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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지금은 없는 미래
출처 국민일보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99378&code=11171425&cp=nv
그는 작고한 남편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을 동화로 쓰면 좋겠다고 한 건 그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산골 마을에서 선머슴애처럼 뛰어놀던 추억이 그렇게 동화로 쓰였고, 만화가인 남편은 아내의 동화를 장기인 그림으로 다시 그려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그림을 붙여 이야기를 더 써냈다. 2000년대를 풍미한 ‘짱뚱이 시리즈’ 오진희 작가의 이야기다.
‘짱뚱이’는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이다. 입이 크고 눈이 둥그런 그가 어릴 적 뒤뚱대며 뛰어놀다 남달리 큰 머리를 자꾸 바닥에 찧는 통에 붙인 것이란다. 딸이 다칠까 봐 아버지가 방에 잔뜩 깔아놓은 이불이, 마치 짱뚱이가 팔딱거리는 갯벌 같았다고 했다. 짱뚱이는 책 속에서 그의 묘사처럼 왕방울만한 눈으로 천방지축 뛰놀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시간여행 하듯 들려준다.
사실 짱뚱이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려 쓰인 야심 찬 것이었다. 공해에 찌들고 퍽퍽한 현대의 삶을 대신해야 할 것은 어떤 건지, 우리가 잊고 살아온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음세대에게 보여주자는 이유였다. 그런 방법이야말로 자연이 중요하다는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걸 바꿔낼 것으로 생각했다고 오 작가는 말했다. 함께 환경운동을 해온 ‘동지’였던 부부는 시민단체가 재생지로 펴낸 잡지에 짱뚱이 이야기를 실었다.
이후 단행본으로 나오기 시작한 짱뚱이 시리즈는 10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국에서 오 작가를 향해 강연 문의가 쇄도했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부모와 아이들이 책을 더 좋아했다고 했다. 초등학생이던 조카가 “우리 이모가 짱뚱이라고 해도 친구들이 안 믿는다”면서 사인을 받아가 200원씩을 받고 팔았다는 얘기를 하며 오 작가는 깔깔대고 웃었다. 지금도 이십대 초반 세대 중 짱뚱이를 기억하는 이는 그리 드물지 않다.
짱뚱이는 서로 돕고 살자거나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단지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잃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어깨 들썩이며 어울리던 잔치는 어땠는지, 친구들과 밤낮없이 산과 들과 시냇가를 쏘다니며 어떻게 놀았는지를 이야기한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동생과 어떤 일을 겪었는지,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바보 아저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할머니가 어떤 옛날얘기를 했는지가 책에 실려 있다.
거창한 메시지 없이도 책이 울림을 주는 건 아마 우리의 삶이 짱뚱이의 이야기와 계속 멀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를 아끼며 돌보는 삶, 아이가 자연에서 마음껏 뛰노는 짱뚱이의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혹은 미래세대가 살아갈 ‘각자도생’의 세상과는 간극이 크다. 우리가 짱뚱이 이야기에 감흥을 느끼는 건 그런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무의식적으로나마 잘 알고 있어서다.
짱뚱이의 세상은 이대로면 더 멀어질 것이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짱뚱이처럼 놀고 싶어도 놀이터엔 함께할 친구가 없고, 찔레꽃을 먹으며 뛰놀려고 해도 꽃이 핀 산과 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 세상은 더 강퍅하고 차가워졌으며 아이들은 자연과 어울려 뛰놀기는커녕 갈수록 외로워지고 있다. 머지않은 날 우리가 이런 흐름을 바꿔놓지 못한다면, 짱뚱이의 세상은 우리가 대안 삼을 ‘오래된 미래’로 남을 수조차 없다.
짱뚱이는, 아니 오 작가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하러 오는 아이 중에서도 도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한다고 했다. 짱뚱이를 만날 아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묻자 “놀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릴 적 잘 놀던 사람이 커서도 그 기억으로 삶을 잘 버틴다며, 어릴 때 행복했던 기억은 상을 타거나 1등 했던 때보단 친구들과 뛰놀던 순간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 켠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조효석 뉴미디어팀 기자(promene@kmib.co.kr)
빛명상
사랑을 나누면서
내가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어릴 적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그 옛날 거지생활을 했던 춘식이라는 친구였다. 가난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거지를 말한다.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거지가 무척 흔하던 시절이다. 그만큼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학교의 내 짝도 거지였고 한 반에 거지들이 상당수 있었다. 춘식이도 그런 친구 중 한명이었다.
특히 그 친구는 나와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옛날 배식 당번을 할 때 선생님께서 빼돌린 빵과 우유까지 집어다가 거지 친구들에게 얹어 배식하는 바람에 선생님께 엄청 얻어 맞았던 그 기억. 당시 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벌로 교실 바닥에 똥 한 바가지를 뿌리며 혼자 남아서 청소하라고 하셨을 때. 그 거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와주던 일들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나중엔 선생님까지 눈물을 흘리시며 사과를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그런 친구 춘식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으니 나는 상당히 반가웠다. 그 친구 역시 글을 통해 알고 연락을 해왔는데 지금은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처음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는 나를 약간 미안하게 만들었다.
"야 임마. 그런데 넌 왜 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냐?"
어느 정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자 그가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했다. 약간은 볼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뜻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음을 아프게 만들다니? 뭐가?"
"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하느냐 그 말이야. 그 지긋지긋한 시절을 머리에서 잊으려고 얼마나 몸부림치며 살았는데...... 네가 쓴 글을 읽고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딴은 그 기분이 짐작될 것도 같았다. 어지간히도 고달픈 가난속에 시달렸던 그였기에 당시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잊고 싶은 상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헤아려지자 나는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 몰랐구만. 그저 옛일을 회고한다는 것이었는데...... 본의는 아니었지만 자네의 아픈 상처를 들췄다니 내 사과하지. 내가 부주의 했나보네."
"사람 참...... 그렇다고 그렇게 정색을 하고 말할 건 또 뭔가? 그냥 한 번 해본 소릴 가지고...... 순진한 건 여전하구만? 그건 그렇고 이렇게 전화로만 얘길할 게 아니라 한 번 봐야지?"
"그러게 말이야. 언제 한 번 보세나."
"언제 한 번이 아니라 말 나온 김에 아예 약속을 정하자구. 이번 주말 어때? 자네 시간 괜찮다면 내 자네를 우리집에 한 번 초대하고 싶은데."
선약이있더라도 달려갈 마음이었다. 나는 흔쾌히 응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하면 실로 40년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그 옛날 울먹이면서 선생님께 내 행동을 변호해주던 소년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귀익은 느낌이 남아 있었다.
까까머리의 그 얼굴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날을 기다렸다.
주말 오후, 나는 미리 들은 설명대로 그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의 집은 부촌으로 명성이 높은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도 상당히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아이고- , 어서 오게나.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초인종을 누르자 그가 직접 몬을 열고 나와 나를 얼싸안으며 말했다.
"그러게. 정말 반가우이. 어디 얼굴 좀 보자구."
그의 모습은 무척 좋아보였다. 깨끗한 얼굴과 세련된 차림이 퍽 여유를 느끼게 했다.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다는 것 말고도 큰 변화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가 살림 사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그가 소개하는 대로 대충 둘러 본 집안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눈에도 꽤 부유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인상이었다. 예전의 땟국 절은 춘식이 얼굴만 막연히 남아 있던 내게는 전반적으로 놀랍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왜? 의외인가보지?"
소파에 앉아서도 내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그가 웃으며 물었다.
"글쎄? 이런 기분을 그렇게 표현해야 되나?"
"사람, 그럼 내가 언제까지 거렁뱅이로만 살 줄 알았나?"
"말하고는...... 누가 그렇다나? 다만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얘기지." "하긴 그렇기도 할 거야. 자네와 마지막으로 볼 때까지 나는 거렁뱅이였으니까. 내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와. 그래서 의식적으로 옛날 생각은 안하고 살았지. 그런데 애들 방에서 우연히 자네가 쓴 글을 찾아 읽고는 정말 많이 울었다네. 하지만 꼭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운 건만은 아니야. 반갑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그립기도 하고 말이야. 참 복잡스러운 감정이더구만."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무척 눅눅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가 활기를 찾을 수 있는 화제 쪽으로 얘기를 돌렸다.
"헌데 언제 이렇게 자리를 잡은거야?"
"좀 됐어. 한 10년? 하지만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이렇게 먹고 살만큼 될 때까지는 정말 죽을 고생도 많이 했네."
"그랬겠지. 그럼 서울에는 일찍 올라온 건가?"
"철들고서 바로 떴으니까 이제 30년이 넘는구만. 그때 무일푼으로 서울역에 떨어졌는데 정말 막막했지. 하지만 어차피 거렁뱅이 출신인데 뭐가 두렵겠나? 그냥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참 열심히도 살아왔다. 온갖 안해본 일이 없고 안해본 고생이 없었다. 그러다가 포목점 점원으로 취직을 하면서 죽기 아니면 독립하기 식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여 어려운 일을 자청하면서 장사술과 기술 등을 익혀나갔고 한편으로 야근과 새벽 장사 등을 도맡아 하며 죽어라고 돈을 모아 나갔다. 그렇게 십 년쯤 고생을 하여 마침내 독립을 이루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발판이 되었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네. 그렇게 일찍부터 독립의 각오를 다졌다는게 말이야."
"돈을 벌어야 했거든.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 피눈물이 맺혀서라도 돈을 벌기로 작정을 한거야. 그려면 나같이 배운 것 없는 놈이 장사밖에 더 있겠나? 내가 대단한 게 아니고 다른 선택이 없었네."
"그래도 점원 월급 십년만에 독립을 이뤘으면 대단한 것 아닌가?"
"그때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아나? 돈에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돈을 모았네.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미워서, 돈에 한이 맺혀서 돈을 모았지. 생각이 온통 돈에만 가 있었네. 길을 가도 돈, 잠을 자도 돈, 모든 게 그저 돈, 돈뿐이었어. 가게에서 주는 밥만 먹고 버티면서 한 달 내내 월급에서 일 원 한 푼도 쓰지 않는 달이 대부분이었어. 어떤 땐 세 끼 식사를 모두 물로 때우고 한 겨울에 냉골방에서 새우잠을 잠을 자면서 돈을 모았어. 내가 그런 생활을 했네."
우울한 기억이라는 듯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담배 한 개비를 뽑아물고는 한숨처럼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 고생이 있었네그려. 그래도 어쨌거나 이렇게 성공을 했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자네야말로 고진감래의 표본이구만."
나는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떠오른 기억이 쉽게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저 쓸쓸한 웃음과 함께 담배 연기만 토할 뿐이었다.
그의 기분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비로소 돌아왔다. 식탁에서는 주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식사시간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자연 식사시간이 길어졌고 후반부에 가서는 마음이 바빠졌다. 돌아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만 일어나봐야 할 것 같네."
분위기를 깨는 게 미안했지만 나는 식사를 마치고 적당한 기회를 보아 그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 사람아? 여기까지 와서 하룻밤도 안 자고 가겠다니? 몇십 년만에 만나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할 얘기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말이야. 아뭇소리 말고 하룻밤 같이 자자고. 안그러면 자네가 날 무시하는 걸로 알겠네."
그가 정색을 하고 만류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 다음 날이 일요일이고 하니 그냥 하룻밤을 묵고 가기로 했다.
그날 밤 그는 내가 자는 방으로 베개를 들고 들어왔다.
"마누라 놔두고 여기서 자도 괜찮나? 제수씨한테 나중에 쫓겨 나는 거 아니야?"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오늘은 몇십 년만에 만난 친구와 한 번 자야겠네. 마누라하고는 지겹게 같이 자봤지만 자네하고는 처음이니까."
농담을 하고 농담을 받을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가 더없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 자네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밥을 빨리 먹은 건가?"
그가 자리를 잡고 누우며 내게 물었다.
"내가 그랬나? 글쎄, 밥을 먹으면서 마음이 급급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그랬었나? 근데 왜?"
"응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한 번 물어본 거네."
"옛날 생각, 뭐?"
"자네, 조릿밥 얻으러 다녔던 것 생각나나? 정월 보름날 우리 왜 복조리 들고 밥 얻으러 다니지 않았어? 기억나나?"
"그럼 기억나고 말고."
조릿밥이란 정월 대보름 아침 복조리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밥을 얻어먹던 풍습이다. 풍년을 빌고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였는데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 우리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평소엔 꿈도 못 꿀 오곡밥을 실컷 먹을 수 있었는 데다가 재미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밥 다 놔두고 남의 집 밥 얻어먹겠다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일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네. 그땐 인심도 좋았지? 집집마다 한 솥씩 더 밥을 지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없는 집에서도 종보리밥은 내주던 시절이니까."
"그래서 그날은 우리 같은 거렁뱅이들에게도 참 좋았네. 얼마든지 밥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자네들 같은 복조리가 아니라 깡통에다 얻는 거지만."
그의 얼굴에 다시 축축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내가 밥 먹는 거하고 조릿밥하고 왜?"
"으응, 자네가 밥 먹는 모습을 보니까 언젠가 자네하고 조릿밥을 나눠먹던 생각이 나더라구."
"자네하고 조릿밥을?"
"그래. 거렁뱅이 친구들하고 자네하고 같이 어울려서 조릿밥을 나눠먹던 일 말이야. 정월 대보름 저녁이면 동산에 모여서 얻어온 밥과 김치를 커다란 거렁뱅이 깡통에다 한꺼번에 쏟아넣고 휙휙 비벼서 둘러앉아 먹었지. 그날만은 아침부터 밥을 많이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재미로 서로들 더 먹겠다고 정신없이 먹지 않았나? 아까 자네 밥먹는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나더라구."
"자네 말 들어보니까 생각날 것도 같네. 그래 맞아. 장난치느라 낄낄대고 밀쳐대고 하면서 깡통에다 서로 머리들 처박고 먹던 일......"
"나 그때 자네한테 속으로 무척 고마웠는데...... 그때 거렁뱅이가 아닌 친구는 유일하게 자네 혼자였거든? 원래 거렁뱅이들은 다른 친구들이 잘 놀아주지 않아서 거렁뱅이들끼리만 어울렸으니까. 그런데 자네는 우리와 잘 어울리면서 거렁뱅이 깡통 속의 밥도 스스럼없이 잘 나눠먹었어."
"사람 참...... 내가 재미있어 한 일을 가지고 고마울 건 또 뭔가?
그래도 밤에 쥐불놀이 할 때는 모든 친구들이 같이 어울려서 놀지 않았나."
"쥐불놀이? 그래, 그거 재미있었지. 누구 불꽃이 더 크고 밝은가 시합도 하고."
"그래. 장관이었지. 온산이 빙글빙글 도는 불빛으로 가득하고...."
돌이켜보면 돌이킬수록 새롭게 그리워지는 것이 동심의 추억이었다. 우리는 그밖에도 산을 뒤져 열매를 따먹던 일이며 들판에서 씨름이며 닭싸움 하던 일, 수박 서리하던 일 등등 그 시절의 기억을 좇느라 밤이 깊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말이야, 자네에게 왜 이런 우주의 초광력 힘이 왔는지 알것도 같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그래? 나도 모르는 걸 자네가 어떻게 알까? 어디 한 번 들어보자고."
"자네가 착하고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깊고 말이야. 그래서 하늘이 감동해 자네에게 이런 힘을 보낸것 같으이."
"착하고 순수하기는...... 간지러운 소리 하지 말게."
"실없는 소리가 아니야. 자네는 어릴 때부터 정말 착한 것이 남달랐어. 나는 자네에 대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네. 「전과」이야기 말이야."
"전과? 뭐, 공부할 때 쓰는 그 참고서 전과?"
"그래. 그 전과."
"그 전과가 뭐 어쨌다고?"
"자네는 기억이 안 나는가 보군. 보자, 그게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인가? 하루는 자네가 학교에 전과를 가져왔는데 웬일인지 새 책이더라구. 자네네 집이 먹고 살만은 했다지만 그래도 자네한테 새 책은 거의 없지 않았나? 책이며 옷이며 거의 형들 걸 물려받아 썼으니까 말이야."
"그건 그랬지. 형들이 여덟이나 됐으니까. 근데 내가 그때 새 책을 가져왔어?"
"그래, 아주 빳빳한 새 전과더라구. 뭐 집에서 어떻게 한 권 사줬나보지. 그걸 자네가 책상에 떠억 펼쳐놓으니까
아이들이 몰려들어 막 만져보기도 하면서 부러워하고 그랬어. 하지만 난 공부가 재미없어 그랬는지 몰라도 자네 새 책에 별로 관심이 안 가더라구? 그래서 아이들이 그러는 모습을 그냥 뒤에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었거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점심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자네 책이 없어진거야. 운동장에서 놀다 들어온 자네가 책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찾기 시작했지."
"그랬나? 그럼 누가 가져간 건가?"
"그래. 누가 가져갔다고 생각하나, 난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네. 자네도 기억날 거야. 준이라고. 그 준이라는 녀석이 자네 전과에 유심히 눈독을 들이던 모습을 내가 뒤에서 봤거든? 하지마 뭐 딱히 증거도 없고, 또 자네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냥 가만히 있었지."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났었지? 정말 준이가 내 책을 가져간 거야?"
"그래. 책을 가져간 건 준이가 맞아.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라구. 하여튼 자네가 책을 잃어버렸다고 하니까 누군가 그 사실을 선생님께 이른 거야.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아이들 가방을 조사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결국 준이 가방에서 전과가 나오기는 했는데 말이야. 그때 자네가 어떻게 했는지 아나?"
그는 마치 수수께끼를 새롭게 꺼내듯 무척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글쎄, 생각이 안 나는데? 내가 어떻게 했길래?"
"아주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께 그러는 거야. '아참, 선생님 그거 제가 빌려준 겁니다. 제가 자랑하느라 빌려줘놓고 깜빡했습니다' 하고 말이야. 그래서 자네만 선생님께 엄청 꾸중을 들었지. 괜히 부주의해서 전체 아이들에게 피해만 주게 했다고. 내가 다 화가 나더군. 그래서 준이 얼굴을 봤는데 도대체 고개를 들지 못하더구만."
"그랬나? 내가 아주 잘했구만."
나는 괜히 객적은 기분이 들어 농담처럼 말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어. 선생님이 나가시고 아이들이 웅성웅성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자네가 조용히 준이에게 가더군. 그러더니 그 전과를 준이에게 가지라고 하는 거야. 다른 애들은 눈치를 못챘겠지만 나는 끝까지 보고 있어서 아네. 내참 뭐랄까, 마음이 뭉클하더군."
그러면서 그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있었나?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네. 혹시 자네가 지어낸 얘기 아냐? 하하."
나는 얼렁뚱땅 웃음을 흘리며 그의 시선을 비켰다.
"지어냈든 안 지어냈든 그건 자네 맘대로 생각하고 하여튼 나는 그때 정말 자네가 대단하게 보였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런 일이 국민학교 4학년 아이에게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행동이겠나? 자네는 천성적으로 그렇게 타고 난 사람인 것같아. 그런 천성 때문에 하늘에서도 자네에게 그런 훌륭한 일을 여러 사람, 혹은 자연에 베풀라고 힘을 주셨을 텐데 말이야. 자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나에게도 분명 부족한 면이 많았을 것인데 그렇게 좋은 기억만 간직해준다는 친구가 있다는데 한마디로 고마움을 느낄 뿐이었다. 아무리 그런다 해도 쑥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성 나쁘게 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던가? 그런 소리 그만하고 이제 자세. 시간이 벌써 많이 늦었어."
얘기에 빠져 있다 보니 벌써 날이 훤히 밝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래 자야지. 자기 전에 내 딱 한 가지만 자네한테 얘기하고싶네. 아니 얘기라기보단 다짐이라고 할까? 사실 내 그동안 좀 삭막하게 살아온 편이네. 아까도 말했지만 돈 좀 모아서 잘 살아보겠다는 악착밖에 없었지. 그러다 보니 주위에 인색하게 살아온것도 사실이네. 이웃을 살피는 덴 콧방귀도 안뀌었지. 하지만 자네의 글을 읽고 많이 부끄러웠네. 지난 내 인생이 너무 속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속상하고 슬픈 가운데 기쁜 울음을 남이 알까봐 혼자 운 적도 없지 않았네."
캄캄한 이불 속에서 잠시 그의 한숨소리와 손을 마주잡았다.
"하지만 앞으론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주위에 베풀고 나누면서 살아가겠네. 어려운 곳도 찾아가 도와주겠어. 자네한테 배운게 너무 많네. 그래 사랑하고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야가야지. 예전에 내가 그런 나눔을 받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이젠 내 차례라는 것을 자네가 알려주었어. 하여튼 고맙네. 내 앞으론 항상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가겠네. 내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서 가겠다는 자넬 붙들었던 거야. 그럼 이만 자세나. 잘 자게."
고맙고 대견한 말이었다. 힘들 땐 나눔을 역설해도 풍족해지면 잊어버리는 게 일반 세상사 경우이기에 그의 마음이 더욱 값지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가슴 뭉클한 희망이 넘쳐 흘렀다.
그의 다짐을 들으며 나 또한 마음을 새롭게 했다. 언제까지고 지극히 겸손한 눈으로 주위의 소외된 곳을 찾아 빛(VIIT)의 사랑을 전하겠노라고. 그런 나의 마음에 화답을 해주듯 창밖의 하늘은 뿌옇게 밝아보고 있었다. 이젠 가야지. 나를 찾는 사람, 그 환경을 위하여!
출처 : 초광력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1999년 3월 8일 1판 1쇄 발행
2014년 5월 28일 한정판 1쇄 P. 200-210
감사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게 하는 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 ! ^_^
빌려준거라고 말씀을 하셨다니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 가지라고 주시기까지 하다니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 가진 사람들로 지구가 채워진다면 여기가 천국이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