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다른 발가락을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진혜진
동쪽에 닿고 싶어 뒤꿈치를 든다
까치발은 높은음자리 또는 발가락이 만든 절벽
한파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봄은 어딨냐고 묻는다 신호등에도 다이소에도 먼 산에도 없는 봄을
딛고 뒤꿈치를 든다
죽더라도 약속은 지켜야지 기침 섞인 아버지의 마지막이 서쪽으로 흐르고 맹세는 동쪽을 붙들고 있다
마음이 멀어 꽃을 시샘한 적 없는데 꽃은 더디 피어나고 발가락들의 방향은 처음부터 서쪽이었다
뒤꿈치를 들고 해가 보이지 않는 아침을 바라본다
해보다 커튼이 참 편안하네 서쪽은 어둠의 밀도가 싱싱하네 발바닥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오늘은 누구의 발뒤꿈치만도 못하다는 말을 참아야 한다
우리의 이름이 악보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당겨지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오르면 당신 방향으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가로질러야 할 걸음을 전부 옥탑방에 놓고 와 횡단보도를 뛰며 당신을 닮아 가고 있다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계간 《문예바다》 202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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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진 / 1962년 경남 함안 출생.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16년 경남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시산맥》등단. 시집 『포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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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다른 발가락을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 진혜진
박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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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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