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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4.
새 시대를 여는 사람
느헤미야 1:3-5, 2:17, 3:1 (신년두 번 째 주일)
I. 새 역사의 시작
어떤 농장에 일 잘하는 노새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마음껏 건초 양식을 먹어라!” 며 건초 창고에 넣어 주었습니다.
한참 후에 창고의 문을 열어보니 노쇠가 쓰러져 죽어 있더랍니다.
왜 죽 었을 까요?
앞뒤좌우 어느 쪽 건초를 먹을까? 망설이다가 굶어 죽었답니다.
주후2024년 새해가 밝은지 14일째입니다.
몸은 어느새 1월14일에 와 있는대 마음은 아직 2023년 과거에 묶여 있지는 않는가요?
우리는 앞으로 과감하게, 담대하게 전진해야 되는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망설이며
전진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무슨 일을 시작해야 될는지 좌우를 둘러보다가
아무 일도 못하고 주저 앉은 사람은 안 계십니까?
언젠가 신년벽두 뉴욕 중심부 맨하탄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는 시설벽에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그린 포스터 20여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인생은 기회다. 인생은 아름다움이다. 인생은 축복이다. 인생은 꿈이다. 인생은 도전이다. 인생은 사랑이다.
인생은 신비다. 인생은 노래다. 인생은 참 값진 것이다...
마지막 20번째 포스터 인생은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 시작하라!
여러분!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입니다.
인생은 출발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감동주심에 따라 지금 그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새해에는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리라?
그렇다면 반드시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응답을 받는 감동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단하고 성경을 펼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지.
그러면 기도시간을 미리 잘라 놓는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 실패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모든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리라. 그렇다면 예배에 생명을 걸어보세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어디에선가 새해에는 섬기면서 살리라.
교회사역을, 세상에서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리라.
그렇다고하면 이미 축복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새 시대, 새 역사, 새 기적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일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이새라는 사람의 집에,
형제들 가운데 에서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막내 다윗을 감동 시키셨습니다.
블레셋 적장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당신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미디안 광야 장인의 집에서 머슴살이하던 모세를 감동 시키셨습니다.
어디에선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자를 숨겨두신 것입니다.
그 사람을 감동시켜서, 그 사람을 순종케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새 시대를, 기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불타버린 성문을 수축하기 위해
저 멀리 지배국 페르시아 수산 궁에 있던 느헤미야를 감동시키셨습니다.
느헤미야를 준비시켜서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민족을 재건하는 겁니다.
무너진 성벽, 불타버린 성문을 수축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감동시켜 어떤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라 말씀하십니까?
인생은 자기 인생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뭘 하기 위해서 사는가?
여기에 대한 자기 해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진해진성교회 사역의 부흥을 위해 부름받았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우리교회 중보기도의 사명으로 살아간다.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적군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 교회 안에, 모세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손이 올라가면 그가 속한 공동체는 승리하는 겁니다.
이 사람의 손이 내려오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물질 얻는 권세, 재물얻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기업, 사업을 크게 일으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이웃을 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물질에 복이 풍성하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번쩍번쩍 떠오를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길을 열어 주십니다.
천천이 쓰러지고 만만이 넘어지는데 이런 사람들이 손을 대는 곳곳마다 불이 붙고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새해 새 역사는 아주 작은 감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시면 지체하지말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새 시대에 주인공으로 자랑스럽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를 통하여 새 역사의 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II. 이와같이 새 시대를 위해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시는데 준비된 그릇대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꼭 쓰셔야 하는데 준비가 덜되었다거나 안된 사람은
충분하게 준비를 시키시고 다듬고 그릇을 키워서 쓰시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집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는 밥그릇에 밥을 담고 국그릇에 국을 담아 먹습니다.
혹 쓰레기통에 밥을 담아 잡수시는 분이 계실까요?
아기 오줌통에 국을 담아 잡수시는 분이 계실까요?
준비된 그릇대로 사용하시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할 때 내 그릇을 주님 앞에 드리면 준비된 대로 사용하시고 쓰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그 배를 조금 띄기를 청하신 후 배에 앉으셔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빈 배에 예수님을 모신 겁니다. 거기에서 역사,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준비된 사람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가 누구인지 성경의 기록이 그렇게 넉넉하게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느헤미야아버지 하가랴는 포로2세입니다.
하가랴는 포로로 잡혀있는 땅, 페르시아 땅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자기자신과 동족들이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네가 네 백성을 위로해야 되겠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위로하신다는 뜻을 가진 느헤미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 백성이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느헤미야 동생의 이름은 “하나니”입니다.
수산 궁과 예루살렘을 오가며 형 느헤미야에게 본국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임금을 섬기는 술 관원으로 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는 느헤미야에 대한 정보의 전부입니다.
이방땅 그 나라에서 출세하고 그 자리를 통해 민족을 재건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3세입니다.
이방 땅 페르시아 왕의 신뢰를 크게 받고 있는 사람으로 술 관원이란 임금의 경호실장겸 비서실장입니다.
이 자리는 임금과 국정을 논 할만한 자리이기에 느헤미야는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포로병으로 끌려가서 이처럼 출세한 사람이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자세히 보면 임금과 국정을 논한만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그냥 우연히 주어진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섬세하게 준비했고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현재 그 모습, 그 자리, 그 형편이 무엇을 가리킬까요?
우연히 그리된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 만드셨다. 이 형편 이대로 쓰실 것이다. 이걸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순종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느헤미야를 그 자리에 앉혀 하나님이 민족을 재건하듯이
하나님이 나를 이곳까지 인도하시고 이 자리에 앉혀둔 이유가 뭘까?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사명, 비전, 목적, 꿈을 살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 도시가 황폐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지금 오늘날 우리 사회, 한국교회 소식을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나라도 교회도 개인도 가정도 어려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일어서고 나를 통하여 이웃이 일어서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국제, 외교관계
어느 것 하나 든든한 곳이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비보를 듣고 울기 시작합니다. 통곡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성경의 역사,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것이 무너져 갈 때 우는 사람이 생깁니다.
시일야 방성대곡 울며 기도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 사람을 통하여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기도했습니다.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금식했습니다.
울며 기도했다는 건 영적인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너무 크고 심각해서 사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셔야겠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해 주셔야 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항복! 항복합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 맡겨 드리는 것이 통곡하며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제강점기 비통한 역사를 경험한 세대들이 우리 곁을 거의 다 떠나고 있습니다.
6.25 그 비극적인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들이 하나님 나라로 모두 가고 있습니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던 세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애국자가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애국자입니다.
애국! 나라사랑!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사람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크리스챤 국회의원들 앞에서 애국심없이 진영논리만 있다고 질책을 했을까요?
제발 선당후사 No, 선민, 선국후당.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당을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선국후사. 적어도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이 시대 리더십이라면, 위정자라면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게 옳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울며 통곡하고 기도로, 금식기도로 하나님께서
은석아~, 영선아 ~, 경래야~, 은선아~ 종훈아~ 창원아~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우시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밥을 굶어가며 기도하시 겠습니까?
한 인물의 크기는 그 사람의 관심사, 그 사람의 기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편안과 안일만을 위해서 기도하면 느헤미야는 아무 일도 안하면 됩니다.
수산 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됩니다.
하나니에게 뭘 쓸데없는 소식을 가지고 와! 그러면 그만입니다.
적어도 느헤미야는 조국건설, 시온성 재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내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알고 산 사람입니다.
기도하는데 그때 그때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다릅니다.
오늘 느헤미야가 통곡하며 하나님 의 이름을 부르는데 하나님의 호칭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하늘의 하나님”(느 2:4)
“하늘의 하나님”(느 2:20)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느 1:5)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입니다. 높으신 하나님입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아닥 사스다 왕이 세계를 통치하는 것 같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아닥사스다 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이 하늘에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이 당한 문제가 아무리 커도, 아무리 중요하고 소중하다하드래도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내 문제는 먼지 한 톨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콧바람에 날아갑니다.
문제가 아무리 커도 아무리 심각해도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꼬여도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단 한 번만 만져주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풀립니다.
역사는 일어납니다.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걸 믿는 겁니다.
내 힘으로 도무지 안되는 일이기에 크고 놀라운 하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III. 하나님, 역사하셨군요.
이제는 지나갔지만 지나간 팬데믹 시간들을 통해 무엇이 불타고 무너졌습니까?
넘어지고 실패했던 그 자리에 있습니까?
우리가 마냥 비틀거리고 비실거리는 모습을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새롭게 일어나 달려가십시다.
재건하라. 전진하라. 문은 열릴 것이 다. 길이 열려질 것이다. 더 큰 길이 열릴 것이다.
새 시대, 새 역사, 새 기적은 쿠팡을 통해서 밀키트로 배달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의 약속을 누워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니로부터 비보를 듣고 기도로 준비하고 왕을 찾아간 때는 초가을입니다.
기도를 끝내고 아닥사스다 왕을 찾아간 이 때는 정월달입니다.
작년 초가을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4개월동안 꼼꼼하게 기도로 준비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나를 거절하면 어떡하지? 크게 걱정했습니다.
감히 왕에게 슬픈 얼굴로 나아가 내 조국의 비보를 의논해도 좋을까?
술 관원이 얼굴이 이상해?
임금이 홀을 내밀지 않으면 옆에 있던 경호원이 누구를 막론하고 심지어 왕비라 할지라도 목을 치는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나아가면서도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크게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래? 가야지. 그걸 해결하고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니? 필요한게 무엇이냐?
그때 느헤미야가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는, 모든 길이 저절로 열려지는 조서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또 이만큼의 사람을 붙여 달라고, 재정적인 도움이 이만큼 필요하다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느헤미야 2:4에“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다 알고 계셨군요. 보고 계셨군요.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지 아니하셨군요.
내 기도 듣고 계셨군요. 하나님이 앞장 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계셨네요.
하나님 살아계시는 데 내가 믿지 못했었네요
새 해에 이런 엄청난 일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걱정했는데, 염려했는데, 두려워했는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갔더니
이미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지시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셨습니다. 보고 계셨습니다. 이미 문제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IV. 내일은 희망을 선포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시온성 재건의 꿈을 안고 조국 땅을 밟았습니다.
처참하게 무너진 성벽, 불탄 성문을 보니 다시 눈물이 솟구칩니다.
동생의 보고대로 얼마나 무너졌나 한밤 중에 말을 타고 돌아보다가 보니
골목마다 길마다 마을마다 쓰레기 더미가 태산처럼 쌓여져 있어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 백성들을 모으고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일성을 토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다시 건축하십시다. 건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무너지지 맙시다.
다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성민이라고 하면서,시온성이라 하면서 수치를 당하고 있는 이런 일,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맙시다. 백성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절망만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성을 수축하기 전에 백성들의 믿음을 세웁니다. 마음을 일으켜 세웁니다.
희망을 선포합니다.
샤르뎅의 말처럼 “세상은 희망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할 때에, 낙심하고 안된다고 말할 때에,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어디서 그 꿈이 생겼는지, 할 수 있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은 선포하는 사람에게 희망이 일어나고 생기는 것입니다.
미래는 그들의 몫입니다. 그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새길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골목골목 찾아 다니면서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믿음을 일으켰습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무엇이 가장 우선되는 일인지 망설이지 않습니다.
양문을 수축합니다.
얼마나 많은 문들이 있었습니까?
물도 파야 되고, 쓰레기도 치워야 되고, 국방도 튼튼히 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영적인 문을 세운 것입니다.
제사하는 문, 예배의 문, 기도의 문, 하나님과의 관계, 양문을 수축했습니다.
마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내 집을 먼저 짓기 전에 예배당을 먼저 짓고 예배했듯이,
농토를 일구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 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이 삶으로, 삶은 예배로”
우리가 믿는 모든 믿음이 성경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그대로 쏟아부어지는 2024년!
하나님 의 역사가 우리의 삶이 다시 예배로 승화되어져 예배 자리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이 상식화되어지는, 일상화되어지는 삶이 예배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V. 새 시대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사상 처음 경험했던 코로나 팬데믹 3년, 하나님의 은혜로 잘 견디어 왔습니다.
새 날, 새 해, 새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것입니다.
이미 지나갔지만 3년 잘 살아온 것이 돌이켜 보면 기적인 것만 같습니다.
살아온 기적이 또 다른 내일의 기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희망의 첫 걸음을 내디뎌 새시대를 열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언제나 전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발은 앞으로 전진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눈은 앞을 보도록 만들어져있습니다.
귀는 앞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소리를 듣도록 앞을 향하여 열려있습니다.
입은 앞을 향하여 선포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무런 도전없이 성공하는 것보다 위대한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결국은 위대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는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작하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할 때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게 범람하는 요단강 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강하라.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아라. 물러서지 말아라. 앞으로 전진해라.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첫발을 내디딜 때 요단강 은 갈라졌습니다.
마른 땅처럼 길이 났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024년으로 들어선지 2주일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으면 새역사를 기대하고 들어서시기 자라니다.
여러분 앞에 강물이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 게 될 것입니다.
양문이 건강하게 수축되었으면 반드시 모든 성벽이 굳건히 재건될 것입니다.
기도의 성벽이 재건되었으면 내 인생에 무너진 것들이 다시 세워지는건 시간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졌으면 세상의 모든 성문이 잘 재건 될 것입니다.
주전 170년 유대인들은 시리아 안티오쿠스 4세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온갖 박해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배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죽였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결단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 다.
예배하다가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시리아 군대는 유대인들이 안식일 예배하는 동굴, 처소를 파악하고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예배하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동굴 입구가 피바다가 되었지만 저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에 죽어갔습니다.
그때 죽이던 자들이 오히려 두려워 떨며 “제발 미친자들아 몰래 숨어서 예배를 하라고!”소리를 칩니다.
그때 예배자들은 말합니다.
“참된 신앙은 미친 짓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종교는 미친 짓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사랑에 미치지 아니하고 어찌 독생자 예수를 죽일 수 있었겠는가?
故 옥한흠 목사님의 용어를 빌리면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광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의 종이 된다는 것은 거룩한 일에 미치는 것이다.
신앙인은 곧 광인이 되는 것이다.
위기 시대일수록 광인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주인공으로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한국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 우리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기업, 여러분의 자녀를 새 시대에 주인공으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새 시대, 새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여러분 한분 한분을 불러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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