자란다.
실로 ‘머나먼 그 곳 스와니 강’이다.<스와니 강>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미국인들조차도 이 강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포스터의 곡 하나로 천추(千秋)를 흘러 영원히 마르지 않게 된 강.전 세계의 땅덩어리를 관류하는 기나긴 마음의 강.온 인류의 향수(鄕愁)와 그리움을 적시며 적시며 굽이 도는 강.그 스와니 강은 후미진 땅 끝에서 소리 죽인 채 숨어 흐른다.
화이트스프링이 스와니 강의 모촌(母村)으로 뽐낼 만한 것은 이 곳에 포스터 센터가 있기 때문이다.플로리다 주는 조그만 스와니를 세계의 명강(名江)으로 만들어 준 데 대한 감사의 염으로 이 마을의 그 강변에 기념관을 크게 지었다.
* 포스터 센터
마을을 조금 벗어난 들판 가운데의 녹지가 포스터 공원이다.243에이커나 되는 넓은 공원 한쪽에 주립(州立) 포스터 센터 건물이 있다.민속 박물관을 겸해 1950년에 개관한 것이다.공원 끝으로 스와니 강이 돌아 나간다.강가의 선창에서는 스와니 강을 선유(船遊)하는 유람선이 떠난다.
이 센터의 포스터 기념실에는 이 작곡가의 유품 일부가 전시 되어 있다.어릴 때 피츠버그의 이웃집에서 가끔 치던 피아노는 증손녀가 기증한 것.<스와니 강>을 작곡했다는 책상은 조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스와니 강> 등 포스터의 유명한 노래들 장면을 모형 무대의 디오라마로 진열해 놓기도 했다.건물의 한쪽은 커릴리언 타워(鐘樂塔)다.높이 70m의 이 탑에서는 하루 네 번씩 포스터의 명곡들이 차임벨로 울린다.
이 탑에서는 하루 네 번씩 포스터의 명곡들이 차임벨로 울린다.해마다 2월에는 <금발의 제니> 선발대회가 이 센터에서 열린디.포스터의 노래 곡목을 따서 아름답고 음악의 재능이 있는 아가씨를 뽑아 장학금을 주는 행사다.
‘세계에서 가장 즐겨 불리는 노래의 하나’인 <스와니 강>은 미국 남부 출신의 흑인이 방랑 끝에 멀리 있는 고향의 스와니 강변을 그리워하는 망향(望鄕)의 노래다.포스터가 25세 때인 1851년에 작곡된 것이다.악보는 당장 13만부가 팔렸다.에디슨이 레코드를 발명한 것이 1877년이니 그 이전인데도 영국으로 건너가 대유행을 하면서 전 세계에 퍼졌다.
특히 크리미아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이 고향 생각에 열심히 불렀다.남북 전쟁 때는 남군이나 북군이나 다 좋아하던 노래였다.지금 이 곡은 1935년 주(州) 의회의 결의에 따라 플로리다 주의 주가(州歌)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작곡자 자신은 스와니 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포스터가 이 노래의 곡을 먼저 만들어 놓고 가사를 붙일 때 처음에는 ‘페디 강’을 생각했다.페디 강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강 이름이다.곁에 있던 형 모리슨이 ‘야주 강’이 어떻느냐고 했다.이것은 포스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두 사람은 미국 지도를 펼쳤다.2음절의 로맨틱한 남부의 강을 뒤졌다.형 모리슨이 스와니 강을 짚었다.포스터는 손뼉을 쳤다.곧 ‘Suwannee'를 ’Swanee'로 줄여 가사를 고쳐 썼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노래가 <스와니 강>이다.자도 위에서 흐르던 스와니 강은 이제 노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흐른다.
포스터의 고향은 펜실바니아 주의 피츠버그다.그는 여기서 태어났고 짧은 인생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내며 그의 작품 대부분을 썼고 죽어 여기 묻혔다.피츠버그는 세계적 철강업 도시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알레게니 강과 모농가힐러 강이 합류해 오하이오 강을 이루는 지점에 발달되어 있다.
* 피츠버그 전경(알레게니 강과 모농가힐러 강이 합류한다)
한인계 미식축구 대선수인 하인즈 워드가 활약했던 피치버그 스틸러스 팀이 이곳을 근거지
로 하고있다
포스터가 태어난 곳은 펜애버뉴 3600번지다.당시는 피츠버그 교외의 로렌스빌이라는 동네이던 곳이 1868년 피츠버그 시에 병합된 이후 지금은 시내의 일부가 되어 있으나 아직도 한적하여 시골 냄새가 난다.포스터의 생가는 1865년에 이미 무너지고 그 자리에 아메리카 관악 오케스트라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집 앞의 잔디밭에 포스터의 생가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념판을 세워 놓았다.이웃에 있었다는 스잔나의 집 자리는 빈 터다.스잔나는 포스터의 생가 생울타리 너머에 살던 5살 아래 소꼽친구의 이름이다.육군 대위의 딸이었다.애창되는 <오 스잔나>의 주인공이다.<오 스잔나>는 포스터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알린 작품이고 1849년 골드러시 때 서부로 향하던 젊은이들에게 크게 히트한,미국 개척시대를 상징하는 명곡이다.
포스터는 14세 때(1840년) 인근에 나가 학교를 다니다가 15세 때 학교가 싫어 피츠버그에서 개인교사 밑에서 공부를 했고, 20세 때는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에서 형이 경영하는 상점의 회계원으로 일한 뒤 3년 만에 피츠버그로 돌아와 작곡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포스터가 피츠버그에서 옮겨 다니며 명작들을 쓴 집들은 지금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포스터의 처가가 되는 맥도웰 가(家)는 집 위치조차 가늠할 수 없다.장인 앤드류 맥도웰은 당시 피츠버그의 이름난 의사였고, 이 집의 흑인 마차꾼 이름이 조였다.포스터의 노래 <올드 블랙 조>가 그를 모델로 한 것이다.포스터가 24세 되던 해(1850년) 맥도웰 의사의 딸 제인과 결혼을 할 때 식장까지 신부를 마차에 태우고 간 것이 조다.
결혼 후 아내 제인은 여러 번 포스터 곁을 떠났고, 결혼 생활은 불행한 것이었지만 제인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계속 썼다.<금발의 제니>는 그 중의 하나다.포스터와 제인 사이에는 <스와니 강>이 나오던 해 태어난 무남독녀 매리언이 있었고, 나중에 음악 교사가 된 매리언은 세 자녀를 낳고 84세로 1935년에 죽어 그 후손이 많다.
피츠버그는 고향이면서도 포스터의 족적이 담긴 곳이 하나도 없는 것이 섭섭하여 1937년 피츠버그 대학의 한쪽 끝에 포스터 기념관을 새로 지었다.그리고 기념관 건너편 잔디밭 가운데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 포스터 기념관이 있는 피츠버그 대학
*기념관 앞의 표시판
기념관은 포스터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이 수집품 중 많은 것들은 본래 인디애나폴리스에 살던 릴리라는 한 열성있는 공장주가 모아 포스터 홀을 꾸몄던 것을 이 기념관 개관 때 기증받은 것이다.
포스터가 작사,작곡한 노래들의 원본이 거의 다 있다.한 작곡 노트에 <스와니 강>은 연필로 쓰여졌고 ‘페디 강’을 ‘스와니 강’으로 고친 자리가 역력하다.포스터가 자필로 수입을 적은 장부를 보면 그는 당시 <스와니 강>으로 1,647달러 46센트의 인세를 벌었다.한 진열장에는 포스터가 숨을 거둘 때 가지고 있던 지갑과 그 속에 들었던 38센트의 동전이 녹슨 채 놓여 있다.만인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 작곡가의 말년이 얼마나 한랭했는가를 말해준다.곁에는 그가 죽은 뒤 발견 된 ‘친한 친구들과 착한 마음의 사람들’이라고 쓴 종이쪽지가 나란하다.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였을까.
포스터는 만년의 4년을 뉴욕에 나가 살면서 술에 빠져 싸구려 하숙집에서 곁에 아무도 없이 37세의 나이로 쓸쓸히 죽었다.유해는 피츠버그로 옮겨져 알레게니 공동 묘지에 묻혔다.
* 포스터 무덤
미국 땅을 여행해 보면 포스터의 이름은 도처에서 발견된다.공원,다리,고속도로,배에까지 그의 이름이 붙여 있다.50센트짜리 동전에는 그의 초상이 들어 있고,심지어 포스터 품종의 난(蘭)과 장미도 있다.
포스터의 또 하나의 유명한 노래가 <켄터키 옛집>이다.포스터는 결혼한 지 2년 뒤인 1852년 처자를 데리고 피츠버그에서 오하이오 강과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증기선으로 여행을 한 일이 있다.이 때 켄터키 주의 바즈타운에 있던 숙부 존 로완의 농장 집에 들렀다.옛집이었다.그 인상이 <켄터키 옛집>이 되었다.
* 켄터키 옛집 기념관 앞의 흑인 동상
바즈타운은 루이스빌에서 남쪽으로 약 80km.버본 위스키의 본바닥으로 5천명 인구의 마을에 위스키 주조장이 14군데나 된다.켄터키 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정착지라 역사적 건물들이 많고 거리는 넓다.
포스터가 묵었던 집은 지금 그의 노래 곡목대로 <켄터키 옛집>으로 이름 붙여져 1923년부터 켄터키 주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립(州立) 켄터키 옛집 공원’이라 불리는 녹지의 언덕 위에 하얗게 서 있는 건물이다.옛 가구들이 많이 남아 있다.건물의 원래 이름은 ‘패더럴 힐’이었고 당시 이 집 주인이던 존 로완은 법률가로서 상원 의원을 지내고 제퍼슨 대통령과 친구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로완 가(家)는 4대에 걸쳐 이 집에 1922년까지 살다가 주(州) 정부가 성소(聖所)로 꾸미려 하자 팔았다.역사 얕은 미국으로서는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어 한 해 10만 명이 찾아온다.이 공원 안에는 야외 극장이 있고 1959년부터 매년 여름 여기서 ‘스티븐 포스터 스토리’라는 뮤지컬이 공연된다.
포스터의 명가(名歌)들을 엮어 그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이 뮤지컬은 맨 마지막에 <켄터키 옛집>의 합창으로 끝난다.이 오래는 ‘스와니 강’처럼 켄터키 주의 주가(州歌)가 되어 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은 말 그대로 켄터키주에서 1930년에 최초로 영업을 개시했고 본격적인 프렌차이즈 영업은 1952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시작했슴다. 1991년도부터는 KFC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후라이드'라는 말이 기름으로 튀긴다는 인상을 주어서 이를 싹 감추느라고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요.
첫댓글 참으로 얄굿네요, 이처럼 만인의 연인 포스터를 이 세상에 오래두지 않고 37세에 데려가니... 자세히 읽어보니 스와니강의 탄생이 묘하게 재미잇섬다 그라고 캔터키후라이드 치킨은 켄터키지방에서 유래된건감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은 말 그대로 켄터키주에서 1930년에 최초로 영업을 개시했고
본격적인 프렌차이즈 영업은 1952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시작했슴다.
1991년도부터는 KFC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후라이드'라는 말이
기름으로 튀긴다는 인상을 주어서 이를 싹 감추느라고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켄터키 주 주민들이 와글거리기 시작했습니다.우리 고장이 고작 닭이나
키우며 먹고사는(켄터키=치킨) 찌질이 가난뱅이 촌 동네로 세상사람들이 볼 게 아니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