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 "북 경제 발전이 평화·인권에 도움...국제 연대로 길 열어야"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한겨레 (hani.co.kr)
’평화-인권-발전 3축’ 연구자 좌담회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평화연구소> 회의실에서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제·사회적 발전(혹은 악화) 과정은 평화와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평화-인권-발전은 유엔이 3대 기둥으로 삼을 만큼, 각기 독립적인 가치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3년 전부터 이 화두를 부여잡고 연구해온 통일연구원(원장 고유환)의 서보혁 박사팀이 최근 세 번째 연구 성과물을 냈다. 연구팀은 ‘적극적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복합전략: 평화-인권-발전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연구의 3년차 보고서에서 발전이 평화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북아일랜드, 캄보디아, 사이프러스(키프로스), 쿠바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한반도에 갖는 시사점과 함의 도출을 시도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연구자들을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11월15일 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연구 책임을 맡은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과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황수환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김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서보혁 박사는 “한반도 평화문제를 지나치게 정치군사 문제로 환원시켜 논의해왔다”며 “물론 그런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좁혀서 접근하면 평화에 대한 상상력과 실천을 한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전단 살포 논란을 그 예로 들었다.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한반도 평화와 접경 지역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편적 가치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화-인권-발전의 순환관계를 아우르는 융복합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와 분단 구조가 비슷해 사례 연구로 사이프러스를 선택한 황수환 박사는 “남북 사이프러스가 국경을 개방해 자유왕래와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경제적 발전이 평화와 인권 증진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쿠바 사례를 연구한 김 교수는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와 쿠바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저발전 상태는 인권과 평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는 북한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쿠바가 교육 및 의료에 높은 정책 비중을 두고 유기농과 도시 농업을 통해 식량난을 극복하려는 모습은 인상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서 박사는 “분쟁의 평화적 종식과 이를 통한 평화-인권-발전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쟁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평화프로세스가 매우 중요하다”며, 북아일랜드를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들었다. 다만 북아일랜드 사례연구 결과(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집필)에 따르면 “최근 북아일랜드로 이주해온 소수 공동체의 문제가 신규 요소로 부상해 발전-평화-인권의 순환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북아일랜드 사례는 분단된 하나의 민족 통합이라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 우리 내부로 이주해온 다문화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발전과 평화-인권의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밝혔다.
황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평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며, “평화 프로세스에는 항상 부침이 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평화 과정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의 경우(이성용 뉴질랜드 오타고대학 교수 집필), 내전 종식 이후에도 권력 엘리트들의 국가 자원 사유화 및 이에 따른 비공식 경제의 비대화가 발전의 불균형과 부패를 낳고 이것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표현 및 결사의 자유 억압과 같은 현상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김유경 교수는 국제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 문제, 특히 발전은 국내에서만 해결될 수 없는 속성이 있는 만큼, 체제가 바뀌면 협력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한계가 있다”며, “평화-인권-발전의 선순환은 협상의 조건이라기보다는 협상의 결과로 달성해야 할 가치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러 사례 연구를 통해 코로나19와 같은 보건 위기와 기후위기가 발전 저해 및 새로운 분쟁 유발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수행해왔던 평화-인권-발전의 상관관계에 더해 기후 문제가 이들 트라이앵글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한 연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발전이 지역 간, 산업간, 계층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면서 사회적 불안정과 갈등을 초래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며, “발전을 지나치게 경제성장 위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론 및 사례 연구를 겸한 이 연구는 남한의 대북정책에 유용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도 목적으로 두고 있다. 보고서에는 북한이 개혁할 과제와 남한이 할 역할, 그리고 국제사회가 할 역할이 두루 제시되어 있다. 그와 함께 선행 사례들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저발전이 평화와 인권에 주는 부정적 영향과 그런 구도의 밑바닥에서 더 큰 영향을 주는 장기분쟁의 다각적인 효과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12월 말 출간되는 보고서가 관심을 끄는 이유이다.
연구팀의 포부는 평화-인권-발전이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정책 대안을 도출하는 데에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적극적 평화체제”라고 표현하면서 한반도에서 이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내년에는 인권이 평화와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연구 마지막해인 2024년에는 ‘한반도형 적극적 평화체제’를 수립할 방향과 정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러한 연구가 “고질적인 장기 분쟁지역으로 분류되어온 한반도가 평화프로세스의 모범 사례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길어 올리는 일”이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