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멈춘 바다 / 곽주현
살아가면서 혼자가 되는 시간은 누구나 있다. 나는 그런 때를 자주 갖는다. 책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방안에 종일 머무는 날이 잦다. 그렇다고 외롭다거나 쓸쓸하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더구나 고독이라는 낱말은 나와는 거리가 먼 차원 높은 어떤 것으로 여겨져 더욱 말하기 어렵다. 혹시 내가 젊은 날에 겪었던 일이 그것인가 해서 이야기해 보련다.
라디오에서 며칠 내로 태풍이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아주 먼 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딴섬들을 싸잡아 모두 낙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곳은 낙도 중의 낙도여서 90년대 초였는데도 아직 텔레비전이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신문도 닿지 않아서 이런저런 소식은 조그만 트랜지스터가 알려주었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주는 태풍의 예상 진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육지도 그렇지만 작은 섬에서는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오면 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비보다는 바람이 훨씬 더 무서웠다. 망망대해에 점처럼 떠 있는 섬에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온전한 것이 없어서 수십 년 된 소나무도 힘없이 꺾였다. 그래서 대비를 철저히 한다. 각 가정의 지붕을 밧줄로 엮고 선창에 있는 멸치젓갈이 가득 담긴 드럼통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모두 부녀자들이 한다.
강풍주의보가 내리면 남자들은 며칠 전부터 어선을 보호하려고 큰 섬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아이, 여자, 노약자들만 남게 된다. 이럴 때는 나도 손을 보태야 해서 교과서를 덮고 아이들과 갯가로 나간다. 전교생이 겨우 다섯 명이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되었다. 힘을 합치면 무거운 젓갈 통도 옮길 수 있고 바닷가에 널려있는 그물, 부표, 통발 등의 어구들을 마을 공터로 가져갈 수 있었다.
밤이 되었다.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창문이 환해진다. 상현달이 떠오르고 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사방이 고요하다. 이런 날은 달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어느새 발걸음이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내일 태풍이 닿는다는데 바다가 조용했다. 오히려 물결이 보통 때 보다 더 잔잔하다. 달빛에 은빛 물비늘이 반딧불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말로만 듣던 폭풍 전야의 고요가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맥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무섭고 두려웠다. 지구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내가 태풍이 되어 갔다.
다음날 새벽부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파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집채만 한 크기로 변했다. 커다란 코브라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있는 형상이다. 쉬쉬 소리를 내며 달려와 계속해서 방파제를 덮쳤다. 이렇게 가까이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무시무시했다. 옆에 있는 젓갈 통이 떠내려갈 것 같아 더 위로 밀고 있는데 누군가가 기겁하며 피하라고 악을 쓴다. 뒤를 돌아보니 더 강해진 파도가 내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얼른 언덕으로 피했다. 바로 그때 내 발밑에서 파도가 부서지고 드럼통을 휩쓸어 갔다. 하마터면 그곳에 수장될뻔했다. 종일 그렇게 으르렁거리더니 결국 50여 미터의 방파제를 종잇장처럼 구겨 버렸다.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시 하루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물결이 잔잔해지고 어장을 나가는 뱃고동 소리가 파도를 넘어갔다.
이런 날도 가끔 있었다.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던 5월 어느 날이었다. 그런 예보와는 다르게 날씨가 맑다. 티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무결점의 파란 하늘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파도도 잠잠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닌데 한 여름날처럼 따가운 햇볕이 내리쬈다. 육지와 멀리 있는 이곳은 바람이 없어도 늘 파도가 높게 일렁거리는데 여기가 바다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수시로 먹이를 찾는 갈매기도 안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어장으로 나갔는지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대로 멈추어 버린 것 같은 고요가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일요일이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해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섬 전체를 방음벽으로 둘러싼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곳에 내가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또 밀려왔다. 그것은 무서움이기도 했다. 이런 두려움에서 벋어 나고자 해변으로 내려갔다. 어디서 왔는지 갈매기 한 마리가 수면을 스치듯 날았다. 뒷산 산비둘기도 꾸우꾹 소리를 냈다. 얇은 바람도 불었다. 나뭇잎이 흔들렸다. 잠자던 사물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그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며 그곳에서 3년을 보냈다.
아내가 내 방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더니 “또 고독을 즐기고 있네.”하고는 그냥 닫는다.
첫댓글 혼자라는 게 무섭고 외로운 일인데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도 견뎌내셨으니 큰일 하셨네요.
고독을 즐기는 자세 부럽습니다.
태풍 대비로 분주했을 선생님을 상상하며 글을 읽었어요. 선생님이 겪으신 일이 제겐 자연재해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태풍이 오면 바람에 날아간다고 할아버지가 못 나가게 했던 게 생각나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실감나게 쓴 선생님 글에서 다시 느낍니다.
재난 영화를 본 듯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혼자 남게 된 경우) 그런 경험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 같아요.
즐거운 고독 되시길 바랍니다.
무서웠던 그날 기억이 생생할 것 같습니다. 실감나게 적은 글 잘 읽었습니다.
스물몇 살 때, 혼자서 마라도 갔던 게 생각나네요.
거긴 교장선생님 한 분과 여자 아이 두 명이 다였지요.
새삼, 그 아이들과 교장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해지네요.
외롭기도 하셨겠지만 마음아이가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겠어요. 하하
이젠 웬만한 굉음에도 놀라지 않으실 테니 말이죠.
조마조마하다가,
마지막 한 줄에 빵 터집니다.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