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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람
이 홍사
*
보드카 냄새에 찌든 해가 몽골의 민둥산 너머에서 떠오르려는지 동쪽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다시 바람의 땅에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왔다.
생각이 날 듯했는데 혀 밑에서 맴돌기만 했던 말이 다시 눈을 좀 붙이려고 누워 있는데 느닷없이 떠올랐다. 떠올랐다는 표현보다는 울컥, 토해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그래, 잊었던 단어를 울컥, 토해낸 것이다.
운스니사우,
그렇지, 재떨이가 운스니사우였지.
운스는 재라는 말이고 니는 우리나라 말로 ‘의’에 해당하는 소유격 조사이며 사우가 접시처럼 생긴 그릇을 말한다. 그렇게 합쳐서 명사가 된 말이 재떨이, 운스니사우다. 몽골의 말이다. 재떨이를 생각했는데 홍랑의 머리에는 자꾸 셀레익퀘가 떠올랐다. 셀레익퀘는 미얀마 말로 재떨이다. 미얀마 말로 셀레익은 담배고 퀘는 그릇을 말하는데 역시 합성어로 명사가 되었다. 재떨이는 역시 우리나라 말이 으뜸이다. 재떨이에는 담배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 애연가 수준을 넘어 골초 반열에 드는 홍랑은 어디를 가든지 그 나라 말로 재떨이를 먼저 익힌다. 그다음이 이쑤시개다. 잇몸이 늘어졌는지 뭘 먹으면 꼭 이쑤시개가 필요했다. 이쑤시개는 몽골어로 슈드니칙치로드이고 마얀마 말로 또아자토래다. 슈드는 몽골말로 이빨이라는 뜻이고 미얀마 말로 이빨은 또아다. 그건 생각이 났는데 재떨이는 자주 쓰던 말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다가 눈을 좀 붙이려고 누웠는데 울컥 단어가 올라왔다. 다시 바람의 땅에 오니 길거리에서 보이는 간판을 읽기에도 발음이 어눌했다. 어제 이 별장으로 오면서 보이는 간판들이 눈에 익숙하지 않았다. 여기 있을 적에는 키릴문자를 거침없이 다 읽었었는데 그런 것도 망각의 갈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망각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아래층 거실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군데군데 누군가 토해 놓은 토사물에 설거짓거리, 어떤 방법으로 청소하는 게 가장 좋을까? 지난밤에 같이 마시던 사람들은 그렇게 취해서 어떻게 돌아갔을까? 몽골사람들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하면 끝을 본다. 홍랑이 이곳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그 점은 마찬가지다. 술에 찌든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다시 눈을 좀 붙이려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엉망이 된 아래층 거실이 희미하게 눈에 밟힌다.
누가 저걸 깔끔하게 해결할까? 몽골에서 축제나 파티의 뒷모습은 언제나 저런 것인가? 화장실을 가고 싶지만, 엉망인 거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홍랑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
홍랑은 9년 만에 바람의 땅, 이 몽골을 다시 찾은 것이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 크는 걸 보면 홍랑은 늙지 않는 축에 든다.
9년 만에 찾아온 바람의 땅, 이 땅에는 역시 바람의 자식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은 엊그제 말복이 지났는데 여기는 영상 1~2도라고 인터넷에서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영하로 내려갈 수도 있으니 겨울옷을 단단히 준비하라는 전갈이 있었다.
홍랑은 거의 9년 전까지 이 땅에서 바람 장사를 했었다. 거의 7년간 바람을 잡아서 팔다가 조금 벌어서 미얀마로 넘어갔다. 물론 한국의 일은 그대로 하면서 부업으로, 재미로 해외사업에 손을 댔다.
지금은 미얀마에서는 주택사업을 하고 있는데 총알을 엄청나게 들이부었다. 초기 투자금치고는 상당한 액수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오고 설상가상, 설상가상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인 거 같다. 코로나가 와서 마음대로 나다닐 수가 없는 상황에서 군부의 구데타가 일어났다. 그 시점에 미얀마에 체류하던 홍랑은 쫓기듯이 한국으로 의약품을 실으러 들어가는 특별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갔었다. 외국인 전면 통제, 그리고는 미얀마에 나가지 못했다. 살림은 물 건너 있는데 그야말로 조졌다. 발이 묶이고 미얀마의 뉴스만 듣고, 또 미얀마의 매니저와 통화를 하면서 상황을 파악하지만 언제나 마음 놓고 들어갈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몽골에 있는 전 매니저들로부터 언제 한 번 들어오시라는 전갈이 왔다. 그런 얘기는 한 번 한 것이 아니라 연락할 때마다 그런 소리를 했다. 건성으로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자 서둘러 문을 닫아걸었던 몽골인데 코로나가 한풀 꺾이자 가장 먼저 문을 연 나라가, 바람의 나라 몽골이었다. 심지어 한국과 무비자 조약이 되지 않은 나라인데 불구하고 한국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국인에게는 몽골에서 무비자로 한시적으로 받아주고 있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서 먹고사는 나라에서 어지간히 다급했던 모양이다. 홍랑이 나오던 어제도 몽골로 향하는 저가 항공이 세 대나 뜬 것으로 알고 있다. 거의 만석이었다.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비자 없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나라가 몇 안 된다. 해외여행을 자주 하던 사람들은 코로나로 문이 닫혀있던 동안 어지간히 답답했던지 몽골로 향하는 비행기를 검색하는 모양이다.
몽골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몽골 현지식으로 발음하자면 소똥고스, 무지개라는 뜻인데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른다. 아기를 낳으면 삼신할매가 빨리 나가라고 엉덩이를 걷어차서 멍이 생겼다는 속설이 있는 몽고반점, 몽골인과 우리나라 아기에게만 있다는 것을 몽골사람들은 거의 다 안다.
홍랑은 그동안 미얀마를 들락거리느라고 몽골은 관심 밖이었다. 아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올 시간이 없었다. 한 달은 미얀마, 한 달은 한국에서 일했으니 몽골은 들어올 짬이 없었다. 이따금 몽골 매니저들과 연락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몽골의 매니저는 두 녀석이다. 친바와 다시카인데 두 녀석 다 바람의 땅에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고 흔들림이 없이 잘살고 있다. 이 땅에 와서 처음 구한 매니저는 친바다. 한국의 공장에서 6년간 일을 했으니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서류상으로 외국인 투자자 등록을 하러 들어와서 우연히 친바를 구하고 바로 몽골로 한국의 중고 중장비를 들여왔다. 친바라는 녀석에게는 가르칠 게 많았다. 일을 따오는 법과 기사를 다루는 요령, 갑자기 고장이 나면 응급조치하는 요령 등을 가르쳤다. 녀석은 눈치가 재발라서 곧잘 해냈다.
녀석과 동고동락한 지 7년이었다.
이 녀석은 지금 몽골에서 중장비 임대업을 하고 있다. 홍랑이 사업 막바지에 철수하면서 중장비 한 대를 녀석에게 헐값으로 분양했는데 그걸 키워서 몽골에서 중장비로는 알아주는 업자로 성장했다. 지금은 중장비를 여러 대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다.
다시카는 친바보다 삼 년이 늦게 홍랑에게 들어온 녀석인데 당시에는 친바 하나로 일을 처리하기 벅찰 정도라서 매니저를 한 명 더 구한 게 다시카다. 다시카를 구하고 홍랑이 몽골에 오면 다시카의 건넌방에서 생활했으니 다시카의 식성까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다시카의 아내는 홍랑의 식성을 알고.
다시카는 홍랑의 중장비가 들어간 금광에 들어갔다가 그쪽 사장과 친분을 쌓아 금에 손을 댔다. 결과적으로 다시카도 성공했다.
몽골에는 닌자라는 직업이 있다. 대나무 소쿠리를 등에 걸치고 다녀서 닌자 거북이로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닌자들이 뭘 하느냐?
금광에 가서 장비로 금을 채굴하고 남은 찌꺼기를 대나무 소쿠리로 쳐서 금 부스러기를 원시적으로 채취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져오는 소량의 금을 사들여 그걸 녹여서 금괴를 만들어 파는 일을 다시카는 하고 있다. 그렇게 채취하는 건 세금이 붙지 않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이 생기는 모양이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다시카는 울란바토르에 아파트가 두 채이고 또 여름 집을 가지고 있다. 몽골에서는 별장을 여름 집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별장과 다른 점은 겨울에는 생활할 수가 없다.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이니, 너무 추워서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변두리까지 다니기도 곤란하고 나무로 지은 집이라 보온성이 떨어지기에 겨울에는 생활할 수가 없어 별장이라 부르지 않고 여름 집이라 부른다.
홍랑이 들어와서 짐을 푼 곳은 다시카의 여름 집이다.
호텔로 가려고 했으나 공항에 마중 나온 친바가 다시카의 여름 집에서 머무는 게 여러 가지로 편할 거라고 해서 이리로 왔다. 나무로 지은 이 층짜리 집인데 신경을 써서 지은 집이라서 훌륭했다.
홍랑의 이번 동행은 몽골에 처음 오는 홍랑의 술친구 덕기 형이었다.
덕기 형은 여행 마니아인데 몽골은 와 볼 기회가 없었단다.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걸 규칙적인 생활이라 명명할 정도로 자주 마시는 사이인데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애초에는 몽골에 와서 모텔이나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쓸 작정이었으나 다시카의 별장으로 오니 각자 다른 방을 홀로 쓸 수가 있어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있다. 서로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어서 좋았다. 코 고는 소리는 듣는 것보다 들려주는 게 더 민망하다.
지금은 한국 관광객들이 너무 들어와서 호텔이 모자라는 지경이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는 걸 친바에게 들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친바를 보니 몰라볼 정도로 몸집이 수평적인 팽창을 했다.
너 인마 너무 쪘구나
홍랑이 반갑다고 녀석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카를 만나니 다시카도 마찬가지였다. 수평적 팽창, 얼마나 쪘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몽골인이 되었다. 두 녀석, 다 중후한 몽골의 사장티가 줄줄 흘렀다. 몽골사람들은 육식성 동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식성이라면 몽골인은 분명 육식성이다. 아침부터 고기와 보드카를 마시는 종족이다. 아침에 밥은 먹지 않고 삶은 양고기를 썰어서 보드카부터 먼저 한잔한다. 그게 아침이다. 특히나 손님이 오면 그런 식으로 아침을 대접한다. 그게 최고의 대접이라 여기는 민족이다.
몽골에서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 추위를 덜 탄단다. 피하지방이 두꺼워서 추위를 덜 타게 된다는 과학적으로 논리를 들먹인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몽골의 아이들은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야들야들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으면 슬슬 몸이 불어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간혹 있지만, 몽골사람들은 대체로 몸집이 굵다,
9년 만에 몽골에 도착해서 변한 것을 본 것은 공항을 옮겼다는 점이다. 그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조마드 부근으로 옮겼으니 울란바토르 시내까지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공항에서 울란바토르 입구까지는 고속도로가 생겼다. 몽골에서 처음으로 생긴 자동차 전용 도로다. 울란바토르 입구까지는 고속으로 왔는데,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시내 어귀에서부터 차가 엄청나게 밀리는 것이었다. 마중을 나온 친바의 말에 의하면 모레부터 학교가 개학하는 시즌이어서 시골에 있는 차들이 다 들어와서 지금은 며칠간 이부제로 운행한다는 교통당국의 발표가 있었다고 했다. 친바가 가지고 나온 차는 끝 번호가 홀수여서 시내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예전의 울란바토르가 아니었다. 시내에 굴러다니는 차는 전부가 일제였다. 교통이 통제되지 않는 우회도로, 시내를 빙 돌아서 이 별장까지 오는데, 거의 네 시간이 걸렸다. 외곽도로도 엄청나게 밀려서 가다, 서다, 반복했다.
도착하자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다시카의 별장지기인 다시카의 손위 처남이 술상을 준비한 것이었다. 예전에 몇 번인가 본 얼굴이었는데 도르치라는 이름의 홀아비였다. 다시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었다. 술상에는 방금 삶은 말고기와 낙타고기에 보드카가 두 병이나 놓여 있었다. 그걸 보자, 홍랑은 비로소 몽골에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몽골!
몸을 사려야 한다.
보드카로부터 몸을 사려야 한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몽골 남자는 할 일이 없다. 초원에 유목을 나가면, 소를 잡거나 말이나 양을 잡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가 여자의 일이다. 남자는 그저 게르에서 술이나 마시고, 젖을 짜고 짐승을 돌보는 일은 모두가 여자의 일이다. 물론 아이를 만들 적에는 남자에게 약간의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다른 일에는 거의 놀고먹는데, 친바와 다시카는 예외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홍랑이 가르친 결과다. 그 결과 둘은 성공했다. 두 녀석은 몽골사람들과 의식구조가 다르다.
홍랑 일행이 도착하자, 바로 따라 들어온 이가 별장의 안주인, 다시카의 아내였다. 차를 직접 몰고 장을 봐서 들어온 것이다. 다시카의 아내도 틈틈이 배워서 한국어를 곧잘 구사한다. 홍랑의 일행을 보고 아주 귀한 손님이라고 했다.
홍랑은 다시카 아내가 장을 봐 온 것을 챙기는데, 타르바가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타르바가?
친바나 다시카가 한번 들어오라고 할 때마다 꼭 타르바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언질을 주었다. 홍랑이 먹어본 고기 중에서 타르바가가 가장 맛이 있었다.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전에 몽골에서 일할 적에 홍랑은 그 고기를 맛보았었다.
다시카가 울란바토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인과 장모가 시골집에 살고 있다고 가자고 했다. 당시에 친바에게는 이미 중장비 한 대를 분양했기에 친바는 제 일을 하랴, 또 홍랑의 일을 돌보랴, 시골 현장을 다니느라 뒤돌아볼 틈도 없이 바빴다. 다시카를 따라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로 갔다. 가보니 장인과 장모는 철로가의 원형 게르에 살고 있었다.
가서 양고기와 보드카를 마시는데 창고에서 다시카와 장인이 무슨 고기를 은밀히 장만했다. 좀 큰 다람쥐같이 보였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몽골어로 타르바가라고 했다. 다람쥐와는 다른 동물인데 머리는 없었다. 다시카의 설명에 의하면 머리가 가장 맛있기에 머리는 그걸 잡은 포수가 먹고 나머지 몸통만 판다고 했다.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장만하는데 뭔가 은밀한 구석이 보였다. 알고 보니 다르바가는 몽골에서 수렵 금지 동물로 분류되어 발각되면 잡은 사람이든, 먹은 사람이든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문다는 것이었다.
몽골 전통음식인 허럭을 만들 듯이 목으로 손을 넣어 내장을 빼내고 거기에 불에 달군 조약돌을 여러 개 넣어 안에서부터 익히고 밖에서는 휴대용 가스를 이용해 털을 태우는데 노린내가 진동했다. 고기를 장만하는 방법부터 특이했다. 그 타르바가를 장만하는 데는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안에서 돌로 익히고 밖에서 불로 익히니 배가 부풀어 빵빵한 게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양고기를 실컷 먹은 다음인데도 그랬다.
먹는 방법도 특이했다.
탱탱하게 된 놈을 고기를 바로 썰지 않고 배를 예리한 칼로 그으니 기름기도 아니고 노란 물이 흘러나왔다. 그걸 컵으로 받아서 돌아가면서 나누어 마셨다. 그렇게 마시는 데도 위계질서가 있다고 했다. 연세가 든 장인부터 마시고 그다음은 홍랑이 마시고 다시카에게 넘겨주었다. 여자는 그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고 했다. 몽골에는 남녀 관계가 분명히 수직적으로 정립되어 있는데 아직 그런 전통이 남아있다. 그런 물만 못 마시는 게 아니라 그걸 장만하는 과정도 여자가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노란 물은 기름이 아닌가 했는데 마셔보니 맛은 기름의 맛이 아니라 고소한 육즙의 맛이었다.
그다음은 고기를 도마 위에서 썰어가면서 굵은 소금에 찍어서 먹는데 그야말로 환장할 맛이었다. 셋이서 한 마리를 다 못 먹는다. 남은 반토막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시내로 가지고 나왔는데 식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그 고기를 먹고 나니 양고기나 말고기는 텁텁하게 여겨져 맛이 없었다.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타르바가가 무슨 동물인지 꽤 궁금했다.
홍랑은 이번에 들어오면서 몽골에 관한 여행 얘기가 나오면 덕기 형에게 타르바가를 꼭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몽골에서 친바나 다시카가 전화가 오면 타르바가를 준비하라고 번번이 다짐을 주었었다. 대답은 항상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먼저 도착한 다시카의 아내는 남편이 급한 일로 시골의 금광에 나갔다가 지금 울란바토르로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마도 금광에 나가는 김에 타르바가를 구해서 오는 모양이라고 홍랑은 짐작했다.
예전에 타르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타르바가는 소금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지금 생각났다. 타르바가는 우리나라 텔레비전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땅속에서 나와 귀를 쫑긋 세우고 서서 불빛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다람쥐 같은 짐승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타르바가는 워낙 영악해서 소금을 먹으러 밤을 이용해 거의 400킬로가 떨어진 곳까지 가서 소금을 섭취하고 흙냄새를 분별해서 제가 태어난 곳까지 되돌아오는 영악한 동물이라고 들었다.
마흔두 살에 할아버지가 된 다시카는 오밤중이 되어서야 별장에 도착했다.
이미 별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거의 다 만취했다. 오랜만에 홍랑이 들어왔다고 친바가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불러서 몽골의 남녀가 모였는데 일고여덟이 되어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주제는 어디 가고 없고 모두가 횡설수설하는 상태였었다. 그 독한 보드카는 벌써 대여섯 병을 비운 상태였으니 아무리 주량이 세다는 몽골사람들도 술이 술을 마시는 지경이었다. 덕기 형은 권하는 술을 뒷생각 없이 납죽납죽 받아 마셨지만, 홍랑은 속도를 계산적으로 조절하며 마셨다. 권하는 대로 마셨다가는 그다음 날, 그야말로 하루는 죽는다.
밤이라 기온이 더 내려갔는지 입고 있던 옷에 으슬으슬 바람이 들어왔다. 술판을 벌이는 몽골인들은 더러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홍랑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이 층으로 올라와서 준비한 겨울옷을 찾아 입고 내려갔다. 이 바람의 땅에 오면 씻는다는 건 언제나 뒷전이다. 겨우 양치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물이 귀한 나라인데 발 빠른 한국의 지하수 개발 업자들이 어지간히 설쳐서 지금은 식수 정도는 귀하다는 걸 모르고 지낸다.
오밤중에 도착한 다시카가 차에서 타르바가를 꺼냈다.
형님과의 약속대로 타르바가를 구했습니다.
비닐봉지에 든 시커먼 동물의 사체, 거부반응이 일었다. 홍랑은 지금 장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다음날 먹자고 했지만, 다시카는 막무가내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골고루 맛을 보고 가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 밤중에 다시카의 처남과 친바가 차고에 가서 난로를 피우고 타르바가를 장만했다.
그러는 동안 거실에서는 보드카를 마시며 다시카의 손주에 관해서 얘기했다. 다시카는 열아홉에 결혼했다. 모스크바로 유학 가서 그곳에서 만난 몽골 유학생인 아내를 만나서 임신시키고 유학을 중단하고 몽골로 돌아온 녀석이다. 몽골로 돌아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몽골의 신혼살림이래야 정부에서 받은 땅에 게르를 하나 치면 그만인 것이다. 그 게르에서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나모나다. 나모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연애를 걸어 아이를 낳고 도망치듯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니 마흔두 살에 외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직 모계사회이니 나모나가 낳은 아이는 다시카 부부가 키우는 형편이다.
몽골에서는 외할아버지든, 할아버지든, 다 할아버지로 통한다. 몽골의 모계사회의 풍습이 아직도 성성한 것을 홍랑은 알고 있다. 다시카와 홍랑이 오랫동안 일을 하고 다시카 집에서 생활했지만, 다시카 본가의 형제들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처남, 처제, 장인 장모는 모두를 알고 있다. 자주 보아서 훤히 알고 있다. 모계사회의 잔재가 아직 남은 것이라 짐작했다.
다시카의 처남 도르치가 차고에서 타르바가를 장만하는 동안, 다시카는 자신의 처남을 두고 하는 일 없이 삼십 년 동안 술만 먹고 산 사람이라고 흉을 보았다. 그게 듣기가 싫었는지 다시카의 아내가 오빠보고 왜 그러느냐고 따졌다. 몽골사람들 대부분이 그 모양인 걸 알면서 유독 오빠보고만 욕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따졌다.
부부 싸움이라도 말리는 무리가 있으면 싸움은 커지게 마련이다. 싸움이 한껏 커졌을 때 타르바가라는 동물이 음식으로 둔갑하여 들어왔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구운 조약돌을 넣지 않고 장만해서 그런지 옛날 맛이 나지 않았다. 그 말을 덕기 형에게 슬쩍 했더니 그 야생동물의 사체를 보고 이미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일어서 그럴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을 친바가 들었는지, 지금은 타르바가가 맛이 없는 시기라고 했다. 풀을 많이 먹어서 살만 피둥피둥 쪄서 지금은 맛이 없고 겨울나기를 하고 봄에 몸에 기름기가 빠졌을 때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일단 실패다.
홍랑은 덕기 형에게 환상의 맛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려고 벼르고, 그렇게 자랑을 했는데 맛이 아니었다.
타르바가?
학구파인 덕기 형은 그게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했다. 스마트폰으로 다람쥐의 종류, 설치류과, 양서류, 오소리의 종족을 다 검색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몽골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덕기 형은 보드카 마시기를 중단하고 집요하게 검색하더니 사진을 한 장 찾아냈다.
이거야?
스마트폰의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주는데, 보니 타르바가가 맞았다. 다른 몽골인들도 보더니 틀림이 없다고 했다.
덕기 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놈의 한국 이름이 있을 거라며 검색을 했다.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진을 비추니 ‘마못’이라는 전혀 생소한 명사가 떴다. 다시 마못을 검색하니 타르바가의 사진이 나오고 몽골에서 마못을 먹고 희귀병인 무슨 질병이 걸렸다는 어느 블로그의 글이 상단에 올라와 있었다.
타르바가가 식탁에 올라오자 새로운 술판이 시작되었다. 말고기와 낙타고기는 뒷전이었다. 파티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축제라고 하기에는 더 이상한 술자리가 되었다.
홍랑은 술을 마시면서 축제가 진행되는 무대 뒤를 생각했다. 내일 아침이면 얼마나 황량하고 이상한 판국이 되어 있을까? 그걸 걱정하며 마셨다. 몽골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뒷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도록 마신다.
홍랑의 기억은 타르바가가 한국어로 마못이라고 한다는 걸 아는 데서 끝이었다. 그 고기를 얼마나 더 먹었는지 모르겠다. 보드카의 특징은 마실 때 정신을 가눌 수 없이 왕창 취하고 깨어나면 정신은 말짱한데 속이 아프지 않으면 적당하게 잘 마신 것이다. 심하게 마시면 다음 날 속이 부대껴서 거동하기가 불편할 정도다. 다음날 정신은 말짱한데 속이 부대낀다? 그러면 도를 넘은 것이다.
어디쯤에서 술판이 끝났을까?
홍랑은 그걸 정확히 알지 못한다.
홍랑은 극심한 갈증에 깨어났다.
목이 타고 입이 말랐다. 여기가 어디인가? 어둠 속에 앉아 둘러보니 이 층 홍랑에게 배당된 방이었다. 어떻게 이 방까지 올라왔는지 기억이 없다. 일단 머리맡을 더듬어 물병을 찾았다. 벌컥벌컥, 페트병으로 반병이나 되는 물을 마셨다. 어제 초저녁에 약을 먹으며 준비했던 자리끼다. 물을 마시며 원효대사가 해탈하게 되었다는 동굴 속 해골의 물을 잠시 생각했던가. 그 물이 이렇게 극심한 갈증을 달래주었을까?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홍랑 자신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어떻게 올라오긴 했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쓰러졌던 모양이다. 아래층은 조용했다. 모두 잠이 들었는지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몇 시일까?
불을 켜고 탁자에 던져두었던 스마트폰으로 시계를 보니 다섯 시에 가까웠다. 한 시간 시차가 있으니 여기는 네 시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스마트폰은 로밍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로밍이 되어 몽골시간과 한국시간이 나타난다.
지난밤에 몇 시까지 마셨는지 모르겠다. 보드카를 조심해야 한다고 조절했는데 종내에는 정신을 놓을 정도가 된 모양이다.
목운동을 하는 듯이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정신은 말짱한데 속이 쓰리면 곤란한데 아직 모르겠다. 속이 쓰리지 않다면 성공적으로 마신 것이다. 손깍지를 끼고 허리를 움직이다 보니, 홍랑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어 있었다.
이게 웬 반지지?
홍랑은 손가락에 끼인 반지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친바가 사람들이 많은 앞에서 우쭐대며 점퍼 안주머니에서 몽골 돈으로 백만 원이 든 다발을 꺼내서 홍랑에게 내밀었다. 몽골의 지폐는 이만 원짜리가 가장 고액권이다. 백만 원이라고 했으니 50장이었던 모양이다.
나를 키워준 사장님에게 이 정도는 해야죠?
좌중에 묻고는 그것을 홍랑의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어 주었었다. 좌중에 앉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몽골을 여행하는 동안 경비로 쓰라는 것이었다. 몽골의 돈의 단위가 투그럭이다. 홍랑은 백만 투크럭을 받아서 대충 반을 툭 나누어서 옆에 앉은 덕기 형에게 내밀었다.
친바가 그렇게 하자, 보고 있던 다시카도 자기도 홍랑을 위해서 미리 준비한 게 있다면서 주머니에서 작은 보석상자를 꺼내서 금반지를 좌중을 향해 흔들고는 홍랑의 손에 끼워주고 안아서 볼을 비비기까지 했다. 다시카의 버릇은 반가우면 안고 볼을 비비는 버릇이 있다. 그때도 박수가 들렸던가?
그런 어렴풋한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기억을 확인하게 위해 홍랑은 일어서서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과연 몽골 돈이 있었다.
반을 뚝 분질러 주었으니 그렇다면 덕기 형에게도 돈이 있을 것이다. 백만 원이면 이번 여행에서는 환전소를 찾아 돈을 바꾸지 않더라도 경비에 충분할 것이다. 홍랑은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일어섰다. 속이 쓰리지는 않았다. 적당하게 마신 모양이다.
옆방에 덕기 형이 자고 있을 것이다.
그의 안녕이 궁금했다. 몽골에 처음 온 사람인데 지난밤의 술판을 보고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타르바가를 들먹였는데 맛있게 먹는지 모르겠다. 옆방 문을 열고 보니 덕기 형은 침대에 누워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보드카에 맞아서 죽지는 않았군.
홍랑은 혼잣소리를 뱉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술을 마시던 식탁은 치우지 않아서 난장판이었다. 빈 술병이 쓰러져 있고 남은 말고기와 낙타고기가 꾸들꾸들 말라가고 있었고 거실 소파에 한 명이 자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그렇게 취해서 어떻게 갔을까?
소파에 자는 사람은 누구지?
소파 쪽으로 가다가, 미끌, 밟았다.
누군가의 토사물이었다.
이런 낭패가?
한쪽 발을 들고 보니 토사물을 정통으로 밟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토사물은 한두 군데 토해 놓은 게 아니었다. 소파 부근 여기저기 토사물이 있었다.
이런? 이 일을 우짜누?
바닥은 청소하기가 좋은 비닐장판이 아니다. 고급스럽게 한다고 양털 카펫을 다 깔았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이 층의 방도 모두 양털 카펫이었다. 벽은 벽지를 바르지 않고 전부 질감이 좋은 백양나무로 마감을 했다. 아주 고급스럽게 지은 별장인데, 이걸 어떻게 하지?
소파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지 못하고 한쪽 발뒤꿈치로 어기적거리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여니 거기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변기 앞에 토사물이 있고 다시카가 바닥에 앉아서 욕조에 등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그의 팬티는 내려와 무릎에 걸쳐져 있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홍랑은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눈을 부스스 뜬 다시카가 홍랑의 얼굴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말없이 부스스 일어나서 본능적으로 팬티를 올리고는 비틀거리며 일 층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일단 욕조에 들어가 발을 씻었다.
욕실도 타일 바닥이 아니라 양털로 된 카펫을 깔아서 욕조에서 씻을 수밖에 없었다. 발을 씻고 나와 다시 거실을 둘러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혼자서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엄두라는 단어가 문을 가렸다. 막막했다.
도망치듯 이 층으로 올라왔다. 쿰쿰한 냄새까지 따라 올라오는 듯했다.
다시 눕더라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열었다. 쌀쌀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하늘이 맑은지 아직은 어둠인데 별들이 참 낮게 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이 낮게 뜬 별을 보고 홍랑은 한참이나 서 있었다.
몽골고원은 1800 고지다. 해발 1800 미터라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이 많다. 예전에는 감수성이 예민해서 별들과 대화도 나누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숨을 고르고.
바람의 땅, 몽골이다.
바람은 이 땅에서 발원하고 이 땅에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바람의 생노병사, 바람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긴 땅이다. 바람의 자식들이 보드카를 마시며 살아가는 땅이다.
홍랑은 그런 생각을 하며 별을 잡으려고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다고 별이 잡혀요?
아내의 목소리가 난데없이 귀에서 풀어지고 있었다.
그래! 쓸데없는 짓을 그만하고 다시 눈을 좀 붙이면 어떨까? 다시 눈을 붙이는 게 아니라 푹 자고 깨면 거실의 심각한 사태를 누군가 정리하고 깔끔하게 처리되어있으려나?
홍랑은 자리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고 잊고 있었던 몽골어가 떠오른다. 운스니사우
그래 운스니사우가 어디 있더라?
홍랑은 다시 이불을 차고 일어나 담배를 찾아 물고 탁자 위의 재떨이를 끌어당겼다.
그래. 운스니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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