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
“음…엄마.”
“아니야.”
“……”
“ 그건 바로 너야.”
모녀 지간의 정겨운 대화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백설공주’ 이야기의 서막이다. 이 대화는 엄마(아네트 베닝)가 계모의 입장에 서있는걸 암시한다. (솔직히 딸의 연극 공연을 보면서도 그리고 딸의 죽음을 보면서도 무척 오버하는 모습이 그를 계모로 바라보게 한다.) 남편은 비행기 기장이고 딸은 유치원생이다. 그림 같은 자연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던 아빠, 엄마,그리고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느날 숲속 학예회 연극 공연 중 딸이 유괴되었다. 잃어버린 딸을 찾아 나서는 부모는 결국 호수에서 딸의 시체를 발견한다. 딸의 죽음을 두고 괴로워하던 엄마는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병원에서 개에게 물려 죽는 남편의 환영을 본 부인은 병원을 탈출한다.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 엄마는 오히려 범인에게 잡히게 되었다.
이 영화는 ‘백설공주’의 아빠,엄마,딸의 삼각 구도를 축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동화에서도 그렇지만 아빠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점이다. 계모가 딸을 그렇게 구박하는데 아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것인가? 유괴범이 갇혀 있던 정신 병원의 벽에는 아버지의 무능과 부재를 알리는 글이 적혀 있다.(my father was one dollar.) 유괴범의 아버지는 계모가 유괴범을 어린 시절 학대하는 데도 아무 역할을 못했다. 딸의 시체가 발견된 호수는 수몰 지역인데 어린 시절 유괴범은 수몰 당시 계모가 쇠사슬로 묶어 둔 것을 탈출했다. 호수에 가라 앉는 빨간 하이힐의 장면은 유괴범이 성 도착증 환자임을 암시한다.
아버지가 무능한 것은 아네트 베닝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평화로웠던 가족에 불행이 닥친 것은 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다는 걸 눈치 챈 계모의 질투가 원인이 아니었을까?(영화 상에서는 엄마가 계모라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가족을 ‘백설공주’의 삼각 구도로 읽으면 재미있다. 유괴범의 가족도 마찬가지 이다.) 성실해 보이던 남편은 사실 바람을 피웠다. 딸의 죽음에도 무능했다. 딸의 시체를 발견한 이도, 범인을 찾아 나선 이도 엄마이다. 결국 남편은 징벌의 의미로 개에게 물려 죽었지만 이런 환영을 본 것은 무능한 남편마저 죽이려는 엄마의 욕망이다.
유괴범에게 잡힌 엄마는 사과 술(cider) 공장에서 또 다른 유괴된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유괴범은 아빠, 엄마,딸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정을 꿈꾸고 유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빠는 정신병자이고 엄마는 계모이고 딸은 유괴당했다. 여전히 엄마나 딸에게는 아빠는 one dollar 이다. 유괴범에게 일종의 동정심 내지는 모성애를 느낀 아네트 베닝은 하지만 죽은 딸을 위해 범인을 응징하려 한다. 결국 범인의 총을 맞고 호수의 깊은 심연으로 가라 앉는데, 거기서 죽은 딸과 대화를 한다. 결국 계모와 딸이 화해 할 수 있는 곳은 죽음의 이미지, 고요함의 이미지를 통해서 였다.
꿈속에서는(in dreams) 가정적인 엄마도 계모가 될 수 있다. 딸을 질투해서 죽일 수도 있다. 바람난 남편이 개에 물려 죽도록 소망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는 유괴범은 온전한 가정을 꿈꿀 수가 있다.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 해서 자신이 값어치 있는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단란한 이미지로 포장된 서구 중산층 가족의 붕괴를 볼 수가 있다. 아빠, 엄마, 자식의 삼각 구도에서 한 축이 무가치 하거나 실종되었을 때 우리는 불행을 맛보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1999년도에 봤다.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 몇 달 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을 꼭 읽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심리학에 대해서 무지한 나이지만 이 영화가 많은 상징과 비유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정말 ‘백설공주’에서처럼 계모는 나빠야만 할까? 궁금해졌고 그리고 그 계모가 나쁜 짓을 하도록 방치한 아빠의 무능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나는 계모를 모시고 살았지만 계모가 나를 질투해서 살해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며 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꿈속에서는 계모가 내 친 엄마 였으면 하고 바랬을지도 모른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아빠, 엄마, 자식이 제 자리에 있는 가정이다. 화목한 가정을 꿈꾼다면 이 구성원이 흔들린다면 악몽을 꾸는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편부, 편모, 나 같은 이혼한 가정도 많다.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는 서구화가 될수록 불행하게도 가족 문제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모습에서 일탈한 가정이 일탈한 인간을 양산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 가족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려는 미세한 눈물 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를 도식적으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 이것이 상징의 약점이고 이 영화를 볼 때 유의할 점이다.
# 집에 비디오가 고장 나서 비디오 본지가 몇 년이 넘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영화 평을 써야 하는데 흐릿한 기억만으로 엉성하게 썼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한번 비디오 가게에서 직접 빌려 보길 바란다.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 미래의 엄마, 아빠들이 느껴 보길 바란다.
첫댓글예전에 봐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가족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아네트 베닝이 계모라고 보는 설정은 독특하군요. 지금은 이 영화에 대해 꿈처럼 몽롱하고 음습한 느낌의 이미지만 남아있네요. 언제 한번 다시 빌려서 님께서 말씀하신 관점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이 영화 님이 쓰신 글 보니까 진짜 궁금해지는데요..^^ 음..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특히나 현대에 와서는 편부, 편모 가정 뿐 아니라 이혼 가정(대략 5쌍 중 2쌍 정도가 이혼한다죠?), 그리고 동성애자 가정, 단순한 동거나 독거가정까지 여러 형태의 가정이 존재합니다
첫댓글 예전에 봐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가족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아네트 베닝이 계모라고 보는 설정은 독특하군요. 지금은 이 영화에 대해 꿈처럼 몽롱하고 음습한 느낌의 이미지만 남아있네요. 언제 한번 다시 빌려서 님께서 말씀하신 관점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이 영화 님이 쓰신 글 보니까 진짜 궁금해지는데요..^^ 음..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특히나 현대에 와서는 편부, 편모 가정 뿐 아니라 이혼 가정(대략 5쌍 중 2쌍 정도가 이혼한다죠?), 그리고 동성애자 가정, 단순한 동거나 독거가정까지 여러 형태의 가정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가정 형태를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아직은,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이외의 가정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