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동양인 투수들 중에는 낯선 투구폼으로 메이저리그에 순조롭게 적응한 케이스가 많았다. 저 유명한 토네이도 투구폼의 노모 히데오가 그랬고, 김병현 역시 파란 눈엔 생소한 언더핸드스로 폼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뉴욕 양키스 입단을 앞둔 구대성 역시 팔을 몸에 딱 붙여 돌리는 특유의 투구폼으로 빅리그 첫해 연착륙을 노리고 있다. 구대성의 양키스 입단을 계기로 동서양의 기상천외한 투구폼을 낱낱이 분석했다.
'그립 감추는 변칙폼' 승부수
릴리스 순간까지 공 숨겼다 던져
절묘한 타이밍 뺏기…타자들 쩔쩔
◇구대성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란 히말라야 산맥 처녀등정하기와 비슷하다.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밀지만 첫 등정에선 쓴 맛을 보기 일쑤. 한국인으로서 미국 진출 첫해 성공한 선수가 단 한명도 없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뉴욕 양키스 입단 예정인 구대성(35)은 입단 첫해 성공적 데뷔란 신기원을 이뤄내야 할 입장. 상대적으로 고령인데다 내년 시즌 무조건적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양키스의 팀 사정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꿈을 현실화 할 최고 무기는 기상천외한 투구폼이다. 전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을 법한 독특한 동작. 와인드업 시 공을 잡은 왼손을 글러브에 넣은채 키킹한 오른발 뒤로 감췄다가 짧은 테이크백만으로 공을 뿌리는 스타일. 키킹 단계부터 길게 테이크백했다가 어깨 너머로 끌고 나오는 일반 투수와는 딴판이다. 짧은 테이크백으로 강속구를 던지기란 이론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구대성의 경우는 다르다. 타고난 순발력과 근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폼을 몸에 익혀온 터라 최고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볼을 던질 수 있게된 것. 타자 입장에선 보이지 않던 팔이 갑작스레 눈 앞에 나와 구질 예상이나 타이밍, 타점을 맞히기에 애를 먹기 일쑤.
국내에서 활약할 당시 상대 타자들은 "볼이 날아오는 시점이 마치 기계에서 나오는 것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며 타이밍 잡기에 어려움을 호소하곤 했다.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 역시 구대성의 독특한 투구폼에 주목했다. 주로 왼손 타자 앞에서 짧은 이닝을 소화할 릴리프로서 변칙 투구폼이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 올시즌 일본 진출 후 최악의 성적(5승10패)을 올리며 하향세를 보이던 구대성에게 미국 최고 구단이 유니폼을 입혀준 이유다.
특히 왼손 타자의 경우에는 각도상 구대성의 공에 타이밍을 맞히기가 더욱 힘들다. 좌타자 앞에서 원포인트 릴리프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구대성으로선 유리한 점 중 하나.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생소한 공에 빅리그 타자들이 쩔쩔맬 가능성이 크다.
낯선 미국 땅, 변칙 투구폼이란 최고의 도우미와 함께 태평양을 건널 구대성의 성공 예감이 현실화되고 있다. < 정현석 기자 hschung@>
파란 눈에 아직도 낯선 '잠수함'
땅 훑다시피 '밑에서 위로'
빅리거 상대 'K'퍼레이드
◇김병현 [사진=연합뉴스]
보스턴 김병현의 투구폼은 마무리였던 2001시즌에 가장 역동적이었다. 하이키킹 이후 오른팔을 꺾듯이 뒤로 돌리고, 고무줄을 튕기듯 왼발을 내딛는다. 이후 오른 어깨가 돌아나오며 공을 뿌리고는 마치 땅을 박차고 날아갈 듯 공중으로 껑충 뛰는 폼.
메이저리그의 숱한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던 김병현의 직구, 즉 업슛이 이 폼에서 뿌려져 나왔다. 빅리그에도 가끔씩 잠수함투수가 눈에 띄지만 이들은 뻣뻣하게 서서 공을 던진다. 김병현의 탄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언더핸드스로 김병현의 투구폼은 한국에선 그다지 신기할 게 없었지만, 잠수함 투수가 드문 메이저리그에선 관심의 대상이 됐다. 김병현의 실제 키는 1m75 남짓이다. 동양에서 온 '꼬마 투수'가 땅을 훑다시피 던지는 폼으로 시속 150㎞가 넘는 직구를 펑펑 뿌려댔으니 '다윗'이 따로 없었다. 사실 김병현은 단순히 투구폼만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었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괴상한 폼인데다 더욱 요상한 구질을 뿌려댄 게 이유가 됐다.
'프리스비 슬라이더'. 미국 아이들의 장난감인 원반(프리스비)과 김병현의 슬라이더가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한때 컴퓨터오락에 등장하는 마구처럼 휜다 해서 '닌텐도 슬라이더'란 닉네임으로도 불렸다. 느린 직구처럼 곧바로 날아가다 가속도가 붙은 듯, 오른타자의 바깥쪽으로 순식간에 솟아오르기에 초창기 1이닝 평균 1개 이상의 삼진을 잡는 데 효자 노릇을 했다.
김병현의 주무기중 하나였던 업슛은 결국 포심패스트볼을 말한다. 하이키킹과 다이내믹한 투구폼에 이어 던진 포심패스트볼은, 꿈틀대는 공끝에 밑에서 위로 던진다는 특성이 더해져 타자 앞에서 마치 솟구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업슛이다.
하지만 이처럼 역동적인 투구폼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퀵모션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루 허용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김병현은 선발 전환을 시도한 2003시즌부터 투구폼을 간결하게 바꾸고 투심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많이 던졌다. 하지만 이번엔 포심패스트볼 위력이 떨어져 고생하기도 했다. < 김남형 기자 star@>
미-일 이색폼 투수들…
플로리다 윌리스 - 오른발 키높이까지 '키킹' 내려 찍어
긴테쓰 이와쿠마 - 공잡은 손 뻗어 다리옆 숨기듯 투구
◇윌리스
[사진=연합뉴스] ◇이와쿠마 ◇마이어스
일본은 변칙 투수들의 왕국이다.
이 가운데 최근 2년간 퍼시픽리그 다승왕을 다퉜던 이와쿠마 히사시(긴테쓰 출신으로 통합 오릭스 구단 합류를 거부하고 트레이드 요구중)가 단연 첫손에 꼽힌다.
이와쿠마는 먼저 왼발을 들어 발을 두번 차는 독특한 의식으로 투구를 시작한다. 한국에서라면 보크 판정을 받을 소지가 많은 모션이다. 이와쿠마는 또 공을 잡은 손을 쭉 뻗어 오른쪽 다리 옆에 숨기듯 하다가 공을 던진다. 독특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볼끝, 빠른 팔스윙으로 상대 타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놓는다. 사실 일본 투수들의 2단 동작은 흔히 볼수 있다. 지바 롯데 이승엽은 다이에의 에이스 사이토 가즈미 등 일본투수들의 2단 동작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즌 초반 타격훈련때 배팅볼 투수에게 이중키킹 동작을 주문하기까지했다.
올해 주니치에서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오쓰카 아키노리는 이 2단 동작때문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바 롯데 와타나베 슌스케는 잠수함 투수가 낯설지 않은 일본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로 꼽힌다.
와타나베는 오른손을 땅바닥에 닿을듯이 끌고나가 공을 뿌린다. 마치 공이 땅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이다. 태평양 시절 박정현의 투구 모션을 연상시킨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플로리다의 왼손투수 돈트웰 윌리스가 팬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왼손 정통파인 윌리스의 투구폼은 경쾌하면서 다이내믹하다. 투구때 오른쪽 발끝이 자신의 키 높이까지 치고 올라간다. 곧이어 몸의 중심축이 오른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공은 내려찍는 인상적인 모습이다.
보스턴의 마이크 마이어스는 독특함을 넘어 희귀종같은 존재다. 왼손 언더핸드스로 투수인 마이어스는 상대 타자들에게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 민창기 기자 huelva@>
'토네이도' ML 강타
◇노모 [사진=연합뉴스]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는 메이저리그에는 특이한 폼을 지닌 투수들이 많다.
80년대 LA 다저스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투구시 하늘을 쳐다보는 독특한 폼으로 인기를 끌었고, 언더핸드스로 댄 퀴젠베리, 사이드암에서 오버핸드스로까지 구사했던 데니스 에커슬리 등이 특이한 투구폼으로 다이아몬드를 장악했다.
그러나 지난 95년 일본인 노모 히데오(36ㆍ전 LA 다저스)가 등장해 이 모든 것을 잠재웠다. 팬들은 한번도 본 적없는 '튀는' 투구폼에 찬사를 보냈다.
노모의 투구폼은 소위 '토네이도'라 불린다. 토네이도는 미국 중남부에서 발생하는 직경 200~300m의 강한 회오리 바람. 노모가 와인드업 모션 때 몸을 비트는 동작이 회오리 바람을 연상시킨다는데서 붙은 별명이다.
노모는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린 뒤 포수를 향한 가슴을 2루수쪽까지 비튼 다음 왼다리를 올리면서 엉덩이를 3루수가 볼 수 있을 정도로 끌어당긴다. 이어 2~3초간 정지상태에 있다가 비틀어진 상체를 풀면서 오버핸드스로로 공을 뿌린다.
노모는 메이저리그 첫해 13승(6패)에 방어율 2.54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미국 전역에 '노모 열풍(Nomomania)'이 불었고, 토네이도 투구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노모가 이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기상천외한 변칙 투구폼 때문이다.
노모는 96년과 97년 각각 16승, 14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후 토네이도 폼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리한 투구폼 탓으로 어깨와 팔꿈치가 손상됐고, 구속이 줄었기 때문. 타자들도 그 특이한 투구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노모는 97년 10월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침체일로를 걸었다. 영어를 배우지 않는데다 새로운 구질 연마도 외면했다.
그러나 노모는 FA로 다저스로 돌아와 2002년과 2003년 연속 16승을 올리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토네이도 투구폼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커브를 새롭게 가다듬었고 노련미를 부각시켰다. < 노재형 기자 jhno@>
첫댓글 ㅋㅋㅋ 구대성선수 원포인트릴리프로라도 잘뛰어줬으면 좋겠네여.. 뭐;; 올시즌 펠릭스헤레디아보단 낫겠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