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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지만 찾아야할 하나님
시편13:1-6 2026/3/29 종려주일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13: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13: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13: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13: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3: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해 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언제나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답을 찾고 얻었다고 해서 공부로 얻은 답이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과 마주하게 되지요.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 찾아 얻은 인생의 해답이
내일 풀어야할 문제들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칙연산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의 해답과 익숙해 지다보면 더 복잡하고 더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는 꽤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익숙할 만큼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이것은 인생을 넘어 하나님의 세계 즉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역시 공부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공부
중국어로 功夫(공푸)라고 합니다.
라틴어로는 studium(스튜디움)이라고 하지요.
프랑스어로는 étude(에튀드)라고 합니다.
이 모든 말들이 가지고 있는 어원의 뜻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 매우 힘들고 고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붙들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가장 복되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창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그런데 여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 창조한 그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고발했습니다.
(새)롬1: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1: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1: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1: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그 한계를 가진 어리석은 사람
그 사람의 실체는 시편 73편의 기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새)시73: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73: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새)시73: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비하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공)시73:24 ①나를 타일러 이끌어주시고
②마침내 당신 영광에로 받아들여 주소서.
그리고 하나 더 하나님을 알아가는 참된 인생 공부를 이렇게 행하십시오.
(공)미6:8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하나님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속에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아픔과 죽음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현재 가장 권위 있는 신학자 중에 한 분인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낸 하나님이지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지은 세계다. 고난은 이런 뜻이고, 슬픔은 이런 뜻이고, 아픔과 죽음은 이런 뜻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정의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처럼 참된 신앙이란
‘이것이다’라고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모른 채 높으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
곧 ‘믿음’을 배우는 것이 참된 신앙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구하여 배우는 것이지요.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이 그 대표적인 주인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욥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하는 자 사탄에게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욥을 두 번씩이나 동일하게 소개합니다.
(새)욥1: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새)욥2:3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보세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자신이 아는 하나님의 세계가 낯설게 느껴지자
욥은 하나님의 없음(부재)을 선언합니다.
(새)욥23:8 그러나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
23:9 북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구나.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의로운 욥에게 있어서 이것처럼 곤욕스럽고 난처한 일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잔인하게 다가 올 때, 욥은 그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새)욥30:20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어도, 주님께서는 내게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주님께 기도해도, 주님께서는 들은 체도 않으십니다.
30:21 주님께서는 내게 너무 잔인하십니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없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30:24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이 몸을 치십니까? 기껏 하나님의 자비나 빌어야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그렇게 세게 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욥기가 주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낯설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낯설음이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답을 모른 채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버려진 시간들이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응답의 시간, 믿음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은 낯선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믿음의 길을 찾아냅니다.
(새)욥42: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42:2 ①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②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42:3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야’ 스스로 답을 정하는 교만을 멀리하시고,
말씀으로 계시 된 하나님께
그리고 신기한 일들로 가득한 하나님의 세계 속으로
묵묵히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새)삼상16: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16:12 그래서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막내 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지만 다윗은 자신을 대하는 하나님의 거친 방식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알 수 없는 하나님과 그가 다스리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폭발하지요.
(새)시13:1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13:2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그런데요.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답을 모른 채 계속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새)시13:5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13:6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찾아가는 그 신비의 길에서 종종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잔잔히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내 모든 염려를 주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나 어느 때 길 잃고 헤 매일 때
내 모든 염려를 주님께
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은 프랑스 남동쪽에 가면 니스라는 아주 아름다운 해변 도시가 나옵니다. 그 도시가 유명한 것은 국립 샤갈 미술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있는 샤갈의 작품 ‘아담의 창조’입니다.
성부(하나님의 말씀) 성자(십자가) 성령(붉은 원형의 빛)
그런데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사닥다리에 오르지 못하고 낙심하여 한 구석에 앉아 등지고 있는 한 사람, 보이십니까?
이것이 허탈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지요.
하나님에 대한 실망 교회에 대한 실망 사람에 대한 실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이 위로의 말씀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