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락지
이시훈
어머니는 딸에게 금가락지 하나를 남기셨네.
가끔씩 바라보며 기억하라고.
오래 끼다보니 조금씩 닳아가는 금처럼
기억도 흐려져 가지만
어머니는 늘 웃고 있다.
딸 얼굴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아픈 것도 잊고 환해지는 눈빛.
나 떠나기 전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닳지 않는 건 마음뿐이라
남길 것은 애달픈 마음 하나뿐이라
무엇에 담아야 할지 너무 크거나 작구나.
파란 하늘을 보면 내가 웃는 것이려니
비가 오면 나의 눈물이거니
딸아 눈과 귀를 열어두렴.
삶은 언제나 목마르고 허기진 긴 산책이었으니
보이는 것도 만지는 것도 내 것이 아니었고
치열한 고통만이 내 몫이었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햇빛에서 조금씩
금가루를 훔쳐내었다.
가슴 깊이 숨겨 두었던 금가루를
밤마다 손바닥으로 비비고 비벼서
가락지를 만드는데 한평생을 보냈다.
그 가락지 하나 딸에게 남겨주기 위해.
이시훈
2000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누드를 그리다 꽃에 대한 시선 등.
웹진 <살며 사랑하며> 에세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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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락지 / 이시훈
문학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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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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